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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Quat Jan 09. 2023

당신의 '김종욱'은 어떤 사람이었습니까

무언가를 하다 지칠 때면 '이만하면 됐지'라는 생각이 들곤 한다. 그러나 우연한 계기를 통해 자신이 한계라고 생각했던 수준 그 이상을 하게 되면, 전보다 버틸 수 있는 힘이 늘어났음을 느낄 수 있다. 그런 과정을 통해 우리는 비슷한 일을 하더라도 과거에 비해 훨씬 더 적은 힘을 들여, 더 많은 것을 얻을 수 있게 된다. 오늘은 "후회와 괴로움으로부터 벗어나는 법"에 대해 말해보려 한다.


 




내가 좋아하는 영화 중 '김종욱 찾기'라는 제목을 가진 영화가 있다. 영화의 대략적인 줄거리를 말하자면, 여자 주인공인 '지우'는 과거 인도를 여행하던 중 '김종욱'이라는 남자를 만난 적이 있었다. 낯선 여행지에서 만난 그와 아름다운 추억들을 쌓은 그녀는, 한국으로 돌아온 지 몇 년이 지났음에도 그 남자를 잊지 못해 제대로 된 연애를 하지 못하는 상태였다.



이러한 그녀의 모습을 보며 답답해하던 그녀의 아버지는, 우연히 '첫사랑을 찾아준다'는 한 사무소를 발견하게 되고 딸에게 이 사실을 알려주며 가보라고 재촉한다. 결국 그의 등쌀에 떠밀려 '첫사랑 찾기 사무소'에 방문한 그녀는 남자 주인공인 '기준'을 만나고, 그와 함께 추억 속 '김종욱'을 찾기 시작한다는 내용이다.






영화 속에서 '지우'는 작은 행동들 속에서도 '끝맺음'에 대한 두려움을 드러낸다. '기준'과 함께 기차를 탄 후 간식으로 호두과자를 함께 먹던 중, 마지막 하나 남은 호두과자를 먹지 않고 남겨둔다. 왜 먹지 않냐는 그의 물음에, 자신은 마지막 건 항상 먹지 않는다는 말과 함께 '끝을 내지 않으면 좋은 느낌이 두고두고 남지 않냐'라고 말한다.



하지만 '기준'은 그녀와는 조금 다른 생각을 지니고 있었다. 하루는 '지우'가 '기준'에게 그의 첫사랑은 어떤 사람이었냐고 묻는다. '기준'은 자신의 첫사랑은 동아리 선배였으며, 일본으로 교환학생을 갔을 때 청첩장을 받게 되었다고 대답한다. 첫사랑을 만나기 위해 청첩장을 받자마자 오사카에서 서울로 비행기를 타고 날아갔지만 결국 고백하지 못했다고 말하자, '지우'는 그에게 인연이 아니었을 것이라 말한다. 그러자 그는 인연이 아니었던 게 아니라 끝까지 그녀를 사랑하지 않은 것이라고 대답했고, 그의 대답을 들은 그녀는 생각에 잠기게 된다.






무엇이 되었든 '끝을 낸다'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있던 그녀. 한때는 나도 그녀처럼 '끝'이라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가득했던 적이 있었다. 좋은 사람을 잃어버리게 되는 것에 대한 두려움, 지금 하고 있는 일을 그만두게 되었을 때 또다시 시작할 수 있을까라는 걱정, 지금 이 행복한 순간도 언젠간 끝날 거라는 막연한 불안함. 서서히 끝이 보이는 순간에도 그것을 애써 외면하며 '아직은 괜찮을 거야'라며 눈을 가렸던 적이.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그땐 미처 알지 못한 사실들을 깨닫게 되었다. 이만큼 나와 잘 맞는 사람은 없을 거라 생각했지만, 살다 보니 그 사람보다 더 잘 맞는 사람들도 있었다. 정말 좋아하는 일을 어쩔 수 없이 그만두게 되었지만, 아예 새로운 일을 하면서 '나 이런 것도 할 수 있구나'라는 새로운 사실도 알 수 있었다. 과거에 느꼈던 행복보다 더욱 커다란 행복들을 수도 없이 경험했고, 다가오는 끝을 덤덤히 받아들인 후 새로운 시작을 준비할 수 있을 정도로 마음에 여유가 생겼다.



이러한 변화가 가능했던 이유는 '지금 이 순간의 끝으로 인해 더 좋은 순간들이 찾아올 것'이란 걸 수많은 경험을 통해 체득했기 때문이다. 어쩌면 내 인생에 있어 최고라고 생각했던 순간들이, 그저 착각이었을 뿐이란 걸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면서 알게 되었다. 그때부터는 불안을 조금씩 내려놓을 수 있었다. 언제가 될진 모르겠지만 반드시 다가올 '끝'이라는 순간을 불안해하며 살기보단, 끝이 다가올 수밖에 없다는 걸 받아들이고 그 대신 현재를 온전히 즐기기로 말이다.


 




끝난다는 것이 두려워, 자신이 가진 소중한 것들을 가차 없이 버리는 사람들이 있다. 돈, 시간, 친구, 가족, 심지어 자기 자신까지. 중요한 건 그렇게 자신의 모든 것을 아낌없이 쏟아부어도, 이미 다가오는 끝을 막을 수는 없다는 사실이다. 아무리 꼼꼼히 염색을 해도 자라나는 흰머리는 많아지고, 관리를 철저히 해도 피부는 점점 탄력을 잃어간다. 끝이 나는 걸 막을 수 없다는 이유로 자포자기하거나 돈과 시간을 쏟아 억지로 막으라는 게 아니다. 끝이 다가올수록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일지를 깊이 생각하고, 잘 마무리할 수 있게끔 준비해야 한다.



끝이 난다는 건 슬프다. 당연한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끝을 받아들여야 한다. 끝을 제대로 갈무리하지 못하면, 거기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시간 또한 길어진다. 불안하고 두렵고 슬프다는 이유로 그것에서 눈을 돌린다거나 회피하는 버릇이 들면, 새로운 시작을 하기에도 버거워진다. 진정으로 당신이 무언가를 좋게 끝내고 싶다면 그것과 정면으로 맞설 줄 아는 용기가 반드시 필요하다.


 




'김종욱'을 만나기 전, '지우'가 자신의 아버지와 대화를 나누는 장면이 있다. 만나러 갈 거냐는 아버지의 물음에, 그녀는 그가 자신의 인연인지 모르겠다고 답한다. 그러자 그는 시작도 안 해보냐며 딸에게 핀잔을 주고, 그녀는 운명이라면 애쓰지 않아도 만날 사람은 만나지 않냐고 말한다. 그러자 그는 딸에게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인마, 그러니까 넌 아직 멀었다는 거야. 인연을 붙잡아야 운명이 되는 거지."



어쩌면 당신에게도 지우의 '김종욱'같은 사람이 있었을 것이다. 꼭 '김종욱'같은 사람이 아니더라도, 당신의 삶에서 잊지 못할 순간이 한 번은 있었을 것이다. 그때 당신은 어떻게 끝을 맺었는가. 지금 다시 그때로 돌아가더라도 똑같은 선택을 할 수 있을 만큼, 후회 없는 마무리를 하고 돌아섰는가. 그것은 오직 당신만이 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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