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사람들이 착각하는, 관계 속 '갑'과 '을'

by Quat


우리는 어떤 이들과도 동등한 관계가 맺어지길 원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모든 사람과 이러한 관계를 맺진 못한다. 시작은 동등해 보이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조금씩 한쪽으로 기울기도 한다. 다양한 사람들과 다른 상황 속에서 이루어진 관계들 중에서, 현재 당신은 어떤 위치에 머물고 있는가. 오늘은 "관계에서의 진정한 갑과 을"에 대해 말해보려 한다.






삶을 살아갈 때 힘든 순간들이 있다. 사람마다 그러한 힘듦은 다르겠지만, 결국 그 시련의 본질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답은 하나다. 바로 '이상과 현실의 차이'를 마주했을 때이다.



자신이 '옳다고 믿는 것'과는 정반대의 현실을 마주하는 순간, 사람은 의문을 품는다. 옳음의 기준이 뚜렷하고 확고한 사람일수록 이런 상황은 커다란 스트레스로 다가오게 된다. 자신과는 전혀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을 오랫동안 대하게 되면, 사람은 크게 2가지로 나뉘곤 한다. 다른 쪽으로 생각해 보게 되거나, 기존의 믿음이 더욱 확고해지거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다. 인간관계라는 하나의 영역에서 우리는 그로부터 파생된, 매우 세부화된 고민이나 걱정을 하며 살아간다. 관계에 대해 아주 다양한 생각들을 하며 살아가지만, 오늘은 그중에서도 '관계 속에서 형성되는 위치'에 대해 말해보려 한다.



평등이 좋다는 걸 모르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다양한 사람들과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다 보면, 자연스럽게 '상하관계'가 형성되기도 한다. 이러한 '상하'를 형성하는 기준은 사람마다 다른데, 보통은 "자신이 중요하다고 믿는 가치"를 중점으로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타인을 평가하게 된다. 누군가에겐 '경제력'이 될 수도 있고, 또 다른 이에겐 '성숙함'이 그러한 기준이 된다.



그렇기에 똑같은 사람을 보더라도 기준에 따라 평가는 제각각이 된다. 예를 들어 평범한 직장에 다니는 한 사람이 있다고 해보자. 만약 관계의 상하를 나누는 기준이 '고소득 연봉'인 사람이 있다면, 이 사람에게 있어서 앞서 말한 사람은 관계의 등급이 다소 낮은 사람으로 평가될 것이다. 하지만 '성향'이 관계의 상하 기준인 사람에겐 타인의 직종과 연봉이 그다지 중요하지 않게 된다. 그렇기에 똑같은 평범한 직장인이라고 해도 '고소득 연봉'이 기준인 사람보다는 훨씬 더 높은 등급으로 타인을 바라보게 될 가능성도 존재한다.






물론 이런 방식으로 나름의 등급을 부여하거나 타인을 평가하는 것은 옳지 않다. 그러나 '옳지 않다'라고 생각한다고 해서 '그것을 하지 않는 건' 아닐 수 있다. 생각해 보라. 사실 우리는 친구를 사귀거나, 일할 회사를 선택하거나, 누군가를 사랑할 때도 이러한 과정을 거쳐 대상을 선택한다. '재미있는 사람'을 선호하는 사람에겐 상대방의 유머감각이 당연히 중요할 것이고, '외적인 부분'이 중요한 사람은 그 사람의 성격이 다소 별로여도 예쁘고 잘생긴 사람에겐 자신의 시간과 돈을 아낌없이 투자할 것이다.



'어른스러움'이 기준인 사람에겐, 상대가 아무리 좋은 직장에 멋진 외모를 가지고 있다고 한들 어른스럽지 못하다고 느껴진다면 그 사람과 관계를 맺으려 하지 않을 것이다. 즉, 많은 부를 가진 자산가에게 먼저 고개를 굽히고 스스로 자신이 '아랫등급'이라고 인정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 아예 그 사람과 상종하지 않으려 하는 사람도 있다.



이처럼 우리는 자신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기준에 따라 타인과 관계를 맺는다. 그런데 여기서 재미있는 사실은, 많은 사람들이 '관계의 상하'를 바라볼 때 한 가지 착각을 한다. 그 착각이란 "자신이 상대보다 더 많은 것들을 가지고 있음"을 이유로, 타인보다 자신이 관계에서 '갑의 위치'에 있다고 생각해 버리는 것이다.






최근 들은 얘기가 하나 있다. 근 1년 가까이 만나고 있는 커플이 있었다. 여자는 몇 년 동안 성실히 자신의 일을 하며 살고 있는 반면, 남자는 집에서 빈둥거리면서 친구들과 술을 마시는 등 미래에 대한 준비라곤 전혀 하지 않고 있었다. 당연히 둘 사이엔 좁힐 수 없는 간격이 매 순간 존재했고, 여자의 이별통보에 남자가 다시 붙잡는 식으로 관계가 이어져 오고 있는 중이었다.



아마 이 글을 읽는 대다수의 분들은 관계에서 여자가 남자보다 '갑의 위치'에 있다고 생각할 것이다. 어찌 보면 당연하다. 성실함, 경제력, 외적인 부분 등 무엇 하나 여자가 남자에 비해 모자람이 없는 건 사실이니까. 그런데 문제는 여기에 있다. 압도적으로 한쪽이 관계에서 우위에 서 있음에도, 이러한 관계가 어떻게 1년이나 지속될 수 있었을까?



처음 내가 이 얘기를 들었을 때만 해도, 내 생각 또한 다르지 않았다. 여자의 입장 또한 그랬다. 헤어져도 당장 아쉬울 게 없는 건 누가 봐도 여자 쪽이었으니까. 그런데도 여자는 헤어지지 않았다. 아니, 헤어지지 못했다. 남자의 숱한 크고 작은 거짓말, 불성실함, 자신이 싫어하는 행동들이 반복되고 있음에도 단호하게 대처하지 않았다. 넘어가서는 안될 잘못들을 용서해 주었고, 자신의 넓은 아량에 스스로 취해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런 일이 여러 번 반복되자 남자는 조금씩 달라졌다. 처음엔 용서를 구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뻔뻔해지고 있었다. 탄로 날 거짓말을 당당하게 했고, 들키면 '어쩌라고'라는 식으로 나오기 일쑤였다. 여자는 그러한 남자의 행동에 더욱 분노했다. 헤어지려고 몇 번이나 마음먹었지만, 그러지 못했다. 여전히 여자가 남자보다 훨씬 더 많은 것들을 가지고 있었음에도 말이다. 가진 것들의 유무를 떠나 관계의 마지막에서 항상 망설이는 건 여자 쪽이었다.






여기서 내가 말하고자 하는 건 누구의 잘잘못을 가리는 게 아니다. 헤어지지 못한 여자를 탓하는 것도, 남자의 뻔뻔함을 변호하는 것 또한 아니다. 다만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더 많은 것들을 가졌음에도 단호하게 대처하지 못했다는 건, 보이는 것들만으로 관계의 상하를 따질 수 없음을 의미한다.



개인적으로는 '관계의 마지막에서 더 자유롭게 행동할 수 있는 사람'이 관계에서 보다 더 높은 위치에 있다고 믿는 편이다. 둘 중 어느 한쪽이 더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나고, 더 좋은 직장을 다니고, 보다 많은 경제력을 지니고 있으며, 외적으로 뛰어나다고 한들 마지막 또는 결정적인 순간에 자유롭지 못하면 그 사람은 '갑'이 아니라는 것이다. 아무리 주변에서 '네가 아깝지' '걔는 너 같은 사람 절대 못 만나'라고 말해주더라도, 정작 자신이 그렇게 행동하지 못한다면 그런 말들이 다 무슨 소용이겠는가!



인간관계에서 이러한 정신승리는 매우 위험할 수 있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래도 내가 걔보단 낫지'라는 결론이 나고 주변에 가까운 사람들이 그렇게 말해주어도, 관계를 놓을 용기가 없다면 매번 상대에게 끌려갈 수밖에 없다. 상대의 큰 잘못을 용서해 주며 '이런 잘못도 용서해 주다니. 네가 어디 가서 나 같은 사람을 만나겠어'라고 생각해 봤자 그런 잘못이 계속 반복된다면, 그건 당신의 그릇이 넓은 게 아니라 그저 상대가 당신을 만만하게 보는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닐 뿐이다.






우리는 그 어떤 사람을 만나든 때로는 단호해질 필요가 있다. 그 사람과 얼마나 알고 지냈든, 어떤 대화를 나눴든 말이다. 사람은 시간이 지나면 달라지기도 한다. 그리고 그 달라짐이 어느 정도인지에 따라, 누군가와의 관계를 지속할지 말지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해볼 필요가 있다.



사랑한다는 이유로 그 사람의 모든 것을 이해하려 들지 말아야 한다. 그러한 행동들이 자꾸만 반복될수록, 서로에게 좋지 않은 영향만을 만들 뿐이다. 이해하려는 사람에겐 불필요한 보상심리와 서운함이, 이해받는 사람에겐 스스로의 행동에 대한 책임 회피와 자기 자신에 대한 무지함만이 쌓여갈 테니까 말이다. 어쩌면 관계에서 '갑'과 '을'을 따지는 것보다 더욱 중요한 건, 애초에 그런 것들을 따질 필요가 없는 좋은 사람을 만나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것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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