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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Quat May 15. 2022

부정적인 감정을 근거로 상대를 추측하지 마라


주변에 존재하는 다양한 유형의 사람들 중 타인에 대한 말을 자주 옮기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자신이 보고 들었던 누군가에 대해 말하는데, 그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말들은 썩 유쾌하게 듣고 넘기기 힘든 것들이 대부분이다. 부정적인 뉘앙스로 말하는 걸 듣는 것도 힘든 일이지만 사실 더 힘든 것은 따로 있는데 바로 "타인의 행동을 자신의 주관으로 해석한 뒤 내게 납득시키려 할 때"이다.








이들은 소위 '카더라' 화법으로 말을 이어간다. '카더라'란 '~했다더라'라는 말을 경상도 사투리로 표현한 것이다. 상대방의 말과 행동을 자신의 지식과 경험을 토대로 해석해 말을 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내가 누군가와 카페에서 대화를 하던 중, 맞은편에 앉은 사람이 팔짱을 꼈다고 해보자. 팔짱을 낀다는 건 소극적이고 방어적인 태도라는 걸 심리학 관련 서적에서 읽은 기억이 있다. 이러한 기억을 근거로 나는 친구를 만나 이렇게 말한다. "내가 며칠 전에 OO와 대화를 하는데 갑자기 팔짱을 끼더라고. 대화 도중 팔짱을 낀다는 건 방어적인 제스처라는 걸 책에서 읽은 기억이 있는데, 아마 걔는 내 말과 반대되는 생각을 했을지도 몰라."




여기까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행동이다. 그런데 문제는 그다음부터다. 전과 같은 상황에서 이번엔 친구에게 이렇게 말을 했다고 해보자. "내가 며칠 전에 OO와 대화를 하는데 갑자기 팔짱을 끼더라고. 대화 도중 팔짱을 낀다는 건 방어적인 제스처라는 걸 책에서 읽은 기억이 있는데, 왜 걔는 갑자기 필짱을 낀 걸까? 내 말이 불편했던 걸까? 내 말이 끝날 때까지 팔짱을 풀질 않더라니까. 그러고 나서는 갑자기 다른 주제로 말을 돌리더라고. 정 내 말이 불편했으면 자기도 자기 생각을 말하면 될 텐데 걔도 참 이상해. 그렇지 않아?"




차이가 느껴지는가? 두 상황 모두 책에서 읽었던 내용을 근거로 자신의 생각을 타인에게 전달하고 있다. 하지만 근거를 토대로 자신의 생각을 있는 그대로 전달하는 첫 번째 말과는 달리, 두 번째 말에선 근거를 통해 상대방의 행동(내 말과는 반대되는 생각을 했다)을 단정 짓고 있다. 더 나아가 상대방의 다른 행동에도 의미 부여를 함으로써 상대방에게 '소극적인 사람'이라는 이미지를 씌우기까지 했다. 마지막엔 상대방의 동의를 구하는 질문을 하면서 그 이미지를 확정 지으려고 하는 것이다.








유독 특정한 대상에게 지속적으로 부정적인 추측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자신이 대상에게 가지고 있는 부정적이고 공격적인 감정을, 그 사람의 행동에 덧씌워 나름의 이유를 만들어낸다. 그리고 그 사람에 대해 자신과 비슷한 감정을 갖고 있는 사람에게 접근해 자신의 편을 늘려나간다. 사람들은 스스로 감정적인 사람보다 이성적이고 똑똑한 사람처럼 보이길 원한다. 누군가를 미워하는 감정이 생겨날 때 다른 사람으로부터 이런 얘기를 들으면 의외로 쉽게 넘어갈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내가 그 사람을 싫어할 수 있는 보다 확실한 명분이 생기기 때문이다.  




'나만 그 사람을 싫어하는 게 아니었구나'라던가 '그러니까 내가 그 사람을 싫어했구나. 역시 내가 이상한 게 아니라 그 사람이 이상한 거였어'라는 결론에 다다르면, 그 사람을 대하는 태도 또한 전과 달라진다. 그 사람과 대화를 할 때 싫은 티를 내거나, 물리적인 거리감을 두기도 한다. 이렇게 지속적으로 누군가를 대하면 그 사람 또한 전과 다르게 자신을 대하게 된다. 전과 달라진 그 사람의 행동을 보며 '전에는 이렇지 않았는데 왜 지금은 이렇게 날 대하지?'라는 생각이 든다. 그렇게 시간이 흐를수록 별 것 아닌 행동에도 부정적인 의미부여를 반복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그 사람과 멀어지며 불편한 관계가 되는 것이다. 시간이 흘러 처음 그 사람과 멀어진 이유를 돌이켜보면 사실 누구나 한 번쯤 할 법한 행동이었는데도 말이다!








부정적인 추측을 자주 하는 사람들의 공통적인 특징 중 하나는, 그들이 '굉장히 이성적인 사람인 것처럼' 보인다는 것이다. 그들은 자신의 생각을 객관적인 이유를 들어 상대를 설득하는 능력이 탁월하다. 하지만 조금만 들여다보면 그들의 논리가 얼마나 모순적이고 앞뒤가 맞지 않는지 금방 파악할 수 있다.




글 서두에서 언급한 예시를 다시 생각해보자. '팔짱을 낀다'라는 행동이 심리학적으로 방어적인 태도를 의미한다고 하지만, 꼭 팔짱을 낀다고 해서 방어적인 의미를 가진다고 볼 순 없다. 하나의 행동엔 내가 생각하지 못한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수 있다. 심지어는 아무런 의미 없이 한 행동일 가능성 또한 존재한다. 그런데도 책에서 읽었다는 이유만으로 상대방의 행동을 한 가지 이유로 제한하고 확정 짓는 건 매우 위험한 생각이다. 또한 '팔짱을 꼈다'와 '내 생각을 부정하고 있다'라고 결론을 내려버렸기 때문에, 상대의 다음 행동 또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색안경을 끼고 바라볼 가능성이 높다.




앞선 예시에서도 대화가 끝난 후 갑자기 다른 주제로 돌렸다는 것에 대해 화자는 부정적인 어투로 말하고 있다. 하지만 잘 생각해보라. 우리가 친한 친구와 대화를 하더라도 모든 주제에 대해 일일이 반응해주진 않는다. 하나의 주제에 대해 오래 이야기를 했고, 심지어 그다지 흥미를 갖고 있지 않는 주제라면 상대방의 말이 끝난 후 화제 전환을 하는 건 특이한 행동이 아니다. 그러나 화자는 이미 전부터 상대에게 부정적인 감정을 가진 채 바라보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다른 사람이 했다면 신경조차 쓰지 않고 넘어갈만한 행동조차, 자꾸만 부정적인 의미를 담아 해석하려고 하는 것이다. 결국 객관적이고 이성적인 채 말을 이어나가려 해도, 자신이 드는 근거의 본질이 감정에서 나오기 때문에 결코 이성적이라고 할 수 없다. 이미 상대의 행동에 기분이 상했고, 그로 인해 다음 행동이 무엇이든 간에 화자는 상대를 부정적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다.








객관적인 것과 부정적인 것은 시작부터 다르다. '강한 부정은 긍정'이라는 말처럼, 매우 이성적인 것처럼 보이는 사람이 오히려 감성적인 사람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자신의 부정적인 감정을 상대에게 납득시키기 위해 이유를 끼워 맞추는 말을 반복하는 사람을 가까이 둔다면, 당신 또한 언젠가 그 사람의 입에 오르내릴지 모른다. 당신이 그 사람과의 관계 유지를 위해 노력하는 것과 상관없이 그 사람이 당신을 싫어하기 시작한다면, 당신의 호의 또한 그 사람에겐 '부정적인 행동'으로 비칠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그 사람과 똑같이 행동할 필요는 없다. 당신이 그렇게 맞받아치지 않더라도 그 사람들은 항상 외롭고 스스로 불행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누구보다 쿨한 척 행동하지만 사실 그들은 미워할 대상이 없다면 살아가지 못하는 사람들이다. 누군가를 위에서 끌어내려야만 자신이 돋보일 수 있고, 그렇게 허울뿐인 자존감을 채워 하루를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그들에게 분노한다는 건 오히려 좋은 먹잇감이 되는 행동이다.  




만약 당신이 그런 사람을 만난다면 반응조차 해서는 안된다. 그들의 말에 동의하지도, 반대하지도 않고 그저 흘려듣는 것이 가장 현명한 방법이다. 그들이 분노하는 대상이 당신이 된다면 조용히 관계를 정리하면 된다. 그들이 절대 할 수 없고 시도조차 못할 방법으로 끊어내는 것이다. 흐르는 물에 아무리 돌멩이를 던져도 물은 부서지지 않는다. 팔이 부서져라 돌멩이를 던지는 사람만 괴로울 뿐이다. 물이 잔잔해진 후 그들이 보게 되는 건, 땀으로 흠뻑 젖은 채 분노로 인해 일그러진 자신의 얼굴뿐일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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