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왕의 삶이 담겨있는 곳, 강녕전(1)
이 정도까지 오면 많은 분들이 이구동성으로 하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경복궁, 생각보다 너무 큰데요?”
네. 경복궁은 큽니다. 하지만 제가 초반에 말씀드렸던 것처럼 과거의 더 화려하고 웅장했던 경복궁을 떠올려본다면, 지금의 경복궁 규모는 여러분이 상상했던 것 이상일 수 있습니다. 그리고 경복궁은 안으로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더 신비스럽고 재미있는 이야기들이 가득하다는 것도 잊지 마시고 조금 더 힘을 내서 이동해 보도록 할게요!
먼저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왕과 왕비는 각방을 썼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몇 년 전, 해설 도중 이런 이야기를 하니 제 앞에서 설명을 듣던 한 아이가 갑자기 손을 들더니 천진난만한 표정으로 이렇게 이야기를 하네요.
“선생님! 저희 집도 그래요. 엄마아빠 따로 주무시는데요?”
아이와 함께 오셨던 부모님의 얼굴이 빨개졌던 순간이 문득 떠오릅니다. 아이의 귀여운 발언에 주변 관람객분들이 덕분에 잠시 웃을 수 있었죠.
자, 본론으로 다시 돌아오면 왕과 왕비는 평소에 같은 곳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서로 각자의 생활공간이 다릅니다. 그래서 각방을 썼다고 표현한 거죠.
그럼 먼저 왕의 생활 공간인 강녕전에 대해 알아볼까요?
강녕전은 왕이 잠을 자는 곳이라서 침전(寢殿) 또는 연침(燕寢)이라고도 불렸습니다. 왕은 강녕전에서 일과 후에 쉬기도 하고, 생일 같은 날에는 작은 연회를 베풀기도 하고, 신하들과 나랏일을 의논하기도 했습니다. 특히 강녕전을 보면, 앞쪽에 월대가 있는 것을 확인하실 수 있는데요. 연회 등이 있을 때 월대에서 악공들이 악기를 연주하기도 하고 또 그곳에서 춤을 추는 사람들도 있었겠죠.
경복궁을 이 정도쯤 둘러본 분들이라면, 궁궐 전각의 이름은 허투루 지은 것이 없다는 것쯤은 모두 알고 계시겠죠?
강녕전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강녕전(康寧殿), 강녕은 건강을 의미합니다. 오복(五福) 중의 하나인데요.
여기서 오복에 대한 질문을 좀 해볼게요. 여러분은 혹시 오복에 해당되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계신가요?
예전에 출시되었던 ‘오복치약’ 때문인지, 치아, 눈 등 신체기관과 관련된 이야기들을 많이 하시는데요. 실제 오복은 다른 것들을 의미합니다. 수(壽), 부(富), 강녕(康寧), 유호덕(攸好德), 고종명(考終命), 오래 살고, 부유하고, 건강하고, 덕을 베풀고, 편안하게 죽는 것을 의미하죠. 제가 말씀드린 다섯 가지 중 가운데가 바로 강녕인데요. 이 강녕을 누리면 나머지를 다 누릴 수 있다고 생각해서 강녕전이라는 이름을 지었다고 합니다. 여기서 강녕은 몸이 건강하다는 것과 마음이 편안한 것을 함께 의미한다고 보면 될 것 같네요.
최근에도 해설을 하면서 오복에 대한 질문을 했는데요. 초등학생들이 가장 먼저 외친 것이 바로 ‘자산’이었습니다. ‘돈’이라는 표현이 아니라 ‘자산’이라는 말을 쓰는 것을 보면서 요즘 우리가 사는 사회의 모습이 반영된 것 같아 격세지감도 느끼게 되더라고요. 예나 지금이나 풍족하고 여유롭게 사는 것에 대한 사람들의 바람은 같은 것 같네요.
이번에는 강녕전 주위를 한 번 둘러볼까요?
강녕전은 경성전(慶成殿), 연생전(延生殿) 등 부속건물이 있습니다. 지금은 이 건물들이 모두 떨어져 있지만, 조선 후기에는 복도로 이어져 있어 편하게 이동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전각의 이름을 통해 한 가지 재미있는 점을 말씀드리면, 강녕전을 기준으로 연생전은 동쪽에, 경성전은 서쪽에 있는데요. 앞서 궁궐에서는 동서남북이 매우 중요하다고 말씀드렸었죠? 우리가 동쪽을 생각하면, 계절로는 만물이 탄생하는 봄, 새싹, 시작, 이런 느낌이 들죠. 서쪽은 해가 지는 곳, 가을, 뭔가 결실을 맺고 열매 맺는 그런 느낌이죠. 그래서일까요? 동쪽의 연생전에는 가운데 날 생(生)을, 서쪽 경성전에는 이룰 성(成)을 쓴 것도 눈여겨보면 좋을 것 같네요.
가까이서 보니, 강녕전 안은 어떻게 구성되어 있는지 궁금해집니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집들과 비슷한 구조일까요?
강녕전은 중앙의 마루를 기준으로 우물 정자(井) 모양을 이루며 방이 만들어져 있습니다. 왕은 가운데 공간을, 나머지는 궁녀들이 사용했다고 하는데요. 바로 이 궁녀들이 지밀(至密) 궁녀들입니다. 사전을 보면, 지밀은 지극히 은밀하고 비밀스럽다는 의미로, 왕이 거처하는 곳을 이르던 말이기도 하죠. 그리고 왕이 주무시는 동안 주변의 방에는 지밀상궁들이 함께하면서 혹시 모를 일들에 대비했다고 합니다.
강녕전에는 총 9개의 방이 있습니다. 특이한 것은 따로 벽이 있는 것이 아니라 문으로 공간이 구분이 되는데요. 가운데 마루 쪽의 문은 들어 올려서 고정시킬 수도 있습니다. 가서 보면 문을 올렸다가 내렸다가 하면서 벽의 역할까지 하는 것을 볼 수 있죠. 우리 건축의 특징이라고 하는데요. 여름에는 시원하게, 또 겨울에는 문을 내려서 내부를 따뜻하게 할 수 있었겠죠?
현재 여러분께서 보시는 강녕전은 1995년 복원된 것인데요. 1917년 일제 강점기 때 창덕궁에 큰 화재가 난 적이 있었습니다. 당시 왕의 침전이었던 희정당이 타자, 희정당을 복원하면서 경복궁의 강녕전을 헐어서 희정당 복원에 사용했죠. 궁궐의 전각들은 나무로 만들었고, 못을 쓰지 않기 때문에 그대로 분해를 해서 그대로 다른 곳에 옮겨 끼워 맞추는 방식으로 다시 지을 수가 있는 것이 특징이거든요. 그래서 일제는 그렇게 경복궁의 강녕전을 헐어서 창덕궁으로 옮긴 건데요.
앞으로 강녕전과 희정당을 보실 땐, 이런 역사도 기억해 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오랜 역사를 견디어 온 궁궐인 만큼, 특히 일제 강점기를 거치면서는 너무나 많이 왜곡되고 훼손된 안타까운 사연들이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자, 그럼 우리는 이제 강녕전 뒤쪽으로 이동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