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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Quat Jan 28. 2024

자신이 빛날 수 있는 곳에, 스스로를 두어라


여러 번의 이직을 하고, 다양한 사람을 만나면서 든 생각이 하나 있다. 모든 걸 잘하고, 모든 사람에게 매력적으로 보인다는 건 굉장히 어려운 일이라는 것 말이다. 똑같이 행동해도 어떤 곳에서는 칭찬을 받고 '잘한다'라는 말을 자주 들었던 반면, 어떤 곳에선 핀잔을 받거나 잔소리를 자주 들었었다. 사람도 마찬가지였다. 나의 배려를 고맙게 생각하고 자신 또한 그만한 무언가를 주려고 하는 사람도 있지만, 그것을 마치 당연하다는 듯 받아들이고 더 많은 걸 요구하는 사람도 있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이 상처를 받거나 무언가를 잘 해내지 못했을 때, 그 원인을 가장 먼저 자신에게서 찾으려고 한다. 내가 더 노력하지 않아서, 내가 상대를 더 배려하지 못해서. 스스로에게서 그 원인을 찾기도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자신이 무얼 잘못했는지 알지 못할 때도 있다. 그럴 때 상대방과 대화를 해서 오해를 푸는 경우도 있지만, 갈등의 골이 더욱 깊어지는 경우도 있다. 자신에게서 원인을 찾지 못해 상대방과 대화를 하고 나서 오히려 관계가 악화된 적이 다들 한 번쯤 있었을 것이다.



여기까지 다다르게 되면 사람마다 다르게 행동하곤 한다. 상대에게 자신이 당한 것만큼 복수하려는 사람. 적당한 거리를 둔 채 관계를 유지만 하는 사람. 아예 하고 싶은 말을 전부 쏟아낸 후 관계를 끊어버리는 사람. 무엇이 정답이라곤 할 수 없다. 다만 이러한 경험들을 하며 배운 건, "크게 노력하지 않아도 자연스레 잘 맞는 사람"을 곁에 두는 게 가장 좋다는 것이다.






누군가와 처음 만나 대화를 하면, 그런 기분이 강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대화를 하기 위해 별다른 노력을 하지 않아도, 물 흐르듯 자연스레 대화가 이어지는 사람이 있다. 마치 짠 것처럼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상대도 좋아할 때가 있다. 그것이 다른 사람들은 잘 모르는, 잘 알려져 있지 않은 경우라면 더더욱 그런 기분이 들곤 한다.



이렇게 처음 맺어진 인연이 계속해서 이어지기 위해 더욱 중요한 건 '좋아하는 것보다, 싫어하는 것들이 비슷해야 한다'는 것이다. 좋아하는 게 비슷하다면 처음에 친해지긴 쉽다. 하지만 관계가 오랫동안 안정적으로 유지되려면 서로가 싫어하는 게 비슷해야 한다. 누군가와 관계가 끊어진 이후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을 물었을 때, 좋았던 기억을 먼저 말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 사람을 멀리하게 된 가장 결정적인 이유를 먼저 말하고 나서, "그래도 다 별로였던 건 아니었어"라며 좋았던 추억 하나 둘 쯤을 말하는 게 일반적이다. 이처럼 우리는 좋았던 장면보다 부정적인 감정이 강하게 들었던 장면을 더 생생히 기억한다. 그렇기에 나는 지금도 누군가와의 관계에서 '좋을 때 좋은 것'보다 '좋지 않을 때 서로를 얼마나 이해하고 풀어갈 수 있는가'를 더욱 중요하게 생각하는 편이다.


  




자신을 좋은 사람인 것처럼 포장하거나, 무언가를 잘한다고 제 입으로 자주 말하는 사람일수록 가짜 자존감으로 스스로를 포장한 경우가 많았다. 이건 회사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정말로 일을 잘하는 사람들은 자신이 잘한 것도 '타인의 몫으로' 돌리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일수록 타인의 작은 실수에도 예민하게 반응하거나 '내 덕에 회사가 잘 돌아간다'는 식으로 행동하곤 했다. 내면의 그릇이 작은 사람들이 자주 보이는 전형적인 태도였다.



예전엔 그들의 자신감이 대단하고 멋지다고 생각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그들과 관계가 깊어질수록 '강약약강', '내로남불의 태도'로 약하고 여린 자신을 감춰왔다는 걸 다양한 사건들을 통해 알게 되었다. 그들과 관계를 맺고, 함께 사회생활을 하며 어느 정도 스스로를 지키는 방법을 터득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애초에 그런 사람들을 걸러내는 게 무엇보다 우선이라는 걸 느끼고 있다. 누군가와 관계를 시작하고 그것이 깊어질수록, 그 사람이 별로라는 걸 알아도 거리를 두거나 끊어낸다는 게 얼마나 힘든지 겪어본 사람은 아마 알 것이다.






시간이 흘러 이제는 나와 잘 맞지 않는 사람을 '거르는 기준'을 세우고, 그런 사람들과는 애초에 관계 자체를 시작하지 않으려고 하는 편이다. 중요한 건 이렇게 기준을 세워도 살다 보면 어쩔 수 없이 그런 사람들과 관계를 맺어야 할 때가 있다. 결국 무엇을 하든 사람 간의 관계에서 스트레스를 아예 받지 않고 살 수는 없지만, 종종 지인들을 만나 대화를 하다 보면 다른 사람들에 비해서는 인간관계에서 덜 스트레스를 받으며 살아가는 편인 것 같다.



모든 사람과 잘 맞기란 매우 힘들다는 점. 타고나길 자신과 잘 맞는 부류의 사람들이 있다는 점. 인간관계에서 오는 스트레스를 완전히 배제할 수 없다는 점. 바로 이런 점들 때문에 나는 자신이 어떤 사람들과 있을 때 더욱 빛나며, 자신의 능력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는지를 스스로가 정확하게 알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단순히 즐겁고 좋은 것에서 끝나는 것이 아닌, 힘들 때도 서로 의지할 수 있는 사람. 만남의 횟수라던가 만나는 장소에 따라 즐거운 기분이 달라지는 것이 아니라, 언제 어디서 만나더라도 '그 사람'이라서 행복함을 느낄 수 있는 것. 100%의 에너지를 끌어다 써야만 겨우 능력을 인정받는 곳이 아니라, 5~60%의 에너지만으로도 만족스러운 결과를 낼 수 있는 곳에서 일한다는 것. 우리가 만나야 할 사람, 몸담아야 할 곳은 이런 곳이 아닐까 싶다.



단지 만났을 때 즐겁다는 이유만으로 자신의 빛을 가리는 사람을 곁에 두지 말라. 자기 자신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인정해 주는 동시에, 서로가 더욱 잘되길 바라는 마음을 말과 행동으로 부드럽게 전달할 수 있는 사람을 만나기 위해 우리는 노력해야 한다. 내가 먼저 연락하지 않으면 연락조차 오지 않는 100명과 관계를 유지하는 것보다, 그런 단 한 사람을 곁에 두는 게 자신의 인생에 훨씬 더 이롭다. 새로운 곳에 적응하는 게 두려워 매일을 스트레스받으며 일하는 것보다, 자신의 가능성을 믿고 과감하게 새로운 분야에 도전하는 용기가 필요한 순간도 있다. 스스로의 가능성을 타인의 입을 빌려 믿으려 하지 말고, 본인이 그것을 믿고 불안하지만 행동해 보는 것. 그 단 한 번의 도전이 당신의 삶을 어떻게 바꿀지 누가 알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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