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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Quat May 23. 2022

다르지 않은 당신과 나의 하루


오늘도 하루가 끝나간다. 침대에서 힘들게 일어나 출근 준비를 했던 게 오래 전인 것 같지만 하루도 지나지 않았다. 아직 본격적인 여름이 오지도 않았는데 조금만 움직여도 땀이 나는 날씨다. 다행히 회사에서 집까지 거리가 멀지 않다는 게 지금 사는 곳의 좋은 점 중 하나다.



집에 도착해 편한 옷으로 갈아입고, 어제저녁에 시켜먹고 남은 피자 3조각을 전자레인지에 데워먹기로 했다. XXXL 사이즈로 주문한 피자라서 보관하기 좋게 한 조각을 가위로 2 등분해놓은 뒤, 3조각씩 2개의 봉지에 싸서 냉장고에 넣어두었다. 퇴근 전 먹는 얘기를 해서 그런지 갑자기 배가 마구 고파졌다. 봉지 2개를 모두 꺼낸 후 한 봉지에 든 피자 3조각을 접시에 쏟아부었다.



첫 번째 피자가 담긴 접시는 30초 동안 전자레인지에 돌린 뒤 꺼내먹었다. 군데군데 데워지지 않은 부분도 있었지만 순식간에 접시를 비워냈다. 두 번째 봉지에 담긴 피자도 접시에 담아내고서, 이번엔 넉넉하게 1분 20초 동안 데워보기로 했다. 하지만 바로 전에 먹은 피자의 맛 때문인지, 타고난 한국사람의 '빨리빨리' 습성 때문인지 1분이 조금 넘었을 때 전자레인지 작동을 멈추고 접시를 꺼냈다. 치익거리는 소리와 함께 피자에서 모락모락 김이 나는 걸 보니 알맞게 데워진 듯했다. 훨씬 뜨거웠던 탓에 입천장이 델뻔했지만, 두 번째 피자도 아주 맛있게 먹었다.






바로 설거지를 하려니 갑자기 귀찮은 마음이 들었다. 어차피 지금 하든, 나중에 하든 결국엔 내가 해야 할 일이다. 곧장 접시를 들고 주방으로 가 물로 대충 헹궈낸 뒤에 싱크대 안에 살포시 내려놓는데, 아침에 물을 마시고 놓아둔 컵이 눈에 들어왔다. 못 본 척 뒤를 돌아 슬그머니 주방에서 나온 뒤 아까 벗어둔 청바지를 들고 화장실로 향했다. 인터넷으로 찾아본 '청바지 세탁법'을 다시 검색해 눈으로 훑어보곤 그대로 따라 했다. 물 빠짐과 구김을 최대한 없애기 위해 청바지를 뒤집고 지퍼와 단추까지 잠그고 나서 세면대에 찬물을 받았다. 담가놓기만 했는데도 받아놓은 물 색깔이 금방 노랗게 변했다. 으악. 받았던 물을 빼주고 다시 새 물을 받아 열심히 청바지를 빨았다.



서너 번 반복하고 나서 미리 가져온 대야에 청바지를 담아 그대로 세탁실로 향했다. 말릴 때는 거꾸로 매달아서 널어야 좋다는 글이 있었다. 그래야 청바지의 원단이나 길이가 처음처럼 오래간다나 뭐라나. '굳이 그럴 필요까진 있을까'라는 생각에 대충 널어두었다. 바로 씻으려다, 어차피 땀이 난 김에 가볍게 운동을 하고 나서 씻기로 했다. 30분만 쉬고 나서.






무언가를 하고 난 후의 휴식은 항상 달콤하다. 휴식의 치명적인 단점은 너무나 달콤해서 뒤에 해야 할 것들이 매우 귀찮아진다는 것이다. 유튜브를 보다 퍼뜩 정신을 차리니, 쉰 지 40분이 넘어가고 있었다. 평소대로라면 운동을 하지 않고 바로 씻는다는 선택지도 있었겠지만 오늘은 양심상 그럴 수가 없었다. 스스로 타협한 끝에 30분 동안 운동을 했다.



운동이 끝나고 샤워를 할 때 근처 마트에서 새로 산 샴푸와 바디워시를 처음 사용했다. 향이 꽤 괜찮아서 기분이 좋았다. 학창 시절 심하게 아토피를 앓을 땐 먹는 음식부터 바르는 화장품까지 일일이 신경 써야 했지만, 지금은 잡히는 대로 샴푸나 바디워시를 사용해도 괜찮을 정도로 나아졌다. 이런 생각이 들 때면 예전에 비해 성격도 많이 무던해지고 몸도 건강해졌다고 느껴져 괜히 기분이 좋아진다.



개운하게 샤워를 마친 뒤 옷을 입고 밖으로 나왔다. 요즘 자주 가는 카페 한 곳이 있는데 그곳에 커피를 사러가는 길이다. 양에 비해 가격도 저렴한 데다 쿠폰도 주는데 다른 곳은 최소 10번을 가야 무료로 음료 한 잔을 마실 수 있는 반면, 내가 가는 카페는 쿠폰에 도장 5개만 받으면 음료 한 잔을 공짜로 마실 수 있다. 지난주에 쿠폰 하나를 사용했고 오늘 가면 새로 받은 쿠폰에 2번째 도장을 받는다. 최근 꽂혀있는 코코넛 라테를 주문한 뒤 쿠폰에 도장을 받고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지금은 아까 산 커피를 마시며 이 글을 적고 있는 중이다.







아마 대부분의 사람이 나와 비슷한 일상을 보내고 있을 것이다. 평일엔 출근해서 일을 하고, 퇴근한 뒤엔 저녁을 먹고 집안일을 하고 남는 시간엔 쉬거나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하며 하루를 마무리한다. 큼직한 일들만 기억하다 보면 매일이 똑같다고 느낄 것이다. 출근하고, 퇴근하고, 자고, 다시 출근하고, 퇴근하고 자는 일상이 지루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자신의 일상을 가만히 떠올려보면, 의외로 재미를 느낄 수 있는 순간들이 꽤 많다. 우리가 재미있게 보는 개그 프로그램이나 시트콤도 사실은 일상 속에서 사람들이 놓치고 있는 부분들을 재미있게 각색한 것이다.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한 연예인들이 자신들이 겪은 재미있는 경험들도 우리가 한 번쯤 겪었을 일들이다. 일상에서 쉽게 볼 수 있고 경험할 수 있기 때문에, 우리는 그 사람들의 얘기를 들으며 자연스럽게 그 상황을 상상하고 웃을 수 있는 것이다.



새로운 것을 하지 않기 때문에 지루한 것이 아니다. 매일이 지루한 사람은 이미 자신의 일상이 지루하다는 결론을 내리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일상이 재미없다고 느끼는 것이다. 자신의 인생이 불행하다고 단정 짓는 사람은, 좋은 일이 생겨도 그것을 행복하다고 느끼지 않는다. 그런 부류에 속한 사람들에게 일상의 행복은 '당연히 그래야 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반대로 인생을 재미있게 사는 사람들은 매일 똑같은 것을 해도, 어제와 오늘 사이에서 다른 점을 발견한다. 결국 세상의 모든 것은 내가 어떻게 마음먹고, 어떤 방식으로 세상을 보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당신의 하루가 참을 수 없을 정도로 지루하다고 느끼는가? 매일이 반복되고 지겹다고 생각하는가? 당신의 하루를 면밀하게 들여다보면 어제와는 다른 순간이 분명 존재함을 발견할 것이다. 그러한 차이를 발견하는 횟수가 점점 더 늘어날수록, 당신은 예전만큼 지루하다고 느끼지 않을 것이다. 만약 당신의 오늘 하루가 끔찍했다면, 자기 전까지는 당신이 겪은 일들보단 좀 더 나은 순간들이 이어지지 않겠는가. 오늘 당신이 하루 동안 느꼈던 불안과 공허와 슬픔과 상처에 소소하게나마 위로를 보내며 이만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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