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문화의 과거, 현재, 미래: 브래드포드와 안산

마을 4.0 새로운 마을을 여는 제안

8,800km 떨어진 두 도시가 있습니다. 한 도시는 영국 요크셔의 브래드포드, 다른 한 도시는 경기도의 안산입니다. 얼핏 두 도시는 지리도, 문화도, 역사도, 사는 사람들도 다릅니다. 하지만 두 도시는 모두 한적한 시골마을에서 시작해 산업화의 영광과 쇠퇴를 맛봤습니다. 그리고 두 도시 모두 쇠퇴의 빈 곳을 이주민으로 채웠습니다. 다만 브래드포드는 안산보다 훨씬 빨리 결과를 확인했습니다. 브래드포드의 사례를 통해 안산에서 생길 수 있는 일을 고민하고 더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해 봅니다.


• 시작 - Bradford, Yorkshire

영국의 요크셔 지방을 아시나요? 네, 그 귀여운 요크셔테리어와 억센 요크셔 억양으로 유명한 지역입니다. 이 요크셔에는 오늘 이야기할 브래드포드(Bradford)라는 도시가 있습니다. 브래드포드는 런던에서 북서쪽으로 280km 떨어져 있고, 그 유명한 맨체스터와 “리즈 시절”로 유명한 리즈 사이에 있는 도시예요.


도심 인구만 35만 명이고, 인근 지역까지 포함하면 약 55만 명에 달하는데요. 인구 기준으로는 무려 리버풀, 에든버러, 본머스, 카디프, 뉴캐슬보다 크다고 하니, 인구로는 영국에서 좀 알아주는 도시인 셈이죠.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브래드포드에 사는 이유는, 이 도시가 한때 세계 양모 산업의 중심지였기 때문입니다. 이곳은 스코틀랜드를 포함한 영국 북부 지역에서 나는 양모를 수집해, 인근의 풍부한 석탄과 깨끗한 물로 양모를 가공하기에 최적의 조건을 갖춘 곳이었다고 합니다.


1800년에 6,000명이 살던 이 마을의 좋은 입지를 처음 알아본 건 독일계 유대 상인들이었어요. 1820년대, 유럽 전역에서 극심한 차별을 받던 유대인들이, 그나마 덜했던 영국으로 이주하며 브래드포드에 정착합니다. 이들이 만든 거리에는 지금도 “Little Germany”라는 이름이 남아 있죠. 자본과 방직 기술을 함께 들고 온 이 유대인들이 산업화를 이끌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1840년대에는 아일랜드인들이 이주해 오기 시작합니다. 이들은 도심 한복판에 자리 잡은 “Irish Quarters”에 모여 살면서, 브래드포드의 성장에 노동력으로 기여합니다.


이렇게 브래드포드는 양모 산업을 위한 천혜의 자연환경에 산업혁명의 추동력, 유대인의 자본과 기술력, 그리고 아일랜드인의 노동력까지 더해지며, 말 그대로 폭풍 성장을 거듭합니다. 1850년, 인구는 어느새 10만 명을 넘었고, 70여 개의 대형 공장이 돌아가기 시작합니다.


이 공장들은 당시 사람들에게 “Dark Satanic Mills”로 불렸습니다. 이 표현은 시인 윌리엄 블레이크(William Blake)의 「예루살렘」이라는 시에서 따온 말인데요, 노동자 인권 따위는 안중에도 없었던 산업혁명기 공장들을 비판하는 상징적인 표현입니다. 매연을 내뿜고, 어린아이까지 혹사하던 그 시절의 공장들 덕분에, 당시 브래드포드 주민의 평균 기대수명은 겨우 18세였다고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도시에서는 끊임없이 양모 제품이 생산됐고, 브래드포드는 마침내 “세계 모직 산업의 수도(Wool Capital of the World)”로 불리게 됩니다.

image.png [사진 1] Bradford Wool Exchange, 출처: 위키피디아

이후에도 양모 산업의 성장세는 멈추지 않았습니다. 1887년, 브래드포드 울 거래소(Bradford Wool Exchange)가 개장하면서, 브래드포드는 생산뿐 아니라 양모 거래의 중심지로까지 확장됩니다. 이쯤 되면 브래드포드는 단순한 산업도시를 넘어, 유럽에서 가장 부유한 도시 중 하나로 손꼽히게 된 것이죠.


• 시작 - 경기도 안산

브래드포드가 성장을 시작한 지 거의 200년이 지난 1980년, 안산은 인구 3만 명 남짓한 경기도 반월지구출장소라는 이름의, 한적한 포구를 품은 시골 마을이었습니다. 당시 정부는 서울의 과밀 인구를 분산하고, 제조업 기반을 마련하기 위해 이곳에 반월국가산업단지를 조성하기 시작했죠.


이 산업단지는 포항제철이나 현대조선처럼 거대한 공장을 짓는 방식은 아니었지만, 수많은 중소 제조업체를 모아 “대한민국 산업의 전위기지” 역할을 맡기 위해 계획적으로 만들어졌습니다. 안산은 이 역할을 충실히 수행했고, 경공업과 조립산업을 중심으로 한국 산업의 한 축을 담당하게 됩니다.


1980년까지만 해도 소를 키우던 조용한 농촌이었던 이 마을은, 불과 한 세대 만에 공장과 노동자, 그리고 그들을 위해 지어진 성냥갑 같은 아파트로 가득한, 인구 75만 명 규모의 대도시가 되어버렸습니다.


• 쇠퇴 – Little Pakistan, Bradford, Yorkshire

영원히 성장하는 도시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브래드포드 역시 마찬가지였고, 절정의 시기도 서서히 사그라들기 시작합니다. 1920년대에는 무려 2,000개가 넘는 공장이 돌아가던 이 도시는, 불과 몇십 년 사이에 빠르게 무너져 내리죠. 1950년이 되자 절반 가까운 공장이 문을 닫았고, 영국인들은 더 이상 사양산업이 돼버린, 더럽고 힘든 양모 공장에서 일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image.png [사진 2] List Mill, 브래드포드에 남아 있는 방직 공장, 출처: 위키피디아

그 빈자리를 채운 건,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영국이 독립시켰던 파키스탄, 인도, 방글라데시 출신의 이주민들이었습니다. 이제 브래드포드의 방직 공장은 더 이상 영국인이 아닌, 남아시아계 이주민들에 의해 돌아가게 됩니다.


처음에는 대부분 단신 남성 노동자들이었지만, 1960년대 이후에는 이들이 가족을 데려오며 정착을 시작했습니다. 그들은 1830년대의 “Little Germany”, 1840년대의 “Irish Quarters”에 이어, “Little Pakistan”을 만들어 브래드포드 안에 또 하나의 커뮤니티를 형성합니다.


하지만 파키스탄 노동자들의 유입에도 불구하고, 브래드포드의 공장 몰락은 멈추지 않았습니다. 1975년이 되자 한때 2,000개를 넘었던 공장은 단 15곳만 남았죠. 그럼에도 이주민들은 어디로도 갈 수 없었습니다. 영국의 제조업은 이미 전반적으로 쇠퇴하고 있었고, 다른 지역도 마찬가지로 노동자를 필요로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결국 이들은 붕괴하는 도시 속에서 빈곤과 실업, 주거 문제에 맞서 싸우며, 대를 이어 브래드포드에 살아가게 됩니다.


• 쇠퇴 – 안산, 경기도

빠르게 성장한 안산은, 그만큼 빠르게 쇠퇴하기 시작합니다. 제조업 기반이 확장되던 전성기 시절의 안산은, 1997년 외환위기(IMF)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거치며 활력을 잃기 시작했죠. 제조업이 쇠퇴하고 공장들이 해외로 이전하면서, 짧았던 안산의 전성기는 그 성장 속도만큼이나 빠르게 끝나버립니다.


실제로 주민등록인구통계에 따르면, 2013년 이후 안산의 인구는 지속적으로 감소하고 있습니다. 2020년, 6,600세대 규모의 그랑시티자이 아파트 입주가 시작되며 한때 감소세가 멈춘 듯 보였지만, 그것도 잠시뿐이었죠. 한때 80만에 육박하던 안산시의 인구는 이제 62만 명도 되지 않습니다.


물론, 대한민국의 많은 지방자치단체들이 인구 감소와 소멸 위기에 신음하고 있는 건 사실입니다. 하지만 여전히 인구가 증가 중인 경기도 안에서, 충분한 생활 인프라를 갖춘 대도시가 이런 속도의 인구 감소를 겪고 있다는 점은 또 다른 충격입니다.


이렇게 한국인의 수가 줄어드는 동안, 안산에는 외국인의 유입이 꾸준히 이어집니다. 안산의 이주 역사로 거슬러 올라가 보면, 그 시작은 1990년대 중반입니다. 반월공단의 일손 부족으로 외국인 근로자들이 본격적으로 유입되면서, 안산은 외국인 노동자의 대표적인 거주지가 되죠.


브래드포드가 파키스탄계 남아시아 이민자와 그 후손 중심의 구조를 가졌다면, 안산은 훨씬 더 복합적입니다. 조선족과 중국인은 물론, 베트남, 캄보디아, 필리핀, 태국, 인도네시아, 네팔 같은 동남아시아 출신, 그리고 우즈베키스탄, 러시아 등 중앙아시아 국가에서 온 사람들까지, 무려 110개국이 넘는 국가 출신의 사람들이 함께 살아가는 도시가 되었습니다.


• 도시에 닥친 충격 – 1985년 브래드포드 축구장 참사

그렇게 점점 저물어가던 1985년 어느 날, 브래드포드 축구장에서 대형 참사가 발생합니다. 스탠드 아래 쌓여 있던 쓰레기 더미에서 시작된 화재는 삽시간에 번져, 관람객 56명이 목숨을 잃고 265명이 크게 다치는 비극으로 이어집니다. 이 사건은 이미 쇠퇴하고 있던 도시 전체에 깊은 집단적 트라우마를 남겼고, 지금까지도 매년, 매 경기마다 이들을 추모하는 일이 이어지고 있다고 합니다.

image.png [사진 3] 브래드포드 축구장 참사 추모비, 출처: 위키피디아

브래드포드시는 이 참사를 단지 과거의 사고로 묻어두지 않았습니다. 매년 5월 11일, 사고가 일어난 날이면 시민들과 유족, 축구팀 관계자들이 함께 모여 조용한 추모식을 열고, 희생자들의 이름을 한 사람씩 부르며 기억합니다. 경기장 한편에는 당시 사고를 기억하기 위한 추모 기념비와 정원이 조성되어 있으며, Bradford City AFC의 모든 홈경기에서는 지금도 묵념이 이어집니다. 도시 곳곳에는 “We will never forget 56”라는 문구가 새겨진 추모 배너가 걸려 있고, 희생자 유가족과 생존자들은 해마다 당시 경험을 나누는 인터뷰와 행사를 통해, 단지 ‘기억’이 아니라 공동체의 책임감과 회복력으로 이 사건을 되새깁니다.


• 도시에 닥친 충격 – 2014년 청진해운 세월호 침몰 사건

안산은 이보다 훨씬 더 큰 충격을 겪습니다. 인구 감소가 시작되던 무렵, 안산은 대한민국 현대사에서 가장 비극적인 사건 중 하나인 청해진해운 세월호 침몰 사고를 맞닥뜨립니다. 이 사고로 299명이 사망하고 5명이 실종됐습니다.


단원고등학교 학생 248명과 교사 10명이 목숨을 잃었고, 실종자 중에도 단원고 학생 2명, 교사 1명이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희생자의 대부분이 한 도시, 한 학교에 속한 청소년과 교사였다는 점에서, 이 사건은 단순한 사고를 넘어 도시 전체의 깊은 상흔과 집단적 슬픔을 남겼습니다.


• 폭동 – 1995 매닝햄 폭동과 2001 브래드포드 폭동

축구장 참사로부터 10년이 흐른 1995년, 브래드포드에서는 파키스탄계 이민자 집단과 경찰 사이의 충돌이 발생합니다. 축구를 하던 두 명의 청소년을 경찰이 무리하게 체포하려 했고, 그 과정에서 한 청소년이 집 안으로 도주합니다. 뒤따라간 경찰이 집 안에서 여성과 신체적 접촉이 있었다는 주장이 제기되면서, 이 사건은 파키스탄계 주민들에게 인종차별적 경찰 폭력으로 받아들여집니다.


지역 사회는 격렬히 분노했고, 결국 약 1,000명의 주민과 600여 명의 경찰이 충돌하게 됩니다. 이 과정에서 상점과 차량, 일부 공공시설이 파손되었고, 사건은 도시 전체에 긴장감을 퍼뜨렸습니다. 이 사건 이후, 파키스탄인 커뮤니티는 경찰을 극도로 불신하게 되었고, 인종적 갈등은 한층 더 고조됩니다.


폭력 사태 이후 주민 20여 명이 체포되었으나, 대부분은 증거 불충분으로 불기소 처분을 받습니다. 사건은 일시적으로 진정되는 듯 보였지만, 이후 발생할 2001년 브래드포드 폭동의 전조가 되었죠.


그렇게 불신과 절망이 쌓여가던 2001년, 브래드포드에는 National Front, British National Party 등 극우 세력이 집결합니다. 이들은 시위를 계획했으나 경찰이 이를 공식적으로 불허하자, 시위 대신 술집에 모여 있다가 거리로 나와 이슬람계 청년들을 공격하기 시작합니다.


이에 맞서 Anti-Nazi League와 아시아계 커뮤니티 청년들이 대응 집회를 조직했고, 이를 진압하려는 경찰과 또다시 물리적 충돌이 벌어집니다. 사태는 순식간에 격화되어, 아시아계 청년들은 경찰 본부를 비롯한 지역 공공건물에 화염병을 던지는 등 공격에 나서고, 극우 백인 청년들은 이민자들이 운영하는 상점, 주택, 차량을 무차별적으로 파괴합니다.


경찰은 한쪽으로는 극우 세력, 다른 한쪽으로는 분노한 아시아계 시위대와 동시에 충돌하며 사태를 수습하려 했습니다. 그 결과, 300명 이상의 시위대가 체포되었고, 이들 중 다수는 최대 11년형을 선고받게 됩니다.


이 폭동으로 인해 300명 이상의 부상자가 발생했고, 경찰 추산 약 200억 원 상당의 피해가 도시 전역에서 발생한 것으로 기록됩니다.


브래드포드 폭동은 아시아계 청년만의 분노는 아니었습니다. 백인 청년은 아시아 커뮤니티를 공격하고 반대로 아시아계 청년은 또 공공시설을 공격했던 사건이었습니다. 어느 한 커뮤니티만의 분노가 아니라 두 개의 커뮤니티가 서로 혐오 속에 서로를 공격했던 사건이었습니다.


< 브래드포드의 경험과 우리의 마을 >


브래드포드에서는 왜 이런 충돌이 일어났을까요? 영국은 브래드포드를 포함한 다수의 인종폭동 사건을 경험하고 캔틀보고서라는 보고서를 출판합니다. 여기서는 캔틀보고서와 함께 다문화와 관련된 다양한 의견들을 종합해 갈등과 충돌이 만들어진 원인을 마을과 공동체의 관점에서 살펴보겠습니다.


1. 서로 단절된 삶 - “Parallel Lives”

보고서가 가장 먼저 주목한 것은 지역 사회 내부의 단절과 분리였습니다. 보고서에서는 이를 “Parallel Lives(평행한 삶)”이라고 표현합니다. 같은 도시, 같은 구역 안에 살고 있어도, 경제적 수준, 주거지, 문화, 언어, 인종, 교육환경이 너무 달라 서로 전혀 교류하지 않는 삶을 살고 있다는 것입니다.


예컨대, 백인 주민과 파키스탄계 주민이 같은 거리에 살면서도 학교도 다르고 상점도 다르며, 일상에서 마주칠 일이 거의 없는 상황을 생각해 보면 이해가 쉬울 겁니다.


문제는 이런 단절이 단지 ‘서로 안 만난다’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 오해와 혐오의 발화점이 된다는 데 있습니다. 서로에 대해 잘 모르기 때문에 작은 갈등이나 자극도 쉽게 폭력적인 충돌로 이어질 수 있다는 거죠. 마주치지 않던 사람들이 갑자기 충돌하게 되는 상황, 그게 바로 브래드포드에서 벌어진 일이었다는 겁니다.


우리 마을은 어떤가요? 어쩌면 우리 마을도 이미 이런 경험을 오랫동안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마을 전체를 아우르는 공동체 의식은 이미 사라졌고 각자 도생하는 마을이 된 곳이 많죠. 거기다 활동하는 소수의 공동체는 더 이상 서로 소통하지 않습니다. 이들은 공간도 시간도 서로 나누어 쓰며 점점 서로 만날 기회가 줄어들고 있죠.


2. 통합할 사회적 가치의 부재

이와 연결되는 문제는, 서로 다른 커뮤니티를 하나로 묶을 수 있는 공통된 사회적 가치나 시민 정체성이 없었다는 점입니다. 보고서는 다양한 배경을 가진 주민들이 함께 소속감을 느낄 수 있는 공통의 언어, 규범, 책임을 갖고 있지 않다고 지적합니다. 말하자면, 단지 ‘같은 나라, 같은 도시, 같은 마을에 산다’는 것만으로는 공동체 의식이 형성되지 않는다는 거죠.


우리도 한번 우리를 살펴보면 좋겠습니다. 과연 우리는 우리 마을에서 함께 추구하는 무엇인가가 있을까요? 기후위기 대응이나 환경보호라는 가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여기에 당연히 동의하시나요? 아마 이 글을 읽는 많은 분들은 동의하시겠지만, 우리 사회는 아직 여기에도 동의하지 못한 것 같습니다.


아니라고 생각하시나요? 혹시, “용기내 캠페인”을 기억하시나요? “용기내 캠페인”은 식품류를 구매할 때 업소에서 사용하는 일회용 용기 대신 집에서 가져간 일반 용기에 식품을 담아 오자는 캠페인이었습니다. 기후 위기와 환경을 생각하면 굉장히 당연한 일인 것 같지만, 만일 이런 요구를 하면 주변 사람들에게 유별난 놈, 자기 혼자 잘난 놈이라는 시선을 받아야 했기 때문에, 음식을 담아갈 “용기” 말고도 나만 다른 통에 담아 달라는 요구를 할 “용기”도 필요했기 때문에 명칭이 “용기내 캠페인”이 됐다고 합니다. 너무나 당연한 기후 위기에 대처하는 행동을 하는 것조차도 사실은 서로의 눈치를 살펴야 할 수 있는 일인 것이죠.


한 마을에서 평행한 삶을 살지 않으려면 이런 큰 가치들에 대한 동의를 만들고, 함께 해야 할 일과 목표를 만들고 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작은 공동체들과 그 안의 개인들이 서로 소통하고 실천하고 서로를 격려해 나가야겠죠. 그것이 아마도 우리가 실제로 공존할 수 있는 최소한의 시작점이 될 것입니다. 공존은 말로만 선언해서 되는 일이 아니라, 공통의 책임과 연대, 그리고 실질적인 교류를 통해 만들어져야 한다는 겁니다.


3. 불평등의 지속과 이민자 2세·3세의 좌절

캔틀 보고서는 이민자 2세와 3세, 특히 남아시아계 청년들의 교육 기회 부족, 높은 실업률, 진로 불안정을 심각한 문제로 지적합니다. 이들은 영국에서 태어나고 자랐지만, 여전히 사회적 자원과 기회로부터 배제되어 있었고, 그로 인해 심리적 소외감과 분노가 쌓여가고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 백인 청년과 동일한 자격을 갖췄음에도 불구하고, 이름만 다르다는 이유로 면접에서 탈락하거나, 같은 직무에서 임금 차별을 겪는 사례가 빈번히 발생했죠. 보고서는 이런 상황이 지속된다면, 제2, 제3의 폭동은 불가피할 것이라고 경고합니다.


우리는 어떤가요? 우리는 다문화 청년은 고사하고 대한민국 청년들끼리도 금수저, 은수저, 흙수저로 나눠 서로 다른 기회 속에서 신음하는 나라가 됐습니다. 엄청난 사교육비와 오히려 이 사교육에 기생하는 공교육 덕에 우리는 이미 불평등하고 불공정한 기회 속에 청소년들을 던져 넣었죠.


이런 사회 속에서 이민자 2세는 어떤 경험을 하고 있을까요? 다들 아시겠지만, 이들이 많이 다니는 학교는 한국 학생들에게는 이미 기피 학교가 돼버렸습니다. 이들이 과연 교육과 사회진출에 있어 우리 아이들과 비슷한 대우를 받을 수 있을까요?


우리도 비슷한 경험을 하고 있습니다. 얼마 전 유튜브에 한 콘텐츠가 올라온 적이 있었습니다. 뭐, 사실 자세히 보지는 않았습니다만, 얼마 후에는 너 군대 가면 “응우엔” 병장님과 “밍하오” 소대장 아래서 구를 것이라는 내용이었죠. 그냥 씁쓸했습니다.


4. 기능하지 못한 지역 정치와 리더십

폭동의 배경에는 지역 정치의 부재와 커뮤니티 리더의 무능도 있었습니다. 보고서는 지방 정부가 지역 간 갈등을 통합하기보다는 방치하거나, 때로는 오히려 정치적으로 이용하고 있다고 지적합니다.


게다가 일부 커뮤니티 리더는 자신들의 영향력을 강화하기 위해 갈등을 조장하거나 침묵으로 동조하는 경우도 있었죠. 공적 리더십이 작동하지 않는 공동체에서는, 청년들의 분노와 불신이 제어되지 못한 채 거리로 표출될 수밖에 없습니다.


자, 우리는 지난 몇 년간 이 문제를 너무 명확하게 경험했고 지금도 그 결과를 보고 있습니다. 뭐, 우리나라는 지역 정치뿐만 아니라 중앙정치도 통합이 아닌 분열을 조장하고 이를 이용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죠. 그 결과 지난겨울 이후 우리는 정상적인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정말 일어나기 힘든 일들을 매일 보고 있습니다.


5. 청년의 배제와 세대 간 긴장

또 하나의 핵심 지적은, 청소년과 청년이 지역사회의 의사결정 과정에서 철저히 배제되고 있다는 점이었습니다. 보고서는 젊은 세대의 의견이 공론장에서 다뤄지지 않고, 교육과 문화시설에서도 이들이 목소리를 낼 기회가 거의 없다는 점을 우려합니다. 그 결과, 청년층은 ‘우리가 이 동네의 주인이라는 감각(영토 의식)’을 강하게 갖지만, 실제로는 권한이 없고 존중받지도 못하는 상황에 놓이게 됩니다.


이는 곧 세대 간의 긴장, 특히 부모 세대와 다른 사회 경험을 가진 청년들 사이의 갈등으로 이어지고, 결국 지역 내의 사회적 파열을 부추기는 원인이 됩니다.


자, 우리는 어떤가요? 우리는 청소년들에게는 “가만히 있으라”라고 여전히 말하고 있습니다. 너희들이 할 일은 공부지 참여가 아니며 정 하고 싶으면 나중에 대학 가고 어른 돼서 하라고 스스럼없이 말하고 있습니다. 몇몇 마을 공동체에서 청소년이나 청년들의 참여를 유도하고 있지만 여전히 부족한 실정이죠.


6. 낙후된 교육환경과 공공시설의 부족

이 보고서는 청년 소외의 구조적 배경으로 공공 인프라의 부재도 지적합니다. 특히 학교 시설은 낡고, 교육 여건은 열악하며, 다양한 문화적 배경을 가진 학생들을 포용할 수 있는 환경이 부족합니다. 아이들은 오래된 교실에서 공부하고, 문화차이를 이해할 기회조차 갖지 못한 채 ‘다름을 불편함’으로만 인식하게 됩니다.


이처럼 청소년기에 시작된 차별과 소외의 경험은, 사회 전체의 통합을 어렵게 만들며 결국 공동체를 분열시키는 요인이 됩니다.


그러면 우리의 학교는 어떨까요? 당장 우리들 주변 학교를 생각해 보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대한민국의 학교들은 주로 1960년대부터 80년대 초반까지 지어졌습니다. 이 시기 폭증하는 아이들의 교육을 위해 지어졌죠. 그 결과 우리 학교의 절반 정도는 지은 지 30년이 넘어버렸고, 심지어 40년 이상 된 학교가 전체 학교의 1/4을 넘습니다. 아이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이런 낡은 시설에서 미래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7. 차별과 혐오에 대한 강경 대응, 다양성의 실천

마지막으로 보고서는 인종차별적 발언, 혐오 표현, 차별 행위에 대해 단호하게 대응할 것을 요구합니다. 그리고 단지 처벌에 그치지 않고, 다양성을 긍정적 자산으로 인식하고 적극 장려하는 문화적 분위기를 만들어가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이는 단순한 정치적 수사가 아니라, 사회 통합의 실질적 조건이라는 거죠. 서로 다른 배경을 가진 이들이 함께 살기 위해서는, ‘다름’을 인정하고, 존중하고, 협력하는 구체적인 실천이 필요하다는 말입니다.


가끔 길을 걷다가, 혹은 스마트폰을 통해 청년들이 모이는 사이트나 잘 나가는 아이들의 SNS를 살펴봅니다. 이들에게 차별과 혐오는 너무나 일상이 돼버렸습니다. 아이들과 청년들의 언어 속에, 삶의 태도 속에 차별과 혐오가 너무 깊이 스며들어 아이들은 이런 이야기를 스스럼없이 하고 있죠.


< 마을이 해야 할 일 >

마을은 이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요? 다문화에 대한 문제는 단지 선주민과 이주민 사이의 관계에 대한 문제는 아닙니다. 이는 사실 우리가 자신이 속한 집단과 문화, 종교, 음식 등 무엇이라도 조금 다른 집단을 접할 때 나타나는 문제입니다. 다문화는 조금 극단적이고 격렬하게 드러나는 방식일 뿐, 우리가 훨씬 오래전부터 고민하던 지역감정이나 최근 들어 심각하게 나타나는 소위 진보와 보수의 대립, 경제적 수준이 다른 지역의 주민들을 볼 때 가지는 음습한 감정들도 일정 부분 유사한 맥락을 가진 문제일 것입니다. 그러니 결국 브래드포드와 안산은 이런 일들을 조금 더 빨리, 더 노골적이고 극단적으로 경험하고 있는 장소입니다.


이제 우리는 문제를 조금 더 깊이 살피고 해결을 위해 고민해야 할 것입니다. 끝으로 마을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들을 고민해 보려 합니다.


1. 생활 속 민주주의의 강화

마을이 해야 하고 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것은 생활 속 민주주의를 더욱 열심히 가르치고 경험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민주주의는 투표권을 가진 사람만 누릴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투표권이 없는 아이도 외국인도 대한민국의 민주주의 원칙은 동일하게 누릴 수 있어야 합니다. 이들의 의견도 지역 사회에 전달돼야 하고 지역 사회의 의사결정에 동등하게 반영돼야 할 것입니다. 이런 과정에서 서로 토론하며 상대를 이해하고 포용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민주주의는 자연스럽게 획득되는 것이 아닙니다. 누군가 희생하고 모두가 함께 학습할 때 민주주의는 건강하게 발전하고 그 결과가 모두에게 긍정적으로 분배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생활 속에서 튼튼하게 민주주의가 자리 잡을 때 마을공동체는 항상 차별과 혐오에 대해 단호하게 대응할 수 있을 것입니다.


2. 함께 나눌 희망과 가치 만들기 위해 공론장을 유지하고 토론하기

아마 브래드포드의 주민들에게 함께 노력하면 더 잘 살 수 있다는 희망과 그렇게 하기 위해 더 근면하고 정직해야 한다는 공유할 수 있는 가치가 있었다면 그토록 격렬한 충돌은 일어나지 않았을지 모릅니다. 건강한 공동체는 건강한 희망과 함께 추구할 좋은 가치를 지닌 공동체입니다.


서로 다른 공동체가 완전히 같은 희망과 가치를 가질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지역을 구성하는 대부분의 공동체가 일부만이라도 함께 추구할 수 있는 것이 있다면 이들의 통합을 유지하기는 훨씬 쉽겠지요. 이런 희망과 가치를 합의하기 위해 공론장이 필요하고 토론이 필요한 것입니다.


이런 측면에서 더 많은 마을미디어가 필요합니다. 이런 토론이 마을미디어를 통해 알려지며 마을의 담론이 되고 더 많은 사람들이 직간접적으로 토론에 참여할 때, 더 많은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희망과 가치를 만들 수 있을 테니 말이죠.

3. 커뮤니티 간 더 넓은 접촉면 만들기

외부와 단절된 마을공동체는 건강을 유지하기 어렵습니다. “Parallel Lives”는 단기적으로 공동체에 평안을 줄 수 있겠지만 장기적으로는 절대 이롭지 않습니다. 현대 사회는 이런 단절을 장시간 용납하기 어렵게 연결돼 있기 때문이죠.


그래서 서로 다른 마을공동체가 교류할 수 있는 다양한 사업을 적극적으로 지원해야 합니다. 아파트 단지의 오픈데이도 좋고, 내국인 거주 지역에서 열리는 다문화 축제도 좋습니다. 이왕이면 공동육아도 다국적, 다문화로 함께 하면 좋겠지요. 똑같은 고추와 상추만 기르는 텃밭도 좋지만, 온세계의 작물이 함께 자라는 텃밭을 가꿔도 좋을 것입니다. 그저 우리 기술만 나누고 가르치는 공방보다는 각기 다른 나라의 공예품을 만들 수 있는 주민들이 모여 서로 기술과 정체성을 공유하는 공방 같은 것도 좋을 것입니다.


무엇이건 서로 만날 수 있고 소통할 수 있다면 무엇이건 말이죠. 처음에는 어색하기도 하고 마찰이 있을 수도 있겠습니다만, 그래도 공동체가 계속 더 자주 만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4. 건강한 공동체 리더십 만들기

아이들의 통학로를 막는 아파트 공동체도 외부인을 배척하는 농촌의 마을공동체도 결정권을 독점하고 고일대로 고여 썩어버린 소수의 리더십이 만든 폐해입니다. 민주주의에서 변하지 않는 리더십은 공동체 전체를 서서히 부패하게 만들어갑니다.


민주주의에서 리더십의 발휘는 공동체 구성원 다수에게서 건강한 의견을 도출하고 이를 다수의 참여를 통해 실천토록 하는 과정에 있습니다. 마을공동체의 리더십이 잘 동작할 수 있도록 구성원은 끊임없이 감시하고 의견을 제시하고 열심히 참여해야 할 것입니다.


5. 어린이, 청소년과 청년에게 기회를

현재는 순간순간 사라지고 미래가 끊임없이 다가옵니다. 과거는 후회와 반성밖에 할 수 있는 것이 없지만 미래는 준비하고 만들 수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 마을의 미래를 만드는 것은 우리 주변의 아이들과 청소년 그리고 청년들입니다. 마을공동체는 이들에게 더 많은 참여와 실천, 변화의 기회를 줘야 합니다. 어린이 의회도 좋고, 청소년 주민자치회도 좋습니다. 이들이 더 많이 참여할 때 마을에 더 큰 미래가 열릴 것이니 말이죠.


안산과 브래드포드 모두 결국은 이주민이 만든 도시였습니다. 다만 도시가 성장하고 서로 나눌 수 있는 것들이 많던 시기에는 굳이 새로 도시로 유입되는 이주민을 배척할 필요가 없었죠. 이들은 모두 도시에 소중한 노동력이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하지만, 도시의 산업이 무너지고 도시 자체가 쇠퇴하면 이들이 부담스러워 보일 것입니다. 선주민들이 챙겨갈 것도 부족한데 이주민에게 나눠줄 자원은 당연히 없겠지요.


이들이 경험했던 문제는 대한민국 전체가 경험할 것입니다. 이제 대한민국의 경제는 더 이상 크게 성장하기 어려운 상황이며 인구 역시 감소하고 있으니 말이죠. 거기다 매년 많은 외국인 노동자가 한국으로 오고 있으니, 그들의 경험을 모두 하게 되겠지요.


그리고 이런 문제들은 국가에서 딱히 할 수 있는 일이 없습니다. 물론, 이민과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각종 제도를 정비할 수는 있겠지만 지역에서 이들이 선주민과 접촉하며 유대 혹은 갈등을 쌓는 과정 자체에 직접 개입하기는 어렵기 때문이죠.


이제 마을이 나서야 할 시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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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마을공동체지원센터 '수요일엔마프'



수요일엔마프 마을큐레이터 김산(프로젝트커넥트.C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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