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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부엉이 아빠 Feb 19. 2022

EP14. 눈으로 스케치하고 글로 아로새기다

부엉이 아빠의 글쓰기, 글짓기, 에세이 쓰기, 소설 쓰기

노오란 은행잎이 지천에 널려 있던 것으로 기억한다. 울긋불긋 단풍이 주위에 흘러내리고 있던 것으로 기억한다. 눈부신 청량함 땀이 송글송글 맺혔던 것으로 기억한다. 아마 시원한 산들바람이 식혀 줬을 거다. 어렴풋이 샤프펜슬과 수첩을 들고 있다. 


천고마비의 하늘, 소나무의 푸르름, 자연에 어우러 지기 위해 더욱 오색 란했던 사찰의 처마무늬... 빛바래고 갈라 졌지만 치맛자락을 우직하게 떠받들고 있는 배흘림기둥, 졸졸졸 맑음을 외치는 계곡, 지금이라도 당장 빨간, 노랑, 주황, 갈색을 떨어 뜨릴 것 같은 빼곡한 나무들, 아찔한 절벽 밑으로 펼쳐진 인간 세상사를 굽어살피는 아슬아슬 기암괴석...

잡히는 건 모조리 적어대고 있었다. 시선들은 거기 그대로 있었지만 금방 사라져 버릴 것 같아 조바심으로 끄적거렸다. 공대생인데도 불구하고 문학청년처럼 그렇게 일탈했던 기억이 있다.


평범한 주말이었지만 오랜만에 아무  없는 특별한 토요일이었다. 햇살 어둑어둑한 기숙사 복도를 따라 외로움이 아닌 여유로움이 공간을 채우고 있었다. 만끽해도 될 만 한데 그날은 왜 필기도구를 챙겨서 무작정 버스에 몸을 실었는지 모르겠다. 지하철로 환승하고 가을 산행이 가능한 역에서 하차했다. 역 입구부터 노란 은행 잎들맞이해 줬다. 그리고 종이와 펜으로 한 컷 한 컷 담기 시작했다. 유명 사찰에 들러 산 정상을 찍고 하산할 때까지 수첩 몇십 장을 채웠다. 눈이 카메라요 연필이 셔터고 종이가 필름이었다. 복귀하여 정리해 보니 하나의 사진 첩이 됐다. 한장한장 넘겨 보니 아름다움에 취해 자아도취에 빠졌다. 그 수려한 사진 첩을 공유하고 싶어 이메일로 주위 친구나 가족들에게 보내기도 했다.


졸업  취업하고 일에 파묻혀 사느라 글로 쓴 사진첩의 존재를 까맣게 잊고 있었다. 그리고 이 시점에서 부랴부랴 찾아봤지만 보관 중이던 이메일 계정 자체가 사라졌다. 공대생이라는 이질감 때문이었을까? 고등학교 2학년부터 문과랑은 거리가 멀다고 느꼈기 때문일까?... 그런 소중한 글들을 하찮게 보관했다. 꺼내보고 싶지만 그럴 수 없어 아쉽다. 젊은 시절의 감성, 희망, 고뇌, 사랑... 지금에 와서 거짓 포장하려 해도 절대 느껴지지 않는 지나간 소중함이다.


대학 때부터 꾸준히 기계, 기름과 친화적인 삶을 살기 위해 노력했고 그곳에서 땀 흘려 일하고 있었지만, 또 꾸준히 글쓰기 욕망이 있었던  사실이다. 최근 퇴사 후 여러 서류들을 정리하던 중 그 증거물을 찾아내고 기뻐했다. 기름때 수첩에서 실습할  글을 발견한 것이다.

기계가 씨끄럽게 돌아가는 현장에서 믹스커피 한잔하며 손톱에 기름때가 낀 체로 쓴 글이다. 참... 글이 기계적이고 망상적인 건 할 수 없다. 그래도 나름 정비라는 행위에 생명을 불어넣으려고 노력은 한 것 같다. 


3. 인간은 어디서 왔는가?
부제 - 아담과 이브 -

기관실을 돌아보며 기계의 진동음에 박자를 맞추고 있으면 문득문득 이런 생각을 하게 된다. 기계와 인간은 비슷하다 기계를 고치는 우리 ENGINEER들은 사람을 정비하는 의사와 다를 바 없다, 정비 후 기름 묻은 손을 닦듯이 수술 후 피 묻은 손을 닦는다.

힘찬 피를 토해내며 MAIN ENGINE이 박동하고 머리에선 컴퓨터의 칩이 몸의 모든 장기를 통제하고 행동하고 반응하게 NEUMATINC(CONTROL AIR)를 이용한다. 이상이 발견된 장기는 ALARM 신호를 두뇌에 보내 그를 병원으로 달려가게 한다. 의사들은 스페너, 깔깔이(BOX WRENCH), 와이어 브러시, HAMMER 등 여러 수술 도구를 가지고 수술에 임한다. 그가 흘린 피는 웨이스로 깨끗이 닦아지고 시운전 결과가 좋아 퇴원이란 기쁜 소식을 가지고 병원문을 나선다. 너무 기분이 좋은 나머지 좋은 일을 해야겠다고 다짐하고 BUNKERING 이란 간판의 헌혈집으로 들어선다.
그의 팔 MANIFOLD에 호수가 연결되고 1750톤의 피를, 누군가에게 아주 큰 도움이 될 그 피를 음료수와 초코파이로 맞바꾼다. 하지만 헌혈집 SURVEYOR에게 헌혈증서를 받고 나오면서 그의 입가엔 웃음이 흐른다.

이렇듯 사람과 기계는 아주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단지 기계, MACHINE의 발전이 늦었다는 것 일 뿐. 그렇다. 기계는 인간이 되어가는 한 과정일 것이다. 그들은 점점 발전하여 생각하고 행동할 것이고 덩치 큰 기계들은 나노기술과 컴퓨터의 발전으로 점점 작아질 것이고, 재료 기술의 발달로 무게는 가벼워질 것이고 표면은 탄력성을 가지게 될 것이다. 그렇게 발전을 거듭하여 생각하고 행동하고 반응하는 이상체인 인간의 모습을 하게 될 것이다.

우리 인간들도 기계의 발전으로 인해 필요하지 않은 부분은 퇴화되고 두뇌는 더욱 커질 것이며 생활은 편리해질 것이고 사회, 경제, 정치, 과학, 문화, 예술 등 모든 분야의 유토피아를 건설하게 될 것이다. 공상과학 영화의 외계인 모습을 하고 있지 않을까?
모든 걱정이 사라진 그들은 지루 한 나머지 신의 영역인 창조까지 발을 넓혀 다른 죽은 별에 가서 바다를 만들고, 땅을 만들고, 여러 동물을 만들고, 마지막으로 아담을 만든다. 아담의 신체 일부로 이브를 만들고 후손을 낳고 그 후손들은 기계를 만들 것이며, 그 기계들은 인간이 되고, 인간들은 또 유토피아를 건설하고 또 다른 별을 향해 로켓을 쏘아 올릴 것이다.

이렇게 돌고 돌고 돌지만, 우주는 끝이 없을 것이고 이렇게 돌아가는 우주는 어느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그 크기조차 가늠할 수 없는 어느 커다란 쥐새끼의 한 세포일 수도 있는 것이다.

우리는 이렇게 끝을 알 수 없는 세상 속에 살면서도 아등바등 서로를 잡아먹지 못해 안달이니, 인간들이여 여유를 가져라, 사랑하라!
아, 참고로 웃자고 한 소리니 종교적 시선, 특히 창조에 관해 논한 것은 이해해 달라. 땀 흘리며 일하고 있으니 정신이 나가 있다.

다행히 버리지 않고 잘 보관해 둔 기름때 낀 실습수첩


나의 20대,30대 글쓰기 욕망은 아름다움을 기록하고 싶거나 글의 주인공이 되기 위한 것일 게다. 즐거웠던 순간, 아름다운 것을 본 순간, 힘든 일을 극복했던 순간, 사랑했던 순간... 우리가 겪어내는 흘러가는 순간들은 그렇게 특별하거나 흥미롭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글로 쓰는 순간 한 편의 대서사시이며 한 편의 드라마가 된다. 그 자극적인 맛에 글쓰기를 넘어 글짓기를 갈구하고 있던 것일 게다.


40대에 접어들면서, 아니 변화 시점으로 말하자면 인생 2막이 시작되는 요즘에는 관점이 변했다. 초점 잡히지 않는 내 자신을 또렷이 보기 위해서 글을 쓴다.


글로 과거를 정리해보면 나의 윤곽을 그릴 수 있다.

글로 현재를 정리해보면 윤곽에 명암을 넣을 수 있다.

글로 미래를 정리하면  밑그림에 색칠을 할 수 있다.

글로 에세이 한편을 쓴다면 액자에 넣어 걸 수 있다.


벽에 걸린 액자를 보고 커피 한잔 하며 감상에 젖는다. 마음이 따뜻해진다. 궁극적인 목표는 소설 쓰기다. 여러 개의 액자들이 걸린, 마치 전시회라고 할 수 있는 소설... 아직은 전시회를 개최할 실력은 부족하다. 좀 더 갈고닦아야 한다. 꼭 해내고 싶다.

 

글씨는 잘 못 쓰지만 펜으로 적기를 좋아한다. 요즘 들어 중지에 펜이 닿는 부분이 부풀어 올라 있다. 굳은살까지 배겨 느낌이 없고 뜯어내야 할 정도까지 볼록 솓아 있다. 중학교 2학년 때 담임 선생님이 깜지 마니아였는데 그때 이후로 오랜만에 느껴보는 굳은살이다. 까슬까슬한 볼록함을 문질러 보지만 고통스러움은 아니다. 기분 좋은 뻐근함이다. 느낌 좋은 까슬까슬함에 자꾸 손이 중독된다. 점점 짙어져 가는 색깔 있는 자아도 굳은살처럼 볼록 솓는다. 주위로도 색깔을 입혀준다. 만사가 오색 빛깔이 된다.


영화배우들이 작품 활동 중에 몰두한 나머지 일상생활도 극중인물로 한다고 한다. 비슷한 맥락으로 요즘 글짓기에 푹 빠져 있다 보니 머릿속이 온통 지금 쓰고 있는 글 생각뿐이다. 순간 번뜩이는 글귀를 놓치지 않기 위해 수첩이고 핸드폰이고 적기 바쁘다. 아래는 아내가 아파트커뮤니티에서 동을 나눔 받아온 나눈 대화를 급히 메모해 둔 것이다.


"봄동 나눔 받아왔어. 우리는 뭘 나눔 할까?"
아내가 다섯이 모인 자리에서 묻습니다.

"와 하하하"
셋째가 파릇파릇 배춧잎을 만지작거리며 웃습니다.

"우린 셋째 미소를 나눔 해야겠다"
아내가 셋째의 볼을 살짝 꼬집습니다.

"그럼 나는?"
둘째가 시셈하듯 묻습니다.

"둘째의 짜증을 나눔 합니다"
아내가 놀리 듯이 말하며 둘째의 머리를 쓰다듬습니다.

"엄마 저기 저기"
첫째가 내 뱃살을 가리키며 손가락질합니다.

"아빠의 뱃살을 나눔 합니다"
아내가 내 뱃살을 인심 좋게 한 움큼 집습니다.

"아내의 얼큰을 나눔 합니다"
봉변당한 러브핸들의 주인이 반격합니다.

"그럼 나 죽어"
아내가 부끄러운 듯 한 손으로 얼굴 반을 가립니다.
*얼큰: 얼굴 큼


이런 일상적인 대화도 끄적이면 미학 된다. 새기지 않는다면 흩날리먼지요 망상일 뿐이다. 어떤 글이던, 잘 쓰던 못쓰던, 우선 한 글자라도 적어 보는 게 좋다고 생각한다. 어차피 글쓰기는 한번에 완벽하게 쓰는 것이 아니라 고쳐쓰기가 본질이라고 생각한다. 미천하지만 우선 쓰고 볼 일이다. 아로새기자.


흔들리던 벼랑 끝에서 날 잡아준 글쓰기. 여러 생명의 은인들이 있지만 글쓰기도 큰 몫을 담당했다. 내자신을 문서화해주고 정리해서 해결책을 제시해준 소중한 행위다. 앞으로 꾸준히 해야 할 행위다. 은혜에 보답하기 위해서라도 늘 감사해하며 시간 날 때마다 만나 보려 한다. 그리고 궁극적인 목표를 향해 조금씩 조금씩 앞으로 나가 볼 예정이다.





글쓰기 명언을 공유합니다.

거장들도 비슷한 생각과 고민을 하나 봅니다.



모든 문서의 초안은 끔찍하다.

글 쓰는 데에는 죽치고 앉아서 쓰는 수밖에 없다.

나는 <무기여 잘 있거라>를

마지막 페이지까지 총 39번 새로 썼다.

글쓰기는 아무것도 아니다.

당신이 할 것은 타자기 앞에 앉아서 피를 흘리는 것이다.

- 어니스트 헤밍웨이


작가로서의 삶을 시작하는 사람들에게

글쓰기 재능을 연마하기 전에

뻔뻔함을 기르라고 말하고 싶다.

- 하퍼 리


글을 쓰고 싶다면

정말로 뭔가를 창조하고 싶다면

넘어질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 알레그라 굿맨


내 인생의 절반은

고쳐 쓰는 작업을 위해 존재한다.

- 존 어빙


때로는 쓰기 싫어도 계속 써야 한다.

그리고 때로는 형편없는 작품을 썼다고 생각했는데

결과는 좋은 작품이 되기도 한다.

글을 쓸 때는 문을 닫을 것

글을 고칠 때는 문을 열어둘 것.

- 스티븐 킹


위대한 글쓰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오직 위대한 고쳐 쓰기만 존재할 뿐이다.

- E.B. 화이트


글쓰기는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는 일이다.

글쓰기를 못한다는 건 표현이 서툴다는 얘기다.

- 백승훈


당신은 그 이야기를 쓰면 된다.

-토니 모리슨


작가에게 눈물이 없다면, 독자에게 눈물도 없다.

작가에게 놀람이 없다면, 독자에게 놀람도 없다.

- 로버트 프로스트


글쓰기는 세상에서

가장 외로운 노동이다.

- 존 스타인 벡


분명하게 글을 쓰는 사람에게는 독자가 모이지만,

모호하게 글을 쓰는 사람에게는 비평가만 몰려들 뿐이다.

- 알베르 카뮈


"제 글은 천 번쯤 읽어요. 아예 소설을 외워요.

첫 장을 고치고 두 번째 장을 고칠 땐 다시 돌아가서 처음부터 고치거든요.

그렇게 반복하다 보면 누적이 되니까 전부 외우게 돼요.

다 써놓고 한 번에 보는 스타일은 아니에요.

계속 퇴고를 하죠.

편집자가 본 다음에도 고치고, 그때 문장을 통째로 들어내는 일도 많아요"

- 공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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