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Quat Feb 04. 2024

해주고 싶어도, '참아야 할 때'가 있다


당신은 길을 걷다 바닥에 떨어진 지갑을 본다면 어떻게 행동할 것인가? 어떤 이의 실수에 호의를 베푸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다. 누군가는 그것을 주워 파출소에 갖다 줄 수도 있고, 지갑에 있는 연락처로 전화해 주인으로 추정되는 사람에게 연락하는 방법도 있다. 하지만 만약 내가 그 상황이라면 그 지갑을 그대로 둔 채, 가던 길을 마저 걸어갈 것이다. 왜냐하면 단 몇 분 전에 그 사람이 지갑을 떨어뜨려 다시 왔던 길을 돌아오고 있을 수도 있고, 함부로 지갑을 뒤졌다가는 오해를 받을 수도 있다는 생각 때문이다. 모든 상황에 적용될 수는 없겠지만 때로는 할 수 있어도 '하지 않는 게' 상대를 위한 배려라는 생각을 점점 더 많이 하며 살아가는 중이다.






최근 유튜브에서 유명한 여행 크리에이터가 등장한 영상 하나를 보았다. 그는 해외의 '팁문화'에 대해 말하면서, 팁을 너무 많이 주는 게 오히려 그들에게 더욱 악영향을 줄 수 있다는 말을 했다. 우리에게 1,000원이 그들에겐 1만 원 또는 10만 원 정도의 가치가 될 수도 있고, 그런 일들이 점점 더 많이 일어나면 그들이 생업을 포기하고 오로지 관광객이 주는 팁을 받기 위해 살아갈 수도 있다고 말이다. 그렇게 될 경우 상업적으로 변해버린 그곳에 점점 관광객들의 발길이 줄어들 것이고, 결국 그들이 기대한 수익이 줄어들거나 사라질 수도 있다고.



누군가는 이 말을 듣고 '그건 좀 심한 비약이지 않냐'라고 말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이 말이 어떤 의미를 담고 있는지 깊이 공감했다. 단지 팁을 더 주고 안 주고를 떠나서, 아무 생각 없이 베푼 배려가 상대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깊게 생각해 본 사람이 과연 몇이나 있을까. 정이 많고 배려심이 많은 사람들은 '내가 해줄 수 있다'는 이유만으로 상대의 입장을 고려하지 않고, 무언가를 더 많이 주려고 한다. "뺏는 것도 아니고 주는 건데 뭐가 나빠?" 틀린 말은 아니다. 다만 그 상대가 당신의 호의를 '호의라고 받아들일 수 있다'면 말이다.






상대를 생각하고 배려할 줄 안다는 건 대단한 일이다. 아무리 돈이 많아도 추운 겨울에 보일러도 제대로 틀지 않은 채, 이불로 몸을 돌돌 싸매고 추위에 벌벌 떠는 사람도 있다. 반대로 한 달에 마음껏 사용할 수 있는 돈이 30만 원조차 되지 않는 사람이, 가장 친한 친구의 결혼식에 축의금으로 자신이 가진 돈의 절반 이상을 주기도 한다.



모든 것이 그렇겠지만 특히 '배려'와 같은 감정적인 부분들은 선천적으로 타고나는 부분이 매우 크다. 배려심이 부족한 사람이 나이를 먹고 다양한 사회생활을 하면서 전보다 배려심이 늘어날 순 있겠지만, 결정적인 순간엔 원래의 성향이 드러날 수밖에 없다. 타고난 성향은 꾸준한 노력으로 개선하거나 어느 정도 줄일 순 있겠지만, 그것을 극복한다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타고난 배려심이 많은 사람일수록, 그 사람 곁엔 사람들이 모이기 마련이다. 지금 이 글을 읽는 당신도, 나도 바보가 아니기에 누군가와 만나 관계를 맺다 보면 그 사람의 '진짜'를 보는 순간이 생긴다. 평소엔 생글생글 웃으며 누군가를 배려하더라도, 자신이 힘들거나 지친 상황에서도 그것을 유지하는 사람은 정말 드물다. 무언가를 타고난다는 건 그런 상황에서도 평소의 자신을 잃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모두가 힘들고 지친 상황에서도 자신보다 타인을 배려하는 사람이 가진 따뜻함에, 우리는 본능적으로 끌리게 되어 있다.






그러나 앞서 말했듯, 우리는 이런 배려심을 어느 정도 조절할 필요가 있다. 우리가 이런 배려심을 조절해야 하는 가장 큰 이유는 "그 사람의 성향과 처한 상황"에 따라, 이러한 배려가 소용없어지거나 되려 악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먼저 우리가 배려를 조절해야 하는 '성향'에 대해 설명하자면, 바로 '관계를 맺고 유지하는데 시간이 오래 걸리는 사람'인 경우가 이에 해당한다. 처음 만난 사람과도 빠르게 친해지는 사람이 있는 반면, 애초에 타고나기를 천천히 마음의 문을 여는 사람도 있다. 내향적인 사람이 다양한 사람을 만나면서 전보다 마음을 여는 시간이 빨라질 순 있겠지만, 외향적인 사람의 시선에선 여전히 느리다고 생각할 것이다.



이런 성향을 가진 사람에게 친해지고 싶다는 이유로 무작정 배려를 쉬지 않고 한다면 어떨까? 아마 그런 상황들이 무척이나 곤란하고 부담스러울 것이다. 상대가 자신을 챙겨준다는 것 자체는 고마운 일이지만, 아직까지 본인은 상대방과 그만큼 친한 사이는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매일같이 연락이 오고, 약속을 잡으려 하고, 무언가를 사주려고 한다고 상상해 보라. 내향적인 성향을 지닌 사람들은 아마 이 말이 어떤 느낌인지 바로 알 것이고, 외향적인 성향의 사람들은 "그게 뭐가 부담스럽지?"라고 의문을 표할 가능성이 높을 것이다. 이처럼 자신이 무언가를 좋아한다고 해서 상대방에 대한 고려 없이 그것을 계속 준다고 한들, 자신이 바라는 대로 관계가 흘러가지 않는다는 걸 기억해야 한다.






배려를 조절해야 하는 '상황'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앞에서 말한 '과도한 팁'이 바로 이에 해당한다. 무언가를 줄 수 있다고 해서, 상대방이 평소 누리던 것들보다 지나치게 많은 것들을 주게 되면 이로 인한 부작용들이 생길 확률이 높아진다. 타고난 성향은 쉽게 바뀌지 않지만, 이러한 성향을 바꿀 수 있는 게 하나가 있다. 그것이 바로 '상황의 변화'이다.



아무리 욕심이 없는 사람이라도 돈이 많아지면 자연스럽게 전보다는 소비를 많이 하게 된다. 인간은 생각보다 그 상황에 빠르게 적응한다. 배려도 마찬가지다. 상대의 배려에 고마움을 표현하던 사람도, 매일같이 그러한 배려를 받으며 살다 보면 어느샌가 그것을 당연히 여기게 되는 경우도 있다. 우리는 공기 없이는 단 5분도 살 수 없지만, 매번 숨 쉴 때마다 공기에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진 않는다. '익숙함에 속아 소중함을 잊지 말자'라는 말이 나온 것도, 그러한 익숙함에 적응하게 되면 소중한 마음을 가진다는 게 무척이나 어렵다는 걸 의미하는 말이 아닐까 싶다.






지금껏 당신이 베푼 배려에 비해 상대로부터 감사의 표현을 받지 못했거나, 당신이 배려를 잘 받지 못했다면 이 2가지를 떠올려보라. 상대의 성향을 고려하지 않은 채 자신이 '주고 싶은 것'만을 '주고 싶을 때' 주고, 그에 대한 감사를 바라진 않았는가? 또한 상대의 상황은 생각하지 않고 자신이 줄 수 있다는 이유로 무언가를 퍼준 후에, 되돌려 받지 못했다며 서운해하진 않았는가? 물론 애초에 상대가 주는 것엔 인색한 채, 받기만 원하는 사람이란 건 논외로 하고 말이다(만약 당신의 삶에 그런 사람들이 많았다면 배려에 대해 생각하기 전, 사람을 보는 안목을 먼저 기르는 게 우선일 것이다).



방금 식사를 한 사람에게 고급 레스토랑을 가자고 말해놓고, 가고 싶지 않다는 답변에 서운해하지 마라. 파스타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에게 자신이 파스타를 좋아한다는 이유로 계속 파스타를 먹자고 말해놓고, 상대가 화를 낸다고 '왜 화를 내냐'라고 말하지 말라. 상대가 식사를 하기 전에 미리 물어보기만 했다면, 처음부터 자신처럼 파스타를 좋아하는 사람을 만났으면 끝났을 일이다. 상대에 대한 생각은 전혀 없이 제멋대로 하고 싶을 때, 하고 싶은 대로 해놓고 그것을 배려라고 칭해서는 안된다는 말이다. 당신과 내가 진정으로 감동받는 배려는 단순히 '주는 것'이 아니라 '언제, 어떻게 주는 것'에 달린 거라는 걸 기억하길 바란다.


이전 10화 자신이 빛날 수 있는 곳에, 스스로를 두어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