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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찬 Mar 31. 2021

미완성들

월간 에세이. 좋아하는 것을 사랑하는 일에 관하여 [3월]



  Comment  

    한 사람이 평생에 걸쳐 자신을 헤아리는 일은, 이미 견고한 프레임 안에 오롯이 완성된 형태로 맞추어질 운명에 놓여 조각들이 공식처럼 제 자리를 찾다, 언젠가 “완성”이라 불리며 그저 바라보는 데에 그쳐버리는 한 판의 퍼즐 같은 일은 분명 아닐 것이라는 생각을 한다. 


    한가로이 때론 치열하게 내달리다 보면 손끝에 아니면 움켜쥔 주먹 안에 어느샌가 잡혀 있는 무엇인가들이 있는데, 이를 쉽게 ‘조각’이라 표현해 본다면 우리는 그 몇 개의 조각들로 ‘나’를 정의해보려는 무수한 시도들로 자신을 헤아리는 일련의 일상을 살아가고 있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어느샌가 잡혀있는 것들’이라 하니 의지와 목적을 지닌 노력으로 나타난 것이 아니라 맥락 없이 우연히 나타난 결과물인 마냥 표현한 것 같지만, 그것이 맞다. 요즘은 굳이 '그러지 못하는 상태'에 있는 나를 ‘내가 생각하기에 적절한 속도와 긴장감’에 억지로 끌어 올려다 놓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 나는 이런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의식에 주입하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 새롭게 고민스럽다. 생각해 보면 한참이 지난 후에 뒤돌아 볼 때 즈음이 되면 그런 방황조차도 자연스러운 과정이었음을 깨달을 때가 더 많아서 그렇다. 


    그 조각들을 이리저리 맞춰본다. 완성이라 정의된 형태는 없다. 다만 그 순간의 내가 스스로 정의할 수 있는 형태들을 만날 수 있을 뿐이다. 그리고 그것을 나의 성향이라고, 성격이라고, 지금의 기분, 지닌 재능, 요즘의 습관 그런 것이라고 정의한다. 그렇게 매 순간 조각은 느릿하게 모였다가 흩어지기를 반복하며 어떤 형태를 지어내고, 어쩌면 결국 일시적일 수도 있는 그 형태에 지금 존재하는 나의 모습을 맡겨 보기도 한다. 


    근데 이번 달은 아니었다. 아무것도 내 앞에 모이지 않았다. 일상적인 꾸준함이 숱하게 만들던 것들조차도 쉬이 만들어내지 못하고 있었다. 마음이 초조해져서 고개 숙여 바닥을 긁고 그러 모아, 손에 제멋대로 걸리는 것들을 굳이 조각이라 정의하며 모아 보아도 내가 정의할 수 있는 무엇인가의 형태가 나타나지 않았다. 나는 그런 상태를 요즘 아무것도 마음에 와닿지 않는다고 표현하기도 했고, 기분이 이상하다고 표현하기도 했고, 내가 도대체 왜 이러는지 모르겠다고 표현하기도 했다. 어떻게 보면 그 어느 때보다도 나를 돌아보고 싶어서 노력한 한 달이었는데, 이상하게 그 모든 것들이 고작 고운 모래를 손에 잔뜩 쥔 것 마냥 모두 손가락 틈 사이로 새어나갔다.


    노력했지만 그 노력은 결과물이 되지 못했다. 더 정확히는 ‘결과물’이라 어떻게든 부를 수는 있겠다만, 그것을 만든 나조차도 그것이 무엇인지 정의할 수 없는 것들만이 남았다. 미완성의 것들이었다. 아무리 노력해도 지금은 딱 거기까지만 정의할 수 있었다. 


    모든 걸 다시금 다듬고 정리하며 마무리해야 할 시점인데, 아직도 발이 붕 떠 있는 기분이다. 이 애매하게 남은 것들을 어찌해야 하나 고민스럽다. 그냥 모두 폴더 한곳에 묻어 버리고 이번 달은 정말 아무것도 잡히지 않아서 글을 쓰지 못했다고 솔직하게 말하고 지나갈 것인지에 대해서도 잠시 고민해 보았다. 하지만 앞을 내다보는 자아 하나가 그걸 허락하지 못했다. 첫 번째 파일, 두 번째 파일, 세 번째 파일, 그리고 지금 네 번째 파일에서 미완성을 하나의 형태 안에 그러 모으기 위한 또 다른 글을 쓰기까지 오게 된 이유는 그런 오기 때문이었다. 이미 구겨진 종이 쪼가리들을 다시 빳빳하게 펴서 책꽂이에 가지런히 꽂아보겠다는 마음으로 어영부영 이 글을 쓰고 있다. 허구한 날 다른 일들의 마감 일자는 늦곤 하면서, 한 달에 한 번이라는 나와의 약속은 그렇게라도 지키고 싶었다.


    사실 3월이면 따듯해질 테니까 글도 그런 걸 쓰고 싶다고 무의식중에 바라고 있었는데, 아직은 아닌가 보다. 그러 모으고 다시 그러 모으다 결국 아무것도 잡히지 않아 회의적인 시선을 보내기를 반복하다 한 달이 지나버렸다. 다음 달에는 다정한 것들이 모였으면 좋겠다 싶은 마음이 든다. 





 미완성들 

    그래서 이번 달은 미완성들의 모음이다. 모든 글을 끝맺지 못했다니, 그 자체가 이번 3월을 어떻게 보냈는지 여러 맥락으로 방증하는 것 같다. 


    문장과 문장 사이에는, 결국 문자로는 드러나지 않지만 한 사람의 삶에 걸쳐 쉼 없이 반복되었을 사유가 알게 모르게 깃든다. 문장과 그다음 문장은 그렇게 맞물린다. 이번 달에는 문장과 문장이 그리고 내용과 내용이 잘 맞물리지 않았다. 시작을 했으나 끝을 어떻게 맺어야 할지 알 수 없었고, 내용은 있지만 그 시작과 끝을 어떻게 지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물론 아무도 모를 테니 억지로 갖다 붙여볼 수는 있겠다만, 그것이 내가 이곳에서 하고 싶은 일은 아니었다. 구태여 매달 에세이를 남기겠다는 나의 마음은 그런 것이 아니었다.


    좋은 글을 쓸 수는 없을지언정, 미완성에 반복해서 머물러야 했던 나의 상태가 남겨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어쩌면 그런 상태 자체를 남기는 것이, 억지로 완성한 그 어느 글보다도 더 정확하게 나를 증명하는 것일 수도 있으니 말이다. 그래서 완성되지 못한 채 붕 떠 있는 문단 몇 개를 끌어다 놓기로 했다. 열심히 모아 보았지만 무어라 정의되지 못한 것들이다. 그래도 다행인 것이 있다면 그나마 각각 제목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아닐까 싶다. 실마리의 실마리 격으로 말이다. 


    사실 속내는 다음 달에도 이 상태가 지속되는 건 아닌가 고민스러운 상태다. 무엇이 나를 다잡지 못하고 붕 뜨게 했는지 고민하고 있는데, 아직도 그렇다 할 원인을 찾지 못했다. 모든 의욕을 상실해 버린 건 아닐까 두려울 지경이다. 그래서 더욱이나 늘 하던 것을 더 다급하게 붙잡은 것일지도 모르겠다. 




     1) 미술에 관심을 가지다 보면 주기적으로 혼란이 온다. “미술은 정말 뭘까” 싶은 마음, 지금이 딱 그때였다. 마음이 평소와 달리 어디에도 붙지 못하고 허공에 아슬하게 떠 있는 기간이 있다. 미술과 나의 관계는 정말 무엇일까. 지금까지 열심히 내려온 대답 몇 가지가 이미 놓여있어서 더 힘든 질문이었다. 내가 기록해온 정답 그 어느 곳에도 온전히 정착하지 못하는 기분은 썩 유쾌하지 않았다. _ <무제>


     2) ’다정하다’는 이미 그 한자에도 드러났듯 “정이 많다”라는 의미다. ‘정’은 “느끼어 일어나는 마음”, “사랑이나 친근감을 느끼는 마음”을 의미한다. 느끼어 일어나는 마음, 사랑을 느끼고 친근감을 느끼는 것이 그냥 일어나는 일이 아니란 걸 생각하노라면 ‘다정하다’라는 동사를 입에 담기가 조심스러워진다. 정말 다정한 것이었을까 싶어서 말이다. 그래서 ‘다정하다’는 내가 가진 무엇인가에 대한 것을 말하기보다는, 내게 향해오는 무엇인가에 대한 마음을 말하는 데에 더 많이 쓰였던 것 같다. _ <낯 가리는 사람의 다정한 꿈>


     3) 근데 그게 하나도 안 즐거운 거예요. 어딘가 지치기까지 하는 거예요. 제가 쓰고 있는 문장들이 갑자기 공허하게 느껴지더라고요. 그 모든 게 하나하나 자각되기 시작하니까 숨이 턱 막히는 기분이었어요. 내가 정말 그랬던 건가, 지금 기분이 안 좋은 상태인 건가, 그냥 감정적인 생각인 건가 싶어서, 그런 생각과 함께 제 자신부터 의심해봤어요. 그래도 미술에 대한 마음은 꽤 동일한 색채로 지키고 싶었나 봐요. 그래서 시간을 두어봤어요. 근데 마음이 잘 안 풀려요. 딱딱하게 굳어버린 느낌. 그래서 제가 해온 것들을 다시 돌아봤어요. 최근에는 더욱이나 그렇다 할 감정이나 마음 같은 것이 잘 들지 않았던 것 같아요. 어쩌면 당연한 일이기도 해요. 어떻게 모든 일에 진심과 감동을 담아 감탄하고 이해하겠어요.


     (…) 미술을 흔히 수식하는 표현인 ‘다채롭다’라는 말이요, 그게 저를 혼란스럽게 해요. 두서 없이 지난 생각을 계속 쏟아내 보니까 그런 생각이 드네요. 정답이 없어서, 이해하든 말든 사실 사는 데 크게 상관없어서, 그러니까 그 막연함 속에서 제가 어떻게 서 있어야 하나 모르겠어서 어려워요. 지금 이 시점에 많은 게 한꺼번에 몰려온 것일지도 모르겠어요. 생각해 보면 일일이 의미를 찾는 것만큼 피곤한 일도 없으니까요. 애써 자신을 마모하면서까지 노력하는 것일수록 그렇게까지 해야 하는 의미를 더 찾고 싶어지잖아요. 지치니까. 미술에 관한 것이 어느 순간 그저 ‘애써 하는 것’처럼 보이니까 의미를 찾는 일에 괜히 매여 있던 것 같기도 하네요. 


     (…) 근데 결국 이런 생각이 들어요. 그냥 생각 없이 마주할 수 있는 작품 앞에 서면 괜찮아질 것 같다는 생각이요. 내 마음 한 번 동하게 할 예술과 잠시 만났으면 좋겠다는 생각. 그런 순간이 생각보다 쉽게 찾아오지는 않거든요. 이런 말 하는 거 보면 너무 많이 쏟아지는 말들에 지친 것일지도 모르겠어요. 마음 편히 자유롭게 만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스며드는 경험을 하고 싶어요. 이렇게 생각하니 조금 쉬워지는 것 같네요. 그저 다채로운 작품들 사이에서 그런 만남을 갖고 싶다는 바람 같은 것이 무의식적으로 있던 것뿐이고, 그저 그럴 때가 온 것뿐일지도 모르니까요. 미술은 다채로우니까 잠시 쉴 곳도 미술 어딘가에서 찾으면 되거든요. 참 아이러니하죠, 미술이나 사람이나 그 존재 방식은 꽤나 닮아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지금이 그런 시기라고 생각해야겠어요. 그러니까 재촉하지 말고 기다려야겠죠. _<다채로움이요? 그게 저를 혼란스럽게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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