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에게 군대에서 목표를 물으면 그냥 무난히 대답하는 말이 있다. '아프지 않고 몸 건강히 전역하는 것'이다. 부모님과 연락을 해도 그렇다. 다치지 말고 건강하게 잘 마치고 오라는 말씀을 하신다. 하지만 그게 말처럼 쉽지만은 않다. 기본적으로 우리가 군에서 하는 것들이 정적인 작업보다는 동적인 활동이 훨씬 많고, 사회에서 하지 않던 것들을 하다 보니 익숙하지 않아서 발생하는 사건사고조차 비일비재하다. 그러다 보니 사실상 외진을 간다고 해도 항상 인원이 없는 적이 없고, 게다가 의병전역(의가사 제대로 알려져 있는) 혹은 현역부적격심사를 받는 경우도 꽤나 발생한다. 오늘의 이야기는 '군대에서 아플 때'이다.
군대에서는 '외진'이라는 것을 가게 된다. 사단이나 여단의 직할부대는 군의관이 계시기 때문에 의무반이나 의무대에 가서 진료를 받으면 되지만, 대대는 그렇지 못한 경우가 많기 때문에 의무반/의무대로 가거나 또는 군 병원을 가게 된다. 그렇게 외진을 가게 되면 일과는 없어지고 이동하는 거리도 꽤 되기 때문에 하루를 녹일 수 있다는 표현을 쓰기도 하며 외진을 다녀온 인원들에게 '꿀빨러(꿀 빠는 사람)' 소리를 시전 하는 것은 당연지사. 그중에는 고정적으로 자주 외진을 다니는 사람들도 있기 마련이다. 정신건강의학과 혹은 정형외과나 신경외과가 그런데, 그 이유는 대충 짐작이 가겠지만 하루 이틀 가는 정도로 이 사람의 건강상의 문제가 해결될 수 없기 때문이다. 정기적으로 다녀야 하므로 그런 것이다. 그러면 어떤 사람들은 말한다. '외진 자주 다니고 환자로 열외 같은 것도 할 수 있으면 완전히 그냥 군대에서 꿀 빨다 오는 거 아니냐?'라는 말. 글쎄다. 사람들에 따라서 그렇게 볼 수도 있긴 하겠지만 내 대답은 전혀 동감할 수 없다고 말할 것 같다.
사실 필자인 나의 경우에도 아프고 싶진 않았지만, 이런저런 이유로 외진을 다니기도 했고 지금도 그렇다. 사람이 아플 수 있는 경로가 굉장히 다양한 것은 누구나가 아는 사실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저런 환자가 발생하는 것이고, 군에서도 그건 변하지 않는 사실이다. 예를 들면 사회에서부터 정신적 질환이 있었다거나(물론 필자는 근데 왜 이런 사람들마저 현역을 보내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 가장 간단한 감기나 자주 걸리는 증상들, 아니면 발목을 접질린다거나 인대가 늘어난다거나 하는 경우도 많다. 필자도 인대의 경우이다.
어떤 이유에서든 아프게 되면 부모님의 마음은 이미 찢겨나간 지 오래. 아들이 아프다는 데 그렇지 않을 부모가 누가 있겠나 싶겠지만 국가가 데려간다고 맘대로 데려가 놓고서 아들에게 갑자기 온 연락이 아프다는 연락이면 얼마나 서럽겠는가. 그래서 내가 더 조심하려 했던 것도 있지만 사실상 그게 가능했으면 이미 아프지 않았을 것이고 사고라는 것은 불시에 생기는 것이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군대에서 다치는 사람은 나오지 않을 수 없는 구조이다. 애초에 사회에서 하지 않던 것들을 하게 되다 보니까 다칠 확률은 더욱 비약적으로 높아진다고 볼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이렇게 아픈 사람에 대한 시선은 시간대마다 바뀌게 된다. 특히 이 군대라는 집단에서는 더 그러하다. 시간 순서대로 이 문제를 나열해 보자. 일단 갑작스러운 사고 혹은 실수로 인해 인원이 다치게 된다. 그 즉시 사람들은 걱정을 하게 된다. 주변에서 달려와서는 괜찮은지 묻고, 이 인원을 도와준다. 부축이 필요하면 부축을 도와주고, 군의관님을 모셔오거나 상관을 모셔온 다음 이동할 수 있게 한다. 이후에 이 인원이 긴급하게 외진이든 의무반/의무대가 되었든 다녀오고 나면 생활관에서도 다시 걱정해 주면서 인원을 도와준다. 처음에는 그렇다. 결과적으로 다치고 아픈 사람이 아닌가. 그러면 도의적으로 이 사람에 대해 걱정해 주게 되는 것이 인간으로서의 기본적인 태도가 되는 것이다. 그건 이 세상 그 어느 곳을 가도 동일할 것이다.
이 사람에게는 이제 다음 날부터 '환자'라는 타이틀이 붙게 된다. 아픈 사람이기 때문에 작업이나 활동적인 무언가에서는 다 환자 열외를 시키게 된다. (물론 아픈 곳과 전혀 연관되지 않은 부분에 대해서는 해줄 이유가 없으므로 그렇게 빠질 일이 없다.) 처음에는 이것도 모두 당연한 순리로서 먼저 나서서 주변 사람들이 빼주기도 한다. "너 아픈데 이거 할 수 있겠어?" 라든가, "환자니까 얘 열외 해야 하는 거 아니냐?"라는 말이 먼저 나온다.
정말 감사한 일이 아닐 수 없다. 특히 아플 때 선임분들이 도와주거나 간부님들께서 신경 써주시면 감사한 마음과 함께 죄송한 마음도 든다. 자신의 부주의였든 아니든 간에 아프게 되어 나로 인해 이 사람이 신경을 써 주어야 하고 그게 당연한 것도 아닌데 도와주는 것도. 그렇게 조금 편의를 누리면서 이 사람에게 가장 많이 나오는 말은 '괜히 뭐 하려고 하지 말고 몸조리 잘해서 빨리 쾌유할 수 있게 해'라는 말이다. 아프고 나서 한 1주 정도까지는 그러하다.
하지만 2주 차 이후 정도가 되면 주변 사람들에게서의 태도가 확연히 바뀌는 것을 볼 수 있다. 정말 내가 뭔가를 한 것도 아니고 누군가가 나에 대한 악담을 퍼트렸다거나 한 것도 전혀 아님에도 주변인들의 태도가 이유도 없이 갑자기 확 바뀌어 있다. 이제 주변 사람들에 대해 이 사람의 인식은 '환자'보다는 '아픈 사람'에 가깝다.
잘 이해할 수 없을 것 같기는 하다. 환자나 아픈 사람이나 같은 거 아니냐고 물을 것 같기 때문이다. 그런데 내가 환자와 아픈 사람이라는 말을 구별해서 쓰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기본적으로 환자라는 말은 언제 사용하는가? 이 사람이 아픈 것을 확연하게 알 수 있고 구분할 수 있을 때 사용한다. 겉으로 보기에도 이 사람이 아픈 것을 인지할 수 있을 때. 또는 의사와 같이 공신력 있는 사람에 의하여 이 사람이 아픈 상황임을 인지했을 때. 그럴 때 환자라는 단어를 사용할 수 있다.
그러면 아픈 사람은 무엇인가? 일단 아픈 것은 맞다. 환자와 동일하다. 그러나, 정말 아픈지 확신할 수 없다. 일단 본인은 아프다고 하지만 이게 정말 아픈 건지 아닌지 알 수 없다. 이게 사람이 2주 차쯤이 되면 주변 사람들에게 가장 많이 듣는 말이 ‘아직도 아프냐’라는 말이다. 이제 슬슬 너의 증상 정도만 나을 때가 된 것 같은데 아직도 아픈 것이 정말 맞냐는 의심에서 비롯된 말이라고 볼 수 있겠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사람이 환자로서 열외 하는 일과가 몇 개였겠으며 영향을 받는 기간이 얼마나 되었을 것인가. 주변 인물들로서는 물론 아프고 싶어서 아픈 것은 아니겠지만 이 사람 한 명으로 인해 자신에게 돌아오는 추가적인 작업량이나 그가 환자기 때문에 도와줘야 할 것들도 많기 때문에 부담이 느껴지기도 할 것이다. 게다가 이 사람이 정말 지금까지 아픈 것인지, 아픈 것을 위장하여 계속 같은 것을 아프다고 질질 끌고 있지만 정말 아픈 건 아닌 상황일지 누가 알 수 있겠는가? 사실상 이건 의사도 알 수 없는 것이다. 본인 스스로의 양심에 걸린 문제기 때문이다. 특히 간부님들은 그런 인물들을 많이 봐왔을 것이고 선임들도 비슷하게 동일한 이유에서 의문이 들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합리적 의심’인 것이다.
하지만 그 합리적 의심이 항상 옳은 것은 절대로 아니기 때문에 정말 장기간 아픈 사람으로서는 이 의심의 눈초리가 억울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그래서 더 서러운 것이다. 아픈 것도 서러운데, 안 낫는 것도 짜증 나고, 병원도 제때 바로 갈 수도 없고, 그렇다고 일과를 완전히 다 빼면서 호전할 수도 없으며, 주변에서 언제 낫냐고 의심과 독촉의 말까지 들어야 한다는 것.
이것이 군대에서만 그런 것은 아니다. 사회에서도 그런 눈초리는 있기 마련이다. 아프다고 해서 회사를 다니는 사람들이 갑자기 막 쉴 수 있는가? 병원 다녀오는 정도만 할 수 있어도 다행인 수준이 아니겠는가? 아파서 일의 능률이 떨어지면 그건 또 그거대로 본인에게 손해가 있을 뿐이다. 게다가 병원을 이유로 출근을 늦게 한다거나 퇴근을 일찍 하는 것도 본인 마음대로 되는 것도 아니다. 그러다 보니 주말까지 병원 가는 것을 늦추는 경우도 많고 결국 초기에 잡지 못하고 병이 커지기도 한다.
우리 사회는 생각보다 아픈 사람에 대한 시선의 허들이 높다. 아픈 것은 걱정되고 신경이 쓰이고 잘 호전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기본적으로 생기지만, 여기에 생업 혹은 일이나 의무가 들어가게 되면 그들의 생각은 어느샌가 빠르게 사라진다. 아픈 것을 아프다고 할 수 없는 불편한 현실만이 자리 잡을 뿐이다. 어떤 이유에서 그런 것인지는 이해한다 하지만, 그래도 말 한마디라도 따뜻하게 해 줄 수 있지 않을까. 몸조리 잘해라, 건강 잘 챙겨서 호전됐으면 좋겠다는 말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