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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덕덕 Dec 11. 2023

다락방부터 피카소까지

아름다운 우연의 건축적 공간부터 큐비즘의 철학적 의미까지

의도치 않은 우연이 예상 밖의 아름다움을 가져다줄 때가 있다.  

건축의 자투리 공간들이 그렇다.


지금은 보기 힘든 다락방이 대표적인 예이다. 철근 콘크리트 구조가 발명되기 전, 눈이나 비로부터 집이 손상되는 것을 막기 위해 경사진 지붕은 필수적이었다. 조명과 배관 등의 구조적인 이유 때문에 평평해야 했던 지붕과 경사진 천장 사이의 자투리 공간인 다락방은 우리에게 많은 추억을 안겨주었다. 다락방의 낮은 층고는 우리를 감싸주는 듯한 포근한 느낌을 준다. 다락방은 아이들의 아지트이자 어른들의 추억이 묻은 물건들을 보관하는 소중한 자투리 공간이다.


다른 예로는 <응답하라 1994>에 나오는 쌍문동 옛날 주택들 사이사이의 골목들이다. 자동차가 흔하지 않던 시절, 한정된 땅에 최대한의 집을 지어야 했기에 건물 간 채광을 막지 않을 정도의 적당한 넓이는 보장되었지만, 자동차가 들어오기에는 너무 좁았던 이런 골목들은 주민들 사이의 소통의 공간이었다.


땅따먹기나 오징어 게임 등을 하는 아이들, 담을 따라 세워진 화분들과 자전거 등 잡동사니들,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낮은 평상 하나 깔아놓고 막걸리 마시던 그 골목, 역시 도시 계획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상태에서 건설된 주택들로 인한 자투리 공간이다. 현대엔 찾아보기 힘든 우연성의 아름다운 공간.



다락방이나 골목의 추억과 같은 옛날의 기억을 회상할 때 우리의 머릿속에는 하나의 긴 비디오보다는 순간순간의 조각난 기억들이 떠오른다. 우리는 세상을 하나의 연속되는 영화보다는 여러 개의 단편적인 사건들로 인지하고 기억한다. 우리는 삶의 중요한 순간의 조각들을 기억하며, 이런 조각들이 재구성되고 결합되어 자신의 삶을 구성한다. 그렇기에 종종 사건의 조각들이 다른 순서로 배열되거나 기억이 왜곡되는 현상이 일어나는 것이다. 이것이 심리학의 인지적 정보처리 이론이다.



<오징어 게임>에서 참가자들이 게임을 하는 세트장들은 사실 인간의 이런 인지적 오류를 이용한 연출이다. 특히 구슬치기 에피소드의 쌍문동의 골목을 재현한 이 세트장은 가짜로부터 향수를 유발해 극 중 최고령인 오일남의 정신적 분열을 일으킴으로써, 가짜와 진짜 사이의 경계가 모호하듯, 게임과 현실을 사이, 그리고 삶과 죽음 사이의 경계가 한없이 가벼움을 암시한다.





세계적인 강연가 롤리 파스칼은 "우리는 만화경을 통해 보는 것처럼 세상을 바라본다, 인생의 작은 조각들을 보지만 전체를 보지는 못한다. 실제로 세상은 모든 조각들이 서로 얽혀 짜인 있는 직물과 같습니다."라고 말한다.


피카소의 큐비즘 그림들 역시 인간의 이런 인지적 특성을 극대화하여 표현한 것이다.


우리가 하나의 물체를 지각할 때 현재의 지각 속에는 지금 눈으로 보는 정면의 상 말고도 밑면의 상, 비스듬한 상, 후면의 상, 나아가 과거의 지각, 미래의 지각 등이 중층적으로 얽혀 있는 것이다. 따라서 지각이란 과거, 미래, 다양한 관점들이 현재라는 하나의 지평에서 ‘현상’되는 것이다. 피카소의 그림은 모델을 정지된 하나의 시점에서 본모습을 그린 것이 아니라 무수히 많은 관점들을 미세한 조각으로 쪼개서 동일한 화면에 중첩시킨 것이다.

<보고 듣고 만지는 현대 사상>


세계를 조각들이 조합된 '현상'으로 보는 것은 다양성을 추구하는 현대사상의 추세와도 연관되어 있다. 대표적으로 세계는 차이로 이루어져 있다는 세계관을 내세운 질 들뢰즈의 '리좀' 철학이다.


동일성은 일차적이지 않다는 것, 동일성은 원리로써 존재하지만 다만 이차적 원리로써, 생성된(생성을 마친) 원리로써 존재한다는 것, 동일성은 '다른 것'의 둘레를 회전한다는 것, 이런 것이 차이에 그 고유한 개념의 가능성을 열어 주는 코페르니쿠스적 혁명의 본성이며, 이 혁명에서 보면 차이는 미리 동일한 것으로서 설정된 어떤 개념 일반의 지배하에 묶여 있는 것이 아니다.

질 들뢰즈, <차이와 반복>


양자역학의 떨어져 있는 물질의 얽힘 entanglement의 인정하는 것과 현세계를 이루고 있는 인터넷과 알고리즘 네트워크의 구조적 형식을 생각하면 들뢰즈의 이런 '리좀'적 세계관은 일리가 있다. 세계는 비정상과 정상의 이분법으로부터 벗어나서 다양성을 인정하고 있다. 모든 것은 차이의 조각들이 상호관계를 이루며 현상한 것이다.


 



사실은 책을 읽고 글을 쓰다 문맥상 뜬금없어 차마 기록하지 못했던 자투리들, 그리고 너무나도 아름다운 구절이지만 책 전체에 대한 한 편의 글을 쓰기엔 아쉬워 아껴놓았던 책의 조각들. 그동안 혼자만의 다락방에 넣어놨던 보물 같은 책의 자투리 조각들을 기록해 보려 했다. 그래서 마땅한 인트로를 생각하다가, 책의 다락방이라는 콘셉트부터 시작해 이런저런 잡생각들이 이어지는 과정이 흥미로워서 한번 끄적여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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