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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테 Jul 06. 2024

걸그룹을 누구보다 잘 알게 되는 그 이름 '군인'

삶의 또 다른 원동력을 발견하다

주변의 현역병 복무 중인 친구들에게도 물어보면 군대 내에서 사람들은 많은 것이 바뀐다. 운동을 잘 못하던 친구들은 병 진급 평가를 위해 운동을 하다 보니 팔 굽혀 펴기나 윗몸일으키기, 달리기 실력이 늘기도 하고 장롱면허였던 친구는 운전병이 되어 최고의 운전사를 꿈꾸고 있다. 책을 좋아하는 친구는 개인정비 때마다 수많은 책을 읽어 굉장한 독서광으로 발전했고, 특별히 뭔가가 없다고 해도 각자의 병과에 대한 전문적 지식이 늘기도 한다.


그런데 여기, 조금 특별해 보일지도 모르는 사안이 있다. 이 친구는 입대 전에는 연예인에 대해서는 전혀 몰랐던 친구였다. 정말 유명한 걸그룹, 보이그룹이 아닌 이상 알지도 못했고 관심도 없었다. 그런데 그 친구에게 최근 연락이 와서 오랜만에 얘기를 하다 보니 나오는, 그 친구에게 들을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 한 이야기.


"야, 너도 (걸그룹 이름) 좋아하냐? 나는 요즘 (멤버 이름)가 그렇게 좋더라고"


그렇다. 오늘 해볼 이야기는, '군대에서 알아가는 걸그룹 지식'에 대한 이야기이다.




사실상 걸그룹과 연예인을 일반인이 알게 되는 경우는 많지 않다. 관심을 가지지 않으면 그 유명한 BTS(방탄소년단)도 모르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그룹명 정도는 들어봤다고 할지 모르겠지만 그룹 인원의 이름은 매우 생소하게 느낄지도 모른다. 그게 당연하다. 소위 '덕질'이라고 부르는 문화는 한 연예인 혹은 그룹을 좋아하게 된 사람이 그들이 나오는 영상이나 방송을 보고 그들이 부른 노래를 듣는다거나 앨범을 사는 등, 관심이라는 요소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그러면 사람들은 이상하게 여길 수밖에 없다. 관심이 없으면 연예인에 대해 알아볼 필요도 없고 그들이 나오는 무언가를 볼 이유도 없는데 도대체 왜 군대에 가면 없던 관심이 생긴단 말인가? 나 역시도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군대라는 환경 자체가 그 관심을 만들어주게 될 것이라고는 나 역시도 전혀 몰랐다.


내 동기도 연예인과 걸그룹에는 정말 거리가 먼 친구다. 오히려 애니메이션과 게임에 관심을 가졌으면 가졌지, 지금 글의 주제가 되는 내용과는 정말 일말의 관계성도 없었다고 한다. 걸그룹 중에서 굉장히 유명하다는 '블랙핑크'와 '에스파'의 노래조차 구분하지 못할 정도였으니 그 정도를 대충 가늠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내 동기는 에스파의 신곡을 찾아보며, 뮤직비디오를 보면서 이번 헤메코(헤어/메이크업/코디)가 잘 어울린다느니 하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


그렇다면 내 동기, 그리고 내 친구가 군대에서 왜 걸그룹과 연예인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을까?




파블로프의 개 실험에 대해 알고 있는가? 이반 페트로비치 파블로프가 한 널리 알려진 실험으로, 고전적 조건형성(Classical conditioning)에 대한 실험이다. 그 내용은 이러하다.


우선 애완견에게 먹이를 안 주고 종소리만 울려 본 결과는 아무 반응이 없다. 그 후 애완견에게 먹이를 줄 때마다 작은 종을 울려서 소리를 낸다. 이것을 오랫동안 계속한다. 그러던 어느 날, 먹이도 주지 않고 종만 울려 봤는데 놀랍게도 이 상황에 개는 처음에 무반응이었을 때와는 달리 주인이 먹이를 주는 줄 알고 침을 질질 흘렸다고 한다. 이런 실험 방법을 통해 파블로프는 '조건 반사'를 발견하게 되었다.


고전적 조건형성이라 불리게 되는 이 현상은, 훗날 스키너에 의해 조작적 조건형성(operant conditioning)이 주창되며 한 단계 발전한다.

결국 이 실험이 하고 싶은 이야기는 즉 앞으로 닥쳐올 일에 대한 기대감 혹은 불안감에 의해, 유기체가 향후에 벌어질 일을 나름대로 예측하고 대비하려는 것이라는 얘기다. 좋은 일인지 나쁜 일인지는 상관이 없다. 이 실험 자체는 사실상 좋은 이미지는 아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파블로프의 개'가 언급되는 것은 세뇌당한 상황을 비유하는 경우가 더 많다.




그렇다. '세뇌'. 그것이 바로 그 원인이다.


군인의 하루 일과 상에서 TV는 꽤 자주 접하게 된다. 기본적으로 핸드폰을 받는 시기는 지금 우리 부대에서는 평일 기준 일과를 마친 17시 30분부터 20시 30분. 그 외 시간대에는 생활관에 있을 수 있다면 시간을 보낼 가장 좋은 여가생활 중 하나가 TV인 것이다.


그러다 보니 사람들은 TV를 켜게 되고, 거기서 자연스레 리모컨의 주도권은 후임층보다는 선임층이 된다. 그런데 이 사람들은 습관적으로 이전의 선임이 그러했듯 뮤직비디오나 음악방송을 켜서 시청한다. 그러다 보면 후임들은 자연스레 이 루틴에 익숙해지고 처음에는 그냥 별 반응이 없다고 해도 이후에는 본인들도 찾아보게 될 정도가 된다.


그런데 굳이 20대 남성들이 주로 복무하는 군대라는 집단에서 보이그룹을 볼 이유는 무엇이 있겠는가. 아이돌을 보게 된다면 걸그룹을 보는 것이 우리의 상식선으로도 합당할 것이다. 결국 이 군인이라는 사람들은 복무기간 약 1년 6개월(현재 기준) 동안 걸그룹이라는 요소에 반복적인 접근을 하게 되어 결국 관심이 반복에 의해 후천적으로 형성된다.


문제가 되는 건 아니다. 건전하고 좋지 않은가? 노래는 삶의 활력소가 되어준다. 지루한 일상에 힘이 되어주기도 하고 노동요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일을 할 때도 흥얼거리게 되기도 한다. 기분전환의 역할을 해 주는 것이다. 그리고 좋아하는 연예인이 있다는 것 역시 그 사람을 보면 마음이 편해지고 기분이 좋아지는 등 긍정적인 효과로 작용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래서 군대를 전역하고 나서도 이때의 걸그룹을 좋아했던 기억을 가지고 계속 덕질을 하게 되기도 하고, 다른 그룹의 노래를 들어보며 음악을 듣는 것에 관심을 가지게 되기도 한다는 이야기다. 놀라울 만큼의 음원 차트 역주행을 보여준 브레이브걸스, 군인들은 모를 수 없다는 걸그룹으로 알려진 프로미스나인을 비롯해 현재 일반적으로도 잘 알려진 에스파, 아이브 외 수많은 걸그룹들이 지금 이 순간에도 군대 내에서 열심히 현역 복무 중에 있는 수많은 군인들에게 활력소가 되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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