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리로 사는 게 아니라, 사랑하니까 사는 거죠

하다가 그만둘 거라면, 하던 거나 열심히 잘하자

by Quat


퇴근 후 아내와 산책을 하던 중이었다. 아내가 친구들 중 결혼 전엔 얼굴 한번 보기도 힘들었는데, 결혼하고 나서는 먼저 연락도 하고 약속을 잡을 때도 적극적으로 변한 친구들이 있다고 말했다.

"그런데 왜 결혼하고 나서 더 친구들을 만나는 걸까?"

"그러게. 둘이서 노는 게 별로 재미가 없어진 건가?"

문득 부부라는 게 시간이 지나면 다들 그렇게 변하는지 궁금해졌다. 산책을 하는 동안 지금처럼 바깥쪽 손은 장갑을 끼고, 맞닿아 있는 손은 패딩 안에 넣어 꼭 잡고 걷는 일도 드물어지는 걸까. 나란히 걷고 있지만 손 닿는 일 없이 그저 묵묵히 걷기만 하는 걸까. 어쩌면 함께 산책하는 시간조차 줄어들거나 없어질지도 모른다.






결혼한 사람들 중 유독 배우자의 단점을 말할 때 신나 보이는 이들이 있다. 예능 프로그램이나 유튜브를 봐도 마찬가지다. 결혼한 지 10년 이상된 부부에게 '아직도 서로 사랑하시냐'라는 질문을 하면 열에 일곱은 쭈뼛거리거나 먼 산을 쳐다보곤 한다. 그러고선 두어 번 입을 열었다 닫았다 한 뒤, 머뭇거리며 말한다. "뭐... 이제는 그냥 의리로 사는 거죠"



아마 그들 또한 연애할 때는 자신의 마음을 열렬히 표현하며 사랑했을 것이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다양한 문제를 해결해 나가면서 서로가 너무 다르다는 걸 느꼈으리라. 예상과 다른 상대의 모습들에 실망하고, 때로는 분노하면서도 여전히 서로의 곁에 머물고 있는 상대에게 고마운 마음도 가졌을 것이다. 그렇게 여기저기 깎이고 닳아버린 그들의 사랑이, 그들 입으로도 처음과 같은 사랑이라 말하기엔 민망해 '의리', '정'이라는 단어로 바꿔 표현한 것 아니겠는가.



그러나 그 또한 사랑이다. 처음과 같이 불타오르는 건 아니더라도 사랑은 사랑이지, 어떻게 그것이 의리가 되겠는가. 그것을 의리라 표현한다면 이제 둘 사이에 사랑은 없다고 인정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의리는 의리고, 사랑은 사랑이다. 스킨십이 줄어들고 대화하는 시간이 줄어들지언정 수십 년의 세월이 지나도 여전히 서로의 곁에 남아있다는 건 사랑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여기까지 생각이 닿은 후,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렸다. '뭘 더 하려는 생각 말고, 지금 하고 있는 것들부터 잘 유지하자'라고. 저녁에 침대에 누워서 조금이라도 대화하는 것, 자기 전 사랑한다고 말해주는 것, 밀린 집안일을 보고 '요즘 누가 더 많지 했지'라고 재지 말고 그냥 해버리는 것, 출근한 뒤 일하기 전 응원 메시지를 보내는 것 등등. 그렇게 10년이 넘게 지나고 나서 누군가 나에게 "아내 분 사랑하세요?"라는 질문을 들었을 때 망설이지 않고 대답하는 나의 모습을 상상한다. "그럼요, 여전히 사랑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