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불었다.
네가 좋아했던 그 바람이.
네 생각이 난 건 아니다.
그저 바람이 불었을 뿐이다.
지금처럼 바람이 불었을 때
너는 벚꽃처럼 흩날리던 머리카락을
새하얗고 길다란 손가락을 편 채
귀 뒤로 넘기며 반짝이듯 웃었다.
그 모습을 보며
나도 덩달아 웃게 되었다.
그때 왜 웃었냐고 물어보면
딱히 할 말은 없다.
네가 웃어서,
그래서 웃음이 나왔다.
바람이 또 불었다.
네가 싫어했던 바람이.
지금처럼 바람이 불었을 때
나는 너의 얼굴을 볼 수 없었다.
그저 뒤로 돌아선 채
떨리는 목소리로 무어라 말한 뒤
그대로 멀어져 갔을 뿐이었다.
그 모습을 보며
나도 덩달아 안녕이라고 말했다.
그때 왜 인사를 건넸냐고 물어보면
딱히 이유는 없었다.
네가 내게 말해서,
그래서 대답을 했을 뿐이다.
또다시 바람이 불었다.
어쩌면 네 생각이
조금은 났을지도 모르겠다.
벚꽃처럼 휘날리던 머리카락과
여름 바다처럼 빛나던 미소와
가을 햇살처럼 따스했던 손과
어느 겨울날의 새벽 공기처럼
순수했던 너.
그런 네가 바람과 함께 찾아오더니
바람과 함께 사라져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