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사람과 쉽게 친해지는 사람. 낯을 가리고 조금씩 마음을 여는 사람. 어떤 이는 누군가와 만난 지 단 며칠 만에 사귀기도 하지만, 또 다른 이는 몇 달이 지나도 관계의 진전이 미미한 경우도 있다.저마다의 상황은 달라도 변하지 않는 한 가지는, 자의든 타의든 관계가 시작된 이후부터는 서로에게 어느 정도의 책임을 갖게 된다는 것이다.오늘은 "관계에 대한 책임감의 차이"에 대해 말해보려 한다.
무엇을 시작할 때 관계를 가볍게 여기는 사람이 있다. 이러한 경우엔 처음 보는 사람을 대할 때 빠르게 친해진다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가볍게 시작한 만남은 그 끝 또한 가볍게 끝나는 경우도 많다.
새로운 시작을 하기 전 굉장히 많은 고민을 하는 사람도 있다. 마음을 쉽게 열지 않지만, 한번 마음을 열게 되면 자신이 가진 것들을 선뜻 주려는 사람들. 그러나 스스로에 대한 확신을 가지기까지 시간이 너무나 걸려, 좋은 인연을 놓치게 될 때도 있다.
사실 어떤 마음으로 관계를 시작하느냐는 중요할 수도,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사람을 만나는 장소에 따라 어떤 성향이 두드러진 사람을 만나는지는 달라지기 마련이다. 하지만 꼭 특정한 장소에서 만난 사람이, 반드시 그러한 장소가 지닌 이미지와 부합하지는 않는다.
예를 들어 서점에서 마음에 드는 사람을 만났다고 해도, 그 사람이 꼭 책을 좋아하고 차분한 사람이란 보장은 없다. 어쩌다 한 번이 그날이었을 수도 있고, 책에 관심조차 두지 않다가 '나도 한 번 책이나 읽어볼까'란 생각으로 서점에 간 날이 그 날일 수도 있으니까 말이다. 누군가를 처음 만난 장소, 그 사람을 처음 어떤 이미지로 바라보았는지는 중요하지만 그러한 요소들이 그 사람을 절대적으로 대변한다고도 볼 수 없는 것이다.
어떤 관계에서든 가장 중요한 것은 "관계에 대한 책임감"이다. 서로가 얼마나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을 했든 간에, 변하지 않은 사실은 "이미 관계가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이야기를 들으면서 내가 가장 이해하기 힘든 부분은, 어떤 관계에서든 그 관계에 대한 책임을 다하지 않으려는 사람이 꽤 많다는 것이다. 심지어 본인의 의지로 무언가를 시작했음에도 '귀찮다' '힘들다'는 이유로 그것을 꾸준히 하려고 하지 않는 사람들이 많았다.
이것이 꼭 사람 간의 관계뿐이겠는가. 학업, 일, 취미생활 등에서도 별반 다르지 않다. 자기가 하고 싶어서 무언가를 시작해 놓고, 하는 둥 마는 둥 하며 허송세월을 보내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떠올려보라. 즐기는 취미가 100개인데 그중에 제대로 하는 것이 하나도 없다면, 그것을 취미라고 부를 수 있을까? 1000개의 연락처를 가지고 있다고 한들, 그중 서로 속 깊은 얘기를 하는 사람이 과연 몇 명이나 있냐는 것이다.
무엇을 시작하고 나서 그것에 대한 책임을 매번 다하는 것도 어렵다. 관계에 대한 책임을 다한다는 건, 반드시 그것을 지속하는 것만을 의미하진 않는다. 자신 또는 상대방의 처지를 고려해 '더 이상 관계를 이어나가는 게 무의미하다'라고 생각되면, 그것을 정리하는 것 또한 책임이다.
관계에서 가장 비겁한 건 자신의 책임을 다할 것처럼 말은 하면서, 정작 행동은 하지 않는 것이다. 시작할 거라면 제대로, 자신이 없다면 자신의 기준에서 최선을 다한 뒤 관계를 정리하면 될 뿐이다.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닌 애매한 상태로 관계를 지속하는 게 습관이 된 사람들은 결국 자신 또한 애매한 사람들만 만나게 될 수밖에 없다.
소설 '어린 왕자'를 보면 여우가 어린 왕자에게 "길들인 것에 대한 책임"을 강조하는 부분이 나온다. 자신의 별에 핀 한 송이의 장미꽃. 지구에 핀 수백만 송이의 장미꽃과 다르지 않은 모습이지만, 그에게 있어 별에 뿌리를 내린 장미꽃은 세상에 단 하나뿐이다. 여우는 그 말과 더불어 어린 왕자에게, 그에게 장미꽃을 돌볼 책임이 있음을 말한다.
이 세상엔 수많은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지금 내 곁에 있는 사람들은 특별하다. 왜냐하면 내가 얼굴조차, 이름조차 모르는 사람들과는 달리 '나와의 추억'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나는 그 사람과의 관계에 있어 어느 정도의 책임을 다한다. 나로 인해 그 사람이 상처받지 않는, 보다 즐거운 일이 가득한, 친하다는 이유로 선을 넘지 않는 책임.
당신은 어떤가.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 자신이 하고 있는 일, 취미 생활 등에 책임을 다하고 있는가. 사실 책임을 다하는 것에 '상한선'은 다르지만, 분명한 '하한선'은 존재한다.그 사람을 위해, 내가 하고 있는 모든 것들에 최선을 다했느냐가 아닌 "하지 말아야 할 행동을 한 적은 없었는지" 말이다. 앞에서 하지 못할 말을 뒤에서 하거나, 현재 처지를 고려하지 않은 채 일만 벌이거나, 책임질 수 없는 말과 행동들을 감정에 따라 순간적으로 내뱉는 것들. 어쩌면 책임을 다한다는 건 상대를 위해 자신이 가진 모든 걸 쏟는 게 아니라 "하지 말아야 할 것들을 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