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연극 연출가가 마을데이터 이야기를 쓰게 되었는가
1. 왜 연극 연출가가 마을데이터 이야기를 쓰게 되었는가
나는 연극 연출가다. 그래서 마을을 처음부터 정책이나 행정의 대상으로 보지는 않았다. 숫자와 지표로 재단하는 방식도 아니었다. 대신 사람들의 움직임과 멈춤, 갈등과 침묵이 반복되는 하나의 무대로 보아왔다. 연극에서 무대는 배우보다 먼저 말을 건다. 공간의 크기, 조명의 방향, 출입구의 위치는 이미 어떤 행동을 유도하고 어떤 행동을 막는다. 꽃동네 역시 그랬다. 이 마을은 이미 많은 것을 말하고 있었고, 나는 그 말들을 마치 연극의 한 장면처럼 받아 적어 왔다.
꽃동네에서의 일상은 늘 그런 장면들의 연속이었다. 공연이 시작되고 15분 만에 경찰이 도착하던 날, 누군가는 소리를 질렀고, 누군가는 국수를 내어주었으며, 대부분은 아무 말 없이 그 자리를 지나쳤다. 어떤 날은 환영이 있었고, 어떤 날은 노골적인 불편함이 있었다. 이 상반된 반응들은 개인의 성격 차이라기보다는, 마을이라는 공간이 외부의 개입을 받아들이는 태도에 더 가까워 보였다.
나는 그 장면들을 오랫동안 기록해 왔다. 그러나 그것을 설명할 수 있는 언어는 늘 감각의 영역에 머물러 있었다. “이 동네는 이렇다”는 말은 충분히 진실했지만, 동시에 너무 추상적이었다. 공감을 얻을 수는 있어도, 반복되는 문제를 함께 고민하게 만들지는 못했다.
꽃동네는 작고 조용한 마을처럼 보이지만, 그 안에는 분명한 구조가 있다. 205번 마을버스 한 대에 의존하는 이동 체계, 인도가 없는 길, 히치하이킹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노인의 몸, 카페 하나가 사실상 유일한 실내 공공공간으로 기능하는 현실. 이 구조는 어느 날 갑자기 생긴 것이 아니라, 오랜 시간 누적된 행정, 도시계획, 인구 변화의 결과다. 나는 이것들을 몸으로는 알고 있었다. 하지만 왜 같은 장면이 반복되는지, 어디까지가 개인의 사연이고 어디부터가 구조의 문제인지 말로 옮기진 못했다.
마을데이터챌린지는 이 지점에서 새로운 언어를 건네주었다.
2. 서사는 있었지만, 데이터는 없었다
꽃동네에는 늘 이야기가 넘쳐났다. 버스를 기다리다 누군가의 차를 얻어 타는 할머니의 하루, 신호등 하나를 건너기 위해 한참을 서 있는 노인의 몸, 공연이 시작되자마자 불편함을 표하는 이웃의 목소리. 이 모든 것은 충분히 강력한 서사였다.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서사는 종종 개인에게 귀속된다. “저분은 원래 그렇다”, “저 동네는 원래 불편하다”라는 말로 정리되기 쉽다. 그렇게 되면 문제는 개인의 성격이나 태도로 축소되고, 구조는 배경으로 밀려난다. 나 역시 연출가로서 이야기를 만드는 데 익숙했다. 그런데 장면이 반복될수록 무력해졌다. 몇 년째 되풀이되는데, 내가 내놓는 설명은 늘 제자리였다.
예를 들어, 꽃동네의 이동 문제는 늘 ‘불편하다’라는 말로만 전달되었다. 하지만 그 불편함이 누구에게, 어떤 시간대에, 어떤 방식으로 집중되는지는 명확히 드러나지 않았다. 그래서 문제는 늘 공감의 수준에 머물렀고, 구체적인 개입으로 이어지기 어려웠다.
나는 알게 되었다. 이 마을에는 이야기가 부족한 것이 아니라, 이야기를 구조로 번역하는 언어가 부족하다는 것을.
3. 다른 언어를 배우는 시간
마을데이터 챌린지는 내가 익숙하지 않은 방식으로 마을을 바라보게 했다. 공공데이터를 찾고, 사회 이슈와 관련된 데이터를 읽으며, 숫자와 지표를 통해 마을을 다시 보게 되는 과정은 연출가로서의 직관과 자주 충돌했다. 나는 장면은 쉽게 단순화될 수 없다고 생각해 왔기 때문이다. 무대 위의 한 장면은 늘 맥락과 관계를 전제로 한다.
데이터 작업을 계속하면서, 오히려 장면이 더 또렷해지는 경험을 했다. 숫자는 추상이 아니다. 반복의 증거였다. 여러 해 동안 목격해 온 장면들이 우연이 아니라는 점, 그리고 특정 조건 아래에서 집중적으로 발생하고 있다는 점이 드러났다.
AI를 활용한 글쓰기와 시각화 과정은 이 전환을 가속했다. 기술 그 자체보다 인상 깊었던 것은 접근 방식이었다. 데이터 분석은 전문가의 영역이라는 막연한 인식과 달리, 이 작업은 질문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시도해 볼 수 있는 실험에 가까웠다. 중요한 것은 정답이 아니라, 어떤 질문을 던지느냐였다.
이 과정에서 나는 데이터가 연극 대본의 지문이나 등장인물 소개처럼 기능할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대본은 모든 것을 말하지 않지만, 장면이 발생할 조건을 설정한다. 데이터 역시 마찬가지였다.
4. 꽃동네의 장면을 데이터로 다시 읽기
꽃동네에서 반복되는 장면들을, 데이터를 통해 다시 배열했다. 버스를 기다리는 시간은 불편의 문제가 아니라 교통 접근성의 문제로, 히치하이킹은 개인의 선택이 아니라 비공식 이동과 돌봄 구조로 읽혔다. 카페 꽃동네는 제도 밖에서 작동하는 공공공간의 역할을 하고 있었다.
이렇게 장면을 구조로 옮겨 적자, 질문의 방향도 달라졌다. “왜 저분은 늘 기다릴까”가 아니라, “왜 이 동네에서는 기다림이 기본값이 되는가”라는 질문으로 이동한 것이다. 이는 책임을 개인에게서 떼어내어 환경과 제도로 돌리는 중요한 전환이었다.
데이터는 마을을 거리 두고 보게 만들지만, 동시에 새로운 질문을 만든다. 무엇이 수집되지 않았는지, 어떤 관계가 빠져 있는지, 숫자로는 드러나지 않는 긴장과 침묵은 어떻게 기록할 것인지. 이 질문들은 다시 현장으로 돌아와, 마을을 바라보는 시선을 바꾸었다.
5. 데이터는 중립적이지 않다
마을데이터 작업을 하며 한 가지가 분명해졌다. 데이터는 결코 중립적이지 않다. 어떤 지표를 고르느냐에 따라 마을은 활기찬 공간이 되기도 하고, 소외된 지역이 되기도 한다. 디지털 지도에서 멈춰버리는 꽃동네의 경계는 행정과 서비스가 어디까지 닿는지를 보여준다.
그래서 마을데이터에서 중요한 것은 기술의 정교함보다 질문의 출발점이다. 현장을 모르는 데이터는 삶에서 멀어진다. 반대로 현장을 오래 경험한 사람이 만드는 데이터는 거칠더라도 구체적인 문제를 드러낸다.
6. 연출가가 데이터를 다룰 때 생기는 가능성
연극 연출가는 늘 장면과 장면 사이의 맥락을 고민한다. 보이지 않는 관계, 말해지지 않은 긴장, 반복되는 동선을 읽어내는 일에 익숙하다. 이 감각은 데이터 해석에서도 그대로 쓰였다. 수치와 그래프 뒤의 이유를 다시 현장의 언어로 옮길 수 있었다.
마을데이터챌린지에서 가장 기억에 남은 건, 주민과 활동가들이 스스로 질문을 만들고 자기 마을을 다시 보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완성된 결과물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과정에서 남은 질문과 관점이었다.
7. 공연이 끝난 뒤, 갈 곳이 없다는 사실에 대한 데이터 적 근거
― 몰락한 상권을 찾는 방법의 실제 적용 사례
꽃동네에서 공연을 마치고 나면 늘 같은 질문이 나온다.
“다들 수고했다. 뒤풀이해야지! 이제.... 어디 갈까?”
이 질문은 선택지를 두고 고민하는 질문이라기보다, 이미 선택지가 거의 없다는 걸 모두가 알고 던지는 말에 가깝다. 걸어서 갈 수 있고, 공연 인원이 함께 들어갈 수 있으며, 밤에도 문을 열고 있는 호프집은 손에 꼽힌다. 그래서 우리는 늘 같은 곳으로 가거나, 아예 다른 동네로 이동한다.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동선의 문제다.
이 체감을 확인해 보기 위해 경기상권분석 서비스의 ‘상권 분기 종합분석 리포트(하금로)’를 살펴보았다. 숫자는 예상보다 솔직했다. 하금로 일대 선택 상권의 전체 점포 수는 최근 수년간 꾸준히 줄어 2025년 기준 18개만 남아 있다. 특히 눈에 띄는 건 개·폐업 지수다. 이 상권은 폐업 우위 상태로, 새로 들어오는 가게보다 문을 닫는 가게가 더 많은 흐름이 이미 고착되어 있다. 말하자면, 이 동네에서 가게를 여는 일은 용기가 필요하고, 닫는 일은 자연스러워진 것이다.
업종 구성 역시 이 체감을 뒷받침한다. 외식업 비중은 지속적으로 줄어들어 2025년 기준 16.7% 수준에 머물러 있고, 상권은 서비스업과 소매업 중심이다. 다시 말해, 저녁 이후 사람들이 모여 머무르고, 이야기를 이어갈 수 있는 공간은 구조적으로 줄어들고 있다는 뜻이다. 공연이 끝난 뒤 자연스럽게 이어질 ‘다음 장소’가 잘 생기지 않는 이유다.
매출 지표도 상황을 설명해 준다. 하금로 선택 상권의 점포당 평균 매출액은 약 2,430만 원으로, 경기도 평균이나 의정부시 평균에 비해 낮은 수준이다. 상권이 활기를 띠기보다는, 어떻게든 버티는 쪽으로 굳어지고 있다고 해석할 수 있다. 흥미로운 점은, 사람은 줄지 않았다는 것이다. 상존 인구는 오히려 증가 추세에 있다. 즉, 이 동네는 사람이 없어서 조용한 게 아니라, 사람이 있어도 머물 이유가 점점 사라진 동네에 가깝다.
이 데이터를 보고 나서야, 나는 우리가 공연 후 늘 같은 호프집을 반복해서 찾거나 다른 동네로 이동해야 했던 이유를, 데이터를 통해 설명할 수 있게 되었다. 그것은 취향의 문제가 아니라, 선택지가 구조적으로 사라진 상권의 결과였다. “분위기가 애매해서”가 아니라, 애초에 분위기가 생기기 어려운 조건이 쌓여온 지역이었던 셈이다.
이 사례는 내가 이 글에서 말하는 ‘마을데이터 활용’이 어떤 방식인지를 잘 보여준다. 데이터는 새로운 문제를 만들어내지 않는다. 대신 우리가 이미 겪고 있던 불편함에 이름을 붙이고, “기분 탓은 아니었다”라는 근거를 제공한다. 공연 이후의 뒤풀이조차 쉽지 않은 꽃동네의 현실은, 감상이 아니라 데이터로도 설명할 수 있는 구조적 상태였다.
8. 마을데이터 확산을 위한 제언
마을데이터는 문제 해결의 만능열쇠가 아니다. 그러나 문제를 보이게 만들고, 서로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이 대화를 시작할 수 있게 하는 힘은 가지고 있다.
첫째, 데이터는 주민의 언어에서 출발해야 한다.
둘째, 결과보다 과정이 축적되는 구조가 필요하다.
셋째, 예술가, 활동가, 주민이 함께 참여하는 혼합형 데이터 생산이 가능하다.
넷째, 데이터는 해결책 이전에 문제 인식의 공통 기반이 될 수 있다.
맺음말. 마을은 여전히 진행 중인 무대다
마을은 완성된 결과물이 아니라 장면이 계속 바뀌는 무대에 가깝다. 어떤 장면은 반복되고, 어떤 장면은 사라지며, 어떤 장면은 아직 이름조차 붙지 않은 채 남아 있다. 나는 연극 연출가로서 그 장면들을 감각으로 기록해 왔다. 하지만 감각만으로는 반복의 이유를 설명하기 어렵고, 구조를 함께 이야기할 언어도 부족했다.
마을데이터는 그 부족함을 메워준 도구였다. 데이터는 삶을 단순화하기보다는, 우리가 이미 겪고 있던 경험을 구조의 차원으로 옮겨 적게 해 주었다. 공연이 끝난 뒤 갈 곳이 없다는 사소한 불편부터 이동, 상권, 공공공간의 문제까지. 데이터는 “기분 탓이 아니었다”라는 근거를 제공했고, 마을의 문제를 개인의 사연이 아니라 함께 논의할 질문으로 바꾸어 놓았다.
이 글은 연출가가 데이터 전문가가 되었다는 선언이 아니다. 마을을 오래 바라본 사람이 글과 공연에 더해, 데이터라는 언어를 하나 더 얻게 된 기록이다. 나는 앞으로도 이 무대에서 장면을 기록할 것이다. 때로는 글로, 때로는 공연으로, 때로는 데이터로.
수요일엔마프 마을큐레이터 강현욱(프로젝트 산장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