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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Quat Apr 30. 2023

'외면'도 '내면만큼' 가꿔야 하는 이유


당신은 길을 걷고 있다. 그러다 앞쪽에서 걸어오는 아주 예쁜 여자(또는 아주 잘생긴 남자)를 보게 된다. 찰나의 순간이지만, 당신의 시야엔 그 사람 외에 다른 사람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그렇게 그 사람은 당신의 곁을 스쳐 지나가고, 당신은 뒤를 슬쩍 돌아본 뒤 다시 제 갈 길을 간다. 이처럼 외형이란 처음 누군가를 보았을 때 아주 강렬한 인상을 심어준다. 물론 대화를 하면서 상대방에 대한 이미지가 달라질 가능성은 존재하지만, 어쨌거나 우리는 '보이는 모습'을 통해 상대에 대해 처음 판단을 내리게 된다는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오늘은 "내면만큼 외면에도 신경 써야 하는 이유"에 대한 내 생각을 말해보려 한다.






많은 이들이 '중요한 건 보이지 않는 것'이라고 한다. 나 역시 이에 동의하는 바이다. 예쁘고 잘생긴 외모, 멋진 몸매를 갖고 있다고 할지라도 함께 있을 때 즐겁지 않고 불편하다면, 그 사람과 오랫동안 관계를 유지하긴 힘들 것이다.



그러나 이를 거꾸로 뒤집어 생각해 보면, 알아갈수록 별로인 사람이라 할지라도 어쨌든 그 사람과 관계를 시작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이 '외면'이라는 걸 부정하긴 힘들다. 심지어 몇몇 사람들은 그 사람의 성격이 자신과 전혀 맞지 않더라도, 오로지 상대의 뛰어난 외면 때문에 관계를 끊어내지 못하기도 한다. 그 정도로 현실 속에서 '외면'이라는 건 인간관계에서 굉장히 크고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한다.






몇 주 전, 머리를 다듬기 위해 미용실을 방문했던 적이 있다. 내가 마지막 손님이기도 했고, 미용사 한 분이 운영하는 샵이어서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게 되었다. 그러던 중 각자 좋아하는 게 무엇인지에 대해 말하는 시간이 있었다. 작년부터 퇴근 후에 꾸준히 글을 쓰고 있다는 내 말에, 미용사 분은 칭찬과 함께 자신도 최근 새로운 책 한 권을 구매했다고 말하셨다.



어떤 책이냐는 내 질문에, 미용사 분은 에세이인데 아직 읽어보진 않았다고 말하시며 다음과 같이 덧붙였다. "사실 저는 책을 살 때 내용보다는 표지를 보고 사는 편이에요." "표지요?" "네, 표지. 표지가 예쁘면 괜히 갖고 싶은 욕심이 들더라고요." 그 말을 마친 뒤에 갑자기 카운터로 걸어가시더니, 이내 무언가를 꺼내 들고 와서 내게 보여주셨다. 바로 이번에 구매했다던 책이었다. "이 책이에요. 예쁘죠?" 과연 말 그대로였다. 다양한 색으로 표지가 멋지게 꾸며져 있어, 지나치는 사람들의 시선을 한 번은 잡아끌만한 그런 책이었다.



단지 표지가 예쁘다는 이유만으로 책을 여러 권 샀지만, 단 10페이지도 읽지 않아 남편에게 혼이 나서 집이 아닌 미용실로 책을 주문했다며 크게 웃는 미용사 분을 보며 나 또한 함께 웃었다. 그와 동시에 언젠가 내 책을 출간하게 된다면, 이 분에게 미리 책 표지 검수를 받아볼까란 생각 또한 들었다.






이처럼 보이는 모습, 외형이 큰 영향력을 발휘한다는 건 굳이 언급하지 않아도 모두가 알 것이다. 지금 가고 있는 독서모임에서도 이런 경우는 꽤나 흔히 볼 수 있었다. 어떻게 그 책을 고르게 되었냐는 질문에, 책의 내용보다는 표지가 예뻐서 골랐다는 사람들은 대략 10명 중 3~4명 정도 되는 편이었다. 30% 이상이 그 책이 어떤 내용인지도 모른 채, 표지만 보고 지갑을 열었다는 것이다.



물론 표지는 마음에 들었지만 정작 책의 내용은 별로였다는 사람들도 있었다. 하지만 변하지 않은 사실은, 그들이 훨씬 재미있게 읽었을 다른 책 보다 그 책을 구매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의 구매를 이끌어낸 것은 다름 아닌 책이 담고 있는 의미가 아닌, 외면이었다.






이런 현상들이 어찌 보면 슬프고 안타깝다고 느끼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많은 이들이 정작 중요한 것은 보지 못한 채, 단지 외면에만 집착하고 있다는 현실을 비난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우리는 그러한 시대를 살고 있다는 게 현실이며, 그러한 거대한 사회적 흐름을 거슬러봤자 결국 힘든 건 그것을 비난하는 사람뿐이라는 것이다.



사회가 자신의 생각과 다르게 흘러간다는 걸 비판하는 건 본인의 자유이다. 그러나 우리는 사회의 수많은 구성원 중 하나일 뿐이며, 그 안에 속해 매일을 살아가야만 한다는 걸 잊어서는 안 된다. 자신의 기준을 갖고 무언가를 비판하더라도 '왜 그런 현상이 발생했고 그것으로 인해 어떤 영향들이 파생되는지'에 관심을 갖는 태도 또한 필요하다. 무언가에 대해 비판하기 위해서는 그것이 왜 잘못되었는지를 알아야 하며, 그것을 알기 위해선 때로는 대상에 대한 직, 간접적인 경험이 필요하다. 즉, 무언가를 "잘못되었다"라고 말하며 사람들을 설득하기 위해서는, 오히려 그것을 지지하는 사람들보다 비판하는 대상에 대한 더 많은 지식과 경험을 필요로 한다는 것이다.



'외모 지상주의'에 대해 똑같은 두 사람이 비판을 하고 있다고 해보자. 한 사람은 지저분한 옷에 덥수룩한 수염, 헝클어진 머리인 상태로 '외모가 다가 아님'을 열정적으로 외치고 있다. 반대로 또 다른 한 사람은 깔끔한 정장 차림이다. 한눈에 봐도 멋지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꾸민 사람이 "사람의 매력은 외모만이 전부가 아닙니다"라고 말한다. 두 사람 중 누구의 말이 더 설득력 있을까?



무언가를 해보지도 않고 그것에 대해 추측해서 말하는 것과, 그것을 충분히 경험하고 나서 말하는 것엔 큰 차이가 있다. 하루 삼시세끼 식사를 해결하는 것조차 빠듯한 사람이 "돈은 행복의 전부가 아니다"라고 말하는 것보다, 한 끼 식사에만 수십, 수백 만원을 거뜬히 쓸 수 있는 사람이 똑같은 말을 하는 게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더 많은 공감을 이끌어낼 수 있다. 정말로 외형보다 내면이 중요하다고 말하고 싶다면, 역설적으로 자신이 외형적인 면에 신경 써본 경험이 있어야 진정으로 타인을 설득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나 또한 내면을 중요하게 생각하지만, 그 말이 내면만 중요하며 외면은 전혀 중요하지 않음을 의미하는 건 아니다. 현재 내 곁에 있는 친한 사람들 중 성숙하고 훌륭한 내면을 가진 사람들은 외형에도 꾸준히 신경을 쓰는 편이었다. 그들 모두가 특출 나게 아름답고 잘생겼다기보다는, 자신에게 어울리는 스타일을 스스로 잘 알고 있었으며 상황이나 장소에 맞게 꾸미는 능력을 갖추고 있었다.



내면은 중요하다. 하지만 외면에도 어느 정도 신경을 써야 그 사람의 내면도 보고 싶은 마음이 들기 마련이다. 단지 연인이 아니라 친구를 사귈 때도 사람은 무의식적으로 외형을 보기 때문이다. 외형을 꾸미는 것 또한 자신의 시간과 에너지를 들이는 행위이다. 자기 관리는 그 사람의 부지런함을 보여준다. 꾸준한 운동과 패션에 대한 관심이 있는 사람은 어딜 가더라도 인기가 있을 수밖에 없다.



타고난 외모와 체형이 좋지 않더라도, 얼마나 관심을 갖고 어떻게 꾸미냐에 따라 일정 수준까지는 극복할 수 있는 세상이다. 그렇기에 나는 내면만이 중요하다고 믿기보다 외면과 내면 2가지를 모두 잘 관리하는 사람에게 호감을 느끼고, 나 또한 그런 사람이 되고자 노력하고 있다. 잘하는 것이 많을수록 타인에게 매력적으로 보이는 건 당연한 사실이다. 가장 중요한 건 한쪽에만 치우치지 않고 두 가지 모두 적당한 수준을 유지하는 것이다. 외면과 내면 모두 우리가 타고나면서부터 가진 것이기에, 둘 다 전보다 나아지도록 노력하는 사람이 진정 매력적인 사람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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