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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테 Jun 29. 2024

통신병이 언제부터 전자기기 수리기사였습니까?

"통신병 1명은 빠르게 위치해 주시기 바랍니다"

통신병이라고 하면 주로 사람들은 무엇을 떠올리는가. 일반적으로 통신이란 말을 우리가 사용할 일이 보통 사회에서는 많지 않아서 거창한 것을 생각할지 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들의 주된 임무는 늘 같다. 전투상황을 가정하고 병과를 부여하는 현재 군대에서 우리 통신병들은 말 그대로 교신의 원활함을 보장하기 위해 노력한다.


전투상황이 된다면 스마트폰이 쓸모가 없다. 당장 전화 하나조차 제대로 못 주고받을 것이다. 그렇다고 무전기를 들고 다닌다고 해봐야 교신거리가 얼마나 가능하겠는가. 그래서 군용 통신장비가 여럿 있는데, 이들을 활용/정비/관리하는 것이 통신병의 임무 되겠다. 육군 특기번호 기준으로 정보/통신 분야에 해당하는 야전가설병/상용위성장비운용병 등의 보직 우리와 같은 통신병으로 불리는 인원에 해당하겠다.


사실상 우리는 부대 규모가 그렇게 큰 편이 아니기 때문에 통신병들 간의 구분은 없다. 보직구분은 있지만 통신소대 내에서 함께 같은 일을 하고 있다. 하지만 여기에서 하고 싶은 말은 이 이야기가 아니다. 제목 그대로, 우리는 전자기기 수리기사가 아니라는 것이다. 왜 이런 말을 하게 되었냐 하면 전국의 통신병들이 한숨을 쉬며 내 말에 공감할 것이다.




뭔가 잘라야 할 일이 있는데 아무것도 없다면, 통신병을 쳐다봐보자. 높은 확률로 니퍼를 들고 다닐 것이다. 군사시설에 대한 언급은 피하더라도 '니퍼'에 대한 말은 할 말이 굉장히 많다.


우리는 특히 기본적으로 UTP케이블(랜선)을 자주 다루게 되는데, 그 이유도 좀 터무니없는 것이 컴퓨터 고장을 통신병을 찾기 때문이다. 소프트웨어적이든, 하드웨어적이든 어떤 문제 든 간에 찾는다. 물론 폐쇄적 인트라넷 시스템을 사용하기 때문인 것도 이해는 하지만, 그렇다고 이거까지 우리를 찾나 싶은 경우도 생겨서 굉장히 당황스럽다. 거의 컴퓨터 수리기사다.


아무튼 피복을 빠르게 벗겨내서 사용 가능하게 만드는 갓이 중요하므로 통신병들의 대다수는 니퍼 사용이 능숙해야 할 필요가 생긴다. 힘이 조금만 세면 선이 툭 하고 잘릴 것이고, 약하면 잘리지 않고 자국만 남는다. 물론 몇 번 해보면 능숙해지지만 그렇지 않으면 랜선 하나 따달라는데 몇십 분 걸리면서 욕먹기 십상이다.


야전선은 더 끔찍하다. 잘 안 잘린다. 능숙함이 부족하다면 힘만 죽어라 주다가 손만 굉장히 아파지는 놀라운 일이 발생한다. 말 그대로 '개고생' 스타트. 야전선은 니퍼 사용에 숙달되지 않았을 경우 벗길 수 없다고 보는 게 타당하다. 악력과 밀어내는 방향을 잘 맞추는 것이 중요한데, 무식하게 힘만 줘서는 준 힘이 모두 손아귀에 반사되어 손만 굉장히 아프다. 설령 이 고통을 참고 피복을 벗겨냈다 하더라도, 야전선 안에는 장력 유지를 위한 강선실질적 신호가 흐르는 약선이 있는데 능력 없이 마구잡이로 하려 한다면 안의 약선이 끊어져서 다시 다 잘라내고 벗겨야만 한다.


고작 피복 벗기고 선 자르는 거가 뭔 대수냐 할 수도 있겠지만, 만약 전쟁이 일어난 상황에서 연락이 안 되고 기계장치를 사용할 수 없으면 어떻겠는가. 그런데 통신병들이 이 속도가 느리거나 능숙하지 못해서 실수를 많이 하고 선이 찝히거나 잘못해서 단선된 부분이 있다 해보자. 지휘소의 구성이 늦어지고, 연락수단의 사용이 늦어지고, 상황전달 및 파악도 어려워진다. 부담이 크다. 그래서 야전가설병으로서 통신의 역할은 중요하다.




다른 역할이나 일은 둘째치고 이런 이유로 우리가 선을 다루기도 하다 보니 점점 이런저런 부탁들이 온다. 그 내용도 예상할 수 없는 것들이 말이다.


"프린터 새로 교체해야 해서 교체 좀 해줘"

"PC 새로 설치해야 해서 세팅 좀 해줘"

"이거 마우스가 갑자기 안되는데 좀 봐줘"

"모니터가 안 나오는데 뭐가 문제인지 좀 봐줘"


물론 외부의 컴퓨터 사용과는 다르다고는 하지만, 이런 것까지 우리를 찾아야 하나 싶은 것들을 찾기 시작하면 정말 당황스럽고 답답하다. 하지만 일개 병사가 거부할 일이 뭐가 있겠는가. 그저 가서 확인해 볼 뿐이다. 한글 프로그램의 작동 오류도, 파일 깨짐으로 인해 확인이 불가한 것도, 특정 프로그램이 잘 작동하지 않는 것도... 통신병들이 점점 할 일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통신병 군대썰이라는 얘기를 들으면, 사람들이 하는 반응이 있다. 사회와 집에서 컴퓨터를 쓰는데 어떻게 저걸 모르냐, 그렇게 과장해서 썰을 풀어도 되냐라는 반응이다. 근데 전혀 과장한 것이 아니다. 평소에 들어본 적 없으면 '전문용어'가 되고, 직접 보니 알 것 같으면 간단한 일로 '유세'부리는 것이 된다. 다른 병사들이 볼 때는 특성상 각 병과 사무실의 컴퓨터나 장비를 정비할 일이 많다 보니 작업에서 빠지는 일도 많고 해서 '안에서 일하는 꿀 빠는(속어. =편한 일 하는)' 사람들이 된다. 그러다가도 잘 모르겠는 게 나오면 또다시 모르쇠. 너네 일 어렵더라...


그런 인식 속에 하루하루를 보내간다. 결국 국방부의 시계는 좋든 싫든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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