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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Quat May 22. 2022

모든 걸 이해하려 드는 건 사랑이 아니다


주말에 침대에서 뒹굴거리며 유튜브를 보던 중 흥미로운 영상 하나를 보았다. 사람을 자주 물었던 맹견을 훈련시키기 위해 반려견 훈련사가 주인과 만나 대화를 하는 장면이었다. 훈련사는 주인에게 개의 행동을 통제하기 쉬운 목줄보다 가슴 줄을 채운 이유를 물었고, 돌아온 주인의 대답은 "강아지가 아플까 봐"였다. 그 말을 들은 훈련사는 조용하게 말했다. "이 개에게 물린 다른 사람들은 얼마나 아팠을까요."








주인이 자신의 반려견을 사랑하고 있다는 건 분명했다. 이미 자신도 반려견에게 물린 적이 여러 번 있을 정도라고 말했고, 그런 아픔을 감수하면서 개를 키운다는 건 사랑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내가 본 영상의 댓글엔 주인을 비판하는 내용이 아주 많았다. 왜일까? 자신이 사랑하는 대상이 타인에게 분명한 피해를 주고 있다는 걸 인지하고 있는데도, 그것을 개선하려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케이스만 다를 뿐 이런 사례는 주변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또 다른 대표적인 사례 중 하나가 '층간 소음'이다. 상황 하나를 가정해보자. 당신이 사는 아파트 윗집에 새로운 사람이 이사를 왔다. 이사 온 날부터 쿵쿵거리는 소리가 낮이든 밤이든 끊이질 않는다. 당신은 참고 참다 윗집을 찾아가 얘기를 하는데, 윗집에 사는 부부는 '어린아이가 좀 뛸 수도 있는 거 아니냐'라며 말한다. 이런 경우 당신의 기분은 어떨 것 같은가?




아이들은 어리다. 자신의 행동이 다른 사람에게 어떤 영향을 줄 지에 대해 미리 생각하고 행동하기보단, 순간의 즐거움이 더 중요하다. 부모 또한 아이들의 일거수일투족을 따라다니며 감시할 수 없다. 그래서 아이를 키우는 집은 다른 집보다 어쩔 수 없이 층간 소음이 더 많이 일어날 수밖에 없는 것도 사실이다. 그렇다고 해서 층간 소음이 일어나는 것을 당연히 여겨야만 하는 건 아니다. 아이가 뛰어노는 행동으로 인해 다른 사람들이 피해를 받고 있음을 인지한다면, 아이에게 그 사실을 알려주고 교육해야 하는 것이 부모의 역할이다. 이런 과정을 통해 아이들은 '사회화'를 습득하고 타인을 존중하는 법을 익히게 된다.








사람을 자주 무는 개와 앞서 예시로 든 층간 소음. 서로 다른 상황에서 문제가 발생하지만, 본질적으로 문제가 발생하는 이유는 같다. 바로 보호자(부모)의 이기적인 사랑 때문이다. 개와 사람은 의사소통이 불가능하지만, 함께 지내다 보면 주인은 자신이 기르는 반려견이 어떤 성향인지를 대략 파악할 수 있다. 반려견이 산책 중 지나가는 사람에게 공격성을 보인다거나, 심지어 주인조차 무는 일이 점차 잦아진다면 주인은 반려견을 교육해야 할 책임이 있다. 아이들을 키우는 부모도 마찬가지다. 아이들이 말을 듣지 않고 반항한다면, 부모는 부모로서 책임감을 갖고 자식을 교육해야만 한다.




사랑하는 사람 또는 대상에게 쓴소리를 하는 건 모든 사람에게 힘든 일이다. 하지만 사랑하기 때문에 순간의 힘듦을 견디고 말을 해야 할 때가 있다. 사랑이라는 감정을 제외하더라도, 살다 보면 우리는 하고 싶지 않아도 해야 하는 것들이 있다. 일하지 않고 하루 종일 집에서 쉰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럼에도 우리는 일을 하고, 퇴근 후에 집안 청소를 하며, 쌓인 빨래를 하고, 부족하거나 다 쓴 물건을 사러 마트에 간다. 이 모든 행동들은 살기 위해 해야만 하는 것들이다.








자신이 마음을 쏟는 대상에게 훈육을 한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평소와는 다른 자신의 말과 행동 때문에 '상대가 나를 싫어하면 어쩌나'라는 생각을 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당신이 가장 먼저 그 사람에게 따끔한 말을 해야 하는 것이다. 만약 당신이 그 행동을 하지 않으면, 시간이 지나 다른 사람들이 그 대상을 바로 잡으려 할 것이다. 그리고 그 사람들은 당신보다 그 대상을 잘 알지 못한다. 그래서 어떠한 방법을 써서라도 그 대상을 교육하려 할 것이고, 그 과정에서 당신이 사랑하는 대상은 더욱 힘들어하게 될 것이다. 당신이 누군가를 끔찍이 생각하는 그 마음으로 인해 당장 잘못을 바로잡지 않으면, 그 대상은 처음 받아야 할 고통보다 훨씬 큰 고통을 타인으로부터 받게 된다. 힘들어하는 대상을 바라보며 '내가 진작 했어야 했는데'라고 생각해봤자 이미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는다.




사랑하는 대상의 모든 것을 이해하려고 하는 마음이 오히려 상대에게 독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하라. 당신이 그것을 사랑하는 만큼, 적당한 쓴소리를 해야 할 때도 있는 것이다. 당신이 하지 않으면 다른 사람이 하게 된다는 것을 명심해라. 그 사람은 당신만큼 그 대상을 사랑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당신이 상대가 걱정되어 차마 하지 못했던 말이나 행동보다 훨씬 더 심한 수준으로 상대를 대할 가능성이 높다. 당장의 괴로움을 회피하기 위해 문제를 방치한다면, 그 문제는 시간이 지나 감당할 수 없는 수준으로 당신을 덮쳐온다. 누군가의 모든 것을 이해하고 사랑한다는 건 분명 대단한 일이지만, 불특정 다수에게 피해를 주면서까지 무언가를 사랑한다는 건 사랑이 아니라 이기적인 마음일 수 있다는 걸 잊지 않기를 바라며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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