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멈추지 마!”
태하의 목소리는 바람을 가르며 튀어나왔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다들 그 말에 맞춰 속도를 올렸다. 숨이 목구멍에서 갈라지고, 다리가 땅에 닿을 때마다 발목 안쪽이 찢기는 느낌이 들었다. 상혁은 달리면서도 뒤를 돌아보지 못했다. 돌아보는 순간, '죽음이' 따라오고 있다는 걸 확인하게 될까 봐.
나무들 사이로 허름한 집이 나타났을 때, 그건 구원이라기보다 잠시 숨을 돌릴 수 있는 ‘연기’처럼 보였다. 벽은 군데군데 갈라져 있었고, 창문은 한쪽이 깨져 비닐이 덧대져 있었다. 집 앞마당엔 잡초가 무릎까지 자라 있었다. 문을 박차고 들어가자 곰팡이 냄새와 오래된 나무 냄새가 섞여 코를 찔렀다. 다섯 명의 숨이 동시에 쏟아져 나왔다. 태하는 먼저 벽에 등을 붙이고 밖을 살폈다. 상혁은 숨을 헐떡이면서도 그를 바라보았다. 자신을 포함한 나머지 4명은 여전히 숨을 헐떡이고 있는 반면, 그는 이미 어느 정도 숨을 가다듬고 있었다. 아무리 은퇴했어도 선출은 뭐가 달라도 다른 모양이다.
준혁은 바닥에 주저앉자마자 웃음을 터뜨렸다. 웃음이라기보다 울음에 가까운 소리였다.
“와, 진짜... 이게 게임 맞아요? 하... 씨, 진짜...”
주영은 기둥에 손을 짚고 숨을 고르면서도 머리칼을 귀 뒤로 넘겼다. 얼굴이 창백했지만, 눈동자는 놀랍도록 침착하게 흔들렸다. 양호는 가장 늦게 들어왔다. 안경이 땀에 젖어 흐릿했고, 숨이 짧았다. 그는 문 근처에 서서 벽을 더듬더니, 마치 오래된 습관처럼 방 안의 구조를 먼저 훑었다. 상혁은 그런 양호를 볼 때마다 마음이 복잡해졌다. 양호는 이 중 가장 약하지만, 가장 ‘정확’했다.
태하가 낮게 말했다.
“여기서 잠깐만 쉬고 나간다. 오래 있으면 더 위험해.”
준혁이 곧장 맞장구쳤다.
“네, 네. 대리님 말이 맞죠. 지금은 움직이는 게...”
태하가 준혁을 노려봤다. “대리님”이라는 호칭이 튀어나오는 순간, 이 공간이 회사처럼 변해버리는 느낌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준혁은 그런 눈치를 알면서도, 아니 알기 때문에 더 공손해지는 얼굴이었다. 권위에 매달리는 사람의 표정. 상혁은 자기 손을 내려다봤다. 손바닥엔 피가 묻어 있었다. 누군가의 피인지, 자신의 피인지 구분할 수 없었다. 처음 메일을 받았을 때만 해도 이런 상상을 한 적이 없다.
[당신은 초대되었습니다]
누구에게나 제목은 그렇게 시작했다고 한다. 발신자는 이름이 없었다. 단지 ‘관리자’라고만 적혀 있었다. “서바이벌 게임 체험”, “상금”, “익명 보장”, “참가자 전원에게 소정의 참가비 지급”. 상혁은 그때 생각했다. 요즘 이런 이벤트가 많지.
처음 그 메일을 보았을 때 태하는 “재밌겠다”며 웃었다고 했다. 준혁은 “인맥 만들기 좋다”는 생각도 했다고 한다. 주영은 여러 번 고민했지만 결국 참가 동의서에 사인했다고 했고, 양호도 마찬가지였다. 물론 상혁도 그랬다. 목숨을 건 서바이벌 게임이라니. 이런 건 영화에서만 나오는 줄 알았다.
맨 처음 참가자는 총 아홉 명이었다. 시작하자마자 네 명이 함정에 걸렸다. 한 명은 나무 위에서 떨어졌고, 한 명은 바닥이 열리며 사라졌고, 한 명은(상혁은 그 장면을 떠올리기만 해도 속이 뒤틀렸다) 얇은 와이어가 목을 지나가며 말 그대로 두동강이 나버렸다. 이제 그들이 다시 돌아올 가능성은 없다.
태하는 집 안을 빠르게 수색하더니 낡은 탁자 위에 놓인 라디오를 발견했다. 전원을 눌러보자 잡음이 스쳤고, 그 다음엔 잠깐의 정적이 흘렀다. 그리고 아주 낮은 남자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생존자 다섯 명. 지금까지, 잘하고 있습니다.”
다섯 명의 숨이 동시에 멎었다. 준혁이 제일 먼저 입을 틀어막았다. 주영의 눈이 커졌다. 태하는 덤덤한 척 하려고 했지만 감출 수 없는 분노가 덜덜 떨리는 손으로 드러났다. 그는 피와 땀으로 뒤범벅이 된 손으로 라디오를 집어들었다.
“누구야. 장난치지 마.”
목소리는 감정이 없었다. 기계가 사람의 입을 빌려 말하는 듯했다.
“다음 구간에서 선택이 필요합니다. 가장 ‘합리적인’ 선택을 하시길.”
상혁은 등골이 서늘해졌다. 누군가 보고 있다. 이 상황을 ‘설계’한 누군가가. 그리고 그 누군가는, 자신들이 인간으로서 어떤 모습을 드러낼지 이미 알고 있다는 듯 말했다. 양호가 상혁을 바라봤다. 안경 너머의 눈빛이 흔들리면서도 또렷했다.
“들었죠? 합리적이래요.”
“합리적이 뭐...” 준혁이 혀를 차며 말끝을 흐렸다. “지금은 살아야죠. 그러려면 힘 있는 사람이...”
태하가 준혁의 말을 끊었다.
“나가자. 여기 오래 있으면 안 돼.”
그 말은 명령이 됐다. 상혁은 자신이 태하의 말에 따라 몸을 일으키는 걸 느꼈다. ‘힘 있는 사람’의 말이 ‘정답’처럼 들리는 순간이 있었다. 그 순간이 가장 위험하다는 걸 알면서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