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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Quat Nov 20. 2023

오늘 당신의 '표지'는 무엇이었습니까?


누군가 내게 가장 좋아하는 책 한 권을 꼽으라고 한다면, 나는 주저 없이 '파울로 코엘료'의 "연금술사"를 말할 것이다. 10대 때 이 책을 접한 이후로 커다란 고민이 있을 때면 이 책을 펼치곤 한다. 이 세상에 태어난 사람이라면 자신만의 '자아의 신화'가 있다는 것. 어떤 계기를 통해 '자아의 신화'를 살기로 마음먹으면 '초심자의 행운'으로 시작해 '표지'를 쫓아가다, 마지막에 '가혹한 시련'을 극복하고 나서야 비로소 원하던 것을 얻게 된다는 것. 아마 꿈꾸던 삶을 사는 사람들 대부분은 이러한 과정을 거쳤을 것이다.






삶의 뚜렷한 목표가 생긴 이후로 지난 1년 동안 내겐 '초심자의 행운'이 제법 따라주었다. 글쓰기라는 행위를 통해 살면서 새로운 경험들을 마주할 수 있었으며, 좋은 사람들 또한 만날 수 있었다. 그러나 요즘 들어 그러한 초심자의 행운이 서서히 줄어들고 있음을 느꼈다. 최근 몇 달 간 유난히 원하지 않던 변화들이 많았으며, 일상을 뒤흔드는 일들 또한 많이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인간관계에서 오는 스트레스, 노력해도 맘처럼 풀리지 않는 일, 좋아하는 일들 또한 작년에 비해 눈에 띄는 성과가 보이지 않는 상태가 이어지자 무기력감과 허탈감이 몸을 지배했던 적이 있었다. 퇴근 후에 겨우 글 한 편을 쓰고 나면, 매트리스 위에 몸을 던진 채 자기 전까지 스마트폰을 보곤 했다. '내일을 위해'라는 이유를 들어 저녁을 먹은 뒤 시간을 빈둥거리며 보내다, 우연히 책장에 꽂혀 있는 '연금술사' 책을 보게 되었다. 마치 무언가에 홀린 듯 책을 뽑아 들었다. 어려운 내용이 아니기도 하고, 수십 번 읽었던 책이기에 금세 처음부터 끝까지 책을 정독했다.



마지막 페이지를 읽은 후 책을 다시 책장에 꽂아두었다. 가장 와닿았던 대목이라면 주인공인 산티아고가 전재산을 도둑맞고 다시 스페인으로 돌아가 양을 치기 위해 도자기 가게에서 돈을 모은 후, 가게를 떠나기로 한 날 우연히 배낭 속 우림과 툼밈을 발견한 부분이었다. 산티아고는 '자아의 신화'를 살기 위해 고향을 떠났지만 힘든 시련 때문에 자아의 신화를 포기하려 했다. 다시 원래의 삶으로 돌아가려던 순간, 우림과 툼밈이라는 '표지'가 그의 앞에 나타났고 그는 그것이 표지라는 걸 알아챘다. 바로 그 순간이, 그가 다시 한번 자아의 신화를 살게끔 만든 것이다.



최근 내 앞에 나타났던 표지들을 놓쳤던 적이 없었는지를 가만히 떠올려보았다. 편안하고 안정감 있지만 결코 내가 바라지 않는 삶과, 기복 있고 불안하지만 언젠간 살겠다 꿈꾸던 삶. 두 가지 선택길 앞에서 우왕좌왕하던 내 앞에,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크고 작은 표지들이 있었음을 떠올릴 수 있었다. 그러자 전보다 한결 마음이 편해짐을 느꼈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원하던 것을 가지지 못했다고 불평을 쏟아낸다. 튼튼하고 멋진 몸, 남부럽지 않을 만큼의 부, 서로를 진심으로 사랑하고 아끼는 연인, 언제 만나더라도 한결같이 편한 친구. 하지만 정말 그들은 자신이 원하는 것들을 가지지 못할 기회가 없었던 것일까?



물론 예외는 언제나 존재하겠지만, 우리는 우리가 원하는 것을 가질 수 있는 기회를 반드시 한 번 이상 마주하게 된다. 멋진 몸을 만들고 싶다고 생각한 사람은, 우연히 길을 걷다 새로 오픈한 헬스장 포스터를 본다. 많은 돈을 벌고 싶다고 생각한 사람은, 친구와 대화를 하던 중 이자율이 최고로 높게 나온 적금에 대한 얘기를 듣게 된다. 편하고 안정감 있는 연애를 원하는 사람은, 소개팅에서 자신을 편안하게 만드는 이성과 즐겁게 대화를 나눈다.



그러나 이러한 기회를 마주했다고 해서 모두가 그 기회를 잡진 않는다. 포스터를 본 사람은 '지금 당장은 시간이 없으니까'라며 가던 길을 걸어간다. 자신이 넣고 있는 적금보다 이자율이 높은 적금 얘기를 들은 사람은 '여윳돈도 없는데 그것까지 어떻게 해'라며 친구의 말을 흘려듣는다. 오랜만에 편안하게 이성과 대화한 사람은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연락을 해볼까 망설이다가 '조금만 더 키가 컸으면 좋을 텐데'라며, 가장 최근에 만났다가 헤어진 전 연인을 떠올리고는 오늘 만난 상대에게 연락을 하지 않는다.






우리는 원하는 것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을 때가 훨씬 많다. 좋은 사람을 만나 행복하게 사랑하고 싶다 말하지만, 여전히 자신이 만났던 사람들을 떠올리며 지금 연락하는 사람과 외적인 부분을 비교한다. 돈을 많이 벌어 좋은 차를 몰고, 좋은 집에서 살고 싶다고 말하면서도 매달 카드 명세서엔 배달음식으로 쓴 내역만 수십 건이다. 인간적으로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고 생각하면서도 사소한 일에도 벌컥 화를 내거나, 부지런한 사람이 되겠다고 다짐하지만 매번 아슬아슬하게 턱걸이로 출근을 하곤 한다.



반복된 운은 실력이다. 그 말인즉슨, 반복된 불운 또한 자신이 내린 선택의 책임이라는 것이다. 전과는 다르게 살 수 있는 갈림길 앞에 서 있음에도 과거와 비슷한 선택을 지속적으로 하는 건 누구의 잘못인가? 그러면서도 우리는 자신과 똑같은 실수를 하는 타인에겐 이상적인 말들을 내뱉곤 한다. '일단 해봐'라는 둥, '실수해도 다시 해보면 되지'라는 둥 말이다.



나 자신부터 표지를 보는 눈을 길러야 한다. 그러다 보면 결정하기 어려운 상황에 놓였을 때 무엇이 나의 삶을 위해 더 옳은 길인지를 차츰 본능적으로 알 수 있게 된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항상 성공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실패했을 때야말로 지금껏 그 사람이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보다 쉽게 파악할 수 있다. 실패를 남 탓, 상황 탓, 세상 탓을 돌리며 자신은 억울하다고 말하는 사람. 실패로부터 몰랐던 사실을 깨닫고 교훈으로 삼는 사람. 당신은 이 둘 중 어느 쪽인가. 결국 당신이 남 탓을 하며 세상을 원망했을지라도 중요한 건 그게 아니다. 달라지고 싶다면 전과 비슷한 상황에서 다른 선택을 해보는 것. 그것이야말로 진정 스스로 원하는 삶을 살기 위해 가장 필요한 태도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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