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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Quat Feb 29. 2024

고통스럽다고 해서 모두가 정신을 차리는 건 아니다

당신이 겪었던 고통 중 가장 참기 힘들었던 고통은 무엇이었는가? 아무리 참을성이 뛰어난 사람도 예상하지 못한 고통엔 괴로움을 느낄 수밖에 없다. 힘든 순간엔 이 시간이 얼른 지나가기만을 바라게 된다. 하지만 그 시간이 지나가고 나면 이런 생각이 들기도 한다. "차라리 그 정도 아프길 잘했어" 지금 고통스럽지 않았다면 다음엔 훨씬 더 큰 고통이 찾아올 수도 있었다는 걸 떠올려 본 적 있는가.






지난주부터 갑자기 어금니 쪽이 욱신거리기 시작했다. 예전 같았으면 '별일 아니겠지' 하고 넘어갔을 터였다. 이제는 건강상 문제가 생기면 엄청난 손실이 생긴다는 걸 알고 있기에, 다음날 바로 치과를 방문했다. 엑스레이를 찍어보니 어금니 쪽 뿌리가 썩어 잇몸뼈를 녹이고 있는 상태였다. 방문한 당일 바로 치료를 받고 집으로 돌아왔다. 치료를 받았으니 이젠 괜찮을 거라 생각한 건 크나큰 착각이었다.



다음날 오후부터 통증 때문에 잠을 거의 자지 못했다. 진통제를 먹어도 가라앉지 않는 통증에,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주말을 보내고 나서 월요일에 다시 치과를 방문했다. 심한 통증에 대해 이유를 물어보니, 종종 치료를 받던 중 염증이 퍼져서 통증이 심해지는 경우가 있다고 말씀해 주셨다. 다행히 그날 이후부터는 통증도 훨씬 줄어들고 간혹 아플 때도 약을 먹으면 통증이 금방 가라앉게 되었다.



이틀 동안 느껴지는 고통은 끔찍했다. 그러다 문득 만약 이번에 치과를 가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 이틀로도 부족했을 것이다. 그동안 음식을 먹을 때 한 번씩 욱신거렸던 신호를 외면하고 살았던 대가가 바로 '이틀 간의 엄청난 고통'으로 이어졌던 것이다.






어떠한 시기에 필연적으로 감수해야 하는 고통들이 종종 있다. 학창 시절 매일 듣던 수업들, 친했던 친구와의 절교, 좋아하는 이성에게 고백한 후 거절당했던 순간, 첫사랑과의 이별 등. 그러한 고통들을 제때 겪지 않으면, 시간이 지났을 때 몇 배로 불어나 우리를 덮치게 된다. 새로운 걸 시작하기에 불가능한 나이는 없다. 다만 나이를 먹을수록 제약이 많이 생긴다는 것 또한 사실이다.



해보지 않아서 느끼는 고통도 있지만, 이미 경험했음에도 같은 고통을 반복해서 느끼는 경우도 많다. 충치가 생겨서 치과를 다녀오면 한동안은 양치질을 열심히 한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귀찮다는 이유로, 피곤하다는 이유로 제대로 양치를 하지 않으면 또다시 충치가 생긴다. 그러면 또다시 치과를 가게 된다. 비슷한 이유로 반복적인 실수를 하는 사람들이 있다.



누구를 만나든 매번 비슷한 이유로 헤어지는 사람이 있다. 어떤 회사를 가든 사고를 쳐서 1년 이상을 다니지 못하는 사람도 있다. 인간관계에서 유독 이기적인 태도를 보이거나, 욱하는 성질을 참지 못해 주변에 친구가 남아나질 않는 사람들도 있다. 아무리 자신 때문이라도 해도 문제가 생기면 당연히 그들도 괴로울 것이다. 그런데도 매번 똑같은 일이 일어나는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 힘들다, 괴롭다, 고쳐야겠다고 말하지만 그만큼 고통스럽지 않았던 것이다.






현재 우리가 겪는 고통은 더 큰 고통을 막기 위한 일종의 예비 신호이다. 지금 느끼는 고통이 전부라고 생각한다면 큰 오산이다. 흔히들 힘든 연애가 끝나고 나면 농담 삼아 이런 말을 한다. '똥차가 갔으니 벤츠가 올 거라고' 물론 그런 경우도 있을 수 있다. 정말 그럴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번이야말로 정말 괜찮은 사람을 만날 거라 말한다. 그러다 결국 만났던 사람과 비슷한 사람을 만나고, 비슷한 연애를 하고, 비슷하게 헤어진다. 분명 그들도 힘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사람을 보는 눈이 바뀔 정도로 힘들진 않았던 것이다.



정말로 힘들고 고통스러운 경험을 겪어본 사람은 전과는 확연히 달라진다. 속된 말로 정신을 차린다. 과거에 자신이 좋아했던 걸 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져도, 그것들로 인해 너무나 힘들었다면 근처에도 가지 않는다. 반면 힘들었음에도 여전히 같은 행동을 반복하고 또다시 힘들어하는 사람들도 있다. 육체적, 정신적으로 힘든 시간을 보냈더라도 예나 지금이나 비슷하다면 과연 이 사람이 정말 힘들었다고 말할 수 있을까.



힘들지 않았다고 말하는 게 아니다. 다만 그 정도로 힘들었다면, 이제는 누가 시키지 않아도 스스로 예전과는 다르게 행동해야 한다. 주변 사람들에게 '힘들다'며 푸념만 늘어놓은 뒤 시간이 지나면 또다시 같은 행동을 반복하는 사람을 보고 누가 동정을 하겠는가. 한 해, 두 해가 지날수록 그런 말을 들어줄 사람조차 줄어든다는 걸 기억해야 한다. 마음을 독하게 먹으면 달라진다고 하지만, 너무 늦게 달라지면 변화를 눈여겨 봐 줄 사람조차 없어진다. '지금은 괜찮겠지'라는 상황이 계속 유지될 거라는 건 엄청난 착각이다. 당장 내일조차 어떻게 될지 모르는 인생에서, 고통스러웠던 과거의 행동을 반복하지 않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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