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나비효과'라는 말이 유행했던 적이 있다. 이 단어의 의미는 작은 나비의 날갯짓이 지구 반대편의 태풍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뜻이다. 수백, 수천 명의 목숨을 앗아가고 막대한 재산상의 피해를 입힐 수 있는 거대한 태풍이, 누구도 주목하지 않던 한 곤충의 움직임이 태풍의 원인이 될 수 있다니. 참으로 신기한 일이다.
'나비효과'는 단순히 자연에서만 발생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의 삶에도 '나비효과'는 분명 존재한다. 별생각 없이 시작한 일로 엄청난 돈을 벌기도 하고, 취미로 시작한 일에 재능을 발견해 본업을 대체하는 경우도 있다. 우리는 무언가에 도전할 때 '특정한 목적'을 갖고 시작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체력을 기르기 위해 운동을 시작하거나, 더 많은 돈을 벌고자 이직 준비를 하기도 하며, 사람을 만나기 위해 모임에 가입해 활동하기도 한다. 목적이 이뤄질 때도, 때로는 이뤄지지 않을 때도 있다. 하지만 어떠한 행동을 계기로, 자신이 생각조차 하지 못했던 방향으로 삶이 전혀 다르게 바뀌기도 한다.
나는 대학교 시절 전공을 살려 경기도에 있는 한 회사에서 첫 직장생활을 시작했다. 연봉은 꽤 괜찮았지만 성향과 직무가 전혀 맞지 않았으며, 타지에서의 생활 또한 적응하기가 쉽지 않았다. 결국 6개월 만에 퇴사를 하고 고향으로 내려왔다. 안정적인 생활을 위해 공무원을 준비했지만, 계속해서 시험에 떨어지자 점점 자존감은 낮아져 갔다.
그날도 시험을 치고 나오면서 떨어졌음을 직감했다. 스스로에 대한 분노가 속에서 끓어올랐다. '이렇게 사느니 뭘 하든 돈이나 벌어볼까'라는 생각으로, 스마트폰에 설치된 구직사이트 어플을 실행했다. 페이지를 계속 넘기며 멍하니 화면을 보던 중, 눈에 띈 공고가 하나 있었다. "상담사 모집합니다" 어렸을 때부터 사람들의 얘기를 듣는 걸 좋아했고, 대학교 전공 또한 심리학을 고민했었기에 호기심에 해당 공고를 들어가 보았다. 심리학 전공을 이수하지 않아도 교육만 받으면 일할 수 있다는 문구를 보고, 면접을 가기로 결심했다. 여러 명의 지원자 중에서 최종 합격을 했고, 그때부터 2년이 넘는 동안 상담사로 일을 하게 되었다.
첫 번째 직장에선 출근하는 것이 죽도록 싫었지만, 두 번째 직장은 달랐다. 매일 다른 사람들과 만나 그들의 얘기를 듣고, 나 또한 상담사로서 그 사람들에게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말들을 해주었다. 살면서 처음으로 좋아하는 일을 한다는 게 얼마나 신나는 것인지 느끼는 순간이었다. 계속되는 실패로 인해 낮아졌던 자존감도 서서히 올라갔다. 상담을 하면서 스스로에 대해 느끼는 것들도 많았다. 나의 장점과 단점을 더욱 뚜렷하게 인지할 수 있었고, 인정하기 싫은 부족한 부분들을 내려놓을 수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여느 때처럼 일을 하고 있던 중, 주말 아르바이트생이 내게 흥미로운 얘기를 들려주었다. 최근 자신이 어떤 모임 활동을 하고 있는데 너무 재미있다는 내용이었다. 호기심이 생겨 여러 가지 질문을 하고 얘기를 듣는데 '해보면 재밌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민 끝에 모임에 가입신청을 했고, 살면서 처음 내 의지로 모임 활동을 시작하게 되었다.
처음 모임 활동에 적응하기란 매우 힘들었다. 워낙 내향적인 성향을 가졌던 터라, 처음 본 사람들과 편하게 어울린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래도 꾸준히 얼굴을 비추고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면서, 점차 친분이 생기는 사람들이 하나둘씩 생겨났다. '상담사'라는 직업에 대한 사람들의 호기심, 일을 하며 터득한 내 나름대로의 대화 기술이 좋은 결과로 이어졌다. 나는 3달이 조금 넘는 기간 동안 모임 활동을 했고 지금은 하지 않고 있지만, 그때 만난 사람들과 몇 년째 관계를 이어오고 있다. 요즘에도 평균 일주일에 한 번씩은 만나고, 한 번 통화를 시작하면 1시간은 기본일 정도이다.
지금까지 말한 내 삶의 일부분만 보더라도, 연관 없어 보이는 것들이 이어져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첫 번째 직장을 제 발로 나온 후, 우연히 좋아하는 일을 할 수 있었다. 또한 그 일을 하면서 난생처음으로 모임 활동을 하게 되었고, 짧은 시간이었지만 현재까지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과 잘 지내고 있다. 여기까지 읽은 당신은 한 가지 의문이 들지도 모른다. 과연 그렇다면, '이어져 있다는 것'이 가지는 의미는 무엇일까?
삶의 모든 것들이 이어져 있다는 것은, 우리가 어떤 상황에 놓여 있든 전혀 다른 삶을 살 수 있는 기회가 있다는 것이다. 누가 봐도 괜찮다고 생각할만한 중견기업에 입사했지만, 불과 6개월 만에 자진 퇴사했고 점점 자존감이 바닥을 치고 있던 나였다. 힘들었던 시간이 있었지만, 직장을 그만뒀기 때문에 좋아하는 일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 예전에 비해서는 새로운 사람을 대하는 것이 수월해졌지만, 여전히 내향적인 성향이 강했던 내가 또다시 우연한 계기로 30대가 된 후 처음 모임 활동을 시작했다. 처음엔 적응하는데 아주 힘들었지만, 그곳에서 친해진 사람들과 여전히 자주 연락하고 만나고 있다.
인생을 살다 보면 정말로 버티기 힘들다고 느껴지는 순간들이 있다. 어떤 사람들은 그러한 순간을 견디다 보면 한계를 뛰어넘을 수 있다고 말하기도 한다. 맞는 말이다. 어떤 일을 하든, 어떤 사람을 만나든 완벽하게 만족하는 건 불가능하니까.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무조건 '버텨라'라는 의견엔 동의하지 않는다.할 수 있을 만큼 해보고, 모든 걸 쏟아냈음에도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면 내려놓을 줄도 알아야 한다. 거친 물살을 거슬러 올라가기 위해 열심히 헤엄을 쳐봐도 생각만큼 되지 않을 땐 물결에 몸을 맡기고 흘러가는 것도 또 다른 방법이 될 수 있다. 그대로 흘러가다 보면 아주 높은 낭떠러지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의외로 높이가 낮을 수도 있다. 오히려 내가 상상도 하지 못했던 멋진 풍경을 마주할지도 모른다.
지금 당신의 삶도, 당신이 원하는 것처럼 흘러가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럴 때 답은 하나다. 일단 현재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 뒤를 돌아보지도, 먼 미래를 상상하지도 않은 채 그저 할 수 있는 것들을 꾸준히 해보는 것이다. 그래도 안된다면? 그것을 계속할지는 오로지 당신의 선택이다. 아무도 당신의 삶을 대신 책임져주지 않는다. 하지만 내가 말해주고 싶은 건 목표로 가는 길엔 오직 하나의 길만 있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지름길은 있겠지만 서둘러 가려다 넘어지는 바람에 다쳐서 속도가 훨씬 늦어지는 것보다, 조금 돌아가더라도 많은 것을 보고 느낄 수 있는 길도 있다는 것. 조급한 마음에 앞만 보고 달려가는 당신에게 말해주고 싶다. "그렇게 서두르지 않아도 괜찮다"라고. 그렇게까지 간절히 원하는 것이 있다면, 꼭 그 길이 아니더라도 당신은 분명히 그것을 이룰 것이라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