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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부엉이 아빠 Aug 04. 2022

[독후감]"프란츠 카프카 단편 선집"

변신, 시골의사 등

제목: 변신, 시골의사

저자: 프란츠 카프카

옮긴이: 전영애

출판사: 민음사

발행일: 1998년 8월 5일.


핸드폰 메모장에 '프란츠 카프가 소설 읽어'라고 끄적여 었다. 어디서 보고 듣고 급하게 메모해놓은 건지 기억나지 않지만 벌써 몇 번을 뒤로 미뤄 메모저장을 반복한 후에야 읽게 됐다. 소설가 프란츠 카프카에 대한 지식은 전혀 없었기 때문에 간단히 검색을 먼저 해봤다.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령이었던 지금의 체코에서 태어나 독일어를 쓴 유대인 소설가.


역사적으로 체코 또는 보헤미아 지역에는 혈통이 게르만이 든 슬라브든 독일 화자가 매우 많았다. 이들은 유대인이면서 체코어를 할 줄 아는 체코인이고 독일어를 제1언어로 사용하는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인이었기 때문에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상당히 고민을 한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배경은 카프카 특유의 사회적 소외감에 어느 정도 영향을 주었을 것이라고 여겨진다.


빈센트 반 고흐와 같이 예술적 감각이 시대를 앞서간 천재 중의 천재로 평가된다. 독어권의 대문호라고 볼 수 있다.

(출처: 나무 위키)


검색된 페이지에는 그 뒤로 일생(작품 활동 포함), 사후 영향력, 이스라엘의 주장과 비판, 작품 목록 등이 쭉 나열되어 있었지만, 더 이상 읽지 않고 작품 그대로를 느끼기 위해 책을 펼쳐 들었다.


변신

주인공 그레고르는 어느 날 아침, 자신의 몸이 한 마리의 해충으로 변해있는 상태로 눈을 뜬다. 이 이야기를 읽어 내려가는 초반에는 그 변신으로 인해 일어나는 일, 그리고 왜 변했는 지를 밝혀가는 내용을 예상하고 SF 판타지를 기대했다. 하지만 내용이 흐르면서 주인공이 가족 구성원으로서의 의미 변화, 그리고 그 구성원에서 제외되고 도태되면서 소외된 자의 시선으로서 아버지, 어머니, 누이동생을 꾸준히 관찰하고 주변 기타 인물들과의 관계 변화를 몽상적이지만 사실적인 표현으로 그려낸 서사였다.


그레고르는 몸의 변화로 인해 시간이 갈수록 인간으로서 인지능력이 점점 사라져 간다. 주변 사람들을, 특히 가족들을 배려하려는 소통이 들로 하여금 오해로 번지며 점점 그는 가족 구성원에게 두려운 존재, 불필요한 존재로 각인되어 간다. 실로 나중에는 가장 믿었던 누이동생이 "이게 오빠라는 생각을 버리셔야 해요"라는 말을 들으며 그의 존재조차 부정당하며 쓸쓸히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해충이 되기 전에 그레고르는 가족을 먹여 살리는 가장이었고 집안에 기둥이었지만, 그가 해충으로 변하고 생계가 막막해지자 생활력이 없던 가족은 일터로 나가고, 일감을 받아오고, 하녀들의 고용을 줄이고, 과소비를 줄이고, 생필품을 팔고, 방을 세놓으며 스스로의 살길을 모색한다. 그리고 그레고르 죽음, 그러니까 해충의 죽음은 그저 그들에게 다른 삶을 시작하게 해 준 발판 정도로 치부된다.


프란츠 카프카 작가에 대한 인물 지식이나, 그가 작문을 했던 그 시대의 배경 지식 없이 오로지 이 단편만 읽고 내 나름대로 판단해보건대, 작가는 핍박받던 노동자를 해충이 된 주인공의 삶을 통해 대변하며 그 노동자들의 노력과 열정은 결국 크게 보상받지 못하고, 고용자에 이득만을 위해 착취당했으며, 노동자들이 노동력을 상실하면 해충 취급당하는 것을 풍자한 것이 아닐까 생각해봤다. 어느 시대나 노동에 관해서는 불협화음이 있으니까 말이다. 아니면 내용 그대로 가족들과의 불화를 표현한 것일 수도...


판결

자식과 치매노인의 갈등을 표현했다. 치매노인의 자살까지의 짧은 과정을 자세히도, 또 망상적으로 풀어놨다. 치매노인은 초반 치매를 인지하지 못할 정도로 지성인으로 자식을 대하다가 시간이 흐를수록 개연성 없는 말들을 내뱉으며 자식을 혼란스럽게 한다. 자식인 게오르크와 치매 노인은 일전에 자식의 친구 문제로 어떠한 갈등이 있었던 것 같은데, 그 친구와 멀어지게 된 계기가 그 노인 때문이었는지 횡설수설 중인 와중도 노인은 그 친구 문제를 자꾸 거론한다. 그것이 자식인 게오르크에게 미안함을 표현하는 극 중 장치 인지, 작가의 삶을 투영해서 실제 아버지에게 사과를 받기 원하는 것인지는 작가 프란츠 카프가만 알 것 같다.

 

노인은 의미를 정확히 파악할 수 없는 말로 지속적인 언쟁 중에, 갑자기 집 밖으로 뛰쳐나가 도로에 뛰어들며 달리는 차에 몸을 던져 자신의 삶을 스스로 마감한다. 즉 이 단편의 제목처럼 자신에게 판결을 내리는 것으로 해석된다. 어쩌면 작가가 실제 누군가를 의미하며 글로서 판결을 내리는 것일 수도 있겠다. 아니면 과거의 삶은 그 기억이 희미해지더라도 결국 누군가에 의해 해석되고 의미가 부여되는 심판을 받는다는 의미일까? 아니면 간단하게 인과응보의 의미?


시골의사

시골의사가 비상 알람을 듣고 환자에게 달려 가려하지만 계속되는 눈보라에 어젯밤 말이 얼어 죽고 발을 동동 구른다. 그러다 갑자기 어떤 마부가 나타나서 말 두필을 빌려준다. 누군지 확인할 새도 없이 말에 타서 막 떠나려 채비하는데 그 마부가 자신의 하녀를 강간하려는 것을 알아채고 막으려 한다. 하지만 말이 그대로 출발하며 순식간에 환자의 집에 도착한다.


환자는 처음에는 이상 없는 정상인으로 보여서 헛수고했다고 생각하고 하녀 생각에 급히 돌아가려는데, 환자 가족들이 무조건 치료하라며 시골의사를 방안에 가둔다. 자세히 보니 환자의 숨겨졌던 상처가 생각보다 깊은 것을 발견한다. 그 상처는 시골의사 자신의 능력으로 도저히 치료할 수 없는 상태였던 것이다. 하지만 섬뜩하게도 방문 밖에서 치료하지 못하면 죽여버릴 거라는 가족들의 노랫소리가 들린다. 다행히도 의사는 창문을 통해 빠져나와 말에 올라탔고 그대로 줄행랑을 친다. 하지만 도망치면서 이것으로 인해 의사경력에 큰 흠집을 냈다고 한탄을 한다. 비상벨은 억지라며 탓한다. 모든 것이 하룻밤에 무너졌다고 한탄한다.


무슨 의미일까? 노력하는 삶도 외부의 어떤 압력에 의해 하루아침에 무너질 수 있다는 의미? 그저 몽상가의 생각일 뿐인가? 시골의사, 마부, 하녀, 환자인 소년, 소년의 가족들, 눈보라 속에서도 엄청난 질주를 하는 말들, 그리고 눈이 내린 시골 지방. 어떤 의미 일까?


학술원에의 보고

원숭이가 학술원의 청중들 앞에서 연설을 하고 있다. 어떻게 사냥이 되었는지, 어떻게 조련되었는지, 어떻게 고문당했는지, 지금은 어떻게 서커스단에서 활동하고 있는지를... 원숭의 시선으로서 고매한 청중들이 모인 학술원에서 보고를 하고 있는 것이다. 자유를 박탈당한 원숭이는 처음에는 도망갈 출구를 모색하다가 조련에 익숙해지며 속박 자체를 출구로 인정하고 그 생활에 녹아든다. 이제는 광활한 자연 속의 자유보다는 울타리 안의 생활에 만족하며 인간에게 생포되어 지금까지 살아온 서커스 단의 원숭이 인생에 대해 발표하고 있다. 단, 동물원에 갇혀 지내기보다는 자신을 표현할 수 있는 서커스단 생활이 더 낫다며 자연을 모방된 동물원의 속박은 거부하고 있다.

 

작가는 인간의 틀에 박힌 삶을 비유해서 비판적인 시선으로 글을 쓴 건지, 아니면 서커스 단에 속박된 원숭이를 보고 불쌍한 마음에 글을 쓰게 된 건지는 모르겠지만, 독자가 동물 우리 속의 원숭이의 시선으로 감정 이입되어 자유가 속박된 어쩔 수 없는 현실에 동화되게 만든다.


글을 읽어가며 지금 이 굴을 파고 있는 것은 사람일까? 두더지 일까? 여우일까? 계속 생각했다. 이빨로 쥐를 물어뜯는다는 것을 보면, 수염에 느낌이 전달된다고 하는 거 보면 분명 동물일 것 같은데 어떤 동물인지 명확히 말해주지 않는다. 하지만 페이지 수가 넘어가면서 시선이 누구의 것인지에 대한 궁금증은 차츰 사라진다.


굴을 파고 보수하면서 굴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지속적으로 논한다. 또한 누군가에게 침입당할 수도, 혹은 막힐 수도 있는 굴 입구의 불안정성에 대해 집착하기도 한다. 또한 굴 속 깊이 들어가기도 하고 굴 입구를 통해 밖으로 벗어나기도 하지만 두려움 때문인지, 바깥세상의 무료함 때문인지 다시 굴속으로 들어오기도 한다.


개미가 파놓은 굴처럼 여기저기 작은 광장들을 만들어 놓기도 하지만, 먹거리 및 잡동사니를 대량으로 비치할 수 있는 넓은 광장을 만들기를 원한다. 이 굴의 의미는 바깥세상으로부터의 회피일 수도 있는 것 같지만 지금 시선이 느끼는 감정은 굴 속에서의 안정감, 안락함도 포함되어있는 듯하다. 또한 굴 속으로 전해지는 어떤 소리에 집착도 하는데, 그게 미물 것인지 큰 동물 것인지 걱정하며 들려오는 소리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어떻게 대응할까 생각을 하지만 딱히 대처도 하지 않고, 그 감정을 아주 자세하고 지루하게 표현한다.


굴 밖에서, 그리고 이리저리 미로 같은 굴 속에서 계속 왔다 갔다 쳇바퀴 돌고 있다. 페이지수가 그리 많지 않지만, 그 반복됨에 계속 남은 페이지를 확인하게 된다. 독자를 위한 글이기보다는 작가의 감정을 느끼는 그대로 그냥 계속 끄적이며, 파놓은 어둠침침한 굴 속을 계속 돌아다니는 느낌이다. 이 단편을 읽는 나의 눈의 눈꺼풀은 계속 감기기를 반복했다. 굴은 작가가 고립되어 안정감을 취하는 정서적 안식처를 표현한 것일까? 누군가에게 들키고 싶지 않은 그 깊고 깊은 터널 같은 것?...


법 앞에서

법으로 들어가는 문이 있다. 시골사람 한 명이 들어가려고 하지만 문지기가 지키고 있다. 시골사람은 그 문지기한테 입장을 요구하지만 문지기는 지금(은!) 안된다고 한다. 완력으로 문지기를 제치고 들어갈 수 없음을 직감하기에 시골사람은 기다린다. 그리고 시간이 흐르고 흘러 그 흐른 시간이 일 년이고, 이년이고, 십 년이 된다. 그동안 시골사람은 가져온 짐에서 각종 귀중품을 문지기에 바치지만 문지기는 그것을 취하면서도 들여보내 주지는 않는다. 결국 시골사람은 늙어 죽기 직전에 이르고, 문지기를 원망하며 그 외에는 아무도 찾아오지 문에 대해 조롱하지만 문지기는 말한다. 이 문은 오직 당신만을 위한 문이었다고.


짧은 이 글을 읽는 중에는, 법 앞에서 만인은 평등하다고 하지만 실제 약자에게는 평등하지 않은 법을 비판하는 글인 줄 알았는데, 마지막 문지기의 말을 듣고 나니 자신이 정한 테두리 안에 갇히는 사람들을 은유적으로 표현한 것이라고 느꼈다. 맞을까?

 

그 이후의 단편들

이후 단편들은 두세 페이지 정도로 굉장히 짧은 글들이 대부분이다. 알 수 없는 의미글들도 있고 간단한 묘사의 글도 있다. 하지만 하나 같이 몽상적이지만 표현은 사실적이다. 미술품으로 보자면 초 현실주의 미술품 같다. 습작들을 지속적으로 집필하며 잡념을 가감 없이 그대로 쭈욱 써 내려갔고 그대로 작품이 된 것 같다. 일반적인 공상은 그냥 흘려보내기 십상이나 프란츠 카프카는 미세한 상조차 꾹꾹 눌러 적어 내려가는 느낌이다. 하지만 독자들에게는 친절하기 보다는 작가의 만족이 풍부한 글이라고 볼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잘 모르는 미술 작품을 미술관에서 천천히 둘러보는 느낌으로 마음의 안정의 취하기에는 좋은 것 같다.


작품 해설
카프카에의 길, 카프카의 길

옮긴이 전영애 교수님은 작품 해설에서 중편이던, 장편이던, 단편이던 서로 다른 이야기지만 프란츠 카프카의 의식의 흐름(길)이 각 작품들에서 순차적으로 이어진다고 해석하고 있다. 고맙게도 궁금하게 생각했던 각 편마다의 의미를 해석  해주고 있다.


법 앞에서: 구원에 있어서 인간이 그 앞에서 온갖 노력을 다하지만 이르지 못하는 허망함의 길.


판결: 특이한 죄의식이 자기변호를 자기 처형으로 급전시키는 길.


시골의사: 인간이 인간을 결코 도울 수 없는 시대에, 결코 구원자가 될 수 없는 한 의사가 지상과 천국 사이를 질주하는 야생마에 끌려 알몸으로 가는 <불운을 극한 한 시대의 혹한>의 얼음길.


변신: 소유의 세계의 대립적인 긴장 가운데서 그것으로 하여 개인이 겪는 압박과 소외가 마침내는 무력한 한 인간을 한 마리 흉측한 해충으로 변신케 하는, 그리고 그 해충마저도 아버지가 던진 사과 한 알에 치명상을 입어, 그리고 그보다 더욱 쓰라린 고독으로 하여 죽어가는 길.


학술원에의 보고: 한 마리의 원숭이가 거꾸로 인간이 되기 위하여 걸어온 길, 혹은 인간의 원숭이 이 다운 요소가 걷는 길, 그 길은 출구를 찾기 위한 노력으로 요약.


굴: 존재가 불안 자체인 한 마리 짐승이 파는 막막한 지하 건축에서의 길. 삶의 막막함, 출구 없는 절망적 상황.

 



책을 덮으니 하나의 초현실적인 미술품을 보고 나온 느낌이다. 생각 없이 보면 좋았겠지만, 파고드니 복잡한 프란츠 카프카의 소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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