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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Quat Feb 03. 2023

5분 만에 300만 원을 썼다


당신은 스스로를 위해 얼마까지 써본 적 있는가? 사람마다 차이는 있겠지만, 나는 물욕이 그리 큰 편은 아니다. 기껏해야 한 달에 한 번 정도 10만 원 정도 선에서 갖고 싶은 옷이나 신발을 사는 정도이다. 그런데 최근 불과 5분 만에 약 300만 원이라는 거금을 결제해 버린 적이 있었다. 쓸데없는 것 아니냐고? 결론적으로 말하면 전혀 후회하지 않는다. 오늘은 "나 자신을 위한 소비의 중요성"에 대해 말해보려 한다.






나는 작년 9월부터 현재까지, 꽤나 바쁜 일상을 보내고 있는 중이다. 주 6일 출근(토요일은 12시까지 근무)에 퇴근 후엔 지금처럼 에세이 한 편을 적는다. 12월부턴 유튜브도 시작해 2~3일에 하나씩은 영상을 업로드하려고 노력 중이다. 평일 중 하루는 독서모임을 나가고 있으며, 간간히 지인들과의 약속도 있다. 물론 앞서 나열한 모든 것은 내 선택이라는 걸 인지하고 있고, 이러한 선택의 결과에 대해 충분히 만족하는 중이다.



하지만 지금 느끼는 만족도와는 별개로, 누적되는 피로 또한 분명 존재했다. 처음으로 '힘들다'라고 느낀 건 1월 초부터였다. 기존에 하던 것들을 유지하기 위해 애를 써도, 소진된 에너지를 충전하기까지 필요한 시간은 점점 늘어만 갔다. 오랫동안 사용한 전자기기의 경우, 100% 충전을 해도 처음 사용할 때보다 배터리가 줄어드는 속도는 더욱 빨라지지 않은가. 딱 내가 그랬다.



퇴근 후 운동을 하고, 나름 충분한 휴식을 취해도 상황은 그리 달라지지 않았다. 1월 중순쯤 되자 '이건 아니다'라는 생각이 들었고 무언가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당장 무엇부터, 어떤 식으로 바꿔야 할지 좀처럼 갈피는 잡히지 않았다. 일단 휴식이 필요하다고 생각했기에 하고 있는 것들을 유지는 하되, 투자하는 시간을 조금씩 줄이고 그만큼 쉬는 시간을 늘렸다.






무엇을 바꿔야 할지 고민을 하며 하루하루를 보내던 중, 문득 한 가지 생각이 머릿속을 스쳐갔다. '지금까지 살면서 나 자신을 위해 큰돈을 썼던 적이 있었나'라고. 생각해 보니 그런 순간은 딱히 없었다. '없으면 없는 대로, 있으면 있는 대로'라는 마음으로 상황에 맞춰 소비를 하며 살았었으니까.



그랬던 내가 작년 초 집에서 나와 혼자 살기 시작하면서부터,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다. 예전이라면 하지 않았을 행동들을 하고, 사지 않았을 물건을 사고, 신경 쓰지 않았을 부분을 신경 쓰고 있었다. 지난달 이사를 한 후에도 집에 둘 테이블을 몇 시간 동안 찾아보고 고민 끝에 결제하기도 했다. 불과 몇 년 전이라면 상상도 못 할 일들인데 말이다.






전과는 다르게 생각하고 행동하고 있음을 느낀 후, 다시 돌아와 현재의 내 상황을 떠올려보았다. 분명 좋아하는 것들이고, 내가 선택한 것들이라지만 그로 인해 심신이 피곤해진 것도 사실이었다. 일, 글쓰기 등 몇 달 동안 해오면서 이제야 익숙해졌기에 그것들을 피곤하다는 이유로 내려놓고 싶지도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선택은 '제대로 피로를 푸는 것'이었다.



인터넷에 접속해 다양한 매체들을 검색하며 이런저런 정보들을 찾은 후 내린 결론은 '두피케어를 받자'였다. 요즘 들어 일이 바빠 신경을 많이 쓰다 보니 이유 없이 머리가 아팠던 적도 종종 있었다. 거기다 전신 마사지는 몇 번 받아본 적 있었지만, 제대로 된 두피마사지는 받아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또한 다양한 매체에서 '2~30대 탈모'에 대해 언급한 기사도 여럿 보았기에, 검사를 받아보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여러 군데를 검색해 가장 마음에 드는 곳을 예약했고, 퇴근 후 방문해 체험을 해보기로 했다. 다행히 검사결과도 썩 나쁘지 않았고, 직원 분들 또한 아주 친절하셨다. 꽤 먼 거리였지만 충분히 만족스러운 기분이 들었다. '여기라면 괜찮겠다'란 생각이 들어 케어 관련 비용을 여쭤보았다. 다양한 코스가 있었는데 그중 가장 괜찮아 보이는 코스의 금액대가 대략 300만 원이었다. 충격적이었다.



결코 적은 금액이 아니라는 것이 첫 번째 이유였고, 그만큼의 금액을 나를 위해 써본 경험이 전무했기에 '이게 맞을까'란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잠시 후, 머릿속엔 또 다른 생각이 들었다. '이 정도 금액을 나를 위해 쓰지 못한다면, 앞으로 이 이상의 돈은 나뿐만 아니라 타인을 위해서도 쓰지 못하는 것 아닐까. 1년 넘게 쉬지 않고 달려온 나 자신을 위해 300만 원은 투자할 수 있지 않을까?'



그렇게 5분 만에 카드 한도 상향과 대금 결제가 이뤄졌다. 영수증에 찍힌 숫자를 보며 살짝은 얼떨떨한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그날 내가 받은 서비스와, 지금까지 해야 할 것과 하고 싶은 것을 하며 부지런히 살아온 나 자신을 떠올리면 충분한 보상이라는 생각 또한 함께 들었다.






자신이 처한 상황보다 무리하게 소비하는 것은 결코 좋지 않다. 하지만 본인이 충분히 감당할 수 있으며, 필요하다는 결론이 내려진 후의 지출이라면 크게 문제 될 것은 없다. 현재 내가 만족하는 이유도 이와 같은 요인들이 충족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오롯이 나 자신을 위해 이 정도 금액의 돈을 써봤다는 경험을 한 게 뿌듯하다. 그 정도 소비를 하더라도 감당할 수 있다는 점에서, 지금까지 성실히 살았음을 입증받은 듯했다. 또한 내적인 것뿐만이 아니라 외적인 면에도 좀 더 나아질 수 있지 않을까라는 기대감 또한 설레게 만들었다. 어떤 쪽으로든 과거보다 더 발전할 수 있는 부분이 생긴다는 건, 분명 좋은 것이니까 말이다.






더 나아지기 위해 스스로에게 투자하고 그로 인해 긍정적인 경험을 해본 사람일수록, 다음 도전을 할 때도 망설이지 않는다. 흔히 자존감이 높은 사람들은 타인의 인정보단 자기만족을 위해 움직인다고들 한다. 하지만 여기엔 많은 사람들이 놓치고 있는 부분이 존재한다. 자존감이 높은 사람들은 타인의 인정이 '필요 없는 것'이 아니라, 이미 과거에 '자신이 기울인 노력에 대한 인정'을 충분히 받은 경험이 있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그들은 누가 뭐라든 크게 휘둘리지 않는 듯한 모습을 보인다.



자기 자신에게 투자하는 경험 또한 이와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어떤 방식으로든, 어떤 경험이든 그것을 통해 많은 것을 느낀 사람은 다음번 새로운 경험을 맞닥뜨렸을 때 전과는 다르게 행동한다. 전에 했던 경험에서 마주한 허들을 뛰어넘는 게 보다 쉬워진다. 자신을 위해 10만 원을 써본 사람은 다음번엔 20만 원을 쓸 수 있을 가능성이 훨씬 높다. 또한 자신에게 그 정도의 투자를 할 수 있기에, 타인이 그만큼의 금액을 사용하는 것도 이해하고 자신 또한 그 정도 선에선 베풀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자신에게 쓸 수 있는 금액이 자신의 가치가 되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스스로를 진정으로 소중하게 생각한다면 필요할 땐 과감하게 투자할 수 있는 용기도 필요하다. 그러한 도전은 곧 새로운 경험으로 이어지고, 몸소 체득한 경험들은 당신이 예상하지 못한 순간에 요긴하게 발휘되기도 한다. '무엇을 경험하는가'도 중요하지만, 가장 중요한 건 '거기서 무엇을 느꼈는가'란 것을 잊지 않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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