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상성이란 말이 있다. 간단하게 말하면 '체내 상태를 일정하게 유지하려는 성질'이라는 의미다. 다이어트가 힘든 이유도 이 항상성 때문이다. 기껏 비축해 놓은 지방을 없애려 드니 항상성에 어긋나고, 몸은 그것을 거부한다. 낮에 열심히 운동을 하고 저녁이 되면 치킨, 피자, 족발 등 야식이 눈앞에 아른거리는 건 우리의 몸이 항상성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항상성은 성질에 불과하다. 이러한 성질을 좋다, 나쁘다로 구분 짓는 건 우리에게 달렸다. 몇 년 동안 매일 아침 6시에 일어나 책을 읽거나 수영을 하고 출근하는 사람. 퇴근 후 바닥에 널브러진 옷가지들을 대충 발로 휘저어 옆으로 치워놓은 뒤, 의자에 앉아 배달앱으로 저녁을 주문하는 사람. 일관된 삶을 살고 있다는 점에선 두 사람 모두 동일하지만, 그 결과는 전혀 다르다.
친구들과의 만남, 각종 SNS, 뉴스 등을 통해 잘못된 항상성을 유지하는 사람들의 소식을 들을 때가 있다. 그럴 때마다 우리는 속으로 다짐한다. '난 저렇게 살지 말아야지' 하지만 그때뿐이다. 막상 헬스장을 가려니 어딘가 몸이 아픈 것 같다. 샐러드를 먹으려니 3일 동안 먹었으니 하루쯤은 치팅을 해도 될 듯하다. 헤어지자고 말하려고 하다가도 이 사람이 없으면 너무 힘들 것 같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딱 한 번만' 항상성을 유지하기로 한다. 헬스장을 가지 않고 집에 누워 몇 시간 동안 유튜브를 보며 깔깔대며 웃는다. 갓 튀긴 따끈한 치킨의 닭다리를 뜯으며 "이게 인생이지!"라고 외친다. '내가 이 사람 말고 더 나은 사람을 만날 수 있을까'라며 다시 한번 하고 싶은 말을 꾹꾹 눌러 담는다.
시기는 각자 다르지만, 우리는 잘못된 항상성 유지에 대한대가를 언젠가 반드시 치르게 된다. 내 경우는 '주기적으로 치과에 가지 않았던 것'이었다. 원체 치열이 고르고 치아가 튼튼한 편이라, 바삭하고 단단한 음식을 먹어도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살면서 크게 치아에 문제가 생긴 적이 없었기 때문에 치과를 간 적도 드물었다.
그랬던 내가 올해만 2번이나 치과를 다녀왔다. 한 번은 어금니 쪽 신경치료를 받았고, 최근엔 윗니 쪽 치아가 깨졌다.돈도 돈이지만, 특히나 신경치료를 받을 때 굉장히 고생을 많이 했다. 진통제를 먹어도 이가 너무 아파 밤새도록 반쯤 졸면서 차가운 물을 머금고 있기도 했다. 그렇게 2달 정도 고생을 하고 나니, 치아가 깨졌을 때는 바로 다음날 치과를 가서 진료를 받았다. 치통이 얼마나 힘든지 한번 크게 데고 나자 그런 고통을 두 번 다시 겪고 싶지 않은 마음이었다.
그전까지 내가 갖고 있던 잘못된 항상성은 '조금 아파도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져'라는 거였다. 하지만 지금에 와서 생각해 보면 그건 괜찮아진 게 아니었다. 그 고통에 익숙해진 것뿐이었다. '안 아프다'가 아닌 '참을만하다'였다. 결국 더 이상 참을 수 없어 본격적인 치료를 받고 나서야, 묵혀온 충치가 치아뿐만 아니라 잇몸에까지 손상을 주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아무리 내가 그것을 부정해 본들, 그건 명백한 사실이었다.
이 사건으로 인해 깨닫게 된 사실이 하나 있다. 잘못된 인식을 유지하고 살아간다고 해도, 결정적인 순간엔 진실과 마주할 수밖에 없다는 것 말이다. '나는 이게 옳다고 생각해' '나는 그렇지 않아' 자신이 어떤 생각을 하고 살아가는지는 본인에게 달렸다. 그러나 살다 보면 그런 믿음이 본인의 삶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것을 느끼는 순간들이 있다. 이따금 내가 충치가 있었던 치아에 고통을 느꼈을 때처럼 말이다.
하지만 내가 그랬듯, 대부분은 그러한 순간들이 일시적이라고 믿는다. '이번엔 운이 없었나 보지' '항상 잘 풀리는 건 아니니까' 치아가 아팠을 때 나 또한 그런 생각을 했다. '잠깐 이러다 또 말겠지' 그런 순간이 쌓이고 쌓여 결국 피할 수 없는 상황에 닥치고 나서야, 사람들은 후회의 늪에 빠진다. "그때 그런 선택을 하지 말걸" "그 사람을 만나지 말걸" "그 일을 해서는 안 됐었는데"재밌는 건 힘든 시간이 지나가고 나면, 사람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 예전과 비슷한 선택을 한다. 후회했던 사람과 비슷한 사람을 만나고, 후회했던 선택과 비슷한 선택을 한다. 그러면서 또다시 자신의 선택에 확신한다. "그때는 지금이랑 달라!"
힘들고 고통스러운 감정 뒤편엔, 감정의 뿌리가 되는 생각이 반드시 존재한다. 우리가 해야 하는 건 그러한 감정이 자신의 어떤 신념으로부터 비롯된 것인지를 곱씹어봐야 한다. 중요한 건 그 과정을 통해 자신의 신념이 잘못된 것이라는 걸 안다고 해도, 자신을 바꾸는 게 굉장히 힘들다는 걸 알아야 한다. 우리의 마음과는 달리, 우리의 몸은 전에 가진 신념이 옳다는 항상성을 지니고 있기에 다른 선택을 할 때 본능적으로 불안함을 느낀다.
그러니 이제부터는 예전과 다른 선택을 할 때 느껴지는 불안과 불만족에 너무 집중하지 않았으면 한다. 오히려 그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잘못된 신념에 익숙해진 당신의 몸이, 새로운 신념에 자신도 모르게 저항하고 있는 중인 것이니 말이다. '이렇게 해서 안 좋은 결과가 나오면 어쩌지?' '연락했는데 싫어하면 어떡하지?' 불안하다는 이유로 자꾸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설령좋은 결과가 나오지 않았다고 해서 너무 두려워히지 말라. 전과 다른 의도로 한 행동들은 계속 누적되어, 결국 당신의 삶을 천천히 바꿔놓을 테니까 말이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의 일상 또한 전보다 더욱 빛나길 바라며 이만 글을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