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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Quat May 29. 2022

아무것도 하지 않고 돈을 버는 사람이 있다?


주말에 집에서 쉬던 중, 유튜브에서 흥미로운 제목의 영상 하나를 발견했다. 영상의 제목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돈을 받는 남성'. "아무것도 하지 않는데 어떻게 돈을 받는다는 거지?" 말이 안 되는 제목으로 호기심이 동한 나는 바로 영상을 재생했다.



영상 속 등장하는 남성은 일본에서 이른바 '사람 대여 서비스'라는 일을 하고 있었다. 말 그대로 자신을 대여하는 서비스로, 하루 동안 자신을 대여한 사람과 동행하며 함께 밥을 먹거나 이동하며 그들의 얘기를 들어주는 것이 서비스의 주 업무였다. 서비스를 이용하는 사람은 3개월 전 친한 친구를 잃은 한 남자였다. 아직도 친구가 세상을 떠난 것이 믿기지 않는다는 그는, 자신의 생일날 친구를 추모하기 위해 동행할 사람을 찾고 있었다.



대여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 남성은 간단한 질문 정도엔 답을 하지만 대부분의 시간을 상대방의 말을 들어준다고 말했다. 어떠한 조언이나 충고 없이 누군가의 말을 그저 들어주는 것만으로, 그는 하루에 한화로 10만 원과 교통비를 받는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한 것일까?


   




지금으로부터 2년 전 상담일을 할 때, 새로운 사람들과 어울리고 싶은 마음에 모임 활동을 한 적이 있었다. 내향적인 나와는 달리 그곳엔 외향적인 성향의 사람들이 아주 많았다. 남들 앞에서 자신의 생각을 자신 있게 말하는 사람들을 보며 나도 많은 것을 느끼고 배울 수 있었다.



마지막 모임 활동 날엔 다 같이 술을 마시며 얘기를 나누던 중, 누군가가 내게 여기 있는 사람들에 대해 상담사로서 느낀 각자의 장단점에 대해 말을 해달라는 요청을 했다. 조금 난감하긴 했지만 마지막이라는 분위기, 살짝 오른 취기 등으로 인해 나 또한 자리에 있던 사람들에 대해 솔직한 내 생각을 말했다.



내 말이 끝나고 난 뒤에 그 자리에서 가장 나이가 많았던 형님 한 분이 말씀하셨다. 만약 자신이 상담사였다면, 활동을 하면서 각자의 단점에 대해 바로 지적을 했을 것이라고. 세상엔 자신이 잘하는 것, 알고 있는 것을 뽐내려고 하는 사람들이 정말 많은데 저 친구는 그런 걸 함부로 입 밖에 내지 않는 모습이 자신의 입장에서는 대단해 보인다고.



이 말을 들었을 당시엔 조금은 어리둥절했다. 왜냐하면 나는 자신에 대한 확신이 없었기 때문에 이런 말들을 하는 게 어려웠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내가 뭐라고 만난 지 얼마 되지도 않는 사람들에게 '넌 이런 사람이야'라고 말할 수 있단 말인가!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내가 하는 행동들이 일반적이지 않다는 걸 다른 사람들을 통해 알게 되면서 왜 그분이 내게 그런 말씀을 하셨는지에 대해 알 수 있었다.






자존감이나 리더십, 자기 어필에 대해 강조한 서적들이 쏟아지고 성공한 사람들도 이런 점들을 강조하면서 점차 현대 사회는 능력이 곧 그 사람을 대변하는 시대가 되었다. 직장에서 아무리 쓰레기 같은 상사라도 일만 잘하면 어느 정도 허용되며, 누가 봐도 착한 사람일지라도 일을 못하면 별로인 사람이 되어가는 분위기가 조성되었다. 자신이 가진 능력을 스스로 타인에게 드러내야 인정받고, 소심하고 내성적인 사람들은 사회성이 부족한 사람으로 낙인찍혔다. 어디에서든 당당하게 할 말은 해야 하고 자신이 저지른 실수도 '그럴 수도 있지'라는 태도를 보여야 타인에게 덜 욕먹게 되었다. 즉, 어떤 상황에서든 자신의 목소리를 내지 않으면 불합리한 대우를 받아도 어쩔 수 없다는 인식이 사회 전반에 뿌리내리게 되었다.



많은 사람들이 다른 사람 앞에서 당당하게 자신의 생각을 드러내기 시작하자 생각지 못한 문제들이 드러났다.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극소수의 의견들조차 목소리를 크게 내기 시작했고, 이것을 인정하지 못하면 '꼰대' 취급받는 세상이 되어갔다. 더 나아가 자신의 의견에 반대하는 사람들에겐 다양성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꼰대'가 되는 게 당연시되는 분위기가 만들어졌다.



직장에서도 문제는 발생한다. 자신은 일을 잘하니까 다른 사람들에 대한 배려가 부족해도 그럴 수 있지만, 다른 사람이 자신에게 예의 없이 굴면 분노한다. 그 사람이 일을 잘하더라도 내 기분이 나쁘면 안 되니까 말이다. 타인으로 인해 자신의 소중한 자존감이 낮아질까 분노한다. 한 번 자신의 눈밖에 어긋난 사람이 되면 자신과 비슷한 감정을 느끼는 사람들과 파벌을 만들고, 그 사람에 대한 안 좋은 얘기들을 공유하며 결속한다.



점점 더 커지는 자기주장과 함께, 쌓인 분노 또한 커져갔다. 각자가 내는 목소리가 커질수록, 상대적으로 작은 목소리들은 묻혀버렸다. 타인의 목소리가 커지자 자신의 말이 묻힐까 봐 더 크게 소리를 질러댔고 이것이 반복되자 전보다 각자가 내는 목소리의 데시벨은 점점 더 커지고 있다. 모두가 자기 목소리를 내려고 하다 보니, 정작 들어주려는 사람은 점점 줄어만 가고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말을 하려고만 하지, 들어줄 생각은 하지 않는다. 자신도 타인의 생각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생각을 하지 않으면서 누군가 자신의 말을 듣지 않는 태도를 보이면 화부터 낸다. 우울증, 불면증, 분노조절장애 등 타인으로부터 받은 상처들로 인해 생기는 마음의 병들이 참 많다. 상담 일을 할 때도 하루에도 몇 분은 우울증 증상으로 약을 처방받고 있다는 말씀을 하셨다. 나 또한 알고 지낸 사람들 중 가정환경이나 트라우마로 인해 힘들어하는 사람들을 여럿 보았다.  



흥미로운 사실이 있다면, 우울증으로 힘들어하는 그들조차 타인에게 상처를 주는 말이나 행동을 했다는 것이다. 오히려 자신이 겪고 있는 힘든 상황 때문인지 그들은 자신의 행동에 대해 그다지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나도 다른 사람 때문에 이렇게 힘든데, 나는 왜 이렇게 하면 안 되는데?'라는 식이었다.






어디까지 말해야 자신을 지키는 것인지, 또 어디까지 말해야 남들에게 피해를 주는 것인지에 대한 기준은 매우 불명확하다. 다만 자기주장을 강하게 한다고 해서, 꼭 자신을 지킬 수 있다는 건 아니라는 게 개인적인 생각이다. 오히려 너무 강한 주장은 상대방에게 불편함을 유발하게 만든다. 그로 인해 상대방과의 관계 자체를 스스로 끊어버릴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어느 정도의 인간관계 정리는 필요하지만 자신이 견딜 수 있는 불편함의 정도가 타인에 비해 매우 낮다면, 어떤 사람과도 관계 유지가 힘들 것이다. 사소한 말 한마디에도 기분이 쉽게 나빠진다면 그것은 상대방이 이상한 게 아니라 자신이 예민한 것이기 때문이다.



어떤 것이든 극단적으로 한쪽으로만 치우치는 건 결코 좋지 않다. '자기주장'이나 '자신을 드러내는 것' 또한 마찬가지다. 많은 사람들이 '할 말은 해야 한다'라고 하지만, '어떻게' 해야 하냐는 물음에 명확한 답변을 말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만약 그게 가능하다면, 진작에 인간관계에서 오는 스트레스는 사라져야 마땅했다. 하지만 우리는 여전히 누군가의 말에 상처받고, 고민하며,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 게 맞을지 고민하고 있다. 왜냐하면 이것은 애초에 '답을 내릴 수 없는 특성을 가진 문제'이기 때문이다.






결국 우리는 때로 상대방의 말을 가만히 들을 줄 알아야 한다. 자기주장을 포기하라는 뜻이 아니다. 자신의 생각과 달라도 그것을 어느 정도 포용할 수 있는 내면의 그릇을 키워야 한다. 이것은 상대방을 위함도 있지만, 근본적으론 자신을 위해서이다. 그릇이 작은 사람일수록 자신의 생각만이 옳다고 고집한다. 우물 안 개구리가 보는 세상처럼 자신이 보고 느낀 것만이 진실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이 세상에서 '진실'만큼 불확실한 것도 없다. 과거엔 미처 알지 못했던 부분을 나중에 알게 되었을 때 진실이라 굳게 믿었던 것들이, 사실은 아무것도 아닐 때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입보다 귀를 더 열어야 할 때도 있는 것이다. 당신이 귀를 여는데 익숙해질수록, 당신이 그동안 받았던 스트레스 또한 오히려 줄어들 가능성도 높아질 것이다. 자기 할 말 하기에 바쁜 요즘 시대에서, '진정 들을 줄 아는 사람'의 가치는 점점 더 높아지고 있다. 자신이 믿고 있는 것이 스스로에게 중요한 것처럼, 타인의 의견도 소중히 다룰 수 있는 사람들이 지금보다 더 많아지길 바라며 이만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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