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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Quat Nov 15. 2023

누구나 '떠나보내야만 하는 시기'가 있다


최근 4년이 넘게 사용했던 블루투스 이어폰을 잃어버렸다. 그것도 어이없게 말이다. 이어폰 한쪽을 손에 든 채 기차를 타려다, 귀에 꽂으려고 팔을 든 순간 미끄러져 선로에 떨어진 것이다. 평소 물건을 험하게 쓰는 편도, 잘 잃어버리는 편도 아니었는데 한순간에 일이 벌어져 버렸다.



아무래도 오래 쓰다 보니 바꿔야겠다는 생각은 종종 들곤 했었다. 하지만 새로운 물건을 사는 게 귀찮기도 하고, 여전히 작동엔 문제가 없었기에 '조금만 더'라는 생각으로 사용하다 보니 몇 년이 훌쩍 지나있었다. 때마침 이어폰 한쪽을 잃어버리고 나서 며칠 후가 생일이라, 지인들에게 새 블루투스 이어폰을 선물로 받게 되었다. 워낙 타이밍이 좋았기에 그런 생각도 들었다. 어쩌면 진작 바꿨어야 했는데 미루고 미루다, 마침내 더 이상 그 시기를 뒤로 미룰 수 없었던 건 아닐까라고 말이다.



우리는 살면서 무언가를 떠나보내야만 하는 시기와 마주하게 된다. 물건이든, 사람이든, 직장이든 말이다. 그것과 얼마나 오래 알고 지냈는지, 함께 했는지는 크게 관계가 없다. 아무리 내가 그것을 소중히 간직하고 보관하려 해도 때로는 그것이 나를 먼저 떠나려는 듯한 기분을 받기도 한다. 어떻게든 그러한 이별을 막기 위해 온갖 노력을 다한다고 한들, 나의 마음과는 별개로 서서히 멀어지게 되는 것이다.



멀어짐이 현실에서 벌어지기 전, 문득 그런 느낌이 먼저 들 때도 있다. 반대로 처음엔 몰랐다가 시간이 지나고 보니 '떠나보내야 할 때'란 걸 알아차리기도 한다. 그것은 당신의 잘못도, 그 사람의 잘못도 아닌 그저 '그러한 순간이 찾아오는 것'에 불과하다. 가끔 양쪽의 노력으로 그러한 시기를 늦추거나 아예 바꿔버리는 경우도 존재한다. 하지만 정말로 그것이 노력만으로 가능한 것일까. 어쩌면 잠시 멀어졌다가 결국엔 다시 이어지게 될 사이가 아니었을까.



운명에 모든 걸 맡겨버리는 것만큼 어리석은 짓도 없다. 그러나 서로가, 또는 한쪽이 최선을 다했음에도 마음처럼 되지 않는 경우도 있다. 그걸 어느 한쪽의 탓으로 돌려본들 무엇이 달라지는가. 누가 옳고, 누가 그르다는 게 무엇이 그리 중요하냐는 것이다. 똑같이 10년 동안 고시를 준비해도 붙으면 '끈기 있는 사람'이 되는 반면, 떨어지면 '허송세월을 보낸 사람' 취급을 받게 된다. 결과만으로 모든 과정을 판단한다면 이 세상에 도전하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을 것이다.



무언가를 잘 해내기 위해 노력을 하되, 실패하더라도 이제는 그것을 떠나보낼 순간이 찾아왔다고 담담히 받아들일 수 있는 마음가짐이 필요하다. 왜냐하면 지금 이 글을 읽는 당신 또한 마찬가지일 테니까 말이다. 당신이 지금까지 무수히 떠나보낸 그 숱한 시간들을 떠올려보라. 당신은 그때 정말 최선을 다하지 않았는가? 아마 그렇진 않을 것이다. 최선을 다해도 무언가를 떠나보내거나 포기할 수밖에 없을 때, 나는 당신이 그 누구의 탓도 하지 않았으면 한다. 누구의 탓을 한다고 해서 그런 순간이 뒤로 미뤄지진 않을 테니까 말이다. 그저 그것을 받아들였으면 한다. 과거와 마찬가지로 또 한 번 무언가를 떠나보내야만 하는 순간이 찾아왔음을. 그와 동시에 새로운 무언가가 당신의 앞에 다가올 순간이 가까워졌음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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