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어 '10번 문제'와 수학 '10번 문제'는 달라

by Quat


당신은 친구 A와 연락을 하고 있다. 주말에 만나기 위해 메신저로 대화를 주고받던 중, 친구에게 당신이 묻는다. "우리 그때 뭐 먹을까?" 친구 A가 대답한다. "음... 아무거나?" 당신은 친구에게 먹고 싶은 것을 말하고, 친구는 좋다고 한다. 다시 당신이 묻는다. "밥 먹고 나서 카페는 어디 가지?" 친구가 대답한다. "근처에 있는 곳 아무 데나 가면 되지 않을까?" 당신은 한숨을 푹 쉬고 나서 다시 열심히 손가락을 놀린다. "넌 가고 싶은 곳 없어?" 잠시 후 스마트폰 화면이 반짝이며 알림이 뜬다. "응응. 난 아무 곳이나 다 괜찮아." 매번 맞춰주는 친구 A가 고마울 때도 있지만, 가끔은 모든 걸 당신이 결정해야 한다는 사실에 머리가 지끈거린다.



친구 A와 어디를 갈지 찾던 중, 스마트폰 화면 위쪽에 새로운 메신저 알림이 뜬다. 이번엔 친구 B다. "다음 주 주말에 나 OO 가고 싶은데 같이 갈래?" "좋아. 몇 시에?" 당신의 질문을 예상하기라도 한 듯, 사진 한 장이 전송된다. 사진을 터치해보니, 친구 B가 가고 싶어 한 곳의 운영 시간과 위치가 나와있었다. 방금 전과는 다르게 알아서 정보를 찾는 친구 B의 모습에 흡족함을 느끼며, 당신과 친구 B는 빠르게 약속 시간을 잡는다. 곧이어 친구 B가 다시 말한다. "거기 들른 후에 근처에 맛집 한 군데 있거든. 거기서 점심 먹자." 대답과 거의 동시에 링크 하나가 올라왔고, 당신은 그 링크를 터치한다. 화면을 보는 당신의 미간이 살짝 찌푸려진다. "근데 우리 여기 말고 다른데 가면 안 될까?" "왜? 거기 진짜 맛있대." 당신은 살짝 망설이다 대답한다. "아니... 나 사실 매운 거 잘 못 먹거든." 또다시 빠르게 답장이 온다. "아그래? 근데 거기 그거 말고 다른 음식들도 팔아. 가서 다른 거 먹어도 돼." 당신은 최대한 친구의 기분이 상하지 않게 몇 번이나 돌려서 거절 의사를 밝히지만, 결국 그곳에 가게 되었다.







살다 보면 우리는 다양한 성향의 사람들과 관계를 맺게 된다. 기준에 따라 사람들을 나누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자기 주관'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크게 2가지 부류의 사람이 있다. 주관이 뚜렷하지 않은 사람주관이 매우 뚜렷한 사람. 이 두 부류에 속한 사람들은 우리에게 다른 종류의 불편함과 스트레스를 준다.






[주관이 뚜렷하지 않은 사람]



앞선 사례에서 친구 A는 '주관이 뚜렷하지 않은 사람'에 속한다. 무엇을 하던, '아무거나'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종종 있다. 굳이 따지자면, 나도 이 부류에 속하는 사람이다. 여기에 속한 사람들의 공통적인 특징은 '무엇을 하느냐'보다 '누구와 함께 하느냐'가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자신만의 주관이나 기준은 있지만, 상대방이 좋으면 무얼 하든 간에 크게 신경을 쓰지 않는다. 예를 들어 매운 걸 잘 먹지 못해도,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매운 음식을 좋아한다면 함께 먹을 수 있는 것이다.




여기까지만 들으면 이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에게 무슨 피해를 주냐는 생각이 들 수 있다. 하지만 이 부류에 속한 사람들이 가진 문제는, 배려심이 '지나치게' 많다는 것이다. 배려를 받는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해보자. 무언가 함께 하자고 했을 때 항상 좋다고 말하지만, 정작 함께 할 때 상대를 보면 그리 즐기는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괜찮냐고 물어봐도 '괜찮다', '좋다'라고 말하지만 표정은 대답처럼 썩 밝지 않다. 마치 싫어하는 사람에게 억지로 시킨 듯한 느낌이 든다. 더 나아가 내가 나쁜 사람이 된 듯한 기분이 든다. 얼마나 불편하겠는가!






[주관이 매우 뚜렷한 사람]



이와 반대로 친구 B는 주관이 아주 뚜렷한 사람이다. 이들은 특정한 여러 상황에 대해 자신만의 주관을 갖고 있고, 그것이 옳다는 신념을 갖고 있다. 그래서인지 문제가 생겨도 크게 당황하지 않으며 빠르게 답을 찾고 행동한다. 마치 수학 공식에 숫자를 넣으면 그에 해당하는 결과가 도출되는 것처럼 말이다.




든든하고 의지할 수 있는 유형의 사람이지만, 이들에게도 단점은 존재한다. 이들의 단점이란, 자신의 주관을 '다른 사람에게도 똑같이 적용하려 한다는 것'이다. 모든 사람이 똑같은 환경에서 성장하지는 않는다. 따라서 자신과 다른 사람에게 닥친 문제가 비슷해 보여도, 그것을 대하는 생각과 태도는 전혀 다를 수 있다. 나는 이러한 상황을 '과목'에 비유해 설명하곤 한다. 사람의 인생을 '과목'이라고 가정했을 때 똑같이 10번 문제를 풀더라도 수학의 10번 문제와, 국어의 10번 문제는 전혀 다르다. 그런데 이것을 '10번 문제는 다 똑같아'라는 식으로 한 과목의 10번 문제에 대한 답을, 다른 과목에도 똑같이 적용한다면 엉뚱한 결과가 초래될 수밖에 없다. 얼마나 어리석은 짓인가!








인간은 성장하면서 자신만의 고유한 성향을 가지게 된다. '비슷한' 성향은 있을지언정, 자신과 똑같이 일치하는 성향의 사람을 찾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세상엔 존재하는 사람의 수만큼 다양한 성향의 사람들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관심 없는 분야 또한 발전할 수 있으며, 그러한 발전의 혜택을 나 또한 누리며 살아가고 반대의 경우도 성립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나의 기준이나 주관은 오직 '나만의 것'이다. 나만의 것이기에 남들보다 더 소중하다는 의미가 아니다. 그저 내가 살아온 인생에서밖에 만들어질 수 없는 성향이라는 것이다. 타의로 바꾸려 해도 바꿀 수 없다. 다른 사람에게 영향을 받아 성향이나 주관이 바뀔 수는 있으나, 그것 또한 자신의 의지가 있어야 가능한 것이다. 이것은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사람도 마찬가지다. 결국 내 기준과 주관이 '나의 것'인 것처럼, 다른 사람들 또한 '그 사람만이 가진 주관'이 존재한다. 그렇기에 우리는 그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줄 알아야 하며, 동시에 자신의 주관 또한 다른 사람에게 내보일 줄 알아야 한다.




무엇이든 적당히가 가장 좋다. 하지만 상황에 따라 우리는 주관이 뚜렷하지 않을 때도, 주관이 매우 뚜렷해질 때도 있기 마련이다. 충분히 그럴 수 있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보았을 때 너무 큰 폭으로 요동치지만 않는다면, 당신은 이미 적당한 주관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이다. 스스로의 인생에 어느 정도의 오차범위를 허용할 줄도 알아야 한다(대신 오차범위를 날이 갈수록 늘여도 안 된다). 누군가와 대화를 하거나, 상대방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을 때 반드시 명심해라. 당신의 주관 또한 분명 가치 있는 것이라는 것과, 당신의 10번 문제와 상대방의 10번 문제는 과목이 다르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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