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를 멀리했다. 그러자 자유로워졌다

by Quat


사람들과 대화를 하다 보면 유독 다방면에서 많은 경험을 해본 사람들이 존재한다. 그들의 풍부한 경험을 듣고 있자면 나 자신이 우물 안 개구리처럼 살았다는 생각과 함께, 새로운 분야에 거침없이 도전한 그들의 용기를 닮고 싶다는 마음이 절로 들기 마련이다. 시간이 흘러 다시금 그들을 보게 되었다. 여전히 그들은 자유롭고 행복해 보였지만, 예전만큼 그들이 부럽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던 걸 왜일까. 오늘은 "숱한 경험과 더불어 반드시 필요한 한 가지"에 대한 내 생각을 말해보려 한다.






20대 시절의 내게, 간절히 원하는 가치가 있냐고 누군가가 물어본다면 주저 없이 한 가지를 말했을 것이다. 바로 "자유"라고. 30대 중반에 접어드는 지금, 그때를 되돌아보면 내 인생 그 어느 때보다도 자유로웠던 시기였다. 자유롭길 원했고, 그럴 수 있는 시간이 많았음에도 정작 내가 자유롭지 못하다고 느꼈던 건 다름 아닌 나 스스로의 선택이었다. 독립, 여행, 취미 등등 내가 마음만 먹었으면 무엇이든 할 수 있었지만,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허송세월을 보냈던 것이다.



그러다 보니 20대 때 수많은 추억을 쌓은 사람들이, 과거에 자신이 겪은 여러 경험을 들려줄 때면 나도 모르게 이야기 속으로 빠져들곤 했다. 자신이 정말 좋아하는 해외 축구팀의 홈구장에 방문해서 찍었던 사진, 우연히 만난 한국 사람과 낯선 외국에서 함께 동행하며 나눈 이야기들, 노을이 지는 시간에 선홍빛으로 물드는 바닷가의 풍경과 그곳에서 마신 시원한 병맥주.



꿈을 꾸는 순간부터 그것을 이룰 가능성은 0%가 아니게 된다는 말이 있다. 나 또한 그 말을 믿는다. 하지만 비교적 짧은 시간을 살았음에도 느낀 사실 중 하나는, '무언가를 못하는 시기'란 없지만 '무언가를 보다 많이 시도할 수 있는 시기'는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런 이유로 나는 여전히 돌아갈 수 없는 20대의 그 시절을 이따금씩 그리워하곤 한다.






그렇다고 마냥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냐고 묻는다면, 그렇지는 않다. 왜냐하면 내 삶을 통틀어 가장 안정적이고 행복한 일상을 누리고 있는 시기가 바로 지금이기 때문이다. 혼자만의 시간과 공간, 뚜렷한 삶의 목표, 사랑하는 사람들과 즐기는 일상의 소소한 행복들, 이 모든 것들을 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경제적인 안정감. 어느 한쪽에 무게가 쏠리지 않은 채 균형 잡힌 삶을 살고 있다는 게, 현재에 만족하는 가장 큰 이유이다.



풍족하다고 할 순 없지만 하고 싶은 것을 하며 살 수 있다는 것. 지금 내가 안정된 일상을 살아갈 수 있는 이유는, 아이러니하게도 그토록 원했던 '자유'를 멀리했기 때문이었다. 쉬고 싶을 때 움직인 결과 전보다 경제적인 자유로움을 얻었다. 낯가림을 극복하고자 새로운 사람들을 꾸준히 만난 덕에 좋은 사람들을 알게 되었다. 우연히 시작한 블로그로부터 출발한 글쓰기는, 1년이 넘도록 하루 중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여전히 나는 자유롭고 싶다. 하지만 이젠 안다. 무언가를 얻기 위해선, 그것과 정반대 되는 무언가를 견디는 시간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걸 말이다. 자유도 마찬가지다. 자유롭기 위해선 '자유롭지 못한 숱한 시간들'을 견디고 견뎌내야, 비로소 어느 정도의 자유를 가질 수 있다. 이것이 어디 자유뿐이겠는가.





사람들은 말한다. '좋은 사람'을 만나고 싶다고. 다정하고 섬세하며 자신의 일에 충실하고 때로는 현실적인 생각을 할 줄 아는 사람. 그러나 우리 모두가 바라는 이러한 사람을 만나기 위해선 때로는 매우 아프고 힘든 시간들을 견뎌내야만 한다. 바로 '좋지 않은 사람'을 겪는 시간들 말이다.



살면서 한 번쯤은 사람에게 상처받고 아파한 기억이 누구나 있을 것이다. 반대로 자신은 그럴 의도가 없었을지라도, 타인에게 그러한 상처를 줬던 적도 있을지도 모른다. 이렇듯 우리는 자의든 타의든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고받으며 살아왔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그런 과정들을 거치며, 사람은 자신과 잘 어울리는 사람을 찾을 수 있는 '눈'을 차츰 가지게 된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점이 있다. 바로 똑같이 많은 사람들을 만나 상처를 받았음에도 누군가는 시간이 지나 좋은 사람을 만나는 반면, 또 다른 사람은 여전히 상처를 받으며 살아간다는 것이다. 왜일까? 나는 이러한 이유가 '경험에서 양과 질의 상대적인 비례'에 달려있다고 생각한다. 이 말인즉슨 어떠한 경험이 아무리 많더라도 질적인 부분이 떨어지거나, 아주 심도 있는 경험을 했더라도 그로 인해 잘못된 주관이 생길 수도 있다는 것이다.





무언가를 많이 경험한다는 건 분명 득이 될 수 있다. 하지만 단순히 체험을 많이 한 것만으로 그것을 '경험했다'라고 보긴 힘들다. 그 경험으로부터 본인이 무엇을 느꼈는지 되돌아보지 못한 채, 무조건적인 반복에만 집중한다면 또다시 그것을 하더라도 처음과 별반 차이가 없을 수 있다는 말이다.



내 주변에도 그런 사람들이 꽤 있었다. 분명 특정 분야에 대한 경험을 많이 했음에도, 정작 처음 해보는 사람보다 대처가 좋지 못한 사람들 말이다. 타고난 센스나 재능의 차이도 있겠지만, 축적된 경험의 양은 결코 무시할 수 없는 것이다. 그렇지만 그것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한다는 건 결국 본인이 그러한 경험을 제대로 받아들이지 못했다는 것과 같은 의미이다.



반대로 한 번의 경험을 토대로 전과는 전혀 다른 삶을 사는 사람도 있다. 물론 좋은 의미로 바뀐 사람도 있겠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꽤 많다는 걸 당신도 알 것이다. 도박이나 이성과 관련된 경험 등 매우 강렬하고 자극적인 경험은 이성적인 판단을 하지 못하게 만들기도 한다. 살면서 도박이라곤 한 번도 해보지 않던 사람이 단 한 번의 경험 이후에 엄청난 빚에 시달리다 극단적인 선택을 하거나, 순수했던 사람이 유흥업소에 빠져 가족을 내팽개치고 삶이 무너졌다는 이야기는 더 이상 드라마 대본이 아니다.






이처럼 우리는 어떠한 경험을 할 때 그러한 일들이 얼마나 자주 있었는지, 또는 어느 정도의 깊이가 있었는지를 판단할 수 있어야 한다. 단순히 특정한 경험을 많이 해봤다고 해서 자신이 그것을 잘한다고 생각하는 건 착각에 지나지 않는다. 또한 무언가에 대해 깊게 몰입하고 경험했다고 한들, 그런 경험이 일반적이고 상식적인 분야가 아니라면 도대체 무슨 도움이 되겠는가!



많은 경험에도 어느 정도의 질은 필요하다. 그 반대도 마찬가지다. 100번의 연애를 해서 100번의 이별을 한 사람과, 10번의 연애를 해서 1명과 결혼한 사람. 매번 다른 분야의 직업에서 10번의 이직을 한 사람과, 2곳에서 각각 5년을 일한 사람. 어느 정도 경험이 축적되고 나면 그다음부터는 한 가지에 꾸준히 몰입하는 인내심이 필요하다. 그러한 인내심 없이 매번 새로운 경험만을 좇아 나선다면, 안정적이고 행복한 삶을 사는 건 힘들지도 모른다.



물론 누구나 안정적인 삶을 원하진 않는다. 새롭고 자극적인 삶을 추구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다만 이것 한 가지는 기억하길 바란다. 안정된 삶을 누리는 사람이 새로운 것을 추구하는 것과, 자극적인 삶을 살아온 사람이 안정된 삶을 추구하는 것. 전자와 후자 중 어떤 것이 더 쉬울지를 생각해 보라. 누구나 자신이 지금 누리고 있는 삶의 행복이 평생 갈 것이라 생각하지만 인생이란 자신의 예상대로만 흘러가진 않는다는 걸 당신 또한 잘 알 것이다. 현재의 행복을 마음껏 즐기되, 한편으론 불확실한 미래에 대비할 준비를 하는 것이야말로 우리가 지녀야 할 태도 중 하나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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