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정전 둘러보기(2)
전편 : 근정전 둘러보기(1) '조정의 대신들은 들어라' 읽어보기
‘조정의 대신들은 들어라’‘전하~성은이 망극하옵니다’
근정전 앞에 서니 사극 속 이런 대사들이 여기저기서 들리는 듯합니다. 조정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이 바로 비석들입니다.
바로 품계석이라고 하는 건데요. 잘 보시면, 가운데 왕이 다니는 어도를 중심으로 양 옆에 품계석이 두줄로 나란히 세워져 있습니다. 품계석은 말 그대로 품계를 나타내는 돌이고, 그 품계에 맞게, 각 직급별로 신하들이 서는 위치를 보여주는 것이죠. 근정전이 공식적인 행사를 많이 하는 곳이라고 말씀드렸는데, 그런 행사가 있을 때마다 품계석을 보고 신하들이 자기 자리를 잡는 겁니다.
품계석을 보시면, 근정전과 가까운 쪽부터 1부터 차례대로 숫자를 알려주는 한자가 적혀있고, 정(正)과 종(從)이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습니다.
조선시대 관리들의 품계는 1~9품까지, 그리고 정(正)과 종(從)으로 나뉘는데요. 그렇게 되면 총 18품으로 구성됩니다. 정1품, 종1품, 정 2품, 종 2품 이런 식인 거죠.
그래서 경복궁 근정전의 품계석도 정1품, 종1품... 이런 식으로 배치되어 있고, 본인이 문반인지 무반인지, 어느 직급인지에 따라 어느 쪽에 설지가 결정되는 겁니다. 예를 들어 제가 문반이면서 정1품이라고 하면, 동쪽 정1품이라고 쓰여 있는 품계석에 서면 되는 거죠.
이제는 궁궐에 있는 품계석들을 보셔도 ‘궁궐에 웬 비석?’ 이런 궁금증은 없으시겠죠?
그런데 고개를 살짝 돌려보면 품계석 옆 쪽에 작은 고리가 보입니다.
앞만 보고 갈 때는 몰랐는데, 궁궐 바닥을 보니 이것저것 신기한 것들이 많네요. 여기에 왜 이런 고리를 만들었을까요? 관람객분들께 이런 질문을 하면, 정말 다양한 답변이 나옵니다.
‘문을 열면 비밀통로가 나올 것 같아요’
‘주리를 틀어라... 이런 것처럼 고문받을 때 쓴 거 아닌가요?’
기발한 답변들이죠?
그런데 정답은 따로 있습니다.
바로 차일을 치는 용도로 사용한 것인데요. 쉽게 말해서 우리가 텐트를 칠 때 못으로 고정을 하는 것처럼, 근정전은 행사가 많았던 곳이었기 때문에 그 차일을 고정하기 위해 이런 고리를 설치한 겁니다. 조선시대의 그림들 중에는 궁궐에서 차일을 쳐서 비나 햇빛을 막는 것을 그린 것도 있습니다.
다른 궁궐에 가셔도 이런 고리들을 보실 수 있을 텐데요. 이제는 왜 이런 고리가 만들어져 있는지, 용도는 무엇인지 확실히 알게 되셨죠?
그런데, 어떤 분께서 이런 질문을 하시네요? 조선시대에 중요한 궁궐이었다는 경복궁 근정전의 바닥이 왜 이렇게 울퉁불퉁하냐고요. 예전에 프랑스 베르사유 궁전을 갔더니, 대리석을 깔아서 번쩍번쩍 빛나고 멋져 보였다면서요. 궁궐에 박석을 깐 것은 다 이유가 있습니다.
조정을 채우고 있는 이 울퉁불퉁한 돌은 바로 ‘박석’이라고 합니다. 얇을 박(薄), 돌 석(石), ‘얇은 돌’이라는 의미죠.
우리 한 번 생각해 볼까요? 공식적인 행사가 있을 때, 신하들은 옷을 어떻게 입었을까요?
당연히 격식 있게 차려입었을 것입니다. 조선시대 신하들의 복장들을 생각하면 꽤 복잡하죠. 신발은 가죽신을 신었다고 합니다. 만약에 대리석을 깔았다면 미끄럽지 않았을까요? 이런 미끄러짐을 방지하기 위해 박석을 깔았다는 이야기도 있고요.
또 하나, 햇빛이 강한 날이면 대리석 같은 경우는 반사가 되어 매우 눈부셨을 겁니다. 햇볕에 반사되는 빛을 막기 위해 박석을 깔았다고도 하는데요. 이 박석으로 인해 근정전 안에서 행사를 지켜보는 왕의 시선이 좀 더 편하지 않았을까요?
자, 이번에는 월대에 아래쪽을 잠시 살펴보죠.
넓적하게 생긴 물건이 보이네요?
이것은 ‘드므’라고 합니다. ‘넓적하게 생긴 독 정도’라고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궁궐 건물은 나무로 짓죠? 그렇다면 가장 무섭고 위험한 게 무엇일까요? 바로 불이었습니다. 그래서 드므에 물을 담아두었는데요. 실제로 불을 끄기 위한 물이라기보다는 상징적인 의미가 좀 더 크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옛날 사람들은 ‘화마’라고 하는 불귀신이 불을 낸다고 생각했는데요. 드므에 물을 담아두면, 불귀신이 불을 내려고 이곳에 왔다가 물에 비친 얼굴을 보고 도망간다고 생각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월대 위쪽을 보면, 향로처럼 생긴 것이 있는데 이것은 행사 시 향을 피우는 용도로 사용했다고도 하고, 왕권을 상징하는 정(丁)이라고도 합니다.
우리 이번에는 근정전과 조정을 둘러싸고 있는 회랑과 행각을 좀 살펴보죠.
많은 분들이 이곳에서 늘어진 기둥을 사이로 예쁘게 사진을 많이 찍으시는데요.
벽 없이 기둥만 나란히 들어선 복도 같은 곳을 바로 회랑이라고 합니다. 지금 근정전을 둘러싼 공간들이 모두 회랑으로 보이시겠지만 실제로는 행각으로 사용했던 공간도 있습니다. 안쪽의 기둥과 기둥 사이를 막아서 창고나 사무실로 사용하기도 했죠.
잘 보시면 기둥들 사이에 나무를 끼웠던 흔적들이 보이실 겁니다. 원래는 행각이었던 이곳을 일본이 1915년 조선물산공진회를 한다는 이유로 훼손하게 됩니다.
조선물산공진회의 정식명칭은 ‘시정 5년 기념 조선물산공진회(始政五年記念 朝鮮物産共進會)’로 일제강점기였던 1915년 경복궁 일대에서 열린 박람회였죠. 일본이 조선을 식민 지배한 5년 동안의 성과를 과시하기 위해 기획된 박람회로 이때 경복궁은 정말로 많은 전각들이 헐렸고, 훼손되었습니다. 너무나 안타까운 일이죠. 그래서 저는 해설을 할 때마다 이곳을 그냥 지나치지 않고 꼭 말씀드리고 넘어갑니다. 역사의 흔적을 제대로 확인하고 아는 것은 중요하니까요.
경복궁에 오시면 사진을 제일 많이 찍으시는 곳이 바로 근정전 앞이 아닐까 싶은데요. 정면에서 찍는 것도 물론 멋지지만 경복궁을 감싸고 있는 북악산과 인왕산까지 한꺼번에 사진에 담을 수 있는 핫한 장소도 있습니다. 그래서 이곳에 서서 설명을 드리면서 마지막에 꼭 사진에 멋진 풍경을 담아가시라고 강조하곤 합니다.
근정전 동쪽 가장 아래쪽으로 와서 뒤에 북악산과 인왕산을 배경으로 근정전과 함께 찍으면 그게 더없이 좋은 포토스폿이 됩니다. 하늘의 구름까지 함께한다면 금상첨화겠죠?
그리고 여기서 알고 있으면 좋을 한 가지! 근정전 조정의 북쪽과 남쪽은 살짝 높이가 다르다는 것, 알고 계셨나요? 우리가 그것을 어색하게 느끼지 않는 것이 바로 처마의 단 때문입니다. 단을 보면 한 층 한 층 씩 자연스럽게 내려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는데요. 비가 많이 오는 날에도 근정전이 물에 잠기지 않고 배수가 잘되는 것이 이런 이유 덕분이라는 말도 있습니다.
이렇게 근정전은 단순히 건축물 하나의 의미가 아니라 유교정치의 중심지이자 왕권을 보여주는 상징이기도 하고요, 여러 과학적인 원리들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오늘 구석구석 숨어있는 근정전과 그 일대의 매력을 잘 확인해 보셨나요?
그럼 이제 저희들은 왕이 신하와 함께 많은 시간을 보냈던 곳, 왕의 업무공간인 사정전(思政殿)으로 발걸음을 옮겨보겠습니다! 다음 편에 만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