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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Quat Feb 13. 2024

'상대적'인 기준으로 남을 바라본다는 것

우리가 내리는 판단의 기준은 결과이다. 하지만 결과만으로 모든 판단하기엔 분명히 무리가 있다. 장발장은 빵을 훔친 도둑이지만 이유가 배고픈 딸을 먹이기 위해서란 생각해 보면, 그러한 행위로 사람들에게 맹목적인 비난을 받는다는 가혹한 짓이다. 결과에 책임을 지는 맞지만 행위의 원인에 대해 한번쯤 생각해 보는 것도 필요하지 않은가. 더군다나 결과만으로 누군가를 판단하는 사람도, 반대로 타인이 자신에게 그러한 방식으로 잣대를 들이대면 불쾌해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렇다면 사람들은 왜 원인이나 과정을 고려하지 않고 결과만으로 모든 걸 판단하는 것일까. 사회 전반적으로 만연한 결과지상주의와 타인과의 비교, 성공에 대한 갈망 등이 주요 원인이라 할 수 있다. "나만 아니면 돼"라며 개인주의를 넘어선 이기주의. "남들은 잘 사는데 나는 왜 이럴까"라는 열등감. "어찌 됐든 잘 살면 끝이지"라며 점점 옅어지는 죄의식. 이러한 것들이 한데 뭉쳐져 '절대적인 기준'으로 모든 걸 판단하는 사회 분위기가 이뤄진 것이다.



절대적인 기준으로 무언가를 판단했을 때 장점이 없는 건 아니다. 과정을 제쳐두고 결과만을 중점적으로 생각하고 행동하면, 최단기로 원하던 목표에 가까워질 수 있다. 즉, 자신이 바라는 결과를 얻기 위해 실질적인 노력을 할 수 있다. 이것이 절대적인 기준으로 세상을 바라볼 때 얻는 가장 큰 장점이다. 문제는 이것 외에는 장점이 없다는 것이다.






이러한 방식으로 세상을 살 때의 단점 중 하나는, '시야가 좁아진다는 것'이다. 숲을 보지 못하고 나무만 바라보게 된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가치는 내가 믿는 것 외엔 불필요하다고 여기기 쉬워진다. 이 세상을 살아가는 수십 억 명의 사람들에게 있어 가장 소중한 가치는 제각각이다. 나와는 우선순위가 다른 사람들도 굉장히 많다. 절대적인 기준으로만 살아가는 사람들은 그것을 이해하지 못한다.



그러다 보니 타인을 이해하는 것도 그들에겐 쉬운 일이 아니다. 보통 상대를 이해하고 헤아리는 건 감정의 영역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누군가를 이해한다는 건 감수성이 풍부한 것과는 별개의 문제이다. 아무리 정이 많다고 한들, 자신에게만 그 정을 한없이 쏟는 사람도 있다. 중요한 건 자신이 얼마나 똑똑하고 정이 많은가가 아니라 그것을 얼마나 타인을 위해 허용할 수 있는가에 달려 있다. 그런 의미에서 절대적인 기준으로 대부분을 판단하는 이들은 '자신을 위해서' 그러한 지식과 공감을 사용하는 편이라 할 수 있다.



그래서 그들은 자신을 객관적으로 바라보지 못한다. 자신이 세운 기준만이 옳은 것이라 믿고, 그것만을 위해 살아간다. 언뜻 듣기엔 신념 있는 사람인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신념을 갖고 살아가는 것과 내 신념만이 옳다고 살아가는 건 비슷하지만 전혀 다르다. 자신만이 옳다고 생각하는 방식의 치명적인 단점이 있다면, '선망 또는 비교할 대상이 없다'는 것이다. 사람은 비교할 대상이 없어지면 자신이 생각하는 대로만 자기 자신을 볼 수밖에 없다. 그러니 시간이 지날수록 스스로를 과대평가 또는 과소평가하기 쉬워진다.






과정보다 결과가 중요하다는 데 동의한다. 그렇다고 해서 그 말이 과정이 중요하지 않다는 걸 의미하진 않는다는 걸 기억해야 한다. 언젠가부터 사람들이 극단적인 사고를 하는데 익숙해졌다는 생각이 든다. 이를테면 누군가 A와 B 중 B를 좋아한다고 하면, 그 말을 듣는 사람들은 그가 A를 쓸모없다는 식으로 말했다고 왜곡한다는 것이다.


 

무언가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아야 한다. 편견 없이 말이다. 자신이 보고 싶은 대로 과대해석하거나 지나치게 축소해서 해석한다면, 언젠가 당신도 그러한 행동을 누군가로부터 당할 수 있다는 걸 기억해야 한다. 자신이 오늘 타인에게 한 행동을 내일 그대로 다른 사람에게 당한다고 알게 된다면, 타인을 함부로 대하는 사람은 훨씬 줄어들 텐데 말이다.



현대 사회에서 발생하는 대부분의 사건사고들이 타인에겐 냉정하면서 자신에겐 한없이 부드럽기 때문이라는 생각해 보라. 이제는 쓸데없는 자존감 올리기, 근거 없는 자신 사랑하기는 잠시 내려두어야 때이다. 정말로 내가 자존감이 높아야 이유가 무엇인지, 내가 정말로 사랑받을 사람이 맞는지에 대해 깊게 생각해 보라. 나 자신에 대해 곱씹을수록 사람은 겸손해지며, 타인에게 절대적 기준을 들이대지 못한다. 자신 또한 얼마나 부족한 점이 많은지를 깨닫기 때문이다. 나의 힘듦을 알리기 전, 타인의 고충을 먼저 알아봐주는 사람들이 지금보다 많아지길 바라며 이만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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