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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부엉이 아빠 Jan 29. 2022

EP11. 친구야! 친구야!

- 영화 "친구"(감독: 곽경택) 동서고가교위 준석과 상택의 재회 장면-

언제부터인 모르겠지만, "다섯 손가락에 꼽을 친구가 있다면 성공한 교우관계다"라는 말을 진리처럼 믿고 살았다. 친구의 폭이 넓지는 않았지만 깊이 사귀던 터라 숫자 맞추려고 노력했고, 가끔씩 손가락 개수를 헤아려 다.


검지는 축구를 잘했고 활발해서 좋았.

중지는 모든 일에 열정이 충만했고, 싸움을 잘해서(일진이 아니라 일진에게 맞서 싸우는 스타일) 같이 있으면 든든했다.

약지는 부모님들끼리 친했, 예의가 바르고, 순수해서 친했다.

새끼손가락인간관계 폭이 넓었고, 학업에 열정이 강했으며, 나를 잘 챙겨 다.


엄지... 이렇게 말하면 나머지 손가락들이 시샘할지 모르겠지만, 물론 시샘할 놈들도 아니지만, 그 깨물어도 안 아플 손가락이 어딨겠냐는 놈들 중, 마지막 엄지는 나와 모든 면이 일치했고 가장 친했다.


그렇게 손바닥에 붙어있는 다섯 손가락은 크기와 길이가 서로 달랐고 역할이 모두 틀렸다.

 

손가락을 쥐면 주먹이 되지만, 서로 따로 사귀던 녀석들이라 다섯이 뭉친 적은 없었다. 나를 구심점으로 같이 뭉쳐 놀만도 한데 그렇지 않았다. 그러니까 모두 따로 사귄 셈이다. 고등학교 때부터 지금까지 항상 어느 단체에 섞여 여러 사람들과 함께 뭉쳤지만 한명씩 사귀는 것이 교우관계 스타일이었던 것 같다. 그래서 다섯 개의 개별 된 추억들이 많다.


검지와는 고등학교 대학교를 같이 다녔고, 만나면 항상 익사이팅했다. 축구를 같이 할 수 있었고, 야구를 같이 할 수 있었다. 항상 즐거운 친구였다. 특히 대학 방학 때, 집 근처에서 만나 피시방이라도 가게 되면 스타크래프트를 즐기며 밤새우기 일쑤였다.


중지는 복싱에 진심이었으며 남들이 하지 않는 것을 잘했다. 좀 4차원이었다. 그 녀석 집에 자주 놀러 갔다. 집 마당 가장자리에 있는 쪽방에서 그림을 그린다거나, 웨이트 트레이닝을 한다거나, 밤에 참치켄 하나에 깡소주를 마시고 담력 훈련한다며 공동묘지가 있는 뒷동산에 같이 오르곤 했다. 그 터프함에 현재는 딸을 간절히 원하는 아들 셋 아빠다. 그리고 초등학생인 첫째아이를 벌써 쉐도우 복싱할 정도로 키워 놨다.


약지는 예의가 발랐다. 어른들에게 싹싹했고, 친구들에게도 친절했다. 그런 모습을 닮고 싶었다. 어른들이 좋아하는 스타일이라고 보면 된다. 만나게 되면 항상 부모님 안부를 먼저 묻는 녀석이다. 나라를 지키기 위해 지금은 강원도 산골에 들어가 있다. 우리 동네 맛있는 해장국을 포장해가서 하루 머문 적이 있었는데, 그게 그렇게 맛있었는지 또 언제 오냐면서 올 때 꼭 해장국을 포장 해오라며 종종 연락한다.


새끼손가락은 잔소리가 많다. 대학교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이 끝나고 돌아가는 열차 안에서 해맑게 웃던 표정이 좋았던 녀석이라 가까이 지내려고 했고, 바라던 데로 친해졌다. 그 녀석이 휴학을 하고 수능을 다시 보려고 하숙집에서 공부를 했던 적이 있다. 우리 집과 가까웠던 터라 냉장고의 반찬을 몇 개 가져다준 적이 있었는데, 그게 감동이었는지 가끔씩 그때가 고맙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가? 아직까지 나를 끔찍이 챙기려고 한다. 특히 잔소리가 많다. 지금도 학구열에 불타는 녀석인데, 자기계발서 읽어라, 때려치우고 뭐할 거냐? 국가 지원 교육 알아봐라, 자격증 공부해라, 어디에 뭐가 있다 저기에 그게 있다 등등... 귀에서 피가 날 정도로 털어대지만 듣기 싫은 소리는 아니다.

  

"나중에 서로 옆집에 살면서 이웃사촌 하자"

엄지와 했던 약속이다. 남자들끼리 연애하냐 할 정도로 붙어 다녔다. 고등학교 1학년 때만 같은 반이었지만, 2학년 때 3학년 때 서로의 반 친구들은 내가 그 녀석 반에 가면 그 녀석을, 그 녀석이 내반에 오면 나를, 찾지도 않았는데 불러줄 정도였다.

악의라곤 1도 없는 녀석이었다. 너무 착했다. 약간 멍청해 보일 정도 랄까? 그런 것들이 나와 닮았었다. 마치 거울을 보는 듯했다. 좋아하는 것도 같았고, 관심사도 같았다. 1학년 때 이름순으로 배정된 번호도 걔가 25번, 내가 27번이라 책상도 앞뒤로 앉았었던 것 같다. 그래서 더욱 급속도로 친해졌다.

녀석이 연평도 해역에서 군생활 했을때, 제2 연평해전이 발발하고 얼마나 마음 졸였는지 전화로 그 녀석 목소리가 확인되는 순간 온갖 욕을 한 바가지 퍼부어 줬다.


친하니까 당연한 것, 당연하니까 친한 것... 착각했다. 항상 곁에 있기에 소중히 다뤄야 하는 걸 몰랐다. 가장 친한 친구니까 잘 돼야 했고, 계속 나와 거울같이 똑같아야 했다.

먼저 취업했던 나는 취업준비 중인 그 녀석에게 진심 어린 조언을 많이 했고, 그렇게 따라와 주길 바랬다. 이제 막 사회초년생인 주제에 조금 더 빨리 경험했다는 이유로 그 녀석이 생각하는 계획들을 무시하기 일쑤였다. 더 좋고 더 나은 길만 가라 등 떠밀었다. 소주를 따르며 진심을 기울이던 소통은 동정 담은 조언으로 얼룩졌으며, 균형을 맞추던 저울은 한쪽으로 치우쳐 버렸다.

 

슬슬 연락을 피하는 듯 보였지만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고, 한창 회사일에 바쁠때 둘째가 태어날 때쯤 연락이 완전히 끊겨 버렸다. 연락 단절을 인지할 때쯤에는 이미 한참이 지난 후였고 부랴부랴 연락해보니 요즘에 좀 바쁘니 나중에 보자는 식의 답변을 받았다.

"그래, 나중에 가 준비되면 연락 줘..."

뭔지 뭐를 어색함에 연결에 끈을 그 녀석에게 넘겨줬다.


몇 년이 지났지만 연락은 오지 않고 있다. 나를 찾지 않는 그 녀석을 생각하며 돌아본다. 그 녀석에게 나는 가시밭이었구나... 다시는 보고 싶지 않은 것이구나... 옆집 살자던 그 약속은 지키지 못하겠구나. 엄지의 봉합수술은 가능할까?...


그 녀석에게 사과하며 이 글을 쓴다.


힘들 때 위로해주지 못해 미안해. 

그냥 따뜻한 말 한마디가 필요할 때 공감해주지 못해 미안해.

너를 위한답시고 걱정을 늘어놨는데, 너한테 독이 됐던 것 같아. 

최근 백수가 돼서 여유가 생겼지만 너를 다시 찾아볼 용기는 나지 않아... 하지만 우연히, 아주 우연 너가 이 글을 본다면 나한테 한번 연락 줬으면 좋겠다...



친구야! 친구야! 나귀야!!


2008년 1월... 속초여행 기억하니?







여러분은 소중한 친구를 잃지 않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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