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더운 날씨가 계속 이어지는 중이다. 낮시간이 길어지는 건 고역이지만, 그래도 좋은 점이 하나 있다. 바로 늦은 시간에도 노을을 볼 수 있다는 점이다. 개인적인 느낌으론 날씨가 더울수록 노을도 더욱 예뻐 보이는 듯하다. 따뜻한 햇살이 내리쬐는 역동적인 낮과, 고요하고 차분한 분위기가 지배적인 밤. 밝지도, 어둡지도 않은 '어중간함'이 그토록 아름다운 것처럼, 사람과 사람 사이에도 노을이 지는 순간이 분명 존재한다.
"난 네가 좋아"라고 말하는 관계를 보면 비슷해 보이는 부분들이 많다. 힙합보단 발라드를 좋아하고, 액션영화보다 멜로를 좋아하며, 어떤 날은 똑같이 중식을 먹고 싶어 한다. 하지만 좀 더 자세히 둘 사이를 살펴보면 점차 다른 양상이 드러난다. 한쪽은 허각, 다른 쪽은 성시경을 선호한다. 똑같은 멜로영화라도 '노트북'과 '엽기적인 그녀'는 다르다. "우리 오늘은 중식 먹자!"라고 의견이 같아도 짜장면과 짬뽕으로 갈리기도 한다.
비슷하다고 생각해서 가까워졌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다르다고 느껴지는 부분들은 서로를 다시 멀어지게 만든다. 내게도 그렇게 멀어져서 결국엔 끊어진 인연들이 수없이 있었다. 예전엔 그들과 관계를 정리했던 이유가 '너무 달라서'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들과 내가 멀어진 건 달라서가 아니었다. 둘 사이의 관계에서 상대와 나 모두 '각자의 모습으로만' 존재하려 했기 때문이었다.
즉흥적인 성향이 강한 사람과, 계획적인 성향이 강한 사람이 있다고 해보자. 둘은 평소엔 대화도 잘 통하고, 좋아하는 것 또한 비슷하기에 별 문제가 없어 보인다. 하지만 중요한 것들을 결정할 때면 매번 부딪힌다. "뭘 그렇게 걱정해. 일단 해보자!"라고 말하는 한쪽과 달리, 다른 한쪽은 "어떻게 그렇게 대충 결정할 수 있어?"라며 이해하지 못한다.
부딪힐 때마다 그들은 서로를 이해하지 못한다. 각자 살아온 삶의 경험을 토대로 그들은 자신을 더욱 단단히 굳힌다. 그럴수록 부딪힐 때 그들은 서로에게 더욱 큰 충격을 받는다. 덜 아프기 위해, 더 나아가 자신을 잃지 않기 위해 '내 말이 맞아'라고 강하게 주장한다. 쾅하고 서로를 들이받는다. 그러다 보면 어느 한쪽이 좀 더 강한 충격을 받는다. 거기까지 가게 되면 다음은 뻔하다. 더 강하게 들이받거나, 아예 피해버리거나. 최악과 차악.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순간에 맞닥뜨린다.
이해와 타협이 부족하면 언젠가 파국을 맞게 된다. 자신을 단단히 굳힐수록, 그 누구와도 좋은 관계를 맺을 수 없다. 나는 "네가 날 정말 사랑한다면 이렇게 해줬어야지"라는 관념은 관계를 망치는 가장 빠른 지름길이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누군가가 상대를 사랑하는 형태는 정말로 다양하기 때문이다. 한낮의 태양처럼 불타오르는 사랑을 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밤하늘의 달처럼 은은하고 잔잔한 사랑을 원하는 사람도 있으니까. 낮보다 밤을 더 좋아할 순 있지만, 그렇다고 낮이 밤보다 옳다고 말할 수는 없지 않은가. 상대가 자신을 좋아하는 방식이 마음에 들지 않을 수는 있어도, 그것이 잘못되었다고 말할 순 없다.
정말로 좋은 사람은 자신이 선호하는 것만을 옳다고 주장하지 않는다. 사실 무엇을 옳고 그르다고 판단하는 건 자신에게 달려 있는 것뿐이다. 내가 낮을 좋다고 말하는 것처럼, 상대도 자신만의 기준으로 밤을 좋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관계에서 문제가 발생하는 순간은 오로지 내 생각만이 정답이라 여기며 그것을 상대에게 요구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낮이 옳은 게 아니다. 그렇다고 밤이 옳은 것도 아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둘 다 이런 생각을 가져야 한다. 아무리 혼자 용을 써본들, 상대가 고집을 부린다면 아무 소용이 없을 테니까. 서로를 존중하기 시작하면 낮과 밤, 밤과 낮이 섞이는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다. 어느 한쪽도 지지 않으려고 하면 반드시 한쪽은 패배한다. 하지만 서로 져주면 둘 다 지지 않는다. 물론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나는 그때를 기다린다. 너와 내가 각각의 낮과 밤이 아닌, 서로에게 노을이 되는 순간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