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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부엉이 아빠 Feb 05. 2022

EP12. 공황장애, 우울증 들여다보기

부엉이 아빠 극복기 1편 (2편 완결).

 굉장히 흔들리고 있었다. 옆에서 나를 흔들어 주는 사람, 뒤에서 등을 토닥토닥해주는 사람, 앞에서 잔을 채워 주는 사람, 옆에 누워 머리를 쓰다듬어 주는 아내, 손을 끌어당기며 재잘 대는 세 마리 토끼들... 아무 소용이 없었다.

내가 무너지면 힘들어할 사람들이 많았지만, 그들을 위해 일어나야 한다고 중얼거렸지, 정작 나만 생각하고 이불을 뒤집어쓴  저리 가라 하고 있었다.


제목을 무엇으로 할까 한참 고민했다. 이번 편은 공황장애와 우울증을 앓고 있는 분들이 볼 수도 있기 때문에 은유적인 표현보다는 정확한 정보 전달에 무게를 둬야 할 것 같았다. 제목에 '공황장애', '우울증'이란 단어를 단도직입적으로 썼다. 우리나라 사회 통념상 이 단어를 쓴다는 것 자체가 아직까지는 조금 힘들다. 특히 실제로 겪어본 사람들써야 한다면 더욱더... 

사실, 앞선 EP1~EP11은 이번 쳅터를 쓰기 위한 서두일지도 모르겠다. 글이 꽤 길어질 것 같은 느낌이 든다. 하지만 고통스러운 병에 대한 정보를 찾고 있을 누군가를 위해 끈기를 가지고 적어보려 한다.


우선 최근까지 겪었던 '우울증'에 대해 먼저 들여다보겠다. 나에게 찾아온 증상은 다음과 같다.


째로 매사가 불안해 기본적인 행동이 잘 되지 않았다. 예를 들어 책상 위에 물건을 이쪽에서 저쪽으로 옮기는 것조차 쉽게 결정하지 못하고 힘들어했다. 물론 어찌저찌 일은 해나갔지만 수시로 해야 하는 회사업무결정에 머리를 쥐어짜기 일쑤였다. 이전에는 하찮게 처리하던 일조차...

집중력도 떨어졌다. 어떤 일을 하다가 갑자기 다른 일을 잘해놨나 확인해야 하니 집중이 흐트러졌고, 그러다 보니 집중해서 기억해야 할 것들이 잘 생각나지 않았다. 기억력이 자꾸 감퇴된다 생각하고 자신감이 떨어졌다.


그것으로 인해 무기력증이 생겼다. 작은 일 하나조차 결정하기 힘들고, 처리하기 버겁고, 바로바로 기억하지 못하니 밀려들어오는 일들이 감당이 되지 않았다. 그러니 포기하고 회피하고 손을 놔버리게 됐다. 무기력증으로 외면했던 일들이 옆에 쌓여갈 때마다 불안으로 다시 증폭되며 악순환을 만들었다. 하지만 해내는 일의 총량은 정상일 때와 같으니 그 스트레스는 이루 할 수가 없었다.


무기력증은 업무를 제대로 치고 나가지 못한다는 미안함으로 변색됐고, 자존감은 땅바닥으로 떨어졌다. 그렇게 되니 회사 동료들이 뒤에서 험담하고, 거래처가 불편하게 느낀다고 혼자 생각하며 자괴감에 빠졌다. 가뜩이나 예민해서 상대방 기분부터 맞추려는 성격인데 그 자괴감이 얼마큼 증폭되었는지는 계산기를 뚜드려도 용량이 부족할 정도였다.


엎친데 덮친격으로 대인기피증으로 번져버렸다. 업무전화가 울릴 때마다 식은땀이 흘렀고 직장동료들, 친구들, 심지어 가족과도 대화가 잘 안 됐다. 비대면 회의나 교육을 진행할 때는 숨이 막힌다는 표현이 아닌 진짜 숨이 막혔다.(비대면 회의나 교육을 할 때는 발표자의 숨소리조차 집중이 되기 때문에 대면으로 할 경우보다 압박감이 심하다. 왜 연예인들이 우울증에 쉽게 빠지는지 이해되는 부분이다.)


대인기피증이 생기니 사회적 관계를 형성하기 힘들고, 공동체 속에서 기쁨과 위로를 받아야 할 인간이 고독한 존재가 되어버렸다. 그러니 박탈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골프에 취미가 없었지만, 어디 CC에 1박 2일로 가니 회비를 얼마씩 내라느니, 다음에는 어디로 가자느니 하는 대화에 신경이 쓰였다. 다른 가족들과 주말에는 어디 콘도를 간다느니, 어제저녁은 누구랑 술자리를 했다느니 하는 회사 동료들과 친구들, 주변 사람들의 일상적인 대화에서 자격지심을 느끼곤 했다. 하지만 누가 같이 가자 잡아끌면 정색하고 손사례 치기 바빴다. 같이 놀아준다 해도 싫고, 혼자 있게 내버려 둔데도 서럽고... 참 어리광스런 증상이었다.


그렇게 복합적인 증상들이 발생하며 나를 더욱 바닥으로 내몰았고, 세상은 부정투성이가 됐다. 세상 부러울 것 없는 귀여운 딸들과 당대 최고의 미녀인 아내와 평화스러운 도시에 아늑한 집을 가지고 있는, 그 멀쩡한 남자는 짙은 색안경을 끼게 된 것이다. 우울이라는 색... Blue...

아침이 오는 게 싫었다. 잠을 자기가 싫었다. 하지만 자려고 하면 잠도 오지 않았다. 햇살이 라인드 틈으로 새어 들어오는 게 싫었다. 집 앞에 나가는 것조차 싫었다. 엔돌핀이 치솟던 아이들의 꺌꺌 거리는 소리가 쥐어박고 싶은 호르몬으로 바뀌었다. 항상 즐겁던 아내와의 데이트가 한숨으로 변했다. 이불속으로만 도망치고 싶었다. 세상에서 제일 불쌍한 사람이 됐다.

사진 찍어주기를 좋아한다. 하지만 우울증 당시에는 이런류의 대충 찍거나 누가 찍어준 사진이 대부분이다. 무기력증에 빠진 아빠를 양치해주는 사진은 글을 쓰며 이제서야 본다...

벗어나려고 발버둥 쳤다. 가슴부터 배까지 조여 오는 느낌이 일상적이였다. 너무 고통스러 웠다. 정신 차리자, 정신 차리자, 이것밖에 안 되냐며 나를 더욱 몰아붙였다. 하지만 저항할수록 더욱 주져 앉았다. 도저히 혼자 힘으로 감당이 안되기 시작했다. 결국 동네 정신과를 검색했다.

의지력이 약하다는 걸 들키지 않으려고 아내에게 조차 말하지 않았다. 조용히 살금살금 병원문을 열었다. 파리 날리고 있을 줄 알았던 동네의원의 대기석이 만석인 걸 보고 흠칫 놀랐다.

'정신병이 있는 사람들이 이렇게 많구나' 무지했으니 정신병이라는 단어로 치부해버렸다. 약한 사람들이나 걸리는 병, 정신병...

약한 사람이 건, 강한 사람이 건, 누구나 걸릴 수 있는 감기 같은 증상이라는 걸 깨닫게 된 건 많은 검색과 관련된 책을 읽어본 후였다.


"처음 오셨어요? 앞에 진료카드 작성해주시고요, 증상도 적어주세요"

카운터의 간호조무사는 으레 축 처진 환자를 상대 많이 해봤다는 듯 증상을 말로 묻지 않는다. 우울증이란 단어조차 말하는 게 굉장한 고통이라는 걸 안다는 것이다.

"대기시간이 기니까 먼저 검사부터 할게요. 편하신데 앉아서 작성해주세요. 볼펜 여기요"

작성한 진료카드를 보더니 당연한 절차인 듯 열 장 정도의 설문지 같은 것을 건넨다.


매우 그렇다, 매우 그렇다, 매우 그렇다, 매우 그렇다... 검사지의 답변을 채워 나가는데 의사가 아닌 사람이 봐도 아 이건 심각한 우울증이구나 진단할 수 있을 것 같다. 의사 진료 전에 이미 내 병명을 우울증으로 정하고 있다. 성실히 그리고 편협하게 30분 정도 검사지를 모두 풀고 제출했다.

"1번 방으로 들어가실게요"

두근두근 떨린다. 여태까지의 증상을, 느낌을, 고통을 어떻게 말할 것인지 다시 한번 되새겨 본다.

"똑, 똑, 똑"

"안녕하세요? 여기 앉으세요. 잠시만요 검사지를 한번 봐볼게요"

의사 선생님의 표정이 인자하다. 내 말을 잘 들어주고, 잘 이해해줄 것 같다.

"우울증이 심각하신데요? "

'네, 의사선생님 우울증 당연히 맞습니다. 심각한 것도 맞습니다. 이제 제 상황을 좀 말씀드릴 건데 준비가 되셨나요?'

"우선 약처방을 해드릴게요. 일주일 드셔 보시고 다시 내원하세요. 빼먹지 말고 꾸준히 드셔야 증상이 호전돼요. 식욕도 없으시니 식사를 잘하세요. 그리고 중간에라도 못 견디시겠으면 연락 주시고요"

'식욕은 괜찮다고 답변해놨는데... 그냥 쓰윽 훑어보기만 하는구나, 아... 이런 환자들이 다 비슷한 가보네. 들어봐야 맨날 똑같은 이야기니 바로 약 처방이구나'

"아, 네네. 수고하셨습니다"

고개 숙여 인사하고, 허탈히 진료실을 나왔다.


카운터에서 계산을 하고 처방전을 받고 있는데 자주 다니는 듯한 청년이 들어온다. 대기가 많은 것을 보고 약만 타가겠다고 한다. 잠시 뒤 그 인자하신 의사선생님이 괜찮으시지요? 처방해드릴게요 하며 잠깐 진료실에서 나왔다 들어간다. 간호사는 청년의 카드를 받아 결제하고 바로 처방전을 내어준다. 내손에 처방전 신뢰도가 떨어진다.


조심스럽게 티 나지 않도록 약국 카운터에 처방전을 내민다. 약조제를 기다리며 서있는 사람들의 눈치를 슬쩍 본다.

"아침, 저녁 약 따로따로고요. 아침에 일어나셔서 바로 드시고, 저녁때 주무실 때 드시면 돼요. 그리고 이건 일상생활하실 때 힘드시면 긴급으로 드시면 되고요. 8,500원 결제하시면 됩니다"

'렉사프로정 10mg, 명인브로마제팜정3, 데파스정0.25mg, 알프람정0.25mg, 트레스탄갑셀, 렉사프로정 5mg.'

약봉지를 받아 들면 약품명을 꼼꼼히 체크하고 검색까지 해보는 아내와는 달리, 난 거의 자세히 본 적이 없다. 하지만 이번에는 꼼꼼히 읽어본다. 우울증, 공황장애, 강박장애, 불안, 긴장, 우울, 수면장애 등등 말하기 부끄럽고, 듣기 거북한 단어들이 약봉지 한가득이다.

약을 복용하고 나면 어느 정도 효과는 있었다. 심장박동수가 안정이 되고 약간 노곤해진다. 특히 일상생활에 긴급으로 복용하라는 약은 회의나 교육, 심도 있게 대화할 필요가 있을 때 유용하게 쓰였다. 하지만 약에  의지를 맡기는 것이 맘에 들지 않았다. 그리고 이 불안과 우울에 한번 정면으로 맞서 보자 다짐하기에 이른다. 일을 피하려고 했는데 일에 한번 파묻혀 보기로 했다.


산적된 일들, 해결되지 않는 일들, 앞으로 해야 할 일쭉 목록으로 정리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하나하나 해결해보기로 했다. 업무시간만으로는 턱없이 부족하였다. 징검다리 형식으로 재택근무를 했는데, 재택근무로 하기에는 업무의 효율성이 떨어졌다. 재택근무 날도 출근했다. 그래도 시간이 부족했다. 정시퇴근은 당연한 듯 제쳐 두었다. 주말을 반납하기 시작했다. 주말 사무실에 혼자 근무하고 있으니 집중은 잘 됐다. 하지만 쉼을 주지 않았다. 퇴근이 없었다. 식사시간도 따로 주지 않았다. 배달시켜 앞에 놓고 먹으며 일했다. 졸릴 때쯤 업무를 끝냈고, 회사 소파에서 자고, 아침이 밝아오면 다시 일을 시작했다. 아침 햇살이 지긋해지면 해장국 한 사바리 하고 들어와 일했다. 광복절 연휴에는 금요일 출근해서 월요일 저녁에 퇴근하고, 다시 화요일 아침에 출근했다.

야근하며 시켜먹은 음식들. 식비는 회사에서 처리해 주니 보상심리로 비싼 도시락을 많이 시켜 먹었다^^
주말 근무의 미안함에 아내에게 보내는 인증샷


Blue로 보이는 세상 속에서도 주말의 빌딩 숲 사이 아침햇살과 귀갓길 지하철역 석양은 아름다웠다. 아마 쌓인 일들을 조금씩 털어내니 마음이 조금 편해진 탓도 있을 것이다. 신뢰도가 떨어지던 약의 효능과 일의 매진으로 점차 치유가 돼가고 있는 것 같았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노력하자 나를 좀 더 몰아붙였다.    

주말 햇살과 석양


그날도 평소처럼 세상은 파랗게 보였지만 약을 한 봉지 힘차게 털어 넣고, 양손바닥으로 양볼을 찰싹 쳐가며 오늘도 할 수 있다 다짐했다. 아빠 다녀올께를 외치고 문을 나섰다. 컨디션이 좋지 않았다. 자주 나타나는 증상이라 그러려니 하고 지하철에 올랐다. 갑자기 심장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아... 잊었던 공황장애의 시작이구나... 푸념했다. 출발역은 거의 종점이기 때문에 사람이 많지 않아 공황장애가 잘 발현되지 않는다. 하지만 그날은 심상치 않았다. 가슴이 꽉 막히는 느낌이었다. 출발하고 바로 다음역에서 내렸다. 한참을 플랫폼의자에 앉아 있었다. 그렇게 앉아있으면 괜찮아 지곤 했으니까. 시계를 봤다. 더이상 지체되면 지각이다. 아직 가슴이 뻑뻑했지만 급한 마음에 플랫폼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리곤 Black out이 됐다.


"자기야!! 자기야 괜찮아? 자기야!!  자기야?"

응급실 천장이 어렴풋이 보이고 옆에서 아내가 웅웅 거리며 날 흔들고 있다. 눈물을 글썽이고 있는 것 같다.

"이거 보이세요? 팔에 힘줘보세요. 다리에 힘줘보세요. 이름을 말해보세요. 말이 안 나오세요?"

그 옆에서 의사와 간호사도 웅웅 거리고 있다.


의식은 있었지만 한참 동안 말을 못 했다. 한참 동안 몸에 힘을 주지 못했다. 뇌 MRI를 찍었다. 이상이 없었다. 종종 가슴이 죄어오는 현상이 있었고, 그런 현상 때문에 몇 년 전에 심전도 기계를 24시간 동안 달고 다닌 적이 있었는데 그때는 정상이라고 진단받았었다 말했다. 심혈관 과장님이 오셨다. 심혈관 조영술을 하자고 했다. 그리고 발견된 변이 협심증. 일반 협심증과는 달리 혈관 상태는 괜찮으나 갑작스레 혈관이 쪼그라든다고 한다. 술, 담배, 스트레스가 원인이 될 수 있으며 치료가 아닌 예방법 밖에는 없다고 한다. 조영술로 인해 이틀간 입원했고, 한 달치의 약을(변이 협심증 치료제가 아닌 증상 예방제) 받아 들고 퇴원했다. 퇴원 후 들른 추어탕집에서 아내는 연신 살아줘서 고맙다고 감사하다고 한다. 눈물 글썽이는 아내가 곁에 있다는 게 다행이라 생각했지만 걱정 끼친 게 미안했다.


생각해보면 변이 협심증만으로 쓰러진 게 아닌 것이 확실하다. 이전부터 앓고 있었던 공황장애와 순간 발현된 변이 협심증이 복합적으로 겹치면서 쓰러졌던 것이다. 공황장애 베이스에 변이 협심증을 뿌린 것이라고 할까?

나를 꾸준히 괴롭히던 공황장애...


이제 '공황장애'에 대해 들여다보겠다. 내가 앓고 있던 공황장애의 명칭은 '지하철 공황장애'다. 사무직으로 10년간 근무하며 출퇴근을 했는데 그중 7년은 공황장애로 고생했다. 아내와 연애할 때, 아내 집에서 픽업해서 학교 데려다주고 일 보고 다시 학교에서 픽업해서 아내 집에 데려다주고 집에 오고, 하루에 6시간도 지하철에서 보내던 나는 지하철 타기 전문가로 자처 했다.

공황장애는 가끔씩 연예뉴스에서나 보던 연예인 병이라 나랑은 전혀 상관도 없었다. 공항을 많이 이용하는 사람들이 걸리는 정신병인가? 정도로, 인지할 대상도 아니었다. 직장은 서울이지만 경기도민이기에 하루 4시간 정도를 출퇴근에 소비했다. 지하철 전문가답게 지옥철은 전혀 문제가 아니었다. 오히려 좋았다. 껴있으면 흔들려도 넘어지지 않으니까.


하지만 불현듯 나에게 찾아왔다. 그날도 어김없이 껴있는데 갑자기 식은땀이 나면서 심장이 두근거렸다. 더워서 그런가 앞 단추를 하나 풀었지만 소용이 없었다. 갑자기 여기 있다가는 이대로 죽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지하철 문이 열려도 사람들 사이에 껴있어서 못 내릴 것 같았다. 긴장할수록 식은땀이 흥건해지고, 심장박동수가 더 빨라 졌다. 다행히 앞에 앉은 사람이 내리려고 일어났다. 자리에 앉아 숨을 크게 쉬고 눈을 감고 손수건으로 땀을 닦아 냈다. 한참이 지난 후에 안정됐다. 뭐야? 대수롭지 않게 넘어갔다.

며칠이 지났을까? 만원 지하철에 오르려는데 갑자기 그 느낌이 났다. 에이 설마 또 그러겠어하고 아무렇지 않게 꽉 찬 열차칸에 몸을 들이밀었다. 문이 닫히는 순간, 괜히 탔다고 생각했다. 심장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3분 정도밖에 걸리지 않는 다음 정거장이 길게 느껴졌다. 문이 열렸다. 다시 안정됐다. 그래 목적지까지는 가야지. 문이 닫히자마자 또 심장이 요동 치기 시작한다. 내리지 않은 걸 후회했다. 다시 문이 열렸다. 또 안정된다. 아 괜찮아 지나보다. 문이 닫혔다 다시 또 요동친다... 반복하며 어찌저찌 목적지에 도착했다.

 

주기는 보름, 열흘, 일주일, 삼일, 이틀로 계속 짧아졌다. 그리고 지하철 탈 때마다 고통스럽기 시작했다. 포털 사이트 검색을 해 봤더니 '지하철 공황장애'로 판명된다. 그래도 별거 아니라고 생각했다. 의지로 충분히 이겨 낼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저항할수록 증상은 점점 더 심해져갔다. 만원 지하철은 아예 타지도 못했고, 널널한 지하철을 탄다고 해도 앉지 않으면 불안했다. 퇴근길 회사에서 바로 지하철 타면 되지만 앉아서 가려고 급행 종착역으로 역주행을 했다. 가뜩이나 2시간씩 걸리는 거리를 20분을 더 더한 셈이다. 아니면 30분이나 더 걸리는 그나마 널널한 완행열차를 이용했다. 최고조 일 때는 지하철 입구도 내려가지 못하고 한참을 밖에 앉아있다 내려가기도 했다. 한 번은 플랫폼에 서있다가 심상치 않아 외부로 나가려는데 나갈 때까지 못 버틸 것 같아 비상벨을 찾아 헤맸다. 막상 찾고 나니 버튼을 누를 용기가 없어 어찌저찌 버틴 적도 있다.

그래도 집을 회사 가까이 옮겨볼 생각을 한다거나, 회사를 옮겨볼 생각을 한다거나, 병원을 가본다거나 하는 조치는 취하지 않았다. 의지력으로 이겨낼 수 있다고 자만했고, 좋은 이어폰을 산다던가, 재미있는 영상을 본다던가, 음악 볼륨을 높인다거나 하는 미온적 조치만 취했다.

다행히 그즈음 회사가 강남에서 혼잡도가 덜한 종로 쪽으로 이사했고, 탄력근무제까지 실시해서 출근이 9시에서 10시로 변경됐다. 감사하게도 우연찮게 지하철 공황장애가 상당히 치유됐다.


공황장애 보균자로 어찌저찌 비비면서 살고 있었는데 우울증이라는 병균이 들어오면서 증폭됐고, 쓰러져 죽음의 문턱까지 갔다 온 것이다. 일에 묻히겠다던 다시 타오르던 그 열정은 쓰러진 뒤부터 사그라들었고, 처음보다 더 깊이 골이 패이기 시작했다. Blue가 더욱 짙어졌다. 열심히 해도 바뀌는 건 없다고 생각하니 좌절감은 극치를 달렸고, 가족과 회사를 책임질 수 없을 것 같다고 좌절했다. 하루하루가 천 길 낭떠러지 벼랑 끝에 서있는 느낌이었다.

내가 없어지면 차라리 낫지 않을까? 조금이라도 더 빨리 없어져 버려야 가족이나 회사가 더 빨리 적응하지 않을까? 종료 버튼을 누르면 모든 게 해결되지 않을까?... 지금 생각 해보면 끔찍한 극단적인 생각까지 하게 됐다.


 

위험한 행동에 나서기 전에 지갑 속에 가족사진을 봤다. 모두 웃고 있다. 아내, 첫째, 둘째, 셋째, 그리고 나... 문득 생각한다. 어차피 죽을 거면... 하면 안 되는 걸 해보자. 지금 너한테 하면 안 되는 게 뭐야? 회사를 그만두는  아니야? 

회사를 그만두면 어떻게 돼? 벌이가 없어지면 가족들이 힘들어질 것이고, 여태껏 쌓아왔던 경력이 무너질 것이고, 회사에 지장을 줄 것이고, 모친과 장모님께 얼굴 들 수 없을 것이고, 친구들에게 알리기도 창피할 것이고, 선배들 후배들이 한심하게 볼 거 아냐? 그래서 하면 안 되는 거 아냐? 

어차피 죽을 거면 그 전에 그 하면 안되는 걸 해봐!! 저질러봐!! 죽기보다 더 하겠어?!!





공황장애, 우울증의 원인분석과 극복기는 

"EP 13.공황장애,우울증 이겨내기"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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