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에는 사람과 사람이 만나 대화를 하며 소통이 이루어졌다면, 이제는 시간과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연락을 할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하지만 오히려 사람들은 전보다 더욱 외로워진 것처럼 보인다. 기술의 발달로 인해 누군가와 연락할 수 있는 수단이 많아질수록, 혼자 있는 시간 또한 되려 길어진 것이다. 모순적이지 않은가? 내 방 안에서 다른 지역, 다른 나라에 거주하는 사람들과 얼굴을 보며 대화할 수 있지만 정작 옆엔 아무도 없다. 500개가 넘는 연락처가 있어도 그중 자주 연락하는 사람들은 손에 꼽을 정도인 것이다.
인스타그램이나 유튜브 등을 보고 있으면 모든 사람이 행복해 보인다. SNS 속 누구보다 환하게 웃는 표정을 짓고,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아름다운 곳에서 사진을 찍는 그들. 하지만 그들을 현실에서 만나 대화를 하다 보면 SNS와는 사뭇 다르다고 느껴질 때가 많다. 오히려 나보다 더 지치고 힘들어 보이고, 한숨을 자주 쉬는 그들을 보고 있노라면 마치 내 앞에 있는 사람과 SNS에 있는 그는 다른 평행세계에 살고 있는 듯하다.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보이는 것'에 신경을 쓰고 있다. 주목해야 할 건 보이는 것에 대한 기준이, 내가 아니라 타인이 되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을 좀 더 풀어서 말하자면, 나를 위함이 아닌 타인에게 보여주기 위해 나를 바꾸려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다.
이것의 가장 대표적인 예가 '바디 프로필'이다. 나이를 먹기 전, 자신이 가장 젊고 아름다울 때의 모습을 사진으로 남겨두는 것. 분명 의미 있는 일이다. 그러나 바디 프로필을 위해 평소에 운동을 하지도 않던 사람이 단기간에 극단적인 다이어트를 한다면 어떻게 될까? 극단적인 식사량 조절과 체력을 고려하지 않은 무리한 운동. 스트레스를 받기엔 아주 좋은 상황이다.
생각만 하던 것을 행동으로 옮긴다는 건 대단한 용기다. 하지만 좋지 않은 결과가 나올 것이 뻔히 보이는데도 행동한다는 건 용기가 아니라 만용이다. 자존감과 자존심이 비슷하지만 다른 것처럼, 용기와 만용 또한 분명 다르다. 경험이 풍부한 산악가가 에베레스트에 도전하는 것은 용기지만, 동네 야산조차 올라가 본 적 없는 사람이 에베레스트에 올라가겠다는 건 만용이자 무모함이다.
평소 꾸준히 운동을 하는 사람이 좀 더 관리를 해서 바디 프로필을 찍는 거라면 이상할 것이 없다. 운동하는 습관이 몸에 배어 있는 사람이라면 전보다 운동량을 늘이거나, 식단을 조절한다고 해서 크게 힘들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진이라는 결과만을 위해 운동을 시작한 사람은 어떨까? 물론 그들 중 의지력이 아주 강한 일부 사람들은 누가 봐도 인정할만한 몸을 만들 가능성도 있다. 그렇지만 이것은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내가 지금까지 본 바디 프로필을 촬영한 사람들은 대부분 비슷했다. 기간 내에 목표로 한 몸무게를 만들기 위해 나름대로 노력하지만, 그 과정에서 극심한 스트레스와 피로감을 느꼈다. 촬영 날짜가 다가올수록 자신과 타협하고 '이 정도면 됐다'라는 결론을 혼자 내린다. 촬영 후엔 다시 예전의 식습관으로 돌아간다.
정말 그들이 말한 바디 프로필을 찍는 목적에 부합하기 위해서였다면 좀 더 길게 기간을 뒀어야 했다. 어쩌면 평생에 한 번일지 모를, 그런 기록을 남기기 위해선 멋진 몸을 만들기 위해 필요한 습관들을 만드는 절대적인 시간이 반드시 필요하지 않겠는가. 하지만 그들은 그렇지 않았다. SNS에 바디 프로필을 찍기로 결심한 각오부터, 그 과정이 얼마나 힘든지에 대한 사진과 문구들만이 가득할 뿐이었다. 마치 자신이 얼마나 힘든 일을 하고 있는지 관심 좀 가져달라는 듯한 느낌마저 들었다. 그러한 과정을 거쳐 나온 최종 결과도, 바디 프로필을 준비하기 전과 크게 달라 보이진 않았다.
남들에게 자랑하기 위해, 보여주기 위해라는 이유가 꼭 나쁘다고 볼 순 없다. 누군가에겐 그것이 목표를 이루기 위한 큰 동기부여로 작용할 수도 있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이것이 자신의 모든 행동에 영향을 미친다면, 그것은 깊게 생각해야 할 문제다. 자신이 하는 모든 행위의 주체와 이유는 반드시 '나'에게서 나와야 한다. 남들을 돕기 위한 봉사활동을 하더라도, '내가 좋아서 흔쾌히 해야 하는 것'이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행동에 진심이 묻어나지 않는다. 진심이 없는 행동은 결코 좋은 결과로 이어지지 않는다. 타인을 의식해 어떤 행동을 한다고 해도, 나의 진심이 없다면 그것은 오래갈 수 없는 것이다.
매사에 타인의 인정과 관심을 바라는 사람은 행복해지기 어렵다는 게 내 의견이다. 자신의 삶이지만, '자신'이 없는데 어떻게 행복할 수 있겠는가. 때로는 타인에게 거리를 두고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는 게 자신을 위해 필요할 때가 있다. 당신의 하루는 누군가의 존재와 상관없이, 이미 당신만으로도 충분히 가득 차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굳이 남들이 가보고 싶어 하는 곳이 아닌, 집 근처 공원을 걷기만 해도 행복하다면 그걸로 된 것이다. 타인의 시선에 흔들림 없이 당신이 원하는 삶의 길을 꿋꿋이 걸을 수 있길 바라며, 이만 글을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