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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Quat May 31. 2022

나는 그냥 이런 사람이야


느닷없이 일상 속 내가 마음에 들지 않는 날이 있다. 급하게 움직이다가 문턱에 발가락을 세게 찧었을 때. 외출해서 신발을 벗었는데 양말이 짝짝이 었다는 걸 알게 되었을 때. 약속시간보다 일찍 집에서 나와 버스를 탄 뒤 잠이 들었는데 알고 보니 반대 방향으로 가는 버스를 탔을 때. 가끔 이런 행동을 하는 나 자신을 보고 있으면 헛웃음이 나올 때가 종종 있다.



그래도 다행인 건 이런 행동들을 했다고 해서, 그다지 스트레스받진 않는다는 것이다. 만약 내가 나에게 매우 엄격한 사람이었다면, 멍청한 행동들에 대한 자책과 함께 분노했을 텐데 말이다. 오히려 내가 똑 부러지고 야무진 사람이 아니란 걸 알고 있다 보니, 다른 사람이 저지른 실수에도 "그럴 수도 있지 뭐~"라며 넘어간 적이 많다.






그렇다고 이해심이나 아량이 아주 넓진 않다. 스스로 생각해도 일반적인 사람들보다 실수에 대한 관대함이 꽤나 큰 편이긴 하지만, 나 역시 사람이다. 모든 일, 모든 실수에 대해 쿨하게 넘어갈 정도로 성인군자는 결코 아니다. 어쨌든 본인이 저지른 실수는 자기가 가장 잘 알지 않겠는가. 약속 시간보다 늦게 도착한 것에 대해 내가 용서했다고 해서 '항상 늦어도 된다'를 의미하는 건 아니다.  



강약약강. 내가 가장 싫어하는 유형의 사람들이다. 물론 사람이라면 이런 기질이 아예 없을 수는 없다. 나도 알고 있다. 그러나 이런 모습들이 유독 도드라지는 사람들이 있다. 자신에게 잘해주는 사람들에겐 한없이 강해지지만, 정작 한 번이라도 쓴소리를 한 사람에겐 지나칠 정도로 예의를 차리는 사람. 나는 그런 사람들을 극도로 싫어한다. 살면서 그렇게 살지 않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고 있지만, 누군가 나에게 그런 행동을 한 번도 하지 않았냐고 물어본다면 확신할 순 없다. 내가 무언가를 싫어한다고 해서 내가 그것을 한 번도 하지 않았다는 보장이 어디 있겠는가.



이처럼 나는 현실적이라기보단 이상적인 사람이다. 이 세상에 존재하기 힘든, 어쩌면 불가능할지도 모르는 이상향을 추구하며 살아가고 있다. 강약약강이 존재하지 않는 사회. 다른 사람들의 꿈을 진심으로 응원할 수 있는 사회. 누군가의 배려를 진심으로 고마워하고 그것을 보답하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로 이루어진 사회를 지금도 꿈꾼다. 적어도 '현실'이라는 이유를 들어 좋은 것들을 포기하는 것보다, 비록 그것들이 불가능할지라도 꾸준히 추구하며 살아가는 게 더 멋있지 않겠는가.






결국 이 모든 것이 '나'다. 하루는 너무 피곤해서 안경을 쓴 걸 깜박하고 세수한 적도 있다. 그런 짓 한 번 했다고 세상이 무너지진 않는다. 바다 건너 얼굴조차 모르는 외국인들이 자신의 SNS에 '한국에는 안경을 쓰고 세수를 한 바보가 있다'라는 글을 공유하지도 않는다. 그냥 단순한 실수이고 안경에 묻은 물을 닦으면 그만이다. 별일이 아닌데 유난을 떨면, 그때부터 별일이 되는 것이다.



가끔(어쩌면 그보다 자주) 멍청한 짓을 해도 크게 스트레스를 받진 않는다. 그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실수를 해도 뒤에서 쑥덕거리거나 흉을 보는 짓은 하지 않는다. 오히려 자기도 실수를 하면서 안 한 척하거나, 남들이 한 실수를 과장해서 놀리는 사람들을 더욱 싫어한다. 이 세상엔 남을 헐뜯고 끌어내리고 뒷담화하는 사람이 훨씬 더 많다고 하지만, 지금 내 주변엔 없다. 적어도 나의 일상 속에선 내가 싫어하는 부류의 사람들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것이 내겐 '현실'이다. 서로가 하고 있는 것, 하고 싶어 하는 것에 대해 '현실적이지 않다'는 이유로 비판부터 하는 사람들보다, "너 정말 멋지다!"라고 말해주는 사람들이 내 곁에 있다. 아주 이상적이고, 비현실적이며, 지나치게 긍정적일 수도 있다. 그런데 그게 뭐?



이런 사람들을 곁에 두기 시작한 이후로 내게 많은 변화가 생겼다. 그동안 미뤄왔던 독립을 했고, 단기 계약직으로 일하던 곳에서 정규직 제안을 받았으며, 가족 간의 사이도 좀 더 좋아졌고, 하고 싶었던 운동에 도전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 만족스러운 건 글 쓰는 삶을 살고 있다는 것이다. 상황과 관계없이 '나는 지금 행복해'라며 스스로를 세뇌하는 것이 아닌, 안정적이고 원하던 삶을 살고 있기에 행복한 일상을 보내고 있다. 그래도 가끔 힘들 때 되뇌는 꿈이 있다. 바로 10년 후 프리랜서의 삶이다. 2032년엔 제주도에서 바다를 보며 글을 쓰며 먹고사는 미래의 내 모습을 상상하면 저절로 기분이 좋아진다. 이 글을 쭉 읽어보면 당신도 알겠지만, 나는 이런 사람이다. 그렇다면 당신은 어떤가? 당신은 어떤 사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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