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나지 않은 세월호 이야기
지난달, 한 지역 공동체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했다.
“그냥 편하게 이야기해 주세요~”라는 담당자의 담백한 제안으로 함께 했는데, 염려와 달리 너무 뜨겁지도 서늘하지도 않았던 그날의 온도는 글을 쓰는 오늘 날씨처럼 은은한 가을볕 같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한 평 남짓한 스튜디오에서 익숙한 듯 자리한 50대 중후반의 두 진행자는 아마 출연자가 긴장할지 모른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방송 전 가벼운 질문과 함께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내주었고, 방송이 시작되자 가벼운 웃음과 공감의 맞장구로 대화를 이끌었다. 목소리는 내내 온기가 느껴졌다.
한 시간여 진행된 방송에서 예닐곱 개 질문과 답이 오고 갔다. 나는 두 진행자와 몇 년 전 한 연구의 인터뷰로 만난 인연을 언급했다. 1) 그들은 당시를 어렴풋이 기억했고, 대화는 자연스레 깊어져 세 사람의 공통 관심사로 이어졌다. 그러던 중 던져진 한 질문이 잠시 나를 멈춰 서게 했다.
“최근 한 단체 청년들을 만났어요. 11년 전 참사 이후 큰 부채감 속에 살았다고 고백하더군요. 자신들의 책임이 아닌 걸 알지만, 어떤 이유에선지 그 일에 관해 말하는 것도, 유가족에게 다가가는 것도 어려웠다고요. 같은 세대 친구들의 참사를 목격한 자신들 역시 피해자인데 어떻게든 회복의 시간이 필요했다고요. 이런 아픔을 간직한 청년들에게 회복이란 어떤 과정이어야 할까요?”
화두와 같은 말에 두 사람을 바라봤다. 마치 ‘함께 고민하자’는 말로도 들렸다. 아니, 그들은 이미 어느 정도 답을 알고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래서였는지 대답을 듣기 전, 쏜살같은 몇 마디가 뒤따랐다. “이것도 연구를 하셔야겠네요. 우리 같은 사람들 뿐 아니라, 상처받은 또 다른 이들의 회복을 위해서도 애써주시면 좋겠어요”. “아. 네”. 나는 답했고, 몇 가지 말들이 오고 간 뒤 방송은 마무리 됐다.
글을 읽는 많은 분들이 짐작했겠지만, 당시 출연한 방송은 안산공동체 라디오 단원FM이다. 프로그램명은 ‘끝나지 않은 세월호 이야기’. 이날 70회를 맞았으며, 출연자를 환대했던 두 진행자는 세월호 참사 유가족 김순길, 박정화 씨다. 2)
끝나지 않은 이야기
‘끝나지 않은 세월호 이야기’. 프로그램 제목을 처음 들었을 때, 사실 어떤 이야기를 할 수 있을지 고민했다. 11년이 흘렀고, 세간을 떠들썩하게 했던 다양한 갈등 이슈들이 이제는 잠잠해진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연구자로서 지난 몇 년 간 안산지역을 떠나 있었기에 조사나 분석에 기반하지 않은 언급을 한다는 것이 조심스러웠다. 그럼에도 출연을 결심한 건, 담당자의 말 때문이었다. “거창한 이야기가 아니어도 좋아요. 2014년 이후 어떤 활동을 해왔고, 지금은 어떤 일상을 살아가는지 편하게 전해주면 돼요”.
실제 그랬다. 거대담론 보다 참사의 아픔을 직접, 혹은 간접적으로 경험하거나 공감한 이들이 자신의 경험과 소회를 나누는 콘셉트이었다. 출연자들은 ‘2014년 4월 16일 무엇을 하고 있었고 세월호는 나에게 어떤 의미인가?’라는 공통질문을 받았다. 이외엔 각자의 활동과 그에 기반한 맞춤 질문을 바탕으로 매번 다른 방송을 만들어 냈다. 70회에 이르는 동안 세월호 유가족, 영화감독, 작가, 지역별 416연대 지회장, 지역 시민사회단체 활동가, 대학교수, 학생, 목사, 배우, 시민 등 다양한 사람들이 일상에서 실천했던 많은 활동이 프로그램을 통해 소환됐다. 이를테면 동네 광장에서 촛불을 든 일, 세월호 관련 북콘서트나 영화, 전시를 관람했던 일, 4.16합창단 공연장을 찾았던 일, 4.16 생명안전공원 건립을 위한 캠페인에 참여한 일, 마음 맞는 이웃과 모여 마을의 안전을 고민했던 일 등 말이다.
그 시간은 국가나 정부, 권위 있는 기관이 제공한 것이 아닌, 세월호 참사의 아픔에 공감하는, 말 그대로 ‘시민들의 시간’이었다. 그리고 소위 말하는 ‘공동체 회복’으로 가는 지난한 과정에서 서로가 마주하고 응원한 생생한 장면들이었다.
첫 번째 여정: 지역사회가 주도한 ‘공동체 회복 프로그램’ (2015~2022년)
만약 사회적 참사를 소재로 <끝나지 않은 이야기>라는 제목의 소설을 쓰게 된다면 첫 장은 ‘아픔에 대한 공감’으로, 마지막 장은 ‘어떤 회복에 관하여’로 쓰고 싶다. 그리고 안산 지역의 현재 모습을 이 소설에 빗대면, 첫 장을 지나 지금은 후반부 어디쯤 자리하지 않을까 싶다. 그동안 지역사회의 고심과 수고, 노력들이 켜켜이 쌓여왔기 때문이다.
세월호 이후 안산의 첫 번째 여정을 들여다보자. 안산시는 세월호 참사 이듬해인 2015년 세월호 희생자가 집중된 3개 동(고잔1동, 와동, 선부3동)을 중심으로 마을공동체 사업을 추진했다. 참사 초기 주민들이 보여준 이타심과 돌봄, 애도가 바로 공동체의 모습이었기에 이를 단단하게 지켜가겠다는 취지였다. 시 산하 전담 TF인 희망마을사업추진단을 통해 진행된 사업은 2017년부터 ‘안산시 공동체 회복 프로그램’이란 이름으로 바뀌었고, 이때 안산시 전체를 세월호 피해지역으로 설정했다. 이 과정에서 지역 안팎 여러 주체들이 함께했는데, 시민사회단체와 유관기관, 직능단체, 주민공동체, 청년기업가 등이 공모사업이나 보조금 지원 방식을 빌어 자신들의 특성을 담은 프로그램을 기획, 실행했다. 3)
공동체 회복 프로그램은 총 155개 세부사업이 추진됐다. 특히 초기 몇 년은 희생자 배·보상 문제, 기억교실 이전, 선체 인양, 4.16 생명안전공원 건립 등의 이슈로 지역 내 갈등이 극에 달했던 시기여서, 사업의 초점을 유가족에 대한 시민들의 공감과 이해 수준을 넓히는 데 두었다. 이를 위해 5가지 유형(마을살이 활동 지원, 세월호 이슈 기반 지역 혁신, 사회적 갈등 치유 및 소통 증진, 공동체 회복활동 지원, 미래세대 성장 지원)으로 세분화해 사업을 추진했다.
대표 프로그램을 꼽자면 유가족의 회복과 자립을 도모한 ‘4.16공방’이 있다. 상실의 아픔을 공예체험을 통해 해소하는 것이 당초 목적이었으나 점차 유가족의 실력이 늘며 상품 판매와 전시활동까지 나아갔다. 몇 년 전부터는 4.16희망목공소, 4.16가족극단 노란리본, 4.16합창단, 4.16가족나눔봉사단 등 유가족의 다른 활동들을 ‘4.16늘풂학교’라는 이름의 교육과정으로 묶어내, 지역 청소년들에게 세월호의 가치를 함께 전하고 있다. “그동안 손을 내밀어준 시민들에게 보답하고 싶다”는 유가족의 바람이 실현된 셈이다. 4)
‘이웃과 함께 밥 한 끼 합시다’는 유가족협의회와 고잔동 주민자치회가 손 잡은 프로그램으로, 유가족과 주민들이 함께 식사하며 세월호의 의미를 이야기하고 참사의 아픔을 치유로 전환하는 시작점이 됐다. 또 유가족과 마을리더, 주민, 지역 시민사회단체가 만나 머리를 맞댄 ‘이웃 릴레이 간담회’ 역시 세월호 이후 다양한 지역 이슈를 공동체란 이름 아래 논의하는 중요한 자리가 됐다.
이와 함께 단원고를 포함한 주요 장소를 배경으로 기획한 ‘거리 연극’, ‘마을정원 관리’, ‘마을장소 기록화’, ‘4.16시민교육’ 등 프로그램은 생명·안전의 가치를 전승하기 위한 기억공간의 보존 필요성을 알게 해 주었다. 이 밖에 축제와 공연, 소풍 등을 통해 시민들이 세월호를 만나고 희망을 이야기하도록 독려한 프로그램들이 있다.
2019년 진행된 관련 연구 5)를 통해서도 성과는 드러난다. “회복 사업이 지역 공동체 회복에 도움이 됐다”는 조사문항에 참여 주민의 67.4%가, “사업을 통해 지역 주민을 이해·포용하게 됐다” 문항에 주민의 60.8%가 각각 ‘긍정’ 답변을 했다. 단체 활동가 역시 효과를 실감했다. “회복 사업이 지역 공동체 상처 치유 및 회복이 도움 됐다”는 물음에 응답자의 68.0%가, “사업이 지역사회 갈등 해소를 위한 해법 마련에 도움이 됐는가”란 질문에 60.0%가 각각 ‘긍정’ 응답을 보였다.
두 번째 여정: 지역사회가 그려갈 ‘생명·안전 시민운동’ (2023년~)
앞서 살펴본 대로 세월호 이후 회복과정의 전반부가 지역의 아픔을 치유하는 것이었다면, 그다음은 지역사회가 ‘생명·안전 가치’를 자신의 정체성으로 만들고 실천하는 ‘시민운동화’ 단계다. 일종의 홀로서기가 필요한 시점인 것인데, 실제 2022년을 끝으로 정부와 도 예산 지원이 종료됐고 시 산하 전담 TF인 희망마을사업추진단도 2024년 말 문을 닫았다.
이에 416안산시민연대, 416재단, 안산마음건강센터 등 지역 시민사회단체와 기관, 주민조직들도 머리를 맞대고 다음 스텝을 고민 중이다. 우선 기존 시민 참여 프로그램에 공을 들이고 있다. 특히 올 초 착공한 4.16생명안전공원이 주민들의 환영 속 2027년 초 무사히 개관하도록 유가족과 시민, 청년, 예술가들이 참여하는 ‘4.16생명안전공원 시민문화제’를 매년 차질 없이 열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4.16생명안전공원은 희생자에 대한 애도와 함께 세월호의 기억을 공간을 매개로 흔들림 없이 잡아주는 역할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역 활동가도 인터뷰에서 이런 점을 명확히 밝힌 바 있다.
“추모공간 조성은 피해자의 권리이자 국가의 당연한 책무여야 합니다. 그것이 통용되는 사회가 될 때, 사회적 참사 이후 어김없이 반복되는 추모공간을 둘러싼 갈등과 대립, 혐오와 차별이 상당 부분 해소될 거라 믿습니다.” 6)
이와 함께 안산 시민의 쉼터인 화랑유원지를 4.16km씩 걸으며, 지역사회의 공감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시민동행 캠페인 ‘4.16별빛걷기’도 빼놓을 수 없다. 매년 4월 열리는 ‘기억문화제’ 역시 ‘기억의 힘으로 열어가는 새로운 세계’라는 슬로건에서 보듯 전환의 가치를 담고 있고, 안산 민예총과 함께 지역 곳곳에서 공연을 펼치는 ‘4.16기억버스킹, 16일에 만나요’ 역시 꾸준하게 진행되고 있다.
무엇보다 향후 지역의 밑그림을 그리는 중심에 시민이 자리하고 있다는 점이 고무적이다. 대표사업이 바로 4.16안산시민연대가 2027년까지 추진하는 <생명안전도시 안산 만들기 프로젝트>로, ‘시민 참여와 민관 거버넌스 형성을 통한 생명·안전 우선의 회복력 있는 도시 기반 구축’이 목표다.
첫해인 올해는 ‘시민운동 주체 형성과 역량강화’를 세부과제로 삼았는데, 지난 8월 말부터 열린 ‘안산생명안전포럼’을 통해 생명안전도시 비전을 상상하기 위한 열띤 학습이 이어지고 있다. 자리에 함께하는 안산지역 노동, 여성, 장애인, 청소년, 이주민, 청년, 청소년 등 다양한 주체들은 포럼 종료 뒤 후속 모임을 통해 안산 전체를 조망하는 생명안전운동은 물론 각자 자리에서 바라보는 안전의제를 도출할 계획이다. 7) 또 지역사회 내 영역별 단체들이 각기 고유 안전의제를 중심으로 실천 경험을 쌓아온 만큼, 앞으로 적극적으로 협력해 시너지를 낸다는 목표다.
회복으로 가는 첫걸음으로서 공감
세월호 참사 이후 안산 지역이 지나온 여정은 사실 전례를 찾기 어렵다. 참사로 250여 명이 한순간에 희생된 점, 희생자가 집중된 동을 포함해 안산 지역 전체를 피해지역으로 설정한 점, 잇따른 갈등 이슈로 지역 내 극심한 갈등이 반복된 점, 이런 가운데 정부와 지자체 지원을 마중물 삼아 지역사회가 회복사업을 추진한 점, 게다가 지역의 민·관 주체들이 ‘공동체 회복’이란 공통 목표를 향해 한 목소리를 낸 점 등 다양한 특징이 있다. 그리고 한 가지 더하면, 위 시간을 겪은 주체들 중 다수가 앞으로도 공동체란 이름으로 지역에서 함께 살아가게 된다는 점이다. 참사의 아픔에 공감하는 단계를 지나 생명·안전 도시로 전환을 모색 중인 안산의 지난 11년 간 경험을 온전히 기억하고 기록해야 하는 이유다.
그렇다면 앞으로 안산 지역의 회복 과정은 어떤 모습일까? 해답을 명쾌하게 내놓으면 좋겠지만, 세월호 이후 지역에서 벌어진 다양한 갈등 양상과 국면을 돌이켜 봤을 때 누구도 쉽게 상상하기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안산 지역 주체들이 보여준 다채로운 활동과 그 속에서 만들어진 협력의 모습이 가리키는 바는 비교적 선명하다. 그것은 바로 회복은 피해자 개인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라 지역사회가 함께 풀어야 할 몫이며, 누구나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피해자일 수 있음을 인정하고 공감하는 것이 시작이라는 점이다.
이 글의 처음으로 돌아가 보자. 단원FM ‘끝나지 않은 세월호 이야기’ 출연 당시 진행자가 소개한 세월호 세대 청년의 고민과 질문이 다시 떠오른다. ‘알 수 없는 부채감에 스스로 세월호 세대임을 이야기할 수 없음에도, 참사의 피해자라는 자각이 공존하는 우리들에게 과연 어떤 회복이 필요할까?’. 첫걸음은 바로 피해자인 이들의 슬픔, 분노, 절망, 상실과 같은 감정을 함께 느끼는 일일 것이다. 그리고 이 공감은 분명 다양한 방식의 연대활동으로 확산될 수 있다. 안산에서 각양각색의 ‘공동체 회복 프로그램’을 저마다의 손으로 펼쳐낸 것처럼 말이다.
참사가 그러하듯 참사 이후 회복의 모습도 모두 다를 것이다. 무엇을 회복이라 불러야 할지도, 그 회복이 도래하는 순간도 쉽게 알기 어렵다. 그래서 더더욱 회복의 단초로서 ‘공감’의 중요성과 필요성에 주목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때문에 나는 언제, 어떻게 도래할지 모르지만 불현듯 일상의 평온을 찾게 되는 순간, 또는 그 순간을 위해 노력하는 과정을 일컬어 ‘어떤 회복’이라 부르고자 한다. 그리고 앞으로 안산 지역 주체들이 그려갈 생명안전도시의 밑그림에 주목하며 회복으로 가는 장면들을 상세히 기록하려 한다.
1) 필자는 2019~2020년 ‘안산시 공동체회복 프로그램 운영 성과 평가’ 연구에 참여했다. 연구는 세월호 참사 이후 정부 지원으로 진행된 안산 지역 공동체 회복 프로그램의 성과를 정리하고 확산 모델을 도출하는 것을 목표로 했다.
2) ‘끝나지 않은 세월호 이야기’는 2022년 11월 11일 첫 회를 시작했다.
3) 「세월호 피해지역 공동체 회복을 위한 희망마을 기획사업 활동기록」(안산시, 2016)
4) [보도자료] 세월호참사의 아픔을 나눔으로…4.16늘풂학교(4.16재단, 2020년 11월 23일)
5) 「안산시 공동체 회복 프로그램 성과 평가 연구」(희망제작소, 2019)
6) “안산에서 시작된 시민안전운동의 새로운 도전-4.16안산시민연대 인터뷰”(4.16청년기자단 5기 블로그)
7) 4.16청년기자단 5기 블로그
수요일엔마프 마을큐레이터 김현수(사회혁신연구소 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