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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Quat May 18. 2022

저마다 다른 그릇의 크기


'다다익선'이라는 말이 있다.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 무언가를 많이 가지고 있다는 건 분명 좋은 것이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많이 가지고 있다고 해서 꼭 좋은 것만은 아닐 수도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가장 많이 가지고 싶어 하는 건 뭘까? 바로 돈이 아닐까 싶다. 돈만 있다면 차든, 집이든, 땅이든 뭐든 살 수 있는 세상이다. 유튜브만 검색해도 자신만의 재테크 기법으로 이른 나이에 경제적 자유를 이룬 사람들을 수두룩하게 볼 수 있다. 자유롭게 여행을 떠나고, 하고 싶은 것을 마음껏 하면서 사는 그들을 보고 있으면 '역시 돈이 최고다'라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들기 마련이다. 영상에서 그들은 다음과 같은 뉘앙스로 말한다. "자본주의 사회에선 돈이 있어야 합니다. 부자처럼 보이려고 하지 말고, 진짜 부자가 되십시오."




그런데 한 가지 재밌는 사실이 있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돈의 중요성을 강조한 사람들도 있지만, 반대로 '돈이 전부는 아니다'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는 것이다. 이름만 대도 알만한 몇몇 유명인들은, 돈을 벌면 행복해질 거라는 생각을 하며 미친 듯이 자신의 분야에 에너지를 쏟아 수백억의 자산을 쌓게 되었다고 말한다. 하지만 목표를 달성한 후에 찾아온 건 공허함뿐이었다는 말도 덧붙였다. 하루빨리 부자가 되라고 말하는 사람들과, 부자가 된다고 해서 꼭 행복한 건 아니라고 말하는 사람들. 똑같이 많은 돈을 가지고 있는데 왜 그들은 다르게 말하는 것일까?








인간은 내면에 자신만의 그릇을 가지고 있다. 이 그릇의 크기는 사람에 따라 다르며, 한 사람이 느끼는 감정과 욕구에 따라서도 각각의 그릇이 있다. 흔히 이해심이 많은 사람을 보고 우리는 '저 사람 그릇이 참 넓다'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그 사람은 '이해심의 그릇'이 넓은 사람인 것이다. 또한 어떤 사람은 어떤 일을 하더라도 남들에 비해 배우는 속도가 빠르다. 그 사람은 '능력의 그릇'이 넓은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이처럼 사람은 분야별로 저마다의 그릇을 가지고 있는데, 돈에 대한 마음도 마찬가지다.




사람들이 착각하는 것 중 하나는, 자신이 가진 욕구의 크기와 그릇의 크기가 일치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물론 이것이 일치하는 경우도 존재한다. 하지만 무언가에 대한 욕구가 크다고 해서 자신의 그릇 또한 크다고 볼 순 없다. 예를 들어 남들에게 주목받고 싶어 하는 한 사람이 있다고 해보자. 이 사람은 수많은 사람들 앞에서 자신을 인정받고픈 욕구가 강한 상태이다. 하지만 이 사람의 내면에 있는 '용기의 그릇'의 크기가, 자신의 욕망을 실현할 만큼 넓지 않다면 어떻게 될까? 매일 많은 사람들이 자신에게 박수를 보내는 모습을 상상하지만, 정작 사람들 앞에만 서면 자신은 목소리가 떨리고 눈을 어디다 둬야 할지 모르는 상태가 돼버린다. 자신이 가진 욕구보다 그릇의 크기가 작다는 것을 느낄 때 사람은 공허한 기분을 느끼게 된다.



 





돈 또한 마찬가지다. 똑같이 많은 돈을 벌고 싶어 하는 욕구를 가진 두 사람이 있고, 한 사람은 '소비의 그릇'이 넓은 반면 다른 한 사람은 상대적으로 그릇의 크기가 작다고 해보자. 두 사람은 열심히 노력한 끝에 각자 1억 원을 모으게 되었다. 1억이라는 큰 금액을 가지게 된 이후 두 사람은 어떻게 행동할까?




'소비의 그릇'이 큰 사람은 자신이 갖고 싶었던 것들을 구매하며 행복감에 빠져들 것이다. 적게는 몇 십만 원, 많게는 몇 백만 원의 금액을 지불하더라도 그 사람은 아까워하기보단 만족스러운 기분을 느낄 가능성이 높다. 반대로 '소비의 그릇'이 작은 사람은 어떨까? 힘들게 번 돈을 펑펑 쓰고 싶은 욕구가 들어도 정작 돈을 그렇게 쓰지 못할 것이다. 왜냐하면 자신은 그렇게까지 값이 나가는 물건이 없더라도, 생활하는데 별 지장이 없기 때문이다. 큰맘 먹고 산 물건도 '소비의 그릇'이 큰 사람이 보기엔 그다지 비싸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 것이다. 이런 상황이 반복되다 보면 '소비의 그릇'이 작은 사람은 어떤 생각을 할까? 자신의 시간과 에너지를 쏟아부은 끝에 목표한 돈을 모으게 되었지만, 막상 그 돈을 가져도 예전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것을 느끼며 허무하다고 느낄지 모른다.




자신이 원하는 욕구와는 다른 분야의 그릇이 영향을 미칠 가능성 또한 존재한다. 앞에서 말한 '소비의 그릇'이 작은 사람은 사실 '안정감의 그릇'이 더 넓은 동시에, 그것이 자신에게 중요한 사람이었다고 가정해보자. 1억 원이라는 돈을 모으기 위해 자신의 모든 시간과 에너지를 투자하다 보면 제대로 된 일상생활을 하기가 힘들었을 것이다. 그 과정에서 가족, 친한 친구들과 멀어졌을 뿐만 아니라 일상 속 행복을 느끼는 시간도 많이 줄어들었다면? 목표했던 돈을 모았지만 자신은 그 돈으로 갖고 싶은 게 없다. 또한 친구들과 만나 대화하던 시간이 자신에겐 소중하고 즐거운 순간이었는데, 이젠 연락할 친구들조차 없다. 정말 노력한 끝에 자신이 원했던 것을 얻었지만 정작 그것이 내가 진정으로 원하던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는 것은 슬픈 일이다.








똑같이 많은 돈을 갖고 있음에도 생각이 전혀 다른 사람들이 존재하는 건, 아마 이런 이유 때문이 아닐까 싶다. 물론 그릇의 크기가 일평생 고정되어 있진 않다. 자신이 겪는 경험에 따라 그릇의 크기는 줄어들 수도, 늘어날 수도 있다. 또한 그릇이 크다고 해서 타인보다 잘난 것도, 작다고 해서 남들에 비해 못한 것도 아니다. 그러나 타고난 성향에 따라 그릇의 크기는 분야별로 어느 정도 정해져 있을 것이다. 타고난 배려심이 많은 사람은 아무리 못된 사람처럼 보이려 해도 시간이 지나면 서서히 본래의 성향을 드러낸다. 반대로 개인적인 성향이 강한 사람이 억지로 사교성이 좋은 척을 하려고 해도 그것을 완전히 감출 수 없다.




현재 당신이 무언가를 간절히 원하고 있다면 잘 생각해보라. 그것을 얻기 위해 당신이 포기해야 할 것들이 무엇이 있는지 말이다. 지금 당신이 원하는 것의 가치가, 포기해야 하는 것들의 가치를 모두 더한 것보다 더 큰 것이라면 망설이지 마 라. 하지만 포기해야 하는 것들이 당신에게 있어 아주 중요한 것이라면 고심해 볼 필요가 있다. 고민하고, 또 고민해라. 자신에 대해 고민하는 시간은 많을수록 득이 된다. 스스로에 대해 돌아보고 생각하는 시간이 많다는 것. 이것이야말로 다다익선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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