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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부엉이 아빠 Mar 12. 2022

EP17. 여행은 어디로 가야 할까?

#1 여행은 어디로 가야 할까?

"여보, 우리 여행 어디로 갈까?"

옆에서 커피를 마시던 아내가 갑자기 묻는다.

"글쎄..."

퇴사 결정 후 많은 계획 중에 하나가 가족 여행이었지만 업무 인수인계 및 백수기간 각종 해야할일을 생각하느라 여행계획은 좀 미뤄 놓고 있었다.

"당신이 알아서 계획 좀 잡아봐요, 난 바다가 보고 싶어"

"오케이!"

흔쾌히 대답은 했지만 여행지를 정하고, 동선을 짜고, 비용을 체크하고, 숙소를 예약해야 한다. 머리가 지끈하다.

'우선 퇴사 한 다음 생각하자'

복잡한 머리를 핑계로 다시 슬쩍 뒷전으로 미룬다.


#2 브리핑.

"이리 모여보세요"

텔레비전 화면에 노트북 화면을 띄워놓고 아내와 아이들을 불러 모은다.

"이번에 우리는 대한민국 등줄기 여행을 할 거야"

5박 6일간의 각 목적지, 동선, 예약한 숙소, 주위 맛집, 대략적인 비용을 4명 앞에서 읊조렸다.

아이들은 처음에 관심을 갖다가 집중력이 흐트러진다. 아내는 바다를 보고 싶다고 했다지만 매일 숙소를 옮겨 다니는 일정에 혀를 내두른다.

그래도 꼬박 하루를 고민하고 준비한 일정이다. 변경은 없다. 강행하기로 한다.

속초,강릉-태백산-영덕,후포-경주-포항-부산


#3 출발 준비!

강원도 폭설로 차가 고립될 상황까지 생각해서 짐을 꽉 채운다.

가득 찬 짐에 룸미러로 후방이 보이지 않지만 마음은 안정감으로 채워진다.

루프 박스를 가득 채운 고립 대비용 비상식량과 장비들
마음의 안정을 가져다 주는 짐들


#4 설악 자생식물원(feat 부엉이 박물관)

첫 번째 목적지인 설악자생식물원을 내비게이션에 찍는다. 3시간 좀 넘게 걸린다.

아내와 아이들의 재잘거림에 기분이 좋다. 엔진의 진동도 경쾌하다.

한참을 달려 설악자생식물원 진입로로 들어선다.

오잉, 부엉이 박물관이 있다. 부엉이 가족에게 이번 여행이 축복이 되려나 보다. 부엉이 조형물에서 5명이 신나게 사진을 찍어 댔다.

영하의 날씨에 자생식물원에서는 앙상함 밖에 볼 수가 없었지만 아이들은 상관없다. 가져간 눈오리 집게로 강원도 눈을 집어 여기저기 올려놓기 바쁘다.

부엉이 조형물도 다섯 마리, 우리 부엉이가족도 다섯 명
부엉이 아빠일까?   /   자생식물원과 눈오리


#5 설악항 회센터

배고프다며 노래 부르는 여성 4명을 모시고 작년 결혼기념일 때 갔던 설악항 회센터로 차를 몰았다.

입구부터 호객행위가 심하다. 회센터에서 호갱이가 되지 않는 법은 이전부터 알고 있었다. 당당히 뚫어내고 작년 갔던 가게로 간다. 주인장 할머니께서 날씨가 추워 손님들이 없다며 첫 손님이니 푸짐하게 퍼주신단다.

자연산광어, 자연산우럭, 기름가자미, 밀치, 생선구이를 이 가격에 먹어도 되나 죄송스러운 마음이지만 배고픔에 금세 잊는다.

설악항 회센터 16호 동호네


#6 CAFE TUMBLER 와 눈물 젖은 피자, 구운 치킨

"다들 잘 먹었어요? 빨리 가자. 강릉 가서 짐 풀고 갈비집 가려면 시간이 촉박해요"

다음 일정은 강릉 숙소에 짐을 풀고 유명한 갈비집에 가는 것이다. 강릉까지 한 시간 반이 걸린다. 시간이 촉박할 것 같아 재촉한다.

"여보, 지금 갈비까지 먹을 배는 없으니 그냥 우리 카페 가서 여유 즐기다 가자"

아내가 일정을 좀 여유 있게 하자고 한다. 계획대로 움직여야 하는 나지만 이번은 가족들을 위한 여행이라 의견을 바로 반영한다. 그리고 바다가 보이는 카페로 방향을 튼다.

모두가 여유 있게 커피와 빵과 바다를 즐겼다.

어둑어둑 해진 길을 따라 강릉 숙소에 도착한다. 이번 여행에 제일 큰 비용을 지불한 숙소다. 배 모양 건물에 야간 조명이 화려하다. 모두 우와하고 감탄할 줄 알았지만 시큰둥하다. 벌써들 피곤한 것이다.

숙소에 올라와 짐을 풀고 정리하니 모두 녹초가 됐다.

"앞으로 5일을 어떻게 맨날 짐을 풀고 다시 싸고 숙소를 옮기고 하지?"

아내가 약간 농담 반 진담 반으로 투덜거린다.

"내가 여행 전에 브리핑했잖아. 힘든 것도 다 추억이지!"

열심히 준비했는데 그런다며 속 좁은 마음에 침대에서 돌아 누웠다. 조금 서러웠다.

"아빠 또 삐졌다, 냅둬"

아내는 신경쓰지 않는 척 아이들에게 당부한다.

"자기야 배고파 야식 먹자~~ 자기야~~"

한참을 텔레비전 보고 수다 떨고 하더니 배고프다며 삐져있는 나를 흔든다.

'그래도 가족여행인데 내 기분만 생각하면 안 되지'

한참을 뿌리치다가 못 이기는 척 옷을 주섬주섬 입고 아내와 야식거리를 찾아 나선다.

다행히 피자집과 치킨집이 있다. 포장 주문을 해놓고 옆 기념품 가게에서 아이들 줄 간단한 기념품을 산다.

'아빠가 삐져서 미안해'

속초항 "CAFE TUMBLER"   /    5명에게 약간 모자랐던 피자와 치킨


#7 강릉해변 일출과 마취빵

알람은 7시 20분에 돼있지만 6시에 눈이 떠졌다. 객실에서 일출을 볼 계획이었지만 부분오션뷰라 야속하게도 일출 방향과 각도가 맞지 않는다. 일출을 볼 수 있는 곳이 없나 호텔 내부를 한참 돌아다녔다. 오션뷰 객실과 식당들로 일출 방향은 모두 막혀 있다. 비용을 지불하지 않으면 일출도 볼 수 없다는 건가...

일출 시간이 다되어 아내를 조용히 흔들어 깨웠다.

"일출 보러 가자(소곤소곤)"

"끄응... 여기서 못 봐?..."

"내가 다 돌아다녀봤는데 호텔 내부에 볼 수 있는 곳이 없어, 해변으로 나가자"

아내가 졸린 눈을 비비며 따라나선다. 새해가 열흘이나 지난 평일인데도 해변가에는 일출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많다. 나오길 잘했다며 그들과 동조한다.

수평선으로 구름이 깔려있어 일출이 좀 늦어진다. 그리고 구름 위로 찬란하게 해가 고개를 내민다.

아내가 나오길 잘했다며 흡족해한다.

멋진 사진들을 핸드폰에 담고, 깨우지 않은 아이들에게 미안한 마음으로 마취빵을 사 가지고 객실로 올라왔다.

"얘들아, 일어나 아침 먹어야지~"

마취빵과 강릉 일출

 

#8 망칠뻔한 아름다운 동해 해변

"그러다가 다친다 적당히 해라~~"

멀어지는 파도에 달려갔다가 밀려들어오는 파도에 뒷걸음질 치며 4명이 깔깔거린다. 옆에서 그만하라 잔소리하지만 이리저리 핸드폰을 움직여가며 영상을 찍어주고 있는 나다.

"이제 진짜 가자. 태백산 가려면 부지런히 움직여야 해"

"마지막으로 한 번만~~"

4명이 한꺼번에 손을 잡고 달려간다.

"어어어, 꺅 악!!!!"

파도가 성이 났는지 갑자기 크게 몰려와 4명이 한꺼번에 바쁘게 뒷걸음질 쳤다. 하지만 아내가 넘어지고 첫째 아이가 거기에 걸려 넘어져 몸으로 아내의 손목을 덮쳤다. 거기에 둘째와 셋째까지 덮친 것이다. 아내가 쭈그려 앉으며 비명을 지른다.

"괜찮아?!!"

순간 식은땀이 나며 그녀의 손목을 살폈다.

"너무 아파, 근데 부러지지는 않은 것 같아"

다행히 움직이기는 한다.

"내가 그래서 그만하라고 했잖아!!"

안도감 때문이었을까? 손목이 부러졌고, 병원 가야 하고, 이번 여행은 여기서 끝났고, 전부 예약 취소해야 하고, 계획이 모두 흐트러질 것을 상상했기 때문일까? 버럭 소리를 질러 버렸다.

"아빠는 엄마가 다쳤는데 달래줘야지, 소리 지르면 어떡해!"

첫째 아이가 날 다그친다. 순간 미안해진다. 진짜로 이번 여행을 망칠 뻔했다.

태백산 국립공원은 내부 도로로 가면 빨리 갈 수 있지만 일부러 해안도로를 따라간다. 아름다운 동해 해변을 보여주며 미안한 마음을 표현해 줬다. 손목을 움켜쥐고 있는 아내도 서운한 마음이 좀 가라앉는 것 같다. 휴 다행이다.  

하얗게 부서지는 파도 위로 파랗게 빛나는 구름 한 점 없는 하늘, 푸르게 솟아있는 해송 옆으로 밝게 펼쳐저 끝도 없이 스쳐 지나가는 백사장... 운전사의 혈중 아름다움 농도는 0.1%였다.

강릉 해변 파노라마
해변 그네   /   파도놀이


#9 태백산도 식후경

태백산은 설경은 장관이다. 작년 결혼기념일 때 아내와 단둘이 왔었다. 이번에는 아이들과 함께 즐기려 한다.

금강산도 식후경. 강행군에 앞서 배불리 먹인다. 평소 미국산 호주산에 버릇 들린 아이들에게 한우를 대접해 준다. 비싼 음식 먹었으니 태백산에서 힘들다고 징징되면 안 돼~

아내 왈 "입에서 살살 녹는다, 녹아"

"태백 한우골"


#10 태백산국립공원-영하15는 쉽지 않았다.

산에 많이 데리고 다닌 건 아니지만 그래도 해발 500미터 산정도는 올라가는 녀석들이다. 태백산은 해발 1000미터가 넘는 산이지만 국립공원 등산로가 800미터 정도부터 시작이고, 그렇게 험하지 않기 때문에 소문수봉(해발 1,455m)까지는 갈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강원도의 겨울인 관계로 준비할 것들이 많았다. 주차하고 장비를 준비하는데만 한 시간 가까이 걸렸다. 그동안 아이들은 주위에 쌓인 눈으로 놀며 시간을 때웠지만 이내 강한 바람과 영하 15도 날씨에 춥다춥다를 외쳐대기 시작했다.

"조금 올라가다 보면 금방 더워져. 소문수봉은 정상이 아니니까 거기까지만 가자"

달래면서 강행했다.

"나 가기 싫어!!"

둘째 녀석이 발을 구른다.

"그럼 넌 여기 혼자 있어"

"아빠! 같이 가!! 잉잉"

투덜투덜 거리는 여성 4명을 이끌고 30분 정도 올랐다.

"아빠, 엄마 손목 아프데"

첫째 녀석이 따라오면서 이제 더 이상 안 되겠다며 나를 잡아 끈다.

"그래 돌아가자, 그래도 우리 태백산 오르긴 한 거다~"

유턴하니 모두 얼굴이 밝아진다. 그래 뭐 어쨌든 영하 15도에서 태백산에 두 시간 있던 것도 대단한 거다.

 

태백산 국립공원 입구
겨울의 태백산


#11 강원도 감자탕과 뜨끈뜨끈한 태백산 민박촌

태백산에서 2시간 정도 머물렀지만 5명의 손발은 꽁꽁 얼어 붙었다.

다행히 숙소는 국립공원 바로 밑에 민박촌이다. 작년에도 여길 사용해 봤다. 시설은 오래됐지만, 주위가 조용하고 방바닥이 정말 따뜻한 곳이다. 2층집 구조로 돼있어 아이들이 좋다고 난리다.

"난 오늘 이층에서 잘 꺼야!"

"나도 나도!"

둘째와 셋째가 방방 뜬다. 그래 맘대로 뛰어라. 아파트에서 맨날 뛰지마라 뛰지마라 했는데 오늘은 우리숙소 양옆으로도 아무도 들어오지 않아서 측간 소음에도 상관없겠다.

다음 계획은 싸온 음식을 간단히 데워서 저녁을 먹는 것이었다. 그런데...

"여보, 가스렌인지는 있는데 그릇이 없어..."

"뭐??"

아... 그러고 보니 작년에도 그릇은 없던 것으로 기억난다. 한번 와봤다고 자만하고 민박촌 주위사항을 제대로 읽지 않고 온 것이다. 전자레인지도 없고, 싸간 음식을 데울 냄비조차 없다.

"시내로 나가려면 한참 나가야 하는데... 뭘 먹어야 하나..."

"강원도는 감자가 유명하지 않아? 감자탕 먹으러 가자~"

첫째 아이가 감자탕을 추천한다. 감자탕의 감자는 그 감자가 아니라 돼지뼈 감잔데... 검색해보니 시내에 감자탕 집이 있기는 있다.

뜨끈한 감자탕이 식탁에 놓이자 한 숟가락 음미해 본다. 오, 우리 동네 감자탕과는 다른 맛이 난다. 추위에 얼었던 몸이 감자탕에 스르르 녹는다.

돌아오는 길에 일회용 그릇과 숟가락을 구매하고, 루프 박스에 고립 대비용 장비인 주전자를 꺼내왔다. 다음날 아침식사 준비를 위해...

태백시 "서울 감자탕"
아침을 먹고 힘난 아이들   /   주전자를 이용해 준비한 아침식사


#12 태백체험공원

다음 행선지인 영덕으로 가기 전에 민박촌에서 가까운 태백체험공원을 들렀다.

탄광을 체험해볼 수 있는 곳이다. 갱도도 살짝 들어가 볼 수 있다. 광부들의 힘겨운 삶을 아이들에게 보여주고 지금 우리가 얼마나 행복한지 느껴보라 했다. 그래도 당시 광부들은 힘든 사람들이 많았겠지만, 가족들을 먹여 살린다는 생각에 즐겁게 일하는 분들도 많았을 것이다. 체험관의 사진 속 광부들은 사진을 찍는다고 의식해서 그런지 몰라도, 배경은 석탄으로 검은색이었지만 하얀 치아를 들어내고 웃는 분들이 많았다.

빛을 내는 원료인 석탄을 캐기 위해 어두운 곳으로 들어가야 했던 사람들... 그들이 있었기에 현재가 밝다. 우리 아이들이 밝다. 여행 중인 다섯 명은 광부들께 감사한 마음을 가진다.

"태백체험공원": 강원도 태백시 소도동 3


#13 영덕대게마을

다음 행선지 영덕까지는 시간이 꽤 걸린다. 빠른 길도 있지만 일부러 바다를 보며 가려고 울진으로 차를 몰았다. 울진에서부터 시작되는 해안도로는 작년에 방문했던 제주도 바다와는 뭔가 다른 아름다움이 있었다. 아내도 옆에서 연신 감탄을 내뿝는다. 도로를 따라가다 아름다움에 취해 망양정 해수욕장에 차를 세우고 내렸다. 강릉 해변가에서 그렇게 당하고도 또 모래사장 파도 장난을 친다. 깔깔깔 소리에 잔소리는 쏙 들어간다.

"아빠 아직 멀었어? 배고파"

"어, 이제 다 왔어~"

내비게이션은 아직 한 시간 이상이 남았다고 가리키지만 하얀 거짓말로 아이들의 허기를 달래 준다.

영덕 대게 마을의 상징인 대형 대게조형물이 왼편으로 보인다. 좌회전 신호를 한참 기다린다. 무심하게 길다.

가게 앞에 나와있는 아줌마 아저씨들이 차를 대라며 호객행위가 심하다. 이미 검색을 해온지라 무시하고 목적지에 차를 세운다. 주인아저씨가 웬 떡이냐며 환영한다.

흥정이 시작됐다. 영덕대게(박달게)의 가격에 정말 깜짝 놀랐다. 그 표정을 아저씨가 눈치챘는지 러시아산도 맛있다고 큼지막한 녀석을 집어 올린다.

"아, 아저씨 아니에요 박달게로 좀 싸게 주세요, 영덕에 왔으니 영덕대게를 먹어야죠"

"그래요? 그럼 집게발 떨어진 녀석 하나 있는데 그거 포함 두 마리로 싸게 줄게요"

기분 좋게 더 이상 가격 흥정을 하지 않았다. 아저씨가 미안했는지 홍게를 두 마리 더 넣어준다.

"올라가 있으셔, 맛있게 쪄서 올려 드리리다"

탁 트인 강구항이 보이는 멋진 뷰에 밑반찬을 깔아준다. 메인 음식이 아닌데도 아이들이 탄성을 지른다. 그만큼 배가 고픈가 보다.

"잠깐! 잠깐! 너무 많이 먹지 마세요. 곧 대게 쪄서 올라올 거야"

"아빠 그럼 내려가서 꽃게 구경해도 돼?"

아이들이 뛰어 내려간다.

한참을 올라오지 않길래 내려가 봤더니 아저씨가 대게를 수족관에서 꺼내 아이들 보고 잡아보라며 대게 체험을 해주고 있다. 연신 즐거워하는 아이들을 보며 흔쾌했던 흥정이 더욱 뿌듯하게 느껴졌다.

뭐 대게 맛이야 말할 것도 없고~.

영덕대게마을 입구
영덕박달대게(feat 삼천포 대게 도매 직판매장)


#14 백암온천 야식.

오늘의 숙소가 있는 후포 백암온천은 생각보다 산속에 있었다. 꼬불꼬불 타고 들어갔더니 리조트가 몇 개 있는 마을이 나타난다. 온천이 끝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아 급하게 짐을 풀고 할인받을 앱을 급하게 설치하고 여성 4명을 여탕으로 급하게 들여보내고 오랜만에 조용히 즐길 거라 남탕으로 들어섰다. 근데 웬걸... 고등학교 여러 축구팀이 단체로 왔다. 아직 코로나가 한창이고 백신도 맞았다고 하지만 래도 되나 약간 의아했다. 그래도 물장난하는 순수한 청년들을 보니 덩달아 순수해졌다. 따끈한 온천물에 내 몸도 녹았다.

노곤해져 숙소에 돌아왔더니 야식이 당긴다. 아무리 비싼 대게라도 가격에 상관없이 소화되는 건 똑같나 보다. 다행히 여기 리조트에는 사용할 수 있는 식기들이 많다. 가져간 즉석 떡볶이와 순댓국을 데우고 며칠간 조심스럽게 들고 다녔던 와인잔과 와인을 꺼냈다. 아내의 잔에는 와인을, 내잔에는 소주를~ 너무나도 행복한 밤이다.

야식과 아침식사용 부대찌게

 

#15 천년고도 경주에 대한 자만심

여행 전에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를 급하게 읽었다. 이번 여행에 경주가 포함이 됐기 때문이다. 그냥 슥슥 보고 지나가기보다는 작가의 말대로 아는 만큼 보이기 때문에 아이들에게도 설명도 해줄 겸 미리 공부한 것이다. 경주를 하루 만에 돌 수 있을까 걱정도 됐지만 선택과 집중을 하면 가능할 것이라 몇 개의 포인트만 찍어놨다. 불국사 -> 석굴암 -> 경주 국립박물관. 충분히 가능하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천년고도 경주를 무시한 것이다.

추운 겨울이지만 경주는 따뜻할 것이라 생각했다. 오판이었다. 영하 3도 정도였지만 그날따라 매서워진 바람에 벌써부터 춥다 춥다 원성이 터져 나왔다.

"불국사랑 석굴암이랑 박물관만 보고 가면 돼, 좀만 참으세요~"

무시하고 강행했다.

수학여행 때 그리고 첫째 아이가 아주 어렸을 때 와봤지만 역시 책을 보고 왔더니 느껴지는 역사가 달랐다.

청운교 백운교는 예술의 극치이며, 다보탑의 아름다움에 가려졌던 석가탑의 절제미는 파란 하늘과 더불어 더욱 큰 감탄을 자아냈다. 느끼는 게 많았는지 4명의 여성들의 원성이 커지던 말던 불국사에서 시간이 지체됐다.

그리고 꼬불꼬불 길을 따라 한참 운전해서 도착한 석굴암 주차장. 기억으로는 주차장에서 석굴암까지 얼마 걸리지 않았던 것 같은데 토함산 길을 따라 꽤 많이 걷는다. 날카로운 바람 때문인가 잘 지치지 않는 녀석들인데 힘들다 업어달라 때를 쓰기 시작한다. 석굴암에 도착하기 전 그 위대함에 대해 아이들이게 잔뜩 이야기해줬다. 하지만 유리장 넘어 잘 보이지 않는 본존불에 실망했는지 몇 분도 채 보지 않고 빨리 내려가자고 한다. 조금씩 계획이 틀어지기 시작한다.

가장 기대했던 경주 국립박물관에 도착했다. 왜냐하면 성덕대왕 신종(에밀레종) 있기 때문이다. 박물관 외부에 있는 그 종에 한참을 빠져 있는데 아내와 아이들이 여전히 풀리지 않는 날씨에 제대로 보지도 않고 내부로 쏙 들어가 버렸다. 뒤늦게 따라 들어간 내부는 다행히 따뜻했다.

굉장히 많은 유물들을 다 보기에는 시간이 촉박했다. 슥슥 훑듯이 봐야 하는 촉박함이 아쉬웠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토함산에서 지쳤던 아이들이 휘황찬란한 유물들에 관심있어 한다는 것이였다.

"폐장 시간 다됐습니다. 이제 나갈 준비 해주세요"

"기념품만 사고 나갈게요~"

그래도 거의 관람을 마치고 기념품까지 사 가지고 나왔다. 천년의 역사를 단시간에 다 보려고 했던 자만심에 내 허리도 뻐근해 왔다.

불국사 청운교 백운교
파란 하늘 아래 불국사 대웅전과 석가탑   /   경주국립박물관 앞마당에 있는 성덕대왕 신종


#16 기분 풀자!-바다가 보이는 뷔페와 부산 영도 빨간 등대

"검색 다했어? 뭐 먹으러가 우리?"

경주에서 저녁식사는 첫째에게 검색해서 골라보라고 했다. 5명의 식사를 책임진다고 생각해서 그런지 피곤할 텐데도 핸드폰을 열심히 뒤적거린다.

"아빠, 불고기 정식인데 괜찮겠어?"

"아우, 그럼 우리 딸이 고른 건데 뭐든 안 맛있겠어요? 다들 동의하지요?"

반대할 힘도 남아있지 않은 우리였다.

경주 "진수성찬"

경주 숙소에 짐을 풀고 내일 일정을 준비했다. 계획된 일정은 새벽에 일어나 포항 호미곶에서 일출을 보고 부산으로 이동하는 것이었다.

"내일 일어날 수 있으려나? 못 일어나면 못 가는 거지 뭐~"

"어떻게든 일어나야지요?! 힘든 것도 여행에 일부라고 했지요?"

투덜대는 아내에게 쏘아 부쳤다.

"몰라, 애들도 너무 힘들어하고 일어나야 갈 수 있지"

"그럼 맘대로 해!"

아내의 투정에 팍 화가 나버렸다. 맞춰뒀던 핸드폰 알람도 꺼버리고 불을 껐다.

"아이, 나 일출 보러 가고 싶어~ 거기 바다에 튀어나온 손 보고 싶단 말이야"

"..."

아이들이 투정하던 말던 대답 없이 돌아 누웠다.

그렇게 잠들어 버렸고 아침 8시가 돼서야 부스럭 거림에 눈을 떴다.

"여보 진짜로 안 일어났어? 해가 중천이야"

"어제 안 간다며?"

"내가 언제, 그냥 좀 힘들어서 그런 거지"

"됐어, 이왕 늦은 거 좀 더 자"

미안해하는 아내를 뒤로 한 채 이불을 덮어썼다.

"자기야~ 어제 힘들어서 그랬어, 당신 힘들게 준비한 거 알지~ 투덜 돼서 미안해, 일출은 못 봤어도 부산은 빨리 가자~ 으응~?"

"힘든 것도 여행에 일부분이니까 앞으로 긍정적으로 생각하세요, 알았지요??, 그럼 짐 챙기자"

속 좁은 나를 그래도 속 넓은 아내가 달랬지만 고맙다는 말은커녕 훈계하며 못 이기는 척 부스럭 부스럭 짐을 쌌다. 아침 경주 날씨는 야속하게도 따뜻했다.

두어 시간 달렸더니 화창한 부산이 기다리고 있다. 미리 검색해놓은 영도의 오션뷰의 뷔페와 빨간색 등대는 언제 그랬냐는 듯 우리를 팔짝팔짝 뛰게 만들었다.

부산 영도 빨간 등대
부산 영도 "오채담"


#17 새우깡이 없으면 감자깡으로!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태종대는 곳곳에 볼 것이 많은 곳이다. 하지만 아이들을 데리고 걷기에는 무리라 내부 관광버스 같은 '다누비 열차'를 타기로 했다. 주차를 하고 막 태종대 입구로 들어서려는데 어떤 아저씨가 호객행위를 하고 있다.

"다누비열차 운행 안 합니다!, 태종대 유람선 타고 도세요. 마지막 배입니다. 빨리 승선티켓 사세요"

"날씨가 따뜻해졌는데 다누비열차 운행 안 한다고요?"

"네, 태종대 내부도로에 소화전이 터져서 길이 다 얼었어요, 그것 때문에 운행 안 합니다"

낭패다. 걸어서 돌기에는 너무 무린데...

"성인 둘, 어린이 셋 표주세요"

호객행위에 넘어간 기분이다.

"네 시간 얼마 없습니다. 저기 앞에 선착장 가는 버스 타세요"

"여보, 잠깐만 갈매기들 줄 새우깡 가져가야지"

"아, 새우깡은 안 사놨는데"

"잠깐만, 나 차에 금방 갔다 올게"

아내가 차에 뛰어가더니 손에 감자깡을 들고 온다. 역시 육아전문가. 순발력이 짱이다.

유람선을 따라 갈매기가 몰려온다. 다행히 감자깡은 대형 포장이라 넉넉하다.

"얘네들아, 갈매기 모이만 주지 말고 저기 태종대 해안절경을 좀 봐봐"

"아빠, 갈매기가 내손 치고 갔어"

잔소리해보지만 아이들 눈에는 해안절경이고 자살바위고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너무 좋아하는 아이들을 보고 있자니  호객꾼이 고마워진다. 소화전 터진 게 거짓말인지 아닌지 의심해 볼 필요도 없다.

태종대 유람선, 부산갈매기, 해안절경


#18 남포동 할매들의 불친절함.

부산 국제영화제로 유명한 남포동에 입성했다. 영화 '국제시장'으로도 유명한 국제시장이 뒤쪽으로 크게 있다. 위쪽 지방 로데오 거리와는 뭔가 다른 정겨움도 있다. 골목골목마다 볼게 많다. 역시 여성 4명이 좋아한다. 아기자기한 물품도 고르고 길거리 음식도 기웃기웃하다 어묵에 닭갈비를 뜯는다.

달고나 뽑기에 관심 있어 하는 아이들에 때문에 이거 할래 저거 할래 물건을 조금 만졌더니 주인할매가 만지지 말고 보라며 고래고래 소리 지른다. 순간 화가 치밀었지만 부산 특유에 말투라 생각하고 죄송하다 고개 숙이고 두 개 골라 값을 지불했다.

계속 이동하며 이것저것 구경했다. 지나가다 예쁜 모자를 팔고 있는 가판대에서 아내가 셋째 아이에게 맞는지 안 맞는지 씌워본다.

"아이고, 딱 맞는다! 이거 해라, 딱이다!"

가판대 주인 할매가 높은 톤으로 말하며 셋째 아이에게 푹 눌러 씌워보지만 아무리 봐도 너무 크다.

"다음에 올게요, 맞는 게 없는 것 같아요"

"아이다, 딱 맞는다. 이봐라, 이봐!"

할매가 더욱 푹 씌운다. 아주 셋째의 눈까지 덮인다.

"아아, 아니에요 다음에 올게요"

아내가 셋째에게 씌워진 모자를 벗겨 할머니께 건넨다.

"사지 마라, 가라마!"

할매가 휙 뺏어 든다.

황당함에 쓴웃음을 지었다. 추운 날씨에 나와서 고생하시니 이해하기로 한다.

부산 남포동 거리


#19 해운대 야경의 아쉬움-인간의 이기심이 빚은 마천루인가?

숙소가 있는 해운대에 짐을 풀고 해변가로 나갔다. 역시 우리나라 최고의 관광지답게 사람들이 많다. 불빛들도 휘황찬란하다. 밤인데도 불구하고 해변가가 낮처럼 밝다. 예전에 와봤던 해운대와는 조금 다르게 높다란 마천루가 솓아있다. 인간의 이기심이 자연경관을 망치고 있는 건 아닌지 씁쓸해진다. 그래도 멋있긴 하다. 그 배경으로 이중성의 삼각대를 세워 사진을 찍는다.

밤바다를 따라 아이들이 파도 장난을 친다. 며칠 동안 했는데 아직도 재밌나 보다. 맘대로 뛰놀게 놔둔다.

해운대 전통시장은 불금이라서 그런가 사람들로 발 디딜 틈이 없다. 북적거림에 동참하고자 식당에 들어가려 했더니 거리두기로 지금시간은 포장만 된다고 한다. 아... 시간을 생각 못했다. 급하게 포장 줄에 서서 구슬 떡볶이, 김밥, 곰장어를 포장했다. 여행의 마지막 밤이 그렇게 마무리돼가고 있다.

해운대 야경과 곰장어+김밥+떡볶이 쌈


#20 호미곶-하늘을 떠 받들다.

이대로 여행을 끝내기가 아쉬웠는지 못갔던 호미곶에 갔다가 집에 가자고 아우성이다.

"아침에 일어날 수 있겠어? 새벽에 일어나야 갈 수 있는 건데?"

내심 기분이 좋았지만 새벽 징징 방지용으로 반문한다.

"응, 아빠 일어날 수 있어"

"여보, 투덜거리지 않을 테니 우리 유종의 미를 거두고 가요"

"오케이, 그럼 모두 일찍 자자. 일출 보려면 새벽에 출발해야 해"

아이들이 군말 없이 이불속으로 들어간다.

일출보다 30분 일찍 도착한 호미곶. 구름이 많이 껴있다. 일출을 잘 볼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모두 새벽에 일어나 여기 왔다는 것이 중요하다.

역시 일출은 완벽하게 보이지 않았지만 구름 사이로 비치는 여명은 장관이었다. 밝아지는 빛을 등진체 하늘을 떠받들고 있는 손은 우리의 마음을 경건하게 해줬다. 그 손처럼 세상을 위해 지금도 여기저기서 희생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아이들이 감사함을 느끼며 살아가길 바랬다.

포항 호미곶


부엉이 가족의 대한민국 등줄기 여행은 그렇게 마무리됐다.


이 여행기를 마지막으로 "부엉이 아빠 일내다"를 마친다.

근 10년을 근무하던 회사를 퇴사하며 나를 찾아 어디로 여행할 지 해맸다.

하지만 글을 쓰는 이 여행은 많은 깨달음을 남겨 줬다.

이제 그 깨달음을 가지고 인생 2막의 목적지를 향해 여행을 떠나보려 한다.    





이번 편을 쓰며 사진과 함께 글을 쓰니 재미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가끔 소소한 일상을 사진과 함께 게재하겠습니다.

새로운 코너명: 부엉이 아빠 글스타그램.




퇴사 전후 3개월 남짓한 기간동안 "부엉이 아빠 일내다"를 쓰며 제 자신를 찾아 떠나는 여행을 했습니다. 뜻깊은 시간이었습니다. 이것으로 퇴사에 관한 글은 마무리하겠습니다. 그동안 관심 가져주시고 응원해주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후속작 "부엉이 아빠 날갯짓하다"로 돌아오겠습니다. 40대 초반에 인생 2막을 준비하며 우왕좌왕 실패와 성공 그리고 가족의 소소한 일상에 대해 써보려고 합니다.


*기존과 마찬가지로 매주 토요일 정오에 발행하도록 하겠습니다.

(오늘은 사진 편집이 생각보다 많이 걸려서 마감시간을 맞추지 못했습니다. 양해 부탁드립니다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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