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을 위해 '자식'을 명분삼는 부모들
'영화는 영화일 뿐이다'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은 '영화는 절대 현실을 뛰어넘을 수 없다'라는 의미이다. '검은 사제들'에서 자문 활동을 한 것으로 유명한 김웅렬 신부는 한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해 MC에게 '영화와 실제 구마 의식이 얼마나 비슷한지'에 대해 질문을 받았다. 그 질문에 신부는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영화보다 10배는 더 무섭습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어딘가에선 우리가 전혀 상상도 하지 못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을 것이다. '설마 그 정도일까'라는 생각이 무색할 정도로 말이다. 이와 관련해 최근 많은 사람들의 주목을 받고 있는 한 영상이 있다. 개그우먼 이수지 씨가 어린이집 교사의 일상을 패러디한 영상인데 보고 있으면 황당한 장면들이 많다. 아이를 맡긴 어머니가 별의별 트집을 잡으며 '화가 난 남편이 어린이집에 찾아오려는 걸 겨우 막았다', '원장을 만나 얘기해야겠다'라고 말하기도 하고, 아이들이 슬퍼하지 않도록 어떤 게임을 하든 무승부로 끝내기도 한다.
이 영상에 담긴 내용들이 '만약 이랬다면 어땠을까'라는 상상으로 만들어진 거였다면 별 문제가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슬프게도 댓글을 보면 앞에서 말한 '영화는 영화일 뿐이다'라는 문장을 되새기게 된다. 전, 현직 어린이집 교사라고 주장하는 이들은 입을 모아 말한다. 영상 속 에피소드들이 아예 터무니없는 내용이 아니라고. 현실에서 자신들이 겪었던 일들은 더 처참하고 끔찍했다고 말이다.
사실 이런 얘기들이 우리에게 낯설지는 않다. 이미 몇 년 전부터 교권은 심각하게 추락하고 있으며, 부모들은 자신의 아이가 학교에서 상처받는 것에 대해 극심하게 분노하고 있다. 물론 상황이 이렇게 변한 것엔 당연히 그럴만한 이유들도 있다. 육아의 중요성이 점점 더 강조되고 있는 동시에, 혼인률과 출산율이 점점 낮아지는 상황에서 아이들은 과거에 비해 부모로부터 훨씬 더 귀한 대접을 받게 된다. 또한 일부 몰지각한 선생들과 아이들로 인해 벌어진 끔찍한 사건들은 부모들에게 '혹시 내 아이에게도 저런 일이 생기면 어쩌지'라는 걱정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하다.
인생에서 리스크를 마음먹은 대로 완벽하게 통제한다는 건 불가능한 일이다. 문제는 그것을 알면서도 가능하다고 믿는 사람들이 점점 더 많아진다는 것이다. 불가능한 것을 자꾸만 가능하다 믿으면서 이루기 위해 시도하면 어떤 일이 발생할까? 본인을 포함해 자신이 이루고자 하는 목적과 연관된 모든 사람들이 힘들어진다. 어떤 부모라도 "내 아이가 상처받지 않았으면 좋겠다"라고 생각하는 건 당연하다. 하지만 그것이 과해져 "내 아이가 아주 조금의 상처라도 받지 않았으면 좋겠다"가 된다면 어떻게 될까. 소위 '극성부모' 또는 '진상부모'로 변질된다. 그러면서 아이를 포함해 아이와 관련된 모든 사람들을 쉴 새 없이 들들 볶는 것이다. "내 자식을 위해"라는 아주 그럴듯한 명분을 가지고 말이다.
더 큰 문제는 그들 자신이 그런 사람이라는 걸 인지하지 못한다는 것에 있다. 사람들은 자신이 '옳은 것'을 믿는다고 생각하지만 그건 큰 착각이다. 나를 포함해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이 믿고 있는 것을 옳다'라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자신의 행동을 지적하는 사람들을 이해하지 못한다. 오히려 자신의 행동을 방해한다고 여기거나, 그들이 자신처럼 행동하지 못하기 때문에 자신을 질투한다고 여긴다. 많은 사람들은 '그들이 잘못한 걸 알지만 자존심이 상하기 때문에 뻔뻔하게 군다'라고 생각한다. 물론 그런 경우도 있을 수 있겠지만 개인적으론 그것과 정반대인 경우가 더 많다고 생각한다. 사람들이 그들을 손가락질하고 욕해도, 정작 그들은 자신이 무엇을 잘못했는지조차 모르는 것이다.
상처를 받지 않을 수 있다는 건 좋은 말처럼 들린다. 하지만 우리는 상처받은 경험을 통해 성장한다. 자신의 한계를 체득하고, 같은 상처를 받지 않기 위해 어떻게 행동하면 좋을지 깨닫기도 한다. 또한 서로가 받았던 비슷한 상처의 경험을 공유하며 타인과 소통하기도 한다. 이것을 바꿔 말하면 한 번도 상처받지 않았다는 건 자신의 한계를 마주한 적도, 성장의 기회를 잡은 적도 없다는 것이다. 내가 가장 아끼는 사람이 보다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는 기회 자체를 박탈하는 것을 과연 사랑이라 부를 수 있을까.
암에 걸리지 않기 위한 노력과, 감기에 걸리지 않기 위한 노력은 다를 것이다. 암과 감기가 각각 가진 위험도가 다르기 때문이다. 자식을 생각하는 마음도 이처럼 구분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이가 커다란 상처를 받지 않기 위해 부모로서 노력해야 하는 건 당연하지만 감기조차 걸리지 않길 바라는 건 불가능하며, 그것이 자신의 욕심일 뿐이란 걸 스스로 알고 있어야 하는 것이다. '내 아이를 위해'라는 분노로 인해 정작 아이가 고립되고 점점 더 외로워진다면 그건 아이를 위한 걸까, 나를 위한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