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 이 글을 읽는 분들 중 운전을 좋아하는 분도 있겠지만, 개인적으론 운전하는 걸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그런 내가 새 차를 산 지 약 4개월 동안 대략 7,000km 정도의 주행을 했다. 1년이면 약 21,000km이다. 새 차를 구입하고 나서 1년 동안 평균 주행거리가 약 15,000km라고 하는데 평균보다 대략 1.5배 정도를 더 달린 셈이다.
운전을 많이 하면 피곤하다. 그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왜 이렇게 운전을 많이 해야 해?'라는 생각을 하진 않는다. 어차피 그런 생각을 한들, 달라지는 건 전보다 축 처진 내 기분밖에 없다.이미 벌어진 일에 대해 자꾸 곱씹을수록 불행해지는 건 나 자신뿐이다. 그러니 결과가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최대한 좋은 쪽으로 해석하는 게 가장 좋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이렇게 생각하는 게 항상 좋게만 작용하진 않는다. 장점이라면 언급한 것처럼 부정적인 일이 생겨도 바로 좋은 쪽으로 해석하기 때문에 스트레스를 크게 받지 않는다. 반면 가장 큰 단점은 문제가 발생한 본질을 파악하는 능력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매번 좋게 해석하고 넘어가다 보니, 비슷한 문제가 반복적으로 생긴다는 게 이런 사고가 가진 가장 큰 맹점이라 할 수 있다.
자신에게 생긴 문제를 깊게 파고들면 '왜 그 문제가 발생하는지' 근본적인 원인을 찾을 수 있다. 당장 스트레스는 좀 받겠지만, 원인을 찾고 자신 또는 상황을 개선하면 앞으로는 그 문제를 겪지 않게 된다. 하지만 문제를 깊이 파고드는 사람들을 관찰한 결과, 그들은 두 부류로 나뉘었다. 원인을 찾고 그것을 해결하려 드는 사람과 자기 연민에 빠져 우울감에 젖어있는 사람으로.
문제를 파고드는 두 부류 모두 자신이 '문제의 원인을 찾고 있다'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들의 결정적인 차이는 '드러나는 감정의 폭'을 보면 알 수 있다. 자기 연민에 빠진 사람들은 자신에게 문제가 발생했다는 것 자체를 굉장한 스트레스로 받아들이는 편이었다. '어떻게 나한테 이런 일이', '왜 하필 나에게'라는 식으로 자신이 예측하지 못한 일이 발생한 걸 인정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그렇다 보니 바로 수습할 수 있는 가벼운 실수조차, 그들은 엄청난 재앙이 일어난 것처럼 반응했다.
문제의 원인을 찾기 위해 파고드는 부류는 이와 달랐다. 물론 그들도 스트레스를 받는 사람처럼 보인다. 하지만 차이가 있다면, 전자보다 부정적인 반응을 드러내는 시간이 훨씬 짧다는 것이다. 그들은 곧바로 문제를 수습하는데 더 많은 시간을 들인다. 얼추 문제가 해결되고 나서야, 그들은 왜 그런 일이 발생했는지에 대해 자신 또는 당사자에게 질문을 던진다. 충분히 납득할만한 대화를 하고 난 후 그들은 그 일에 대해선 거의 언급하지 않는다.
내가 자기 연민이 강한 사람들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이유는, 그들은 스스로를 '굉장히' 특별하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이 세상에 자신을 특별하게 여기지 않는 사람은 없지만 그 정도가 심하다면 조금 문제가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직급은 달라도 비슷한 형태로 회사를 다닌다. 그런데 만약, 당신의 직장동료가 매일 불평을 달고 다닌다고 상상해 보라. "내가 다니는 출근길은 왜 이렇게 차가 막히는 거야!" "다른 사람들은 거래처 사장님들이 좋다던데, 내 담당만 왜 이렇게 성격이 거지 같지?" 그들은 마치 자신이 영화 속 비련의 주인공이 된 것마냥 행동한다.
처음 그들의 말을 들었을 땐 그것이 진짜라 생각했고 진심으로 그들을 안타깝게 여겼다. 하지만 막상 그들이 말하는 "왜 나한테만 이런 일이"라는 것들을 살펴보면, 살면서 누구나 겪는 일상 속 가벼운 문제들인 경우가 대다수였다. 운전을 하다 차가 살짝 긁히는 것, 가족이나 친구 간 발생하는 의견차이, 직장동료와의 사소한 충돌 등등. 솔직히 말해 그들에게 그런 문제들이 더 많이 일어나는 것도 맞는 말이긴 했다. 문제는 그 원인이 그들이 운이 없어서가 아닌, 그들의 언행 때문이라는 거였지만.
살다 보면 무얼 해도 안 풀리는 시기가 있다. 나도 그랬다. 20대 중반부터 30대 초반까지 대략 5~6년 간 내 인생은 불행의 연속이었다. 가족, 사랑, 직장 등 그 어떤 것에도 제대로 된 성과가 없었다. 목표가 높아서가 아니라 정말로 뭘 해도 안 되던 시간들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자기연민에 빠져 그 시간을 마냥 흘러 보내지는 않았다. 자격증도 따고, 새로운 것도 배워보고, 모임에도 나가보고, 블로그도 운영해 보았다. 그때 당시 했던 것들 중 지금까지 하는 것들도 있지만, 하지 않는 것도 많다. 결과만 놓고 보면 비효율의 끝이지만 그때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면 지금 내 성격과 상황은 훨씬 더 최악이었을 것이다. 도전하고 나서 결과가 좋지 않았던 것을 남들이 한다고 했을 때 "내가 해봤는데 그거 별로더라"라며 쓸데없는 조언을 하거나, 새롭게 도전하는 것 자체를 주저했을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남들의 시선에서 보았을 때 '쓸모없고 굳이 하지 않아도 되었을 도전들'이 자기 연민의 구렁텅이에 빠지기 전, 나를 꺼내 준 셈이었다.
너무 스스로를 대단한 사람이라 추켜세우지 않았으면 한다. 그럴수록 오히려 자존감은 낮아지고, 자존심만 강해질 뿐이다. 평범하면 어떤가. 평범한 것을 나쁘다고 누가 말할 수 있겠는가? 이 세상의 절반 이상이 평범하게 태어난다. 금수저가 아니면, 완벽하게 해내지 않으면 우리의 삶은 실패한 것인가? 그렇게 단정 짓는 건 세상 그 누구도 아닌, 자기 자신이지 않은가?
"왜 나한테만 이런 일이"라는 생각을 하면 할수록, 나쁜 일들은 당신에게 더욱 많이 생길 것이다. 당신이 하고 있는 그 생각이, 사실 별 것 아닌 사소한 문제들을 더욱 키우게 만든다. 우리의 인생은 마치 바다와 같다. 잔잔한 날도 있지만 파도가 치는 날이 더 많다. 바다에 있으면서 파도가 치지 않길 바라는 것보다 어리석은 마음가짐이 어디 있는가. 가끔 높은 파도가 당신을 덮칠 때 '왜 나한테만 이런 파도가 밀려들지'라고 생각하기보단, '이러고 나면 또다시 잔잔한 날이 오겠지'라고 생각해 보는 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