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번째 감정 : 당황

퇴근한 아버지에게 뺨을 맞다

by Quat


아버지와 아들. 같은 성별이지만 둘 사이엔 막연한 불편함이 있다. 물론 가족마다 부자간 사이가 좋은 집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 집은 그런 편은 아니었다. 어린 시절 아버지를 생각해 보면 거실에 있는 소파에 앉거나, 베란다에서 담배를 피우셨던 모습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사실 어렸을 땐 그게 좋은지 나쁜지도 몰랐다. 그저 집이 담배 연기로 뿌옇게 가득 차는 게 마냥 신기했다.



아버지는 저녁을 드실 때면 어머니의 음식에 대해 종종 이런저런 평가를 하셨다. '이건 짜다', '이건 왜 이렇게 싱겁냐' 어머니는 그런 아버지의 말에도 웃는 표정으로 답하셨고, 아버지는 여전히 굳은 표정이었다. 그렇게 식사를 하고 나면 소파에 누워서 TV를 보다가 잠에 드셨고, 어머니는 그런 아버지에게 '침대에서 편하게 주무시라'라고 하면 아버지는 짜증을 내는 게 반복이었다. 그것이 어린 시절 내가 인식한 '가족'의 형태였다.




그러던 어느 겨울날이었다. 내가 혼자 방에서 놀고 있을 때로 기억된다. 저녁 시간이었고 어머니는 식사 준비를 하고 계셨고 때마침 아버지가 퇴근을 하셨다.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날따라 유독 아버지가 반가웠는지, 두꺼운 파카를 벗고 앉아있는 아버지의 등에 매달리면서 애교를 부렸다. 그렇게 장난을 치고 있는데도 아버지는 말없이 양반다리를 한 채 앉아 있었다.



그러던 중 눈앞이 번쩍 했다. 잠시 후 뺨에 얼얼한 느낌이 들었다. 방 한쪽으로 나가떨어진 채 한 손을 뺨에 댄 채 고개를 들자 화를 내는 아버지가 보였다. 형광등을 등진 채 더욱 어두워진 상태로 나를 보며 분노하던 아버지의 표정이 어렴풋이 기억이 난다. 그때 당시 정확히 뭐라 말하셨는지는 모르겠지만 일을 마치고 피곤한 상태에서 내가 엉겨 붙은 게 몹시 짜증이 나셨던 것 같다.



아버지의 화내는 소리에 이내 어머니가 뛰어들어오셨고, 그날 처음으로 어머니가 아버지에게 화를 내는 모습을 보았다. 부모님의 다투는 모습. 뺨에서 느껴지는 아픔. 그때도 내가 왜 맞아야 했는지에 대한 이유를 알지 못한 게 억울했던 것 같다. 그렇게 울다 지쳐서 잠에 들었고, 다음날 아버지는 내게 미안하다는 말씀과 함께 아주 커다란 종합과자 선물세트를 주었다. 그때는 그렇게 마무리가 되었다고 생각했다.






수십 년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그 기억은 그대로 남아 있다. 정확히 말하면 그 기억으로 인한 감정이 내 안에 풀어지지 않은 채 남아있었다. 사회생활을 하고 퇴근 후 얼마나 피곤한지를 느끼면서 아버지를 이해해보려고도 했었다. 그렇게 아버지와 가까워지려고 애를 써봐도, 거리를 좁힐 수는 없었다. 피곤하고 귀찮다는 이유로 어린 자식의 뺨을 때렸던 아버지를 진심으로 사랑하긴 힘들었다.



이제는 솔직하게 인정해보려 한다. 그때 당시 나를 때린 아버지가 정말로 밉고 원망스러웠음을 말이다. 혼잣말로 화도 내보려고 한다. 퇴근한 아버지가 반가워서 맞이한 것뿐인데, 어린 나를 왜 때렸냐고. 이해한 척 넘어가고 지금까지 잘 살아왔지만 아직까지 그 응어리가 풀리지 않았다고. 그 한 번의 사과로 마음이 풀리기엔 그동안 쌓인 것들이 너무나도 많았다고 말이다. 글을 빌려 내가 이것을 말하는 이유는 단 하나이다. 내 안에 맺혀 있는 감정을 하나씩 풀어내고 더 좋은 삶을 누리기 위해서. 내가 바라는 건 오로지 이것뿐이다.




There is a great difference between worry and concern. A worried person sees a problem, and a concerned person solves a problem.

걱정과 고민에는 큰 차이가 있다. 걱정하는 사람은 문제만 바라보지만, 고민하는 사람은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찾기 때문이다.

- Harold Stephe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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