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근정전 둘러보기(1)
왕을 만나기 위해 광화문과 흥례문, 근정문을 차례로 지나 드디어 그 유명한 근정전에 도착했습니다.
근정전을 마주하고 있노라니, 뒤로 보이는 북악산이 경복궁을 품고 있는 것 같아 뭔가 웅장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아늑한 느낌도 듭니다. 눈을 잠시 감고 있으면, 마치 조선시대로 돌아간 것 같기도 하죠.
사실 궁궐이 주는 특별함을 느낄 수 있는 곳 중 한 곳이 바로 근정전이라고 생각합니다.
조용히 근정전을 바라보고 있으면 시간이 멈추고 서울 한복판의 그 요란한 소리들이 모두 그치는 듯합니다. 고요하기까지 한 느낌! 공기도 달라집니다. 도심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을 정도로 달라지는 공기와 소리들... 특히 관람객이 드문 개장시간에 맞춰 근정전을 보신다면, 그 느낌이 배가 될 겁니다.
근정전은 웅장합니다. 궁궐 안에서도 핵심적인 건물이며, 정전이라고 하죠. 주위를 압도하는 카리스마와 함께 숭고함까지 느껴집니다. 웅장하지만 과하지 않아 더 멋져 보이기도 하고요. 지금의 근정전은 1876년 흥선대원군이 경복궁을 중건했을 당시의 모습을 바탕으로 하고 있습니다.
자, 그럼 우리 근정전은 어떤 의미를 담고 있는 전각인지 한 번 살펴볼까요?
태조실록의 기록을 보면 그 의미를 잘 알 수 있습니다.
근정전과 근정문에 대하여 말하오면, 천하의 일은 부지런하면 다스려지고 부지런하지 못하면 폐하게 됨은 필연한 이치입니다.
(태조실록, 태조 4년(1395) 10월 7일)
이 또한 신하였던 정도전이 이름을 짓게 되는데, 왕에게 부지런함을 강조하고 있다는 게 느껴지시죠?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조선시대 궁궐의 전각들은 각각 역할도 달랐고, 이름이나 활용 목적 등에 따라 품격이 달라지도 했습니다. 그래서 궁궐의 전각들을 볼 때, 월대의 여부, 현판의 글자 등을 확인해 보시면 좀 더 쉽게 쓰임새나 품격 등을 짐작해 볼 수 있죠.
근정전은 왕의 즉위식, 세자 책봉식, 큰 규모의 조회 등 중요한 국가공식행사가 있을 때 사용했습니다. 국왕의 생일이나 중요한 법도, 규칙 등이 반포될 때, 또 외국의 사신을 맞이하는 일들이 바로 근정전에서 이루어졌는데요. 그래서 2단으로 된 높은 월대 위에 격식 있는 건물로 지어지면서 위풍당당한 모습을 지니고 있습니다. 현재 국보로 지정된 중요한 유산이기도 하고요.
자, 이제 우리는 월대로 올라가 보겠습니다. 근정전 앞 2층으로 쌓은 기단이 바로 월대인데요. 올라가면서 보면 앞에서 설명드렸던 답도도 보이고요, 또 신기하게 여러 동물들의 조각도 보입니다. 경복궁의 정전이 다른 궁궐과 가장 다른 점이 바로 이 동물상들입니다. 근정전만의 시그니쳐라고나 할까요?
월대에는 4신(四神)과 12지신(12支神)을 배치해 놓았습니다. 4신은 동서남북을 가리키는 수호신이라고 여겨지는데요. 동쪽의 청룡, 서쪽의 백호, 남쪽의 주작, 북쪽의 현무가 바로 4신입니다. 12신은 우리가 각자의 띠를 이야기할 때 인용하곤 하는 그 동물들이죠. 그래서 각자의 띠에 해당하는 동물들을 찾는 재미가 있습니다. 하지만 개와 돼지는 없다는 점도 알아두시면 좋을 것 같네요.
뿐만 아니라, 서수라고 불리는 동물들도 조각되어 있는데, 특히 쌍서수와 새끼가 함께 있는 서수동물 가족도 꼭 보고 가시기를 추천드립니다. 생각보다 너무 귀엽게 표현되어 있어 한 번 보면 잊혀지지 않는 매력이 느껴지거든요.
자, 드디어 근정전 바로 앞에 섰습니다. 월대 위에 있어서 그런지 근정전은 더 높고 커 보입니다.
그렇다면 근정전은 몇 층으로 되어 있는지 궁금해지죠?
근정전은 밖에서 보면 2층이지만 사실 안을 보면 통층으로 된 1층입니다. 층고가 높기 때문에 더 웅장하고 장엄해 보이죠.
내부에도 볼거리가 많습니다. 왕이 앉는 어좌도 보이고, 그 뒤에 병풍으로 되어있는 그림도 보이네요?
이 병풍은 일월오봉병(日月五峯屛), 또는 일월오봉도(日月五峯圖) 등으로 불리기도 합니다, 왕을 상징하는 그림으로 왕이 있는 곳에 늘 함께하죠. 해는 왕을 달은 왕비를 상징하고, 다섯 봉우리는 삼라만상 또는 또는 백두산, 금강산 등 우리나라의 5대 명산을 의미한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생명력이 느껴지는 폭포와 파도, 소나무 등도 보이고요.
앞서 제가 일월오봉병은 왕과 늘 함께한다고 말씀드렸죠? 조선시대에는 왕이 어떤 행사에 참석했을 경우에 왕의 얼굴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어좌에 해를 그리거나 일월오봉병을 그림으로써 왕이 이 행사에 참석했음을 드러내기도 했습니다. 의미를 알고 그림을 보니 또 다르게 느껴지시죠?
자, 이번에는 발걸음을 옮겨 근정전 측면으로 가볼까요? 대부분의 관람객들은 근정전의 열린 문 중 가운데에만 모여서 일부분만 보고 가시는 경우가 많은데요. 사실 조금만 움직여 측면에서 천장을 올려다보면 멋진 황룡을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이 황룡은 발가락이 일곱 개라 우리는 ‘칠조룡’이라고 부르죠. 우리가 알고 있는 4신을 이야기하면서 가장 가운데에는 용이 있다고 하여, 용을 함께 포함하기도 합니다.
자, 이제 우리는 근정전을 등지고 서서 앞을 한 번 바라볼까요? 근정전 앞에 펼쳐진 큰 뜰이 보이시나요?
우리는 이것을 ‘조정’이라고 부릅니다. 사극을 보면 ‘조정의 대신들은 들어라!’ 이런 대사 나오잖아요?
여기서 조정이 바로 ‘정전의 앞뜰’과 같은 개념이라고 보시면 이해가 쉬울 것 같은데요. 이곳 조정의 품계석 앞에서 신하들이 도열해 행사에 참석하기도 하는 거고요.
근정전 앞에서 조정을 바라보고 있으니, 마치 조선시대로 돌아가 왕과 왕비가 된 느낌이랄까요? 궁궐에 오시면 늘 앞만 보고 걸으실 텐데 이렇게 뒤돌아서 왕의 시선으로 남쪽의 조정을 바라보니, 느낌이 좀 색다르시죠?
근정전의 매력은 이게 다가 아닙니다. 아직 끝나지 않은 근정전의 이야기! 근정전 곳곳에 숨겨진 에피소드와 각종 핫 스폿들을 계속 살펴보시죠. 다음 편으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