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리 <3> : 문을 열다

by Quat


아침이 되고 두 번의 노크가 들린 뒤 습관대로 방문을 열어 쟁반을 끌어들였다. 밥 냄새가 났다. 어제보다 더 진한 냄새였다. 아니, 내가 냄새를 더 강하게 느끼는 것일 수도 있었다. 어쩐지 오늘은 오감이 예민했다. 진실이 가까워질 때 감각이 살아난다는 말이 갑자기 이해되는 것 같았다. 열 시가 되자, 채팅방은 이미 떠들썩했다. 새벽의 흔적이 완전히 지워지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관리자의 권한으로 삭제되었습니다.’ 사람들은 처음 목격한 이 기묘한 문장에 대해 각자의 추측을 던졌다. “어제 새벽에 누가 들어왔던 거예요?" "규칙 깬 사람 있나요?" "관리자가 삭제했다는 건 위험한 내용이었단 거겠죠?" "삭제됐으면 모르는 척해야 하는 거 아닐까요." "근데 관리자란 게 누군데요. 우리 중에 있나요?” 같은 말들이 계속해서 이어졌다.



나는 애써 감정을 숨기며 아무렇지 않은 척 그들과 대화를 섞었다. 내가 본 것을 말하면, 나도 지워질지 모른다는 공포가 먼저였다. 어젯밤 꾼 꿈에서 들은 ‘열지 마’라는 목소리가 경고였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다. “저도 아침에 들어왔는데 문구만 봤어요. 누가 뭘 썼는지 모르겠네요.” 거짓말은 너무 쉽게 나왔고 그게 더 무섭게 느껴졌다. 격리는 이런 식으로 유지되는 건가. 모두가 조금씩 거짓말을 보태며.



다음 날 아침, 두 번의 노크가 들렸다. 나는 문 앞에 놓인 쟁반을 바라봤다. 늘 반을 남겼던 밥. 오늘은 이상하게도 밥알 하나하나가 또렷해 보였다. 나는 숟가락을 들었다. 한 입. 두 입. 목이 메었지만 삼켰다. 남김없이, 정말 남김없이, 쟁반을 비웠다. 밥을 다 먹는 게 이렇게 낯선 일이라니. 나를 살리는 행위가 오히려 금기를 깨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러고 나서 방 안의 화장실로 갔다. 거울 앞에 섰다. 한참 동안 고개를 숙였다. 두려웠다. 내가 믿어온 것들이 흔들릴 때, 사람은 먼저 자신을 확인하고 싶어진다. 나는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거울 속엔 내 얼굴이 있었다. 창백했고, 눈 밑이 꺼져 있었고, 어깨가 축 늘어져 있었다. 하지만 상상하던 치명적인 전염병 환자의 얼굴은 아니었다. 붉은 발진도, 검게 변한 피부도 없었다. 그저 오래 누워 있었던 사람의 얼굴이었다. ‘근육이 빠지는 게 느껴진다’ 던 생각이 떠올랐다. 어쩌면 병 때문이라 믿었던 근육의 감소는, 2년 동안 방 안에서의 생활 때문일지도 모른다. 누군가가 그렇게 만들었을지도 모른다. 아니, 내가 나를 병들게 만들었을지도 모른다.



눈물이 났지만 닦지 않은 채 화장실에서 나왔다. 그리곤 창문 앞에 늘 쳐져 있던 암막커튼을 잡았다. 손이 떨렸다. 커튼은 내 우주를 닫아두던 마지막 벽이었다. 거친 숨을 들이쉬며 커튼을 걷었다. 빛이 쏟아졌다. 눈이 아파서 잠시 눈을 감았다. 다시 떴을 때, 창밖엔 너무나 평범한 풍경이 있었다. 겨울 햇살이 담벼락에 닿아 반짝였고, 누군가의 빨래가 바람에 흔들렸고, 멀리서 차가 지나가는 소리가 들렸다. 새들이 있었다. 새들이 있었다는 사실이, 이상할 만큼 충격이었다. 2년 동안 나는 새를 본 적이 없었다. 아니, 볼 생각을 하지 않았다. 격리된 건 내 몸뿐만이 아니라 시야도 포함되어 있었다.



나는 한참을 그대로 서 있었다. 창밖을 바라보며 내가 놓친 시간들을 손으로 더듬듯 바라봤다. 그다음엔 발걸음을 옮겨 방문 앞에 섰다. 손잡이를 잡았다. 차갑고 단단한 감촉이 손바닥에 박혔다. 한참을 서 있다가, 다시 침대로 갔다. 눕고, 숨을 고르고, 다시 일어나 문으로 갔다. 손잡이를 잡고, 또 놓고, 또 잡고. 그 사이사이에 꿈속의 목소리가 계속 귓가에 붙었다. “열지 마.” 익숙한 목소리. 너무 익숙해서, 내 목소리 같기도 했다.



그러다 문득, 어디선가 다른 목소리가 들려왔다. ‘열지 않으면, 평생 여기에 남아.’ 순간 나는 갑자기 컴퓨터 앞으로 갔다. 채팅창을 열고, 덜덜 떨리는 손으로 최대한 빠르게 손가락을 놀렸다. 엔터키를 누르고 채팅을 전송한 뒤에 그대로 손잡이를 부수다시피 돌려 문 밖으로 뛰쳐나갔다. 방문이 열리고 햇살이 비치는 방 안의 모니터에는 메시지가 깜박거리고 있었다. "우리는 병에 걸리지 않았어요."

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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