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모르는 걸 물어보는 태도는 좋다고 말한다. 나 역시 모르면서 '아는 척'하는 것보다는 차라리 솔직하게 자신이 그 분야에 대해 아는 것이 없음을 인정하는 게 낫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만약 누군가 당신에게 한시도 쉬지 않고 "왜?"라고 물어본다면, 당신은 어디까지 대답해 줄 수 있는가. 오늘은 '성찰 없는 질문의 위험'에 대해 말해보려 한다.
최근 유튜브에서 흥미로운 영상 하나를 보았다. 노벨물리학상을 수상한 물리학자인 '리처드 파인만'이, 한 기자와 인터뷰하는 내용이었다. 영상에서 기자는 그에게 '두 개의 자석을 서로 가져다 댔을 때 그 사이에서 느껴지는 느낌이 무엇이냐'는 질문을 했고, 그 말을 들은 리처드 파인만은 살짝 의아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그게 무슨 말이냐"라고 답했다.
기자는 '자석 사이에서 느껴지는 느낌'이 있지 않냐며 그에게 '그 느낌'이 무엇인지를 설명해 달라고 물었다. 자신의 질문이 굉장히 합리적이라는 말과 함께 말이다. 그러자 파인만은 미소를 지으며 "물론 합리적이다"라고 답한 뒤, 하나의 예를 들었다.
"미니 이모가 다리를 다쳐서 병원에 갔습니다. 왜죠? 왜냐하면 미끄러졌으니까요." 파인만은 대부분의 사람들은 여기까지만 말을 하면 이해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다른 우주에서 온 외계인들은 이러한 과정을 이해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하며, 아마 다시 한번 물어볼 것이라고 답했다.
이어서 그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왜라는 질문을 하기 위해선 서로가 참이라고 납득하는 일련의 범주안에서 이뤄져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왜'라는 질문이 끊임없이 이어질 테니까요." 그리고 이어진 몇 분간의 영상에서는 파인만이 기자에게 그러한 이유에 대해 차근차근 풀어서 설명하고 있었다.
내가 이 영상을 보며 놀랐던 건 2가지였다. 첫 번째는 파인만이라는 사람의 '품격'이었다. 자신이 정확히 무엇이 궁금한지, 더 나아가 자신이 질문에 대한 대답을 이해할 수 있는 기초적인 지식이 있는지조차 모르는 채 질문하는 기자(심지어 그러한 질문을 합리적이라고 칭하는 사람인데도)에게, 그렇게 질문을 해서는 안 되는 이유를 아주 이해하기 쉽도록 풀어서 말하는 그의 능력을 보고 있으니 감탄이 나왔다.
과학보다는 철학에 가까운 주제였음에도 적절한 예시를 들며 기자가 스스로 자신의 질문이 잘못되었음을 깨닫도록 말하는 그의 품격은, 그가 왜 위대한 천재이자 물리학자로 칭송받는지 단 몇 분만으로 증명한 셈이었다.
두 번째로 놀란 점은 '질문의 본질'이었다. "모르면 물어봐야지"라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말하지만, 정작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조차 질문폭격을 받으면 "그 정도는 네가 알아서 해야지! 뭘 그런 것까지 물어봐!"라고 화를 낼 것이다.
가장 대표적인 게 바로 대여섯 살 된 호기심 많은 아이를 둔 부모가 매일같이 겪는 일이다. 아이는 조금씩 말을 하기 시작하면서 이 세상의 모든 것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다. 그리고 끊임없이 부모의 말에 "왜?"라는 질문을 한다. 한두 번이야 그렇다 치지만 몇 번이고 들려오는 "왜?"라는 메아리는 아무리 부모라고 해도 지치게 만들기 마련이다.
파인만의 대답은 이러한 과정이 왜 사람을 힘들고 지치게 만드는지의 핵심을 정확히 꿰뚫는 말이었다. 대화를 할 때 서로가 특정한 부분에 대해 '참'이라 생각하는 커다란 틀 안에서 질문을 해야 한다는 것. 우리가 자신과는 너무나 다른 사람들과 대화를 할 때 지치고 힘든 이유도 이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부모와 자식뿐만 아니라, 친구 또는 연인도 마찬가지다. 서로가 '참' 또는 '진실'이라 믿고 있는 범주가 다를 때, 우리는 상대방의 말을 듣고, 그 사람이 행동하는 것을 보며 '저 사람은 왜 저럴까'라고 자연스럽게 의문을 가진다. 그 의문을 상대와 대화하며 풀어보려고 한들, 의문이 해소되기는커녕 때로는 상대와 다투기도 한다. 바로 서로가 참이라 생각하는 범주가 다르다보니, 대화를 하면 할수록 더욱더 이해할 수 없는 부분들이 생기기 때문이다.
이 세상에서 돈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인 A와, 행복이 가장 중요하다고 믿는 사람인 B가 있다고 해보자. A와 B는 '직장'이라는 주제로 대화를 한다. A는 연봉이 높은 직장이 최고라고 하는 반면, B는 자신이 하고 싶고 좋아하는 일을 할 수 있는 직장이 좋다고 말할 것이다. 어디 이것뿐이겠는가. 돈을 모아 넓은 집과 멋진 차를 사고 싶다고 말하는 A와 달리, B는 여행을 떠나거나 주말이면 영화를 보거나 그림을 그리고 싶다고 말할 것이다. 이 두 사람 또한 서로에게 "왜?"라는 질문을 엄청나게 많이 하지 않을까.
자신이 알고자 하는 것이 정확하게 무엇인지, 그것을 이해할 수 있는 기초지식이 자신에게 얼마나 갖춰져 있는지조차 모른 채 무작정 질문을 하는 건 오히려 위험할 수 있다.과학에 대해 전혀 무지한 사람이 미국의 나사(NASA) 직원과 우주항공에 대한 대화를 한다고 상상해 보라. 나사 직원에겐 당연한 것들이 상대에겐 전혀 당연하지 않을 것이기에, 하나의 질문에 대한 답을 완전히 이해시키기 위해 어느 정도의 시간이 걸릴지 모를 일이다.
질문하는태도는 좋은 것이다. 그러나 자신이 무엇을 궁금해하는지 자신도 모르는 채 질문을 하는 게 정말 좋은 태도일까.정말 그 질문이 궁금해서 하는 것인지, 아니면 상대를 테스트하거나 자신이 이 정도 질문을 할 수 있다는 걸 뽐내고 싶어서인지 곰곰이 생각해 보라. 당신은 어떠한가. 자신과 상대에 대한 이해 없이, 스스로 던진 질문에 심취한 채질문을 던지고 있진 않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