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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부엉이 아빠 Feb 26. 2022

EP15. "저는 톰 소여의 모험이요"

부엉이 아빠의 독서하기, 독후감 쓰기

우리가 어렸을 때부터 꾸준히 받는 질문이 있다.

"가장 감명 깊게 읽었던 책은?"

대답하기 쉬운 질문이면서도 참 난감한 질문이다. 다독을 하는 사람이라면 읽었던 수많은 책들 중에 뭘 선정할지 고민할 것이다. 책을 많이 읽지 않는 사람이라면 감명 깊을 정도로까지 읽은 책이 없을 수도 있고, 있다손 치더라도 비교대상이 많지 않으니 과연 이 책을 감명 깊게 읽었다고 지 고민일 것이다.


"저는 톰 소여의 모험이요"

고등학교 때까지 나의 답변은 한결같았다.

왜 하필 수많은 책들 중에서 톰 소여의 모험이었나? 그것뿐이 생각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책뿐이 제대로 읽지 않았기 때문이다. 세계명작 100선에 들기 때문에 남들에게 말하기도 괜찮았다. 독서와 가깝지 않았지만 그래도 가뭄에 콩 나듯 읽은 책들은 주로 자극적인 소제의 작품, 예를 들어 소설 '링' 같은 장르였기 때문에 남들에게 손꼽는 책으로 말하기도 부끄러웠다.


국민(초등)학교 1학년 때 책장에 빼곡했던 '세계명작전집'의 압박감... 외삼촌이 입학 선물로 큰돈 들여 사주셨으니 잘 읽어야 한다는 책임감... 그림이 적은 데다 어린 나이에는 버거운 글씨의 방대함...

쓱쓱 꺼내보고 훌훌 넘겨보고 탁탁 집어넣기를 반복하던 중, 그림이 제일 많고 내용이 재미있어 보이는 '톰 소여의 모험'이 걸려들었다. 실제 내용도 신나게 노는 내용이니 읽기에 괜찮았다. 그 한 권만 처음부터 끝까지 완독 했고, 나머지 것들은 엄마 아빠가 나타나면 보는 척하다 대충 그림만 보고 다시 껴놨다. 그렇게 사명감을 가지고 피동적으로 독서했기 때문에 잘 읽히지도 않았을뿐더러 교훈이 있더라도 "아 네네" 하고 넘어가는 식이었다. 거부감이 있었다.

(제가 제일 좋아하는 셋째 외삼촌, 이제 와서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100권 중에 한 권만 읽었습니다... 오래 건강하세요. 이번 봄에 놀러 갈게요.)


책이 교훈을 준다고 알고 있었지만 실제로 깨닫기 시작한 것은 20대가 넘어서 일 것이다. 고등학교 때까지는 부모님이 짜준 틀 안에서 편협했다면, 그래도 대학교 때는 나름 자유분방했다. 버스 칸에 앉아 무라카미 하루키의 '상실의 시대'를 덮으며 창 너머 하늘 멀리 미상의 여인과 방황적인 사랑에 빠져 보기도 했다. 3,900냥 고기뷔페 동아리 회식 후 거나하게 취한 상태로 기숙사 침대에서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개미'를 보는 건지 마는 건지 뒹굴거리며 작가의 기발한 상상에 나의 미천함을 비교하기도 했다. 2000년대는 대학생 데모가 별로 없던 시절이지만, 빛바랜 조세희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신경숙의 '외딴방'을 완독하고 분노에 차올라 인권 시위하는 곳이 없나 찾아보기도 했다. 물론 실천력이 제로라 검색만 해봤다.

 

그러던 중 고모로부터 이안 시모어의 '멘토'라는 자기계발서를 선물 받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책으로부터 처음 정형화된 교훈을 얻을 수 있었다. 해야 할 행동들과 마음가짐들을 조목조목 적어놓고 일러줬다. 내가 앞으로 살아가면서 몸소 체험해야 할 처세와 숙련들을 미리 알려 주고 있었다.

저자: R.이안 사모어, 출판사: 씨앗을 뿌리는 사람(스펜서 존스의 '멘토'가 아니다)

고지식한 가치관을 가지고 있던 나에게 새로운 가치관은 조금 충격적이었다. 나만 보기 아까워 룸메이트에게 전달했다. 그 녀석도 그때 자기계발서에 심취하게 됐고 지금까지도 자기계발서 마니아를 유지하고 있다. 연락될 때마다 나한테 이거 읽어라 저거 읽어라 잔소리로 일관하지만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는 기술로 방어하고 있다. 그래도 퇴사 후 휴식기인 지금, 그 친구가 추천해 준 책 몇 권을 사놓긴 했다.


그렇게 대학교 때 우연한 기회로 자기계발서와 친근해졌고, 졸업 후 현장근무 때 실질적으로 도움이 됐다. 업무를 해나갈수록 점점 더 공감이 고, 그중 머릿속에 남기고 싶은 책들은 기록을 하기 시작했다. 독후감의 시작이라고 볼 수 있는데, 독후감이라기보다 책 내용들을 필기한 정도라고 할 수 있다. 어렸을 적 독후감 숙제는 정말 하기 싫었고, '톰 소여의 모험'을 우려내고 또 우려내며 제출하기 일쑤였는데 스스로 독후감을 쓰기 시작한 것이다.

 

독후감 출발 테이프를 끊어준 책은 스유엔의 '상경'과 신현만의 '회사가 붙잡는 사람들의 1% 비밀'이다. 15년 정도가 지났는데도 아직 책장에 꽂혀있다. 심취해서 읽었고 독후감으로도 남겼고 책의 내용대로 행동하려 노력했다. 덕분에 신입사원 시절 최소한 욕먹어가며 일하진 않았다. (회붙사1%는 몇 번씩 읽었고 아끼는 회사 후배에게 선물해 주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에 와서 한 장 한 장 넘겨보면 워라밸 시대에는 조금 맞지 않는 부분도 있긴 있다).

        상경(저자:스유엔) / 회 붙 사 1%(저자: 신현만)


다행스럽게도 자기계발서만 읽은 것은 아니었다. 소설도 띄엄띄엄 계속 읽고는 있었다. 그중 조정래의 '태백산맥'은 퇴근 후 맥주 한깡에 풀어져있는 근육들을 다시 긴장시키기에 충분했다. 민족의 비극적 역사 속에 등장한 소설 속 입체적인 인물들에게 감정이입을 충만히 했다. 책을 읽는 몇 달 동안 대립되는 이데올로기를 가슴쳐라 원망했다.

그 원망스러움이 아직도 남아있었나? 예전에 한번 읽었던 책들도 요즘 다시 사들였는데, 그중에 '태백산맥'이 큰 몫을 담당했다. 이 슬픈 대하소설에 대한 독후감은 쓰지 않았었는데 이번에 다시 완독 후 꼭 써볼 예정이다. 그 양이 방대하여 두렵지만 필사하시는 분도 계시기에 독후감 정도는 못할 일도 아닐 것이다.


대학시절, 현장근무시절 그래도 나름 책은 읽고 살았는데, 사무직으로 옮기고 결혼을 하고 자식이 생기면서 독서와는 담을 쌓았다. 평일 하루 4시간 정도 출퇴근 시간 여유가 있으면서 1~2년차때는 출근 전에 회사 업무 미리 챙겨야 하고 퇴근하며 오늘 한일 마무리한다는 핑계에, 3~4년차때는 새벽 공기에 무거운 눈꺼풀과 저녁 어둠 속 술기운의 핑계로, 5~10년차때는 공황장애와 이미 독서와 관계가 서먹해졌다는 핑계로 시간을 전혀 활용하지 못했다. 주말은 가족들과 보내야 한다는 핑계로, 좀 쉬어야 한다는 핑계로, 좀 놀아야 한다는 핑계로 미루기 바빴다. 독서로 정신을 바로 잡고 삶의 방향성을 잡아야 하는데 그렇게 점점 좀 먹어가고 있던 것이다.


그래도 벼랑 끝에서 언뜻 책을 찾아보게 되는 행운을 얻었고, 글쓰기와 마찬가지로 독서도 생명의 은인이 됐다. 독서는 엉켜있는 감정의 실타래를 천천히 풀어 줬다. 움츠려 있던 나를 천천히 일으켜 세웠다. 여러 책들은 나를 공감하고 있었고, 동기를 부여했고, 꿈을 꿀 수 있게 했다.

특히 아래 나열한 책들을 만난 건 큰 행운이였다.

마인드셋(케럴드웩/스몰빅미디어), 말센스(셀레스트 헤들리/스몰빅미디어), 맨탈의 연금술(보도 섀퍼/토네이도미디어그룹), 멍에를 벗어나기 위한 여정(장성숙/유나미디어), 적정한 삶(김경일/진성북스), 불행한 관계 걷어차기(장성숙/스몰빅미디어), 인생은 실전이다(신영준,주언규/ 상상스퀘어), 지하철이 무섭다고 퇴사할 순 없잖아(김세경/ 가나문화콘텐츠), 앵무새죽이기(하퍼리/열린책들)

* '앵무새 죽이기'는 나열한 책들과 다른 장르다. 소설 속 애티커스 핀치는 이길 수 없는 법정싸움과 험난한 외부요인 속에서 묵묵히 추구하는 본질을 향해 뚜벅뚜벅 걸어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또 자식들에게 솔선수범하며, 자상하게 선량한 가치관을 심어주는 모습도 그린다. 이에 큰 감명을 받았고 다시 힘낼 수 있는 동기부여가 됐기 때문에 같이 묶어놨다.

"수백 년 동안 졌다고 해서 시작하기도 전에 이기려는 노력도 하지 말아야 할 까닭은 없으니까"

- 하퍼 리의 '앵무새 죽이기' 중에서-


책속에 아무리 쓸모없는 내용이더라도 저자는 한번쯤 다시 생각하고 온 힘을 다 해 적었을 것이다. 의 고뇌와 번뇌와 경험과 도전과 실천과 시행착오와 깨달음과 숙련을 고스란히 담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독자들은 그 값비싼 결과를 만원, 2만원정도 내며 거의 헐값에, 아니 거의 훔치다시피 취한다. 하지만 저자도 베풂에 무한한 행복을 느낄 것이다. 책은 WIN WIN의 매개체인 것이다.


독서를 통해 고도의 지식인들과 가까이서 이야기할 수 있다. 독후감을 통해 훌륭한 사람들과 공존할 수 있다. 독서가 취미가 되었음에 감사하다. 이제 더이상 가장 감명깊게 읽은 책이 '톰 소여의 모험'이 되지 않아도 된다.






2021년 말부터 사 모은 책들의 향연

2021년 말부터 헐 값(?)에 책들을 사 모았습니다. 퇴사 후 휴식기에 다 읽겠노라 천명했지만, 백수 주제에 이것저것 기웃거리며 바쁘다는 핑계로 이제 겨우 2부 능선을 넘었습니다. 이러다가는 다 읽지도 못하고 새로운 생계를 시작할 것 같습니다. 나를 채찍질하며 좀 더 속도를 내기 위해 아래와 같은 자충수를 둡니다.

(또 한 번 큰 사고를 치는 느낌입니다...^^)


1. 부엉이 아빠 독후감 코너를 신설한다.

(리뷰가 아닙니다. 리뷰를 할 정도의 날카로운 시선과 지식과 실력이 아직 없습니다).

2. 책을 읽는다.

3. 독후감을 발행한다.

4. 다음 독후감 쓸 책을 예고한다.

* 한 권의 마감시한은 일주일을 넘기지 않는다.


* 첫 시작은 김승일 작가님의 '재미의 발견'으로 하겠습니다.

(김승일 작가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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