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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부엉이 아빠 Feb 11. 2022

EP13. 공황장애, 우울증 이겨내기

부엉이 아빠 극복기 2편(완결편)

결론부터 말하자면 우울증은 완전히 극복했고, 공황장애는 증상이 거의 없는 상태다. 물론, 이 말하기조차 꺼려지는 병은 각 개인마다 원인도 다르고, 느껴지는 증상의 크기도 다르고, 치료법도 다를 것이다. 하지만 서로 공감하는 것만으로도 위로가 되고, 용기  수 있게 해준다. 누군가는 애타게 찾고 있을 극복방법에 도움을 드리기 위해 내가 겪어낸 원인 분석과 극복기를 천천히 적어보도록 하겠다.

(글이 길다. 급하신 분들은 스크롤을 내려서 주황색 하이라이트 1./ 2. / 3./ 만 찾아서 읽으시길 추천드린다)


이 챕터의 전편에서 말했듯 위험한 행동 직전까지 갔지만 지갑 속의 아내와 아이들의 얼굴, 그리고 웃고 있는 나를 보며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 정신이 번쩍 들었다. 지갑을 덮고, 가슴속에 다시 품고, 힘차게 일어섰다.


'나아질 거야, 나아질 거야' 의지력으로 뭉개던 "우울증"이라는 단어를 우선 검색창에 쳐 넣었다. 이제서야 검색하는 나를 보며 왜 검색조차 해보지 않았는지 의아했다. 아마 타자를 치는 것조차 숨기고 싶었나 보다. 여러 정보들과 영상들이 무지에서 양지로 나를 이끌었지만 그중 큰 불꽃을 튀겨준 영상 두 개를 소개한다.


출처:유튜브 "신사임당" https://youtu.be/p0TLaBoRuas

첫째로는 유튜브 "신사임당"에 출연한 정우열 정신과의사의 인터뷰 영상이다. 섬세하고 예민한 감정은 잘못된 감정이 아닌 상대방을 배려할 수 있는 높은 사회성이며 적절히 활용하면 좋은 사교성을 가질 수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이 감정의 치우침이 있기 때문에 인간관계에 어려움을 느끼며, 이 특별한 감정은 대부분 어렸을 때부터 외부적 환경 요인에 의해 억압되고 무시되는 경우들이 많다고 한다. 예를 들어 처음 본 상대방을 탐색하기 위해 조금 망설이는 것뿐인데 부모로부터 "너는 왜 그렇게 쭈뼛거리냐?, 잘 어울리지 못하냐?" 라며 핀잔을 듣고 "니 친구들은 저렇게 활달하고 인사도 잘하는데, 너는 왜 그러냐?" 하며 비교당하는 경우다.

이렇게 감정이 계속 짓눌리다 보면 패턴화가 되며 스스로 부족한 사람이라고 인식이 되어 상대방을 더욱더 배려하려고 한다고 말한다. 즉, 상대방과 나는 동등한 존재인데도 불구하고 상대방을 더욱 높이는 치우침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결국 스스로 나를 하찮게 만드는 결과를 초래하는 것이다.

 

출처:유튜브 "놀심" https://youtu.be/T1eleQ1cQeQ

또 다른 영상은 유튜브 "놀심"에 출연한 장성숙 극동상담심리연구원 소장의 인터뷰 내용인데, 예민한 사람들의 특징과 감정을 툭툭 털어내는 방법을 알려주고 있다. 가뿐히, 가뿐히 털어내지 못하고 꾹꾹 눌러 담다가 왜 한 번에 빵빵 터졌는지 알 수 있었다. 극히 공감 가는 영상이었다.

 

저자: 장석숙, 출판사:유나미디어

극 공감으로 인해 저서 "멍에를 벗아나기 위한 여정"도  바로 찾아봤다. 심리상담을 배경으로 한 명의 성직자가 예민한 성품이 형성되는 과정을 소설로 미세하게 표현하였으며, 그 번뇌하고 성찰해가는 과정에 매료되어 꽤 긴 소설인데도 불구하고 이틀 만에 독파 했다.


그럼 나는 어떨까?... 책을 덮으며 과거로 떠나봤다. 장손이니 잘 돼야 한다는 집안의 기대를 한 몸에 았고, 어린 나이인데도 불구하고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책임감을 가지고 삐뚤어지지 않으려고 노력하며 자랐다. 성적이 잘 나올 때면 부모님이 기뻐했기 때문에 나도 기뻤다. 때때로, 그 섬세한 기질의 아이는 기대하고 다가오는 친척들에게 인사하는 것조차 부끄러웠지만 용기 내서 크게 인사라도 하면 "남자가 목소리가 그게 뭐니?" 라핀잔을 받았다.

 

쭈뼛거림은 고등학교 동아리 활동을 하며 사라졌지만 풀리지 않는 감정으로 잠재해 있었을 것이다. 그렇게 상대방에 대한 배려가 내가 하고 싶은 것보다 대부분 우선시됐고, 점점 좋아하는 것과 하고 싶은 것을 잃어 갔던 것 같다.

 

과거 여행을 하며 허공에 있던 나를 좀 더 또렷이 잡을 수 있었다. 그리고 근 10년간은 잡지 않았던 팬과 수첩을 들고 짬이 날 때, 특히 출퇴근 시간에 나에 대해 적어보기로 했다. 도대체 어떤 원인들이 우울증을 유발시켰는지 말이다... 이 글을 적는 시점에 드는 생각인데, 그렇게 글로 적기 시작한 것은 아주 잘한 일 중에 하나라고 생각한다.


'끄적끄적'

1. 우울증 원인분석.

1) 업무에 대한 강박증이 점점 심해짐.

2) 예민한 성격에 비해 감정소비가 심한 업무를 함.

3) 미래가 즐겁지 않고 의무감만 충만한 채로 회사 생활을 함.

4) 내가 좋아하는 것과 하고 싶은 게 무엇인지 모르는 삶을 살고 있음.

(아래 원인분석에 대한 실예는 내용이 길고 지루하니 스킵하고 "2. 조치사항(극복방법)"으로 넘어가도 무방하다)


실예를 들어 9년이 조금 넘게 인사팀에서 일했다. 외국인 110명을 포함하여 현장직 약 180명을 관리했다. 상대방의 감정을 캐취 하는 능력이 높다는 것은 그전부터 알고 있었고, 그 능력은 5~6년 차 까지는 직무상 적합하다고 생각하고 업무에 매진했다. 하지만 치우친 섬세함으로 그 많은 인원을 배려하다 보니 여우같이 약삭빠르고, 능구렁이 같이 담을 넘어야 할 인사팀 전문가가 형평성과 공정성과 진실성을 핑계로 자괴감에 빠지는 일이 많았다. 목소리를 내는 현장직들의 부정적인 감정들을 내 일이 아니다 툭툭 털어내야 했지만, 적극 공감하고 받아들이다 보니 감정이 바닥나버리기 일쑤였다.

 

24시간 내내 돌아가는 현장직 특성상 수시로 교대자를 배치해줘야 하는데, 코로나 팬더믹이 시작되면서 자격을 갖춘 회사가 요구하는 인재상을 찾는 게 쉽지 않았다. 그런 인재들이 나타난다고 해도 회사가 제시한 만족 못할 임금을 가지고 간과 쓸개를 내어주기까지 해도 고용계약서 쓰기까지 더더욱 쉽지 않았다. 채용이 늦어져 교대에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고 생각하니 회사에 대한 배려심에 조바심이 점점 더 짙어졌다.


몸 받쳐 일하고 있지만 미래도 기대가 되지는 않았다. 대학 졸업 후 전공을 따라 현장에서 7년간 엔지니어로 일했으나 현재 하는 인사업무는 현장을 잘 안다 뿐이지 전공과는 거리가 멀었다. 물론 긍정적으로 생각하면 그것도 전공을 살린 것이라고 할 수 있지만...


삐대고 버티면 팀장이고, 이사고, 상무고 한 60세까지 근근이 계속 다닐 수 있을 것 같았다. 인사업무는 세상 귀찮고, 욕을 많이 먹는 직군이니 우리 팀으로 옮겨 보겠다고 욕심부리는 경쟁자는 당연히 없으며 1호 기피대상 팀이었다.


가족들 밥벌이를 위해 회사에 오래 근무했으니까 당연히 다른 생각 안 하고 그저 열심히 하루 왕복 4시간의 출퇴근 시간을 가지며 군말 없이 다녀야 하는 나의 루틴일 뿐이었다. "좋아하는 일하며 밥벌이하는 사람이 얼마나 되냐? 그냥 그렇게 사는 거지"라는 말이 당연한 것이었다. 그렇게 당연한 루틴은 점점 쌓이고 쌓이며 우울증이라는 암덩어리가 되고 있었던 건 까맣게 몰랐다.


'끄적끄적'

2. 우울증 조치사항(극복방법).

1) 나를 글로 정리하기(수첩에 그때그때 적기, 취침 전 일기쓰기).

2) 독서 및 독후감 쓰기.

3) 지금 내 주위에 있는 것들, 특히 사소한 것들 인지하고 사랑해 보기.

4) 자기계발하기(영어단어 외우기, 운동하기, 명상하기, 국가/지자체 지원교육 수강신청하기).

5) 가족들과 함께하는 시간 늘리기(여행가기, 보드게임하기).

6) 구인구직사이트에 가입해서 검색하기(지역: 동네 5km반경, 자전거로 20분 이내).

7) 사표내기.

(조치사항과 아래 실예는 지극히 개인적인 방법이니, 우울증을 겪고 계신 분이라면 개인에 맞춰 적절히 참고하시길 부탁드린다).


실예를 들어 글로 적어가며 잡히지 않는 감정들을 문서화했고, 문제점들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하니 각 항목마다 하나하나 해결책이 생각나거나 우연히 구해지기도 했다. 글쓰기에 대해서는 추후 다른 챕터로 자세히 다뤄 보기로 하겠다.


독서는 정말 큰 도움이 됐다. 살면서 경험으로 번뇌해야 할 사항들을 독서라는 간접 체험을 통해 성찰 할 수 있었다. 즉 무수히 많은 삶을 경험하게 해 준 것이다. 독서를 해가면서 또 하나 터득한 사실은, 트라우마는 생각하기에 따라서 현재 삶에 무수한 영향을 미치지만, 그것을 똑바로 인식한다면 무시하는 방법도 알 수 있기 때문에 현재에 삶에 전혀 상관없이 변모시킬 수도 있다는 것이다.

살면서 그렇게 많은 책을 사기는 처음이다. 현장직에서 사무직으로 옮긴 후, 책과는 담을 쌓았던 내가 근 두 달간 중고책과 새책으로 모은 책이 50권이상 되었고(물론 읽은 게 아니라 읽으려고 모은 책이다^^), 들어간 비용만 100만원을 훌쩍 넘겼다. 독서에 대해서도 추후 다른 챕터로 자세히 다뤄 보기로 하겠다.


고개를 이리저리 돌려 내 주위에 뭐가 있는지 살폈다. 예를 들어 낡은 자전거에 녹을 제거하고 사랑으로 기름칠을 해줬다. 시원한 바람과 뻐근한 허벅지의 행복은 덤으로 굴러 들어왔다. 큰 것보다는 소소한 것을 보려고 노력했다. 지금 내가 우울증이라는 것은 인생의 바닥이라고 보면 된다. 위에 있을 때는 바닥에 떨어지면 어쩌나 했는데, 바닥에 내려와 보니 거기가 끝이 아니고 더 깊은 지하실이 가까이 보일 뿐이었다. 그리고 지금 서있는 바닥 주위에는 꽤 쓸만한 물건들이 많이 있다는 것을 느꼈다. 그 소소한 물건들을 양손 가득히 들고 다시 올라가는 계단을 밟았다.


능력에 비해 많은 급여를 받고 있지만 꼭 여길 다닐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보기로 했다. 원인 분석에서 대부분의 문제들이 회사 업무에서 비롯되고 있으니 가장 큰 원인을 제거할 필요도 있었다. 우선 회사에 퇴사 의사표시를 했다. 한 달만 다시 생각해보라 반려됐다. 약속대로 한 달 뒤에 다시 사표를 제출했다. 가장 큰 원인을 제거했다.


대책 없이 그만둔다면 가족들 생계에 지장이 있을 테니 채용공고를 검색해본다. 단, 조건은 자전거 20분 내외 거리로 지정한다. 수많은 채용공고가 뜬다. 전공을 살릴 수 있는 일도 꽤 있다. 나이가 좀 걸리긴 하지만 눈높이를 반 정도만 낮추고 자격사항들을 조금만 준비한다면 언제라도 취업할 수 있을 것 같다. 근 10년을 인사팀에 있었기 때문에 구직자 입장이 아닌 구인자 입장에서 생각이 가능하다. 채용공고가 뭘 원하는지 훤히 보이는 건 그래도 나름 빠꾸미 인가 보다.

 (*빠꾸미: 어느 분야의 '달인'이나 '전문가'를 지칭하는 경상북도 영일지방 사투리) 


채용공고에 많이 보이는 자격사항을 검색하고, 자격사항에 필요한 교육들을 검색하고, 네일배움카드를 신청하고, 수강신청을 한다. 교육을 듣지도 않았는데 이미 자격증을 취득한냥 의기양양이다.

 토익시험도 준비해야 한다. 항상 나중에 봐야지 봐야지 했던 회사 책상 위에 먼지 쌓인 영어단어책도 뒤적거린다. 먼지가 날린다. 암기가 잘 되지 않는다. 머리를 비워야 암기가 잘된다. 쓸데없는 생각들을 매일 10분 명상하기로 비워내기 시작한다.


아내가 사준 스마트 워치 / 푸른 제주와 한라봉과 현무함

아내가 쓰러진 나를 걱정하며 심전도 측정까지 되는 스마트 워치를 사줬다. 회사 동료들은 얼리어답터라며 우와우와 거렸지만 참 서글픈 시계인 걸 알리 만무하다. 운동도 종합적으로 분석해주는 기능이 있어 이용해볼 겸 운동을 살짝살짝 시작했다. 몸이 움직여지니 마음도 같이 올라왔다. 아내가 고맙다.

 그런 아내가 예전부터 노래 부르던 제주도 여행 계획을 과감히 진행했다. 회사에는 주말 포함하여 연달아 연차를 던졌다. 제주도 하늘과 바다는 Blue가 아닌 푸른이였고, 그 빛에 반사되어 노란 귤과 구멍 뻥뻥 뚫린 현무암들은 더욱 강렬히 저들만의 색을 뽐내고 있었다. 아내와 아이들의 행복감은 나를 따뜻하게 감싸줬다.


동네의원의 처방전도 약간 도움이 되었지만, 1)~7)의 과정을 거치면서 우울증에서 완전히 벗어났다. 그리고 삶은 180도 달라졌다. 이런저런 위험성을 핑계 삼아 시도조차 하지 않았던 다짐들은, 잘하던 못하던 우선 한 발짝이라도 나가자며 시도하는 실천으로 바뀌었다.

또 하나 혁혁한 성과는 "잘 모르겠다", "아니다, 거절하겠다"라는 말을 자연스럽게 하게 됐다는 것이다. Blue였던 세상이 오색 빛으로 바뀌었다. 피해 다니던 햇살을 보면 창문 블라인드부터 걷어내기 바빠졌다.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엔돌핀이 되었고, 아내의 손이 따뜻해졌다. 인생의 2막이 시작된 것이다.


3. 그럼 공황장애는 어떻게 되었을까?

자연스레 증상이 거의 없어졌다. 완전히는 아니다, 거의다. 완쾌가 아닌 증상이 거의 없어졌다고 말하는 이유는... 음... 좀 실망스럽겠지만 완전히 극복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없기 때문이다.

공황장애를 겪으시는 분들은 공감할 수 있을 것인데 어떠한 상황에 순간적으로 놓였을 때, 갑자기 증상이 발현되기 때문에 언제 또다시 나타날지 모른다. 그렇기 때문에 공황장애는 그 증상보다는 예기불안이 더 괴롭다.


예기불안이란 공황장애 증상이 나타날까 봐 미리 불안해하는 감정이다. 그 예기불안 증상 때문에 지하철을 잘 타러 가지 못하는 것이고, 버스를 타기 무서운 것이고, 폐쇄 공포증이 생기는 것이고, 온 시선과 카메라가 집중되는 무대에 잘 오르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내가 공황장애를 거의 극복했다는 것은 예기불안을 완전히 없애서 공황장애 증상이 거의 나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공황장애 보균자로서 감히 말하는데, 예기불안을 극복한 것만으로도 95%는 극복했다고 말할 수 있다. 인식하지 않으면 찾아오는 일은 거의 없을 것이다.


한번 쓰러져 봤지만 멀쩡히 살아 돌아왔기 때문에 공황장애 증상으로 절대 죽지 않는다는 신념이 자연스레 장착되었다. 그래서 증상이 발현된다 하더라도 빠르게 통제할 수 있는 자신감도 생겼다. 자신감을 가진다면 증상이 나타나더라도 잘 컨트롤할 수 있을 것이다.

증상을 겪고 계신 분들에게 쓰러져 보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증상이 심하다면 반드시 의사와 상담 후 약물치료를 권장한다. 왜냐면 처방전을 들고 있다는 생각만으로도 예기불안 증상을 현저히 줄일 수 있고, 증상이 나타날 때 통제에 큰 힘 되기 때문이다.


지나고 보면 간단한 이야기를 너무 장황하게 적어놨다.


 

살면서 여유를 갖자.

사랑하는 내 자신을 위해 멍 때리자. 머리 식히는 시간을 갖자.




혹시 검색으로 찾아오신 증상을 겪고 계신 분들은 힘내십시요! 충분히 극복 가능합니다.




정신건강에 좋은 멍을 아래에 공유해드리니

멍 때리세요^^


         멍계[界]의 5대 천왕

진수성찬멍 / 회멍
고기멍 / 굴멍
불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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