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있는 시간이 길어진 후부터 가장 많이 드는 생각이 있다. 바로 '나다운 것은 무엇일까'라는 것이다. 다른 사람과 대화를 할 때도 그렇다. 상대방이 말해주는 상황과 비슷한 일을, 과거의 나도 겪었던 적도 있다. 상대의 말을 듣고 있으면 자연스럽게 그때의 상황이 마치 어제 겪은 것처럼 머릿속에 그려지기도 한다. 지금 떠올려보면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는 반면, '참 어렸구나'라며 나도 모르게 헛웃음이 나올 때도 있다.
회상이 끝나면 '현재의 나라면 그 상황에서 어떻게 행동했을까'란 생각을 해보기도 한다. 물론 그 당시에 내린 내 선택에 대해 후회하진 않는다. 하지만 '후회하지 않는다'는 말이, '만족한다'와 같은 의미인 것은 아니다. 어쨌든 오래 살수록 자연스레 쌓이는 삶의 경험치는 있을 수밖에 없지 않은가. 지금까지 쌓은 경험을 가지고 과거로 돌아간다면, 추후 그때를 돌이켜봤을 때 조금 더 만족스러운 선택을 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든다.
'나'에 대해 알아간다는 건 참 어렵다. 지금까지 내가 살아온 모든 행동이 '나'라는 사람을 대변하지만, 우리는 여러 가지 경험을 통해 기존의 '나'를 조금씩 바꿔가곤 한다. 아마 당신도 그렇듯, 우리는 스스로 내린 모든 선택을 100% 만족하며 살 수 없다. 마찬가지로 자신의 모습을 완벽하게 사랑하기란 매우 어렵다. 자신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게 왜 힘들다고 생각하는가? 사람마다 이유는 다르겠지만 내가 생각하는, 스스로를 사랑하는 게 힘든 이유는 자신이 봐도 용납하기 힘든 단점들이 사람마다 있기 때문이다.
연애를 하면 상대방을 위해 자신의 돈과 시간을 아끼지 않는 사람이 있다고 해보자. 연인이 자신을 챙겨주는 것보다, 자신이 연인을 위해 해주는 것이 더 많은 사람. 받는 것보다 주는 것이 더 편한 사람. 이러한 마음이 결코 나쁜 건 아니다. 오히려 칭찬받아야 마땅한 일이다. 하지만 이것이 연인이든, 친구든 오랫동안 반복되다 보면 상대방은 자연스럽게 그것을 받아들인다. 상대방이 나빠서일까? 아니다. 상대방 또한 당신에게 무언가를 주고 싶어 했지만, 당신이 그것을 거절했기 때문이다. 즉, 스스로가 관계에서 '을'임을 자청한 것이다. 또한 모든 사람이 이런 배려를 알아주는 건 아니다. 세상엔 착한 사람만 있는 건 아니니까 말이다.
어떤 관계에서든 이런 행동을 보이는 사람들은, 때로 '현타'를 느끼는 순간들이 찾아온다. 믿었던 사람에게 상처받고, 사랑하는 연인과 이별한 뒤 누구보다 아파한다. 사람이 힘들 땐, 온갖 부정적인 생각들이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는다. '내가 지금까지 잘못 살아온 건 아닐까' '사실 내가 믿었던 게 틀렸던 걸까' '왜 사람들은 내 이런 마음을 몰라줄까' 자신의 인생을 뒤돌아보며 후회하고, 자책하며, 독한 마음을 먹기도 한다.
이런 감정을 느끼는 순간, 당신에겐 선택할 수 있는 두 갈래 길이 있다.첫 번째 길은 지금의 나를 유지하는 것. 두 번째 길은 지금과는 다르게 행동해보는 것. 이 두 가지 길 중 어떤 길을 걸을지는 당신의 선택이다. 하지만 여기서 내가 말하고 싶은 건, 어떤 길을 걸을지는 자유지만 그 길을 어떤 마음으로 걷는지도 매우 중요하다는 것이다.
앞선 예시로 돌아가 보자. 타인에 대한 배려가 너무 지나쳐서 상처를 받는 사람이 있다. 이 사람에게도 두 가지 선택지가 있다. 지금 자신의 모습을 유지하면서 배려심 있는 사람이 되는 것과, 전보다 배려심을 줄이고 실속을 챙기는 것. 두 선택 모두 각자의 장단점이 존재한다. 전자의 경우엔 종종 같은 이유로 상처받겠지만, 자신의 배려를 알아주는 사람과 만나면 엄청난 시너지가 발생하게 된다. 후자는 자신을 바꿔야 한다는 힘듦이 있지만, 전과 달리 관계에서 상처를 덜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어떤 선택을 하던 스스로 감내해야 할 부분은 항상 존재하기 마련이다.
만약 이 사람이 현재의 '나'를 유지하기로 선택했다고 해보자. 충분히 그럴 수 있는 일이다. 지금까지의 삶을 돌이켜봤을 때, 비록 누군가에게 상처받을 때도 있었지만 그래도 타인을 돕는 기쁨이 좋다는 등의 구체적인 이유가 분명하다면 나도 할 말은 없다. 그런데 이런 자기 성찰이나 객관화 없이, '내가 나를 사랑해야지'라는 두루뭉술한 말을 하는 사람을 보면 화가 난다.'지금까지 이렇게 살았는데 어쩌겠어', '그래도 나는 이런 내가 좋아'와 같은 이유를 들며 그대로 살겠다고 한다면, 굳이 말리진 않을 것이다. 하지만 장담하건대 그런 사람들은 분명 비슷한 상황에서 또다시 상처를 받으며 살아갈 것이다.
스스로 느끼기에 정말 별로인 모습이 있다면, 그 모습까지 왜 사랑해야 하는가? 아니, 애초에 그런 모습까지 사랑한다는 게 가능한 일인 건가 싶다. 당신 눈앞에 꿈에 그리던 이상형에 부합하는 사람이 나타났다고 해보자. 모든 게 완벽한 그 사람의 유일한 단점은, 말을 할 때마다 욕을 한다는 것이다. 당신은 그런 사람과 연애를 하고, 결혼할 수 있겠는가? 당신이 그 사람에게 그 점을 지적하자, 그 사람은 당신에게 이렇게 말한다. "날 사랑한다며? 그럼 이런 내 모습까지 사랑해줘야 하는 거 아니야?"
단지 '나'이기 때문에 자신을 사랑해서는 안된다고 감히 말한다. 내가 봐도 사랑할 만큼 충분히 괜찮은 사람이라서 '나'를 사랑할 수 있는 것이다. 괜찮은 사람이라는 건 완벽한 사람을 뜻하는 게 아니다. 애초에 사람은 완벽할 수 없다. 내가 생각하는 매력적인 사람은, 자신의 단점을 감추거나 허세로 덮으려는 게 아니라 그것이 단점이라는 걸 스스로 인지하는 동시에 고치려고 노력하는 사람이다. 그리고 그런 사람만이 시간이 흘러 진정으로 자기 자신을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 된다고 믿는다. '사랑하는 척'이 아닌, 진심으로 자신을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 되기를 바라며 이만 글을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